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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죽음도 아깝지 않은 미션은 무엇인가?

마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398 추천 수 0 2016.04.27 23:5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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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8:27-38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6.1.20 주일예배 http://sungamch.net 춘천성암교회 

내 생에 죽음도 아깝지 않은 미션은 무엇인가?
막8:27-38

< 요즘 수요 강좌는 바울서신인데, 그 중에서도 7권의 바울 친서를 중심으로 ‘바울 새로 읽기’혹은 ‘바울을 넘어’우리의 신앙 언어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그동안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서신서를 하나나 뜯어보려는 중이니 여러분도 참여하시길 바랍니다. 이제 볼 바울의 친서는 빌레몬서입니다. 미리 한 번 읽고 오시면 더 좋겠지요.

여하간 제가 강좌 준비를 하는 동안 거듭거듭 바울에 대해 깊은 이해를 돋우고 있는데 이런 물음이 저를 떠나지 않습니다. “바울은 뭣 땜에 그 좋은 환경과 출세의 기회들을 박차고 자신의 목숨과 십자가 예수를 바꿨나?”하는 것입니다. 그걸 우리 모두에게 적용한 문장이 ‘나에게 죽음도 아깝지 않은 미션은 무엇인가?’입니다. 인생이란 누구나 한 번 사는 거고 그리고 한 번은 죽는 겁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살고 죽는 한 번의 기회를 ‘십자가 예수’와 맞바꿨던 것이지요. 왜 그랬을까? 과연 인생들에겐, 나에겐 이런 일생의 미션, 내 목숨과 바꿀수 있는 일이 있기는 한 건가? 이 질문을 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미션(mission)이라는 말을 교회나 교회 다니는 사람이 사용하면 ‘선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보통으로 사용하게 되면 ‘꼭 해야 하는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걸 일생에 견주어 말할 때 ‘나에게는 내 목숨을 걸고 해야만 하는 일이 뭐냐?’고 할 수 있습니다.  

단테라는 시인이 있었습니다. 아, 엊그제 21세기의 위대한 문인 중에 미셀 투루니에라는 이도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단테는 중세의 어두운 터널을 헤치고 나온 위대한 인물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왜 그를 위대한 인물이라고 하는 걸까요? 그는 본래 피렌체의 정치가였습니다. 1302년에 그는 고향에서 추방을 당합니다. 정권이 바뀌면서 정적으로 몰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여러모로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려고 애를 썼지만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는 정치가로서 질곡에 빠졌습니다. 단테는 그때 절망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둠속에 빠졌을 때 자기를 성찰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 발견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정치가로 이탈리아를 통일할 수는 없지만 이탈리아 각 도시에서 사용하는 방언들을 한 곳에 모아 이탈리아의 정신을 통일 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있음을 발견한 겁니다. 단테가 애초부터 문필가는 아니었습니다. 본래는 정치가였지만 깊은 수렁에 빠졌을 때 그 자신을 성찰하는 가운데 문필가로 존재의 탈바꿈을 일으킨 겁니다. 그렇게 존재를 탈바꿈한 단테가 1308년부터 1321년 사이에 쓴 책이 바로 여러분이 알고 있는 <신곡>입니다. 단테의 신곡 말입니다. 그러니까 단테의 신곡은 추방과 소외라는 어머니가 낳은 자식과도 같은 겁니다. 그러면 <신곡>이 훌륭하기 때문에 그가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온 위인이라고 하는 걸까요? 아닙니다.

신곡의 첫 부분은 ‘지옥편’입니다. 지옥편은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우리 인생 여정의 한가운데서 나는 어두운 숲속에서 헤매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곳은 반듯한 길이 숨겨져 있는 장소다.”

단테가 말하는 지옥의 첫 문장엔 ‘우리 인생’과 ‘나’가 등장합니다. 지옥이 뭐냐 하면 ‘우리 인생’이 모두 지옥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속에 우두커니 있는 나는 누가냐 하면, 그 지옥의 숲속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몰라 헤매는 존재라는 겁니다. 물론 이 표현은 단테 자신의 처지, 심리, 영혼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지만, 그가 말하는 인생과 숲속에서의 방황은 우리 인간이 겪는 삶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은 언제나 어두운 숲속에 빠져 있습니다. 그저 하루살이처럼 하루하루 사는 것일 뿐입니다. 지옥이 뭐냐, 어두운 숲속과 같은 인생살이가 지옥입니다.  

그런데요, 이렇게 문장이 끝나면 허무할 겁니다. 그냥 지옥에 푹 빠져 살 수 밖에 없는 인생의 무력감을 말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단테의 반전은 뒤에 있습니다. 지옥이 무섭지 않은 이유는 그 뒤에 나오는 ‘거기 반듯한 길이 숨겨져 있다’는 대목입니다. 단테는 어두운 숲속에서 헤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자신을 제 삼자의 눈으로 보게 된 겁니다. 지난 시간의 표현으로 치면 분리가 끝나고 점점 새로운 본질이 스며들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신을 제2의 자아가 되어 낯선 자의 눈으로 관조하고 있는 겁니다. 단테는 이 어두운 숲속에서 그림자처럼 자신을 인도하는 한 인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인물은 1세기 로마의 작가 베르길리우스였습니다. 단테는 그를 통해 지옥에서 빠져 나와 연옥과 천국을 여행하기 시작합니다.

단테의 소설 <신곡>을 더 이상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문장은 첫 머리에 나왔던 ‘어두운 숲속’과 그 숲속에 반드시 있다는 ‘반듯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누구나 어두운 숲에 들어와 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각성에 이른 바울도 ‘갈 바와 행할 바’가 무엇인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저 ‘반듯하게 인도하는 누군가의 인도만 바랄 뿐’이라는 게 바울의 고백이 아니었습니까? 단테에게 있어 베르길리우스처럼 말입니다. 어두운 숲속과 같은 세상에 사는 인생은 강물에 떠내려가듯 어둠에 휩쓸리지 말고 그 어둠을 관조해야 합니다.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어두운 숲속에 자기가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이때 어두운 숲속은 자기성찰을 위한 수련의 장소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이란 자기를 찾는 자기 수련의 장소입니다.  
사실 누구나 어두운 숲속에 들어서면 내가 아닌 척 하던 것들, 체면이나 남들로부터의 기대와 같은 것들이 무력해집니다. 소용이 없어지죠. 아주 깜깜한 밤에 산길을 걸을 때도 이런 경험을 하게 되죠. 타자나 상황은 더 이상 자신의 삶에 있어서 추호의 고려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어두운 숲속에 들어갔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에게 의미 있고 중요한 일들과 자기 자신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이들이 ‘절대 고독’이나 ‘면벽 수행’이나 ‘침묵’과 같은 과정을 지나는 것입니다. 모두 이렇게 자기 자신과 의미 있는 일들을 찾으려는 겁니다. 그걸 단테는 지옥이라 한 거고, 그에게 지옥은 의미 있는 지옥 혹은 유익한 지옥인 것입니다. 그러니 지옥이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죠. 중세에, 지옥불이 펄펄 끓던 시대에 이런 지옥관을 그려낸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겁니다. 그래서 그를 새 시대를 연 위인이라 하는 겁니다.

글을 써서 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된 이가 <헤리 포터>시리즈를 쓴 조엔 롤랑입니다. 영국 최고의 갑부이기도 합니다. 그녀가 26살 때 이혼하고 딸 하나를 데리고 극빈자 촌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끝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에 갇혔습니다. 그때 그녀는 절망하지 않고 그녀만이 이룰 수 있는 생의 임무가 뭔지를 생각했습니다. 미션 말입니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물건 하나가 잡혔습니다. 오래된 타자기였습니다. 그 타자기를 보는 순간 그에게 신이 나타났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자기 인생의 임무가 떠올랐습니다. 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두운 숲속과 같은 상황에서 자기를 발견했고 그리고 인생의 임무 즉 미션을 알았습니다. 그녀가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그녀에게 임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의 미션을 알기 위해서는 어두운 숲속에 갇혀야 합니다. 숲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어둠에 갇혀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성찰을 해야 합니다. 이것저것 누더기처럼 덧씌운 자기 말고 이 땅에 태어나던 그 처음의 자기를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모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듯이 에피파니(신이 자신의 모습을 찾는 자에게 드러내는 현현)의 순간이 일어나는 겁니다. 조엔 롤랑에게 도 그런 신의 현현이 있었습니다. 단테에게는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났습니다. 예수와 바울에겐 하나님이 나타난 것처럼 말입니다. 구약의 위인들도 대부분 이 에피파니의 체험이후에 그들은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 인생의 미션을 알았기 때문이고, 그 미션을 위해 목숨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살고자 합니다. 그러나 뭘 위해 어떻게 살려고 하는지는 자기 자신도 잘 모릅니다. 그냥 삽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 존재의 미션을 알고, 그 미션을 위해 목숨을 걸고 사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예수는 하늘이 그에게 내린 미션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미션을 위해 살다 죽었습니다. 그 예수가 우리를 불러서 우리가 그의 자녀가 된 게 아닙니까? 그런데 그분이 우리에게 말하는 겁니다.

“나를 따라 사시오!”

여기에 응답하는 존재만이 예수의 자식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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