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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 하세요, 꼭!

마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586 추천 수 0 2016.04.27 23:5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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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14-15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주일예배 http://sungamch.net 춘천성암교회 

회개 하세요, 꼭!
막1:14-15
2016. 1월31일 주일 11시 원고입니다. 
이번 주 설교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라 쓰윽~~~썼지요.

회개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지난날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잘못한 것을 뉘우치고 반성하고 새 출발을 하는 것이다’라고 배웠지요. 지극히 도덕적이고 일반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해를 따라 구약에 나타난 인물이나 신약에 등장하는 사람을 우리는 예로 듭니다.

이를테면 구약성서에서는 대표적인 사람으로 다윗을 꼽습니다. 다윗이 했다는 회개의 전개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욕심내서 강제로 데려다가 아내를 삼고, 그 죄를 은폐하려고 그 남편까지 죽이는 죄를 범하였다(삼하 11)고 합니다. 권력이 저지른 범죄였다는 겁니다. 당시에는 그 누구도 감히 그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없었고 그의 죄는 흙이 눈에 덮이듯 덮이는 것 같았다는 거죠. 그러나 예언자 나단이 그의 죄를 고발하였을 때 다윗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고, 나단 앞에서 "내가 주께 죄를 지었습니다."(삼하 12:13) 하고 고백을 하였다는 겁니다. 다윗은 그러면서 시편 51편을 회개의 시로 지었다는 겁니다.

하나님, ... 2 내 죄악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내 죄를 깨끗이 없애 주십시오. 3 내 반역죄를 내가 잘 알고 있으며, 내가 지은 죄가 언제나 내 앞에 있습니다. 4 주님께만, 오직 주님께만,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시 51:1-3)

훗날 사람들은 이걸 교훈으로 삼으면서 ‘다윗은 뒤늦게라도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았다’고 정리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다윗은 주께서 보시기에 올바르게 살았고, 헷 사람 우리아의 사건 말고는, 그 생애 동안에 주의 명령을 어긴 일이 없었다.(왕상 15:5)”고 합니다. 나는 이 대목을 볼 때마다 개운치 않음을 느끼곤 합니다. 신약성서에 오면 세례 요한의 회개 운동이 두드러집니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였죠(마 3:1). 그는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하면서 세례를 주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형식적인 회개에 그치지 말고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으라고 하였습니다. 그 내용이 다음입니다.

(무리에게)...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 (세리들에게) "너희에게 정해 준 것보다 더 받지 말아라." (군인들에게) "남의 것을 강탈하거나 거짓 고발을 하지 말고, 너희의 봉급으로 만족해라.(눅 3:11-14)

우리는 간편한 마음으로 구약의 다윗이 했다는 회개와 신약의 세례요한이 요구하는 회개가 동일선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규정해 버립니다. 그러나 면밀히 살펴보면 다윗의 회개와 세례 요한이 촉구한 회개 운동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회개는 그저 감정적으로 눈물 찔끔거리는 그런 형식적인 회개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나누는 실천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세리와 군인들은 당시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착취하고 억누르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그런 죄악을 끊는 행동이 없으면, 성전에 와서 제물을 바치고 회개를 해도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세례요한이 요구하는 회개는 다윗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대중 설득적인 회개가 아닙니다. 세례 요한의 회개는 개개인의 삶의 질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단지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현재의 다른 차원을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윤리적이라기보다는 인간 개인의 성숙을 요구하는 회개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그대로 두고 잘못한 행위나 감정 따위를 뒤돌려 놓으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가 말씀하시는 회개는 다윗의 회개일까요? 세례요한이 말하는 개념의 회개일까요? 아닙니다. 예수의 회개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회개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의 회개와, 세례 요한의 회개를 예수님이 말씀하신 회개와 같은 뜻으로 이해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이 말은 다윗의 회개를 넘어서고, 세례요한의 회개를 넘어서는 그 어떤 것이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회개라는 뜻입니다.

오늘 읽은 마가복음 본문이 예수의 선교와 선포를 요약하는 말입니다.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막 1:14-15)

예수의 선포는 세례 요한의 선포와 아주 비슷합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의 회개와 예수의 회개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를 촉구할 때는 심판을 강조하였죠.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말하였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다가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놓였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눅 3:7-9)

그러나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혼인 잔치나 어떤 사람이 베푼 큰 잔치에 비유하였습니다. 큰 잔치의 비유(눅 14장)에서 사람들의 과거의 윤리나 도덕적 실수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지금 주인의 초청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여기에서는 굳이 죄를 따진다면 그것은 도덕적 의미의 죄가 아니다. 주인의 초대를 거절하는 것이죠. 이와 같이 예수의 하나님 나라 앞에서 죄의 의미는 전혀 달라집니다. 죄의 의미가 달라진다는 말은 회개의 내용과 의미도 다르다는 걸 말하는 것이지요. 예수에게 죄는 새로운 세계로의 초대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의 초대’라는 건 ‘하나님의 나라’이고 거기서 ‘새로운 사람으로 사는 초대’입니다. ‘새 사람으로 살기를 거절하는 거’ 그게 예수에겐 죄이며, 그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겁니다. 그 죄를 회개한다는 말은, 새로운 사람으로 초대하는 걸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여 ‘새로운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에게 있어 회개의 의미도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의 회개는 과거의 죄를 참회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삶에서 ‘돌아서서’ 새로운 인간으로 사는 초대에  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요구하는 회개와 관련하여 우리는 이렇게 정리하여 묻고 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하는 회개는 다윗의 회개, 세례요한의 회개와 다르다. 예수가 말하는 죄는 하늘나라로의 초대에 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하늘나라의 초대에 응한다는 말은 하늘나라에 맞는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맞는 새 사람이 되려면 지금처럼 사는 삶 에서 돌아서야 된다. 바로 그 지금에서 돌아서 새 사람으로 나아가는 것이 회개다.’ 이렇게 말이죠.

우리는 회개를 자신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잘못을 뉘우치는 행위로만 생각하고 믿어왔습니다. 이건 회개에 대한 잘못된 인식입니다. 회개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슈브(Shuv)나 그리스어 에피스트레포, 휘포스트레포(epistrepho, hypostrepho)는 모두 돌아서다(turn)를 의미합니다. 성경에는 ‘메타노이아’로 표기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라틴어로 성경을 번역하면서 이 단어를 ‘파이니텐티아-paenitentia’로 번역을 했습니다. 이 라틴어의 회개는 신의 은총을 얻기 위해 행하는 고해성사와 같은 뜻입니다. 이렇게 되다보니 회개를 그저 고백하는 것으로 이해를 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슈브’나 그리스어 ‘메타노이아’라는 회개의 의미는 파이니텐티아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자신의 생각, 말, 행동을 바꾸다’라는 의미입니다. 존재의 품격을 바꾸는 일이지 뭘 고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말하는 회개는 자기를 깊이 들여다보고 자신 속에 있는 타성적인 세계와 이기적인 성향을 벗어나서, 깊은 통찰을 통해 얻어진 이상을 따라 새로운 단계의 인간으로 진입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새로운 단계의 인간으로 탈바꿈해야 도래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걸 거절하는 게 죄입니다. 사실 예수님이 [회개]를 말할 때 그 단어는 히브리어나 그리스어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라틴어도 영어도 아니죠. 아람어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 하시는 ‘회개’를 바로 이해하려면 그분이 쓰신 언어인 아람어로서의 회개가 뭔지 알아야 할 겁니다. 아람어로 회개는 [타브]입니다. 이 타브라는 단어는 히브리어 ‘슈브’, 그리스어 ‘메타노이아’, 라틴어 ‘파이니텐티아’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아람어로 [타브-회개]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각각 맡긴 그 존재만의 미션(해야 할 일)을 깨달아 알고, 그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 속 깊이 숨겨져 있는 하나님의 DNA를 회복하라’능 명령입니다. 그러니까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목숨을 걸고 해 야 할 일’을 하려면 먼저 돌아서야 하는 거죠. 그게 회개입니다. 그러니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나에게만 심어놓은 하나님의 미션을 수행하는 인생이 되려면 살던 이대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회개는 누구든지 꼭 해야 하는 숙제인 거죠.

그럼으로 ‘회개하라’는 말씀은 진부한 윤리 도덕의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꼭 해야만 하는 필수입니다.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꼭 하고 죽으려면 사람이 달라져야 합니다. 달라지려면 지금에서 벗어나야 하죠? 그게 회개입니다.
 
회개는 도덕이나 윤리의 반성이나 고백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하는 회개는 모든 걸 버리고 새 단계의 인간으로 진입하기 위한 결단입니다. 그러니 꼭 해야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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