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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4:31-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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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신윤식 목사 |
참고 : | 은석교회(대구시 국우동) http://www.onlycross.net/ |
제목 : (17강) 예수님의 권위
본문 : 눅4:31-37
2012.7.1
<본문>
31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32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33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34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3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36 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37 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설교>
◉ 같은 말씀에 대한 다른 반응 ◉
예수님께서 자라나신 곳 나사렛으로 오셔서 회당에서 이사야의 글을 읽으시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말씀하셨지만 나사렛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단지 요셉의 아들로만 바라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다.’는 말씀을 하시고, 이어서 엘리야 시대의 사렙다 과부와 엘리사 때의 수리아 사람 나아만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런데 회당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화를 내면서 예수님을 산 낭떠러지로 끌고 가서 떨어뜨려 죽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피해서 갈릴리의 가버나움으로 오시게 되고 여전히 안식일에 회당에서 성경을 가르치시는데 32절에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이 놀랐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이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말씀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똑같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반응은 각기 다르다는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후 갈릴리로 돌아가셔서 여러 회당에서 가르쳤을 때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나사렛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무시를 받았고 오히려 죽음의 위기에 까지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을 때 사람들은 권위가 있는 말씀에 놀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왜 같은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상반된 반응을 보일까요? 그것은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가리켜서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한 것을 보면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이 아니라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사람을 주목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 권위와 권위주의 ◉
말씀이 권위가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가르치셨으니 당연히 그 말씀이 권위가 있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은 너무 단편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가버나움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여기지 않고 단지 랍비로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랍비의 말이기 때문에 권위 있는 말로 받은 것일까요? 이것은 오늘날 교회가 목사의 말이기 때문에 그 말에 권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는 랍비가 많았습니다. 많은 회당이 있었고 회당들마다 랍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랍비의 말을 귄위 있는 말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랍비로 여기고 랍비의 말이기 때문에 권위 있는 말로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랍비의 말이기 때문에 권위 있는 말로 받은 것이라면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놀라기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점을 생각해 보면 가버나움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에서 예수님만이 갖고 있는 권위를 경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권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사실 예수님의 권위가 무엇인지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권위에 대한 우리들의 잘못된 생각이 걸림돌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시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권위가 있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결국 자기를 목적으로 하는 귄위주의에 빠져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예수님이 메시아이시고 하나님이신 것은 사실이고, 그렇기 때문에 권위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메시아, 하나님이라는 신분에 권위의 의미를 두고 있는 왜곡된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사장이나 장로 서기관들처럼 ‘나는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니 권위 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니 권위 있다’라고 말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권위는 그 사람이 처한 위치, 또는 신분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령 이명박이라는 사람의 말에 모든 사람들이 복종하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이 권위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명박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라는 권세의 신분과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명박이라는 사람의 말을 권위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그 신분에 어쩔 수 없이 머리 숙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러한 권위를 목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권위를 세상을 다스리는 힘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권위에 대한 왜곡된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왜곡된 생각은 마귀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권위에 대한 단순한 오해나 무지라기보다는 마귀의 시험에 빠져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꺼낸 것 중에 하나가 천하만국을 보여주면서 내게 절하면 이 모든 권위와 영광을 네게 주겠다는 것에 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천하만국을 다스릴 수 있는 권위와 영광을 제시합니다. 따라서 누구든 이러한 권위와 영광을 얻기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면 그것은 곧 마귀에게 장악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 귀신 들림 ◉
가버나움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권위 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인 것은 예수님의 신분이나 위치와는 상관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귀신을 쫓아내신 사건과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회당에 있던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34절)라고 크게 소리 지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귀신들린 사람이 경건한 유대인들이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이는 회당에 있을 수 있을까요? 이것은 회당에 모인 사람들이 더러운 귀신들린 자가 자기들과 함께 하는 것을 용납했다는 뜻인데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라면 회당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 당연하다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날뛰는 것을 회당에 있던 사람들이 막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지만 이 귀신은 예수님을 향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소리 질렀을 뿐입니다. 그것도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 오시자마자 소리 지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후에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귀신 들린 사람은 예수님이 말씀 하실 때는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이 가만히 말씀을 듣고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귀신 들린 사람은 회당에 있던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고 때문에 그가 비록 귀신 들렸다고 하지만 회당에 들어오는 것을 막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예 그가 귀신들렸다는 사실 조차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귀신 들린 현상을 온 몸에 경련을 일으키면서 입에 거품을 물며 발작하는 것이나 정신착락과 같은 증세를 일으키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을 믿지 않지만 신자와 다를 바 없이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귀신 들리지 않았다고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귀신은 예수님께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자신들을 멸할 수 있는 분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고 말합니다. 귀신의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정확했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는 말로 예수님과의 관계를 부인합니다. 이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고 우리를 멸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해도 우리에게 당신은 필요치 않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 없이도 우리 힘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이 살아가는 방식이지 않습니까?
결국 이 세상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귀신 들려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증거는 예수 없이도 우리 힘으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는 사고방식에 붙들려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세상에 예수님의 권위는 어떻게 드러날까요?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을 굴복시키고 쫓아내신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에 굴복하는 것으로 그 권위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가르치셨을 때 사람들이 권위가 있는 말씀에 놀란 것도 예수님의 말씀에 자신들이 굴복하게 되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참된 권위라고 할 수 있으며 마귀가 주겠다고 한 권위와 영광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 교회의 권위가 아니라 말씀의 권위로 ◉
예수님의 권위는 귀신을 굴복하게 하는 말씀으로 증거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회의 권위가 아니라 예수님의 권위가 권위로 증거되는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이 말씀 그대로 증거되는 일에 모든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교회됨이며 교회의 권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배당의 크기, 사람의 수, 재정과는 전혀 상관없이 오직 예수님의 말씀이 바르게 증거됨으로써 귀신이 굴복하고 말씀에 복종하게 되며 하나님께로 돌이킴을 받게 되는 것이 교회의 참된 권위인 것입니다.
이 점을 생각해 보면 현대 교회는 권위 상실의 위기에 직면해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고 힘을 가지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힘을 가지는 것으로 교회의 권위를 나타내려고 하고, 목사 또한 교회를 부흥시킴으로써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바로 참된 권위가 상실된 위기인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를 성취해 나가는 일에만 마음을 두고 있는 것이 예수님과 상관없이 자기를 위해 살고자 하는 것이고 이것이 귀신 들린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로 고백합니다. 세상을 심판하시고 멸하시는 분으로 다시 오신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삶은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는 식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이익을 목적으로 외칠 뿐입니다. 교인들 역시 신앙을 자기 이익을 목적으로 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길 뿐입니다. 말씀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없고, 세상의 권위와 영광을 얻는 것에 마음을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를 귀신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자유하게 합니다. 이것이 말씀의 능력이며 권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가난한 우리에게 복음으로 전해지면서 마귀에게 포로 된 우리를 자유하게 하고, 진리의 세계를 보지 못하는 우리를 보게 하고, 귀신에게 눌려 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권위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교회의 권위는 말씀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애당초 교회나 목사가 부여받은 권위는 없습니다. 단지 예수님의 권위의 말씀을 증거하라고 존재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도 목사도 그 권위는 예수님의 권위의 말씀을 자기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바르게 전파하는 것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외적인 조건을 힘으로 여기고 그 힘을 자신의 권위로 삼고자 한다면 그것은 권위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고 그것이 곧 귀신에게 장악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를 예수님께 순종하게 하고 내가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을 목적으로 하는 길로 가게 함으로써 그 권위를 드러내고 우리는 그 같은 말씀의 권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애당초 우리는 자기를 목적으로 한 채 나의 이익을 위한 길로만 달려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리를 굴복시키고 예수님께 목적을 두게 하는 것이야 말로 능력이며 말씀의 참된 권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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