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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6-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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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강종수 목사 |
참고 : | 2016. 6. 12 주일 오전 설교 http://cafe.daum.net/st888 |
성경 : 욘1:6-12
제목 : 역사의 주인공 의식
욘1:6-12 ‘6.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 9.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 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아멘.
이스라엘의 강적이었던 이방나라 앗수르의 수도였던(창10:11) 니느웨를(욘4:11) 하나님께서 구하시기 위해 요나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명을 받고 회개를 외치러(욘1:2) 가야하는데 딴 곳으로 도망가다가 그가 타고 가던 배가 풍랑을 만나 배 탄 사람 모두가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요나는 이 풍랑이 그의 죄로 인해 일어난 것으로 판단하고, 바다에 제물처럼 자신이 던져질 때 마치 하나님이 예비하신 큰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사흘 동안 고기 뱃속에서 기도한 후 나와서 제대로 회개를 외치게 되었습니다.
본문에서 주목하려는 내용은 12절에 요나의 역사의식에 대한 고백입니다.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그래서 <역사의 주인공 의식>이란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요나는 자기 정체성이 뚜렷한 사람
요나는 비록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있는 중에 부끄러운 처지에 섰지만 그는 당당히 그의 정체성을 고백했습니다.
본문 욘1:9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요나의 이런 점은 목숨이 위태로운 위기를 만났을 때 비굴하게 예수를 욕하면서 살아남으려고 했던 성령 충만 받기 전의 베드로보다 훨씬 신뢰가 있어 보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을 수도 있으나 그런 가운데서도 자기 존재와 하나님에 대한 고백이 분명해야 다시 살 수 있는 기회가 오는 줄 압니다.
복음의 사람은 당당해야합니다. 진리의 사람은 실수는 있어도 비굴해서는 안 됩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도망가다가 풍랑을 만난 것이 자신의 죄로 인함을 알게 되었을 때 배에 탄 불신자들로부터 종교적 책망을 받았으나 그의 고백은 자기 정체성이 분명하고 하나님을 창조주 신으로 분명히 고백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백성의 자각이요 신앙정신입니다.
2. 내가 개입된 문화 속에 역사적 주인공 의식
요즘 세태의 특징 중에 자기 관리가 안 되고 남의 탓, 나라님 탓으로 돌리는 어리석은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심지어 흙 수저니 하며 부모 탓도 다합니다. 그런 정신은 문화를 살아가는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요나가 탄 배가 풍랑을 맞는 것은 우리가 사는 현실의 고난들을 상징합니다. 오늘날 어지러운 사회문화를 살면서 우리 기독교인은 어떻게 문화의식을 해야 할까요?
본문 욘1:12 ‘..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오늘날 한국사회의 너무도 더럽고 무서운 죄악이 도출되는 것은 교회의 죄악상 때문으로 봅니다. 교회가 세상에 빛을 발하지 못하기에 어두움의 세력이 춤을 추는 일입니다. 교회는 이제 공동체적으로 회개하고 주의 뜻을 따라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개인과 가정과 직장과 그 사회에 당신의 백성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시고 또한 중심이 되어 치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세상의 빛이라 하심은 바로 문화를 주도하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암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거 한국교회는 사회에 빛 된 삶을 위하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사회에 직접으로 개량과 개화를 위해 활동하며 희생했습니다. 지금은 사회와 이원화된 사고로 교회사회 내부에서도 매우 이기적이고 개인주의가 팽창해져 있습니다.
자기 교회 밖에 모릅니다. 교회가 좀 부흥하면 프랜차이즈로 지역 교회를 만듭니다. 이런 마음으로는 세상을 구해낼 수 없습니다.
3. 요나는 자기 헌신으로 평강과 생명을 얻고자
세상을 잘못된 줄 안다면 그 회복을 위해 우리 성도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본문 욘1: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요나가 이 풍랑을 만난 일은 12절에서 자신의 죄 때문이라고 공적으로 고백을 했지만 파도는 계속 점점 더 흉용했습니다. 요나가 비록 자기를 제물로 바다에 던지라고까지 해도 불신자들이지만 그래도 함께 살아보려고 열심히 노를 저어봤지만(1:13) 소용없어서 요나의 말대로 바다에 던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신앙적 교훈은 고백과 반성만으로 다 되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할 때 아들의 희생이 필요했듯이 우리는 사회에서 영혼을 구하고 정의를 얻으려면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에게 어떻게 살 것을 교훈하러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그 아들을 통해 말씀도 주셨지만 그 생명을 제물로 희생시키셨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세상을 위해 헌신하기를 원하십니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나라는 이름은 비둘기인데 그처럼 순전해야 하고 비둘기처럼 죄된 세상을 두고 슬피 울어야 했습니다. 그 부친의 이름은 나의 진리라는 뜻의 아밋대였습니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선지자된 모든 성도는 진리의 자식들이 되어야 한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신학도 풍성하고 성도들이 교훈을 얻을 기회가 많습니다. 그러나 입으로만 예수를 믿으려 하고 진리를 위한 충성과 하나님의 정의를 구하기 위해 희생의 활동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요나처럼 실제적인 헌신이 없이는 생명과 평강을 얻어낼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요나가 가진 역사적인 정체성을 입술로 고백하고 또한 몸으로 헌신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는 우리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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