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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잠16: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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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교회 http://www.wordspring.net 말씀의샘물 제773호 |
干涉(간섭)
본문/ 잠16:32, 딤전5:21-22
1. 들어가는 이야기
四旬節(사순절) 기간 중 오늘은 干涉(간섭)에 대하여 묵상하는 가운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에는 참으로 절묘한 표현들이 많이 있습니다.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욥6:5-6)-내가 내 생명을 싫어 하는도다(욥7:16)-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욥7:19)-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여 이를 갈고 대적이 되어 뾰족한 눈으로 나를 보시나이까(욥16:9)-내 아내도 내 숨결을 싫어하나이다(욥19:17)-까닭 없는 저주는 참새가 떠도는 것과 제비가 날아가는 것 같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느니라(잠26:2)-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잠27:14)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시18:34)-나는 지붕 위에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시102:7)-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도다(시118:22)-그가 왼팔로 내 머리를 고이고 오른팔로 나를 안는구나(아2:6)-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2:13)-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 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암4:11)...등등입니다.
오늘 본문 잠26:17 말씀도 그 중 하나입니다. 길로 지나다가 개의 귀를 잡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대단히 절묘한 諧謔的(해학적) 교훈 아닙니까?
2. 干涉(간섭)하지 말라 하시는 말씀들
* 길로 지나가다가 자기와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干涉-meddle)하는 자는 개의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잠26:17)
*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do not share in the sins of others)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딤전5:21-22)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자(meddler)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4:15-16)
3. 干涉(간섭)하지 말라, 무슨 뜻인가?
첫째. 사람은 물론 이 세상 모든 蠢動含靈(준동함령: 살아있어 움직이고 꿈틀거리는 생명을 가진 것들)은 자유롭게 살기를 원합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합니다. 史記(사기)에 寧爲鷄口勿爲牛後(영위계구물위우후: 자유하는 닭 머리가 될지언정, 남의 뜻을 따르는 소꼬리는 되지 말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자기마음대로 자유하려고 하면 당연히 충돌-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은 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사회법을 만들어 그 충돌을 완화하였습니다. 자기 자유를 위하여 재력-무력-권모술수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범한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을 후린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출21:16)-사람이 자기 형제 곧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을 유인하여 종으로 삼거나 판 것이 발견되면 그 유인한 자를 죽일지니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신24:7)”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자유를 원합니다. 가난-질병-무지-폭력-억압으로부터의 자유, 언론-표현의 자유, 거주-이동의 자유, 자유, 자유, 자유롭게 살기를 원합니다. 자유는 모든 생명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天賦(천부)의 본능입니다.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범하는 것은 죄입니다!
둘째. 오늘 본문 말씀은 “길로 지나다가 자기와 상관없는 다툼-악행-살인-도둑질-남의 일-다른 사람의 죄 등에 대하여 간섭하지 말라-參見(참견: 남의 일에 끼어들어 아는 체하거나 간섭함)”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干涉(간섭-meddle)은 다른 사람의 자유-생명력-저 마다의 창조적 氣運(기운)을 가로막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간섭은 남의 자유를 빼앗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이가?” 하는 老婆心(노파심: 남의 일을 지나치게 걱정하고 열려하는 마음)에 도저히 간섭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 할지라도 세 번 생각하여야 합니다. 왜? 극단적-예외적 상황이 아닌 한, 각 사람은 다 저마다 생각이 있고 저마다 열심히 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친구-교회 안에서 좋은 뜻에서 나온 나의 간섭이 잔소리가 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셋째.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나 없이 오지랖이 넓습니다. 왜? 한반도에 살아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지금 현재도) 외국의 침략을 받고 살아왔기 때문에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하는 공동체의식이 우리 DNA 속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오늘, 세계는 각 나라-각 개인이 자기나라의 국익-각 사람의 개인주의-각자 일은 각자가 책임지는 글로벌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제는 공동체의식을 가슴 속에다 갈무리하고, 의식적으로라도 남의 나라-남의 일에 干涉(갑섭) 말고 각자 獨立獨步(독립독보)하는 각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외국의 경우 부모자식 간에도 거의 간섭하지 않는다!).
< 꼭 참고: 이원복, 먼나라 이웃나라, 9권 우리나라 편,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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