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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땅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곧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마13:23)
성경이 구원에 관한 말씀임이 틀림없지만, 성화에 대한 말씀들은 잘 분별해야 할 것같습니다. 믿어 구원 얻는
칭의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거룩한 품성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성화는 이해하기가 애매하기 때문입니다. 칭의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베푸신 은혜라면, 성화는 구원받은 사람이 그 사랑에 합당하게 반응하는 행위입니다.
칭의 구원과 성화에 대해 신학을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아도 구분할 수있는 아주 쉬운 방법을 설명한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는 구절입니다. 성화에는 아예 관심이 없는
믿음은 칭의를 얻을 수있는 믿음이 아니며, 성령으로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은 저절로 성화에 관심을
보이게 된다는 말씀인 줄압니다.
본문의 씨 뿌리는 비유는 많은 경우 성화를 위하여 노력해서 좋은 땅이 되자고 설명하는데, 문맥을 살피면
칭의에 관한 말씀임을 알 수있습니다. 제자들이 왜 비유로 가르치는지 이유를 물었고, 예수님은 비유에는
천국 비밀이 숨겨져 있는데 하나님이 허락한 사람들만 그 비밀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을 보면
길가, 돌밭, 가시떨기밭은 말씀이 뿌리를 전혀 내리지 못했기에 아무리 물을 주고 햇빛을 비춰도 절대 결실을
맺을 수 없다는, 즉 구원 자체를 못 받는다고 말씀하시면서 성화는 좋은 땅에서만 일어난다고 하십니다.
쉽게 말해 세상에서 아무리 의인으로 칭송 받아도 그 안에 예수라는 씨앗이 심겨지지 않았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고, 나아가 칭의받지 못했기에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성화는 일어날 수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삼십, 육십, 백 배의 결실은 믿는 사람마다 성화의 정도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뜻하신 것입니다.
성령이 없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결코 시인할 수 없다고 성경은 선언하십니다. 예수님을 진정 자신의
주인으로 모신 사람은 성령이 내주하시는 성령의 전이 되어 좋은 땅이 된 것이며, 성화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기독교가 갈수록 맥이 없어지는 이유는 여전히 돌짝 밭과 가시 떨기밭이면서 자신들의 종교적
노력으로 좋은 땅이 되면 하나님이 삼십, 육십, 백배의 복을 부어주시리라 오해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있는 엄청난 은혜임을
모든 교인들이 확신한다면 교회는 저절로 부흥할 것이며, 좋은 땅은 그 진리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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