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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자람에 따라 그분의 이름을 네 번 다르게 불렀습니다. 그분을 개인적으로
만나 은혜를 입고 그 분이 어떤 분이며 특별히 자기와 어떤 관계를 맺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그
믿음에 합당한 이름을 부른 것입니다. 처음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엘 엘욘)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창14:22)하면서 천지를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초월적인 하나님이 전쟁에서도 승리케
해주셨다는 고백으로 '높으신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알려주신 것이지만,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
(엘 솨다이)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하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전능함을 확신하지
않고는 천하 만민이 자기를 통해 복 받을 것이라는 언약을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믿음의 징표로
할례를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의 세 번째 별칭으로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엘 올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창21:33)합니다. 영생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아무 주저없이 자신의 독생자를 드리는 단계에 이르러선 하나님을
'여호와 이레' 즉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라 묘사했습니다. 이처럼 그의 믿음은 반드시 거쳐야 할 순서를
빠트리지 않고 거쳤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의 분량만큼 그의 믿음이 자란 것입니다.
우리는 가장 먼저 하나님이 크시며 초월적인 창조주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지극히 높으신 분이
아브라함에게 직접 나타나 만나 주시고 모든 일을 이끌어주셨듯이 전지 전능하시며 신실하심을 우리들 삶에서
직접 체험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우리만의 표현들이 있어야 합니다.
성숙한 믿음이 최종적으로 나타나는 실질적 모습은 환난 중에도 소망이 더 커지며 즐거워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를 믿기에 우리의 계획과 뜻을 완전히 버릴 수있어야 합니다. 환난이 있기에 소망이
생기고, 나아가 더 큰 환난이기에 소망은 더 크게 자라는 법입니다. 완전한 절망이라야 완전한 소망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완전한 절망만이 하나님을 갈급히 찾게 되고, 그분이 주시는 소망만이 완전한 것입니다.
환난 중에는 기쁨이 생기지 않습니다. 대신에 그분을 바라는 소망이 커지기에 그 소망에서 오는 설렘과 흥분이
커집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의 길과 생각이 우리와 다르기에 소망이 생깁니다. 나아가 그 다른 생각과 길이
우리와 얼마나 다를까 도저히 예상이 안 되니까 설레고 흥분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확실히 믿는다면 환난 중에도 염려는 하지 말아야, 아니 소망만은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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