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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의 자리에서도 화평을 만들어 가는 사람

갈라디아 조항목 목사............... 조회 수 464 추천 수 0 2016.06.24 23:45:42
.........
성경본문 : 갈5:22-23 
설교자 : 조항목 목사 
참고 : 2011.4.3 주일 아이다호비전교회 http://idvc.org/491 

성령의 열매 시리즈 5 화평의 열매

5 화평의 열매 - 분쟁의 자리에서도 화평을 만들어 가는 사람

갈5:22-23, 마태5:9, 약3:17-18


I. 화평이 그립다


어떤 두 사람이 전철 안에서 큰 소리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싸움이 점차 거칠어져 주변 승객들을 불편하게 하자 한 노 신사가 나무라며 하는 말 "여기가 국회인줄 알아. 왜 싸움질이야."

「여기가 국회인줄 알아」 했길래 다행이지 "여기가 교회인줄 알아"라고 했더라면 어쩔뻔 했을까 하는 아슬한 생각이 듭니다. 한국교회가 하도 많이 싸워서 선교사들이 본국에 돌아가 선교보고를 하는데 "한국교회 잘 싸워요. 싸우면 '예수'하고 '그리스도'하고 싸워요." 하더랍니다. 교단이 싸웠다하면 '예수'하고 '그리스도'하고 갈라졌습니다. 예수교 장로회와 기독교 장로회, 예수교 성결교회와 기독교 성결교회...

이것이 교회의 모습이었다면 이건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가정도 화평한 가정이 좋은 가정이요 교회도 화평한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인간이 평화를 회구 하면서도 세상은 늘 평화롭지 못하고 교회는 평화를 누리고 가르치는 곳이면서도 교회 안에 싸움이 많았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 보다도 평화가 그리운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보다 화평의 열매가 필요한 때입니다.


II. 분쟁·전쟁


가인과 아벨 이래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라이트 교수「전쟁의 연구」라는 책에 의하면 1480-1941년까지 460년간 인간들은 약 400번에 걸친 전쟁을 치루어야 했다고 합니다. 물론 서양을 중심으로 연구된 기록입니다만 영국에서 78번, 불란서 71번, 스페인에서 64번, 러시아에서 41번, 오스트리아에서 52번, 독일에서 23번, 중국에서 11번, 일본에서 9번, 미국에서 13번 그 외 세계도처에서 수를 셀 수 없는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지난 400년 지구 역사속에서 전쟁이 없었던 시간은 채 3년이 못될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들에게 왜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한결같이 평화를 위해 싸웠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모순된 인간의 실존입니다.


20세기만도 지구촌엔 엄청난 전쟁들이 있었습니다. 세계 1차 대전, 2차대전, 6.25 전쟁, 월남 전쟁, 걸프 전쟁, 아프칸 전쟁, 그리고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크나큰 전쟁들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중동에서 리비아나 이짚트 등 내전이 일고도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전쟁과 전쟁의 소문이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오늘이야 말로 세계 구석구석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을 안방에서 볼 수 있는 - 전쟁의 소문이 있는 시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평화를 잃은 땅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눅 19:41-42).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누가복음 19:41-42). 오늘 우리의 눈에서도 예수님의 눈물이 흘러내려야 할 때입니다. "한강아 압록강아, 서울아 평양아 너도 이제 평화를 알았으면 좋겠다!" "한반도야, 너도 이제 평화로운 땅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교회야, 너도 이제 화평하여 세상의 빛이 되었으면 좋겠다." 울어야 할 때 입니다.


III. 화평


우리나라 사람들은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합니다. 축복 형식이 아니라 질문형식으로 인사를 합니다. 이는 오랜 세월 안녕할 수 없었던 우리민족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배고픈 시절 "진지 드셨습니까?"하는 인사만큼이나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인사입니다. 우리 민족과 똑같이 아픈 역사를 많이 가진 나라가 유대역사입니다.

유대인들은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더 많은 전쟁에 시달려왔습니다. 때문에 일편단심 유대인의 소원은 평화였습니다. 그들은 만날때마다 평화를 의미하는 "샬롬"이라는 말로 인사를 나누었고 그들의 수도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메시야를 예언하면서 그분은 "평강의 왕"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셨을 때 천사들의 노래를 기억하십니까?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2:14)


공교롭게도 평양이란 뜻도 "평화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참 모순된 이름이지요.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 평화의 도시 평양 땅이 평화는 커녕 늘 전쟁과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파하는 모순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 본문은 전쟁의 땅에서도 화평을 만들어 가고 분쟁의 환경속에서도 화평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IV. 화평케 하는 자


신약성서에서 "화평"이란 말은 에이레네라고 하는데 신약성경에 88번 정도 나옵니다. 이 말은 구약 "샬롬"을 번역한 말인데 신구약을 합하면 이 평화란 말이 400번 이상 등장합니다. 본문에서 - "화평케 하는 자"란 평화를 만드는 자 즉 영어에 Peace Maker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평화를 즐기는 사람, 평화를 사랑하는 자, 평화예찬론자 정도의 소극적인 뜻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사람, 화해를 창조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알라스카 에스키모인들은 "평화""원수를 친구로 삼는 것"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분쟁이 있는 곳에서 마냥 불안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혼자서 도를 닦고 평화를 즐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분쟁의 자리에서도 화평을 만들어 가는 사람입니다.


저희들이 어릴 때에는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길가에서 곧잘 싸움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싸움을 하는 아이 주변에는 서로 다른 세 종류의 아이가 있습니다.

싸움을 붙이고 싸움을 부채질하는 아이가 있고, 행여 싸움에 말려들어 한 대 얻어맞지나 않을까 멀리서 구경만 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어떻게 하든지 그 싸움을 말려 보려고 애쓰는 아이가 있습니다.

 

1. 싸움을 말리는 사람을 Peace Maker라고 하고 싸움을 붙이는 사람을 Troble Maker라고 합니다. 바울 서신에 보면 교회생활에 죄목을 나열하는데 당 짓는 것, 분쟁하는 것, 수군수군하는 것, 남을 비방하는 것 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이 말을, 저 사람에게는 저 말을 하므로 이간을 붙이고 싸움을 하게 합니다. 이런 사람이 Trouble Maker입니다. 이제부터라도 교회 생활을 바로 하기를 원한다면 다른 사람에 대한 나쁜 말을 안하기로 결심을 해야 합니다. Peace Maker는 못되더라도 부디 Trouble Maker는 되지 말아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요.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라면 내가 가는 곳에 화평의 열매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2. 그렇다고 방관자가 되어서도 아니 됩니다.

어떤 사람이 옛날 공중변소에서 어렵게 차례를 기다리다 들어가 시원하게 볼일을 보는데 이런 낙서가 눈에 띄었습니다. "내가 사색에 잠겨있는 동안 밖에 있는 사람은 사색이 돼 간다. 내가 밀어내기에 힘쓰는 동안 밖에 있는 사람은 조이기에 힘쓴다. 그대 젊은이여, 당장 일어나라. 지금 그대가 편히 앉아 있을 때가 아니다."

나 혼자 편안하면 다가 아닙니다. 우리는 평화의 방관자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고발자나 방관자로 보냄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얻어맞으면서도 싸움을 말리고 평화를 창조하는 화해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평화를 만드는 자인가 아니면 문제를 만드는 자인가 이것은 곧 그가 하나님의 아들인가 아닌가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이 됩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태5:9) 이 말씀을 바꾸어 말하면 "분쟁을 만드는 자는 마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나무엔 예수 열매가 맺히고 마귀 나무엔 마귀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3. 일찍이 야고보 사도는 Trouble Maker로 혀를 고발한 일이 있습니다.

입을 조심하지 않고 혀를 함부로 놀려대기 때문에 평화가 깨집니다. 우리의 눈이 남의 허물을 보아도 혀로 비판하지 아니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그는 좋은 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가능하면 입을 다물고 말하기 보다는 듣기를 배워야 합니다. 화해자가 되는 최상의 방법은 침묵하면서 도와주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공연히 아는 척하고 충고하고 비난하려는 유혹을 참으십시오. 다른 사람에 대해서 누가 비방하는 말을 할 때 그 사람에게 가서 그 말을 전하지 마십시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견해나 의견을 교회 안에서는 강하게 주장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노출할 따름입니다. 신앙생활에 승리하기를 원한다면 언어생활에 승리해야 합니다. 화평의 열매는 입에서부터 맺혀집니다.


4.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라" - 이 말씀은 로마서 12장 18절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 중엔 이중적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화평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와 타협할 수 없기 때문에 때로는 화평할 수 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바리새인들과는 화평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가롯 유다와는 화해를 이루시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말 그대로 할 수만 있으면 어떤 희생을 치루고서라도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을 이루라는 뜻입니다. 미워할 사람 다 미워하고 원수 갚을 것 다 갚고 사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닙니다. 가정이나 교회 안에서 조금 섭섭해도 하나님 앞에서 기도로 풀고 사랑하세요. 내가 섭섭하면 저쪽에게도 아픔이 있는 것입니다. 원수는 용서가 안된다고요? 악을 당신이 처단해야 겠다고요? 아니요. 인간은 누구에게나 잘못이 있습니다. 당신에게도 잘못이 있습니다. 악은 하나님이 직접 다루실 것입니다. 나는 용서하고 그냥 사랑하는 겁니다. 구역이나 교회 안에서 내 맘에 걸리는 문제 깨끗이 다 해결하고 할 말 다 하고 살려고 하지 마세요. 거기서 화평이 깨집니다. 내 맘에 좀 안들어도 덮고 품고 화평하게 사십시오. 내 자식이라도 내가 다 처벌하고 악을 청소하고 살 수 있든가요? 그냥 용서하고 사랑하면 언젠가는 변화되고 가족이 화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누군가 시간의 손해를 보고, 물질의 손해를 보고, 자존심의 손해를 보아야만 교회가 영적으로 부흥하고 은혜로운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따질 것 다 따지고 주장할 것 다 주장하면 은혜는 없어지고 맙니다. 교회 안에서 자기가 자기 자신을 가르칠지언정 누군가를 가르쳐야 되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요. 내가 배우기도 바쁩니다.


V. 어떻게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1. 첫째 화평은 하나님과의 화평입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분리하게 되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장벽을 쌓고 말았습니다. 에덴동산은 평화의 동산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은 하나님을 피하여 나무 밑에 숨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파괴된 것입니다. 바로 이 장벽을 헐고 이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화목 제물이 되시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의 다리를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게 되고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5:1)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 이 땅의 모든 평화의 기초입니다. 이 세상이 평화를 잃어버린 것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화평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원수 맺고 하나님 싫어하는 인간이 되어 살지 마십시요. 그 길은 죽는 길입니다. 망하는 길입니다.


2. 둘째 화평은 우리 자신과의 화평입니다.

심리학자 칼 융(Karl Jung)"마음의 평화는 모든 질병과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준다"고 했습니다. 리브 만(Joshua Llebman)의 책 「마음의 평화」에 보면 한 젊은이의 소원이 나열됩니다. 건강, 사랑, 재물, 아름다움, 재능, 권력, 명예. 그러나 한 철인이 젊은이에게 이렇게 충고합니다. "친구여, 마음의 평화가 없이는 이 모든 것을 즐길 수가 없소." 그리스도인은 분쟁의 땅에서 화평을 만들어가기 전에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마음이 평화로와야 합니다. 내적 화평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온 세상이 분쟁의 파도로 넘실대고 있어도 내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로울 수 있다면 밖의 파도는 반드시 잠들게 되어 있습니다.


3. 셋째 평화는 이웃과의 평화입니다.

여러분, 가정 안에서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불화할 때가 언제인가 한번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그때는 필시 내 마음속에 평화가 없을 때 이었을 것입니다. 이 얘기는 문제가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성도의 교제의 균열을 좋아하는 것은 사탄 밖에 없습니다.

죤 번연의 아픈 고백을 아시지 않습니까? "이상하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있다. 마귀와 더불어 대적해야 할 교회와 성도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는 구나!"

분쟁은 너를 죽이고 결국 나도 죽는 독약과도 같습니다. 부부간에도 화평하면 님이 되지만 화평이 깨지고 나면 남이 됩니다.

오래전 가수 양희은 부른 ‘작은 연못’이란 노래가 있습니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에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그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위에 떠오르고

그 놈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는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에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 살지않죠

깊은 산 작은 연못

이것이 소위 공동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네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네가 불행하면 나도 불행해 지는 곳이 공동체입니다.


4. 넷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화목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사람들도 반드시 하나님과 화목해져야 됩니다. 그것이 구원이요 영생이요, 진정한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과 세상 사람들을 화목하게 만드는 책임을 맡겨 주셨습니다.

고후5:18-20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기독교의 사랑 - 아가페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고 하나님께로 연결되듯이 화평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하나님과의 화평한 관계로 이어집니다. 궁극적으로는 내 이웃들도 모두 하나님과 화평하고 그들의 이웃과 화평하고 각자 자기 자리에서 화평을 만들어 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화평의 열매입니다.

미국 카네기 공대를 졸업하여 성공한 사람들을 추적 조사한 결과, 그들은 한결같이 "성공하는데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은 15%밖에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나머지 85%가 인간관계였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주위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여러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어온 것을 봅니다. 화평은 이처럼 세상을 행복하게 합니다. "세상 살기가 힘이 든다. 어깨에 힘이 빠지고 살 재미가 없다"고 느낄 때가 언제입니까? 틀림없이 관계가 깨졌을 때 입니다. 좀 배가 고파도 화평하면 세상 살만 합니다.


VI. 하나님의 아들


화평의 열매가 나타나는 사람에게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여 "너는 참 내 아들이구나" 인정하시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화평케 하며 살 때 하나님께서 바로 이런 인정을 해 주신단 말입니다. 과연 내 아들이다!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면 다른 사람들도 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한단 말입니다. 우리가 철야기도를 한다고 불신자들이 도전을 받겠습니까? 아니면 우리가 성경박사가 된다고 그들이 감동을 받겠습니까? 우리가 화평케 하며 살 때 그들이 인격과 삶속에 도전이 되고 감동이 되어 저들도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을 하게 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이천년 기독교 역사상 최대의 실수가 있었다면 그것은 십자군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교도들에게 빼앗긴 성지를 탈환하고자 하는 동기와 목적으로 십자군 대원정을 감행한 일이 있었습니다. 십자군 전쟁의 결과로 수천의 고아와 미망인들이 생겼고 기독교들과 마호멧교도들 사이에 무서운 증오심이 생겼습니다. 때문에 오늘날 전세계에서 복음을 전하기가 가장 어려운 지역이 회교 지역입니다. 그런데 이 십자군 전쟁이 계속되던 그때 이 전쟁의 잘못을 지적하고 아군 진영뿐만 아니라 적군들에게까지 평화의 사신을 보내고 복음전도자들을 파송하며 눈물로 기도했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아씨시(Assisi)의 성자 성 프란시스(St. Francis)입니다. 그가 외쳤던 기도문을 읽으므로 오늘 설교를 맺고자 합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소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 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버려 죽음으로써

영생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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