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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5: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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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수도원교회 http://blog.naver.com/malsoom/138068504 |
011년 9월 18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5장 3절~12절
설교제목 : 거룩한 바보의 삶
<영성시>
가을 산길
* 나태주
맑은 바람 속을 맑은 하늘을 이고
가을 산길을 가노라면
가을 하느님,
당신의 옷자락이 보입니다.
언제나 겸허하신 당신,
그렇습니다.
당신은 한 알의 익은 도토리알 속에도 계셨고
한 알의 상수리 열매 속에도 계셨습니다.
한 알의 개암 열매 속에도 숨어 계셨구요.
언제나 무소유일 뿐인 당신,
그렇습니다.
당신은 이제 겨우 세 살바기 어린아이의 눈빛을 하고
수풀사이로 포르릉 포르릉
나는 멧새를 따라가며
걸음마 연습을 하고 계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자비함을 입을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릴 것이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너희에게 복이 있다.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너희보다 먼저 온 예언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마태 5:3~12)】
<성경 이야기>
오늘 성경을 읽으면서 잠깐 묵상을 해보니, ‘하늘과 땅의 대비’가 생각났습니다. 결국 예수의 말씀은, “이 땅에서 잘 살면 하늘에서 보상이 있을 것”이란 메시지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올바른 삶을 산 사람의 전형으로서 예언자를 제시했습니다. 예언자란 어떤 사람인가요? 그는 “이 땅에서 하늘의 삶을 산 사람”이었고, 예수께서 우리들에게 제시하신 올바른 삶의 모델은 ‘예언자’였습니다.
우리는 예언자처럼 마음이 가난하게 살아야 하며, 우리는 예언자처럼 슬퍼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우리는 예언자처럼 온유한 사람이 되어야 하며, 우리는 예언자처럼 정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되어야 하며, 우리는 예언자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며, 우리는 예언자처럼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되어야 하며, 우리는 예언자처럼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우리는 예언자처럼 정의를 위해서라면 박해도 달게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못난 이의 영성>
몇해 전부터 저는 ‘못난 이’라는 말을 잠깐 잠깐 묵상했더랬습니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의 차원에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전적인 의미로 ‘못난이’는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을 뜻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뜻풀이는 ‘못난이’의 영성적 의미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차원적인 언어분해일 뿐입니다. 제가 생각해본 바에 따르면, ‘못난이’라는 말에 담긴 영성적(철학적, 신학적, 신앙적) 의미는 더 깊고 높고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못난이는 “하늘에서 땅으로 못 빠져 나온 이”였습니다. 글쎄요. 뭐라고 해야 하나요! 하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너무 깊어서, 이 땅으로 차마 다는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 즉 하늘에 대한 미련과 사랑이 아직도 깊이 남아 있는 사람, 다는 못 빠져 나온 이, ‘못난이’였습니다. 다른 차원에서 말씀드리면, 온 인류에 대한 사랑이 너무너무 깊어서 아직 자기 자신(자아, 이기주의, 에고)으로 다 빠져들지 못하는 사람, 온 우주에 대한 연대의식이 깊고 깊어서 차마 자기 자신만 챙기는 일에는 서투른 사람, 즉 ‘못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예언자는 제가 보기에 ‘못난이’였습니다. 예수는 못난이의 삶을 살라고 권면하셨습니다. 하늘에서 쏙 빠져나와서 이 땅의 이해타산(利害打算)에 잘도 적응해서 사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닌, 온 인류적(우주적) 연대의식에서 쏙 빠져나와서 자기자신만 챙기는 이기적 삶을 사는 것이 아닌, 하늘에서 또 인류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한 ‘못난이’의 삶을 살아달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바보의 삶, 그 신비로운 삶을 예수께서 권면하셨습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거룩한 바보의 삶”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이제는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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