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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7:7-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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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수도원교회 http://blog.naver.com/malsoom/141797728 |
2011년 10월 30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7장 7절~12절
설교제목 : 온 몸을 던지는 구도(求道)의 삶
【"구하여라, 주실 것이요, 찾아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려라, 열어 주실 것이다. 구하는 사람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 너희 가운데서 아들이 빵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으며,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뜻이다."(마태 7:7~12)】
<성경 잘못 읽기의 대표적 사례>
오늘 성경은 우리 한국교회가 아주 오래 전부터 아주 잘못 읽어온 대표적 사례의 성경입니다. 저도 어려서부터 이 성경을 토대로 한 설교를 들으면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 적이 많았습니다. 설교는 대충 이랬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믿고 신앙생활 열심히 하면서 하나님에게 재물의 축복을 간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재물뿐만 아니라 명예와 건강 등 더 많고 다양한 복을 내려 주십니다.” 이른 바 삼박자 축복입니다.
아주 잘못된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그 따위 식으로 말씀하셨을 리 없습니다. 정말 얼토당토한 성경해석입니다. 마구잡이에다가 순 억지지요. 성경을 그런 식으로 왜곡하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은 어떻게 해석해야할까요? 오늘 그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 해석을 시작하며>
오늘 성경은 기본적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삶’에 대한 기록입니다. 하느님에 대해서 알아가는 삶, 인생의 근본 목적에 대해서 생각하는 삶, 나의 본래적 모습 혹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가에 고심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마치 동양의 선사(禪師)들이 골방에 틀어박혀서 혹은 온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인생과 우주의 근본을 묻고자 하는 삶과 동일한 맥락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또 너는 누구인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주만물의 정체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사라지는가.” 그 기(氣) 막히는 물음에 온 몸을 던지는 삶,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예수의 말씀입니다. 막혀진 기(氣)를 뚫고 대자유를 누리고자 무진 애를 쓰는 수도자의 삶, 바로 그 차원입니다.
<잘못된 수도(修道)의 방향>
그런데 우리 기독교 전통(특히 가톨릭 포함)에서 수도적 삶의 맥락은 예수의 메시지에 가 닿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기독교는 예수께서 일깨워주신 수도의 방향과는 정반대의 엉뚱한 맥락에서 수도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제가 이해하는 바, 예수께서 권면하신 수도의 방향이란 “막혀져 있는 기(氣)를 뚫고 대자유의 세계로 도약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 전통의 수도는 기존의 정해진 틀 안에 안주하는 맥락에 갇혀 있습니다. 뭐랄까요?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놓고 예수와 씨름하고, 하느님에게 감히 도전하는 차원에서의 수도생활이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예수께서 밝혀주시고 하느님께서 성경을 통해 계시해주신 ‘말숨’ 안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염려하는 차원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수도생활이란 맨몸으로 저 거대한 바다를 향해 온 몸을 던지는 것인데, 우리네 기독교 전통의 수도생활이란 바닷가의 한적한 백사장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 형편인 것입니다.
<소아(小我)적 수도생활>
우리네 기독교 전통은 소아(小我)적 수도생활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근본 원인은 원죄론에 있고, 현대인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심리학적 성서해석에도 그 책임이 무겁습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래요 맞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매사에 소극적으로, 부정적으로, 자기 학대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요. 우리는 죄인이므로 우리를 가두고 있는 저 거대한 감옥의 벽을 뚫고, 대아(大我)의 해방세계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왜곡된 심리학적 성서해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진리를 사소한 심리적 반응이나 변화 속에 가둬두려는 태도와 자세는, 우리 기독교 전통이 하루라도 빨리 버려야할 것입니다. 기괴한 심리학적 성서해석이 대자유를 일깨우는 하느님 진리를 축소시키고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심리학적 성서해석이 진리의 눈을 흐릿하게 가리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온 몸을 던지는 구도(求道)의 삶”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잘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이제는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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