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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서답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이니까 하니
가라사대 --중략--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 1:6-8)
'나는 옳고 당신은 틀렸다'를 구분하는 것이 신앙심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 마저도 근본적으로 갖고있는
인간적 자존심인가 봅니다. 자기들이 더 옳다는 것을 판단받고 싶어하는 생각이 본문에서 예수님의 제자들
질문에도 있음을 봅니다. 심판해 주시는 때가 언제 입니까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주님의 대답은 '너희는
나의 증인이 되라'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동문 서답같습니다. 질문은 ‘우리가 옳다는 것이 확인되는 심판을
언제 해 주실 것입니까?’인데 그에 대한 대답이 그것은 알 필요가 없고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주님은 너희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안한 것이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다만 구제에 관한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선행 자체도 그 선행을 누구에게 했느냐가 중요한 문제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비유가 자기를 의롭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마음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선행이라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선행이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될 수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요구하는 선행은 다른 사람이 어떤 처지이든 용납하고 그 사람에게 이익을 끼치는 선행입니다.
어디까지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까? 제자들이 심판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예루살렘, 유대뿐만이 아니라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은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노예삼고 있는 로마를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원수의 나라 로마를 구원하기 위하여 복음을 가지고 갑니다. 사도 바울마저도 아시아로 가기를
원했음에도 주께서는 그를 로마로 향하여 복음을 전하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는 중요한 내용인 것입니다. 원수가 있는 땅 끝까지 입니다. 성경의 모든 요구에서 이웃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아는 성경 지식, 은사, 모든 것들이 우리 주변 이웃들에게
유익하게 되는 것으로 쓰여지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을 시작으로
원수가 있는 땅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도록 그 일에 우리가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성경 지식과 신앙생활의 지혜가 ‘너는 틀렸고 아직도 멀었어’라는 것으로 표현되면
안된다는 말씀이며, 그것이 성경이 얘기하는 신앙의 올바른 방향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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