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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욕심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1-5).
바울은 본문에서 복음을 전할 때 이성적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고 말씀합니다. 복음이 방해받지 않게
하려고 자신의 말재주나 자신의 어떤 지식 같은 것으로 전하지 않으려고 긴장하고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서신서들은 성경 말씀과 사람들의 이성적 반론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혼란때문에 기록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쓴 이유는 교회내의 파당 때문이었고, 갈라디아서를 쓴 이유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갈1:6-8) 라고
말씀합니다. 다른 복음이 생기고 분파가 생기는 이유는 성경 말씀중에 인간 이성으로는 다 이해할 수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골로새서에서는 철학과 헛된 속임수를 경계하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하고, 이성적으로 안되면 철학적인 설명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납득해야 되고, 자기들이 직접 손으로 해 봐야 되고, 스스로 알아보지 않고서는
왠지 불안해서 항복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쉽게 이해가 안되는 것은 철학적으로 라도 풀어보려고 하는
욕심이 사람들에게는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지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설명도,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람이 될 수있느냐에 대한 대답도 없습니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29:29)하십니다. 우리들이 예수를 믿어야
될 이유와 근거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이기고 거룩하게 살려고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은
충분히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 21:25)하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진리를 알고 거룩해지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영광스럽게 되어가는 일에 충분한 말씀과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도 버릴
것이 없고 더 이상 필요치도 않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받는 것이 영적인
일이기에 우리들이 아무리 잘 설명을 하고, 철학적인 해석을 해도 이해할 수없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믿음은 하나님의 영적 섭리이며, 오직 허락된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이 복음의 요지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본문에서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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