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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룽지 할머니

김용호............... 조회 수 504 추천 수 0 2016.07.29 04:34:07
.........
누룽지 할머니

집이 시골이었던 저는 고등학교 삼 년 내내
자취를 했습니다.

월말쯤, 집에서 보내 준 돈이 떨어지면, 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하곤 했어요.

그러다 지겨우면, 학교 앞에 있는
‘밥 할매 집‘에서 밥을 사 먹었죠.

밥 할매 집에는 언제나 시커먼 가마솥에
누룽지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어요.

“오늘도 밥을 태워 누룽지가 많네.
밥 먹고 배가 안 차면 실컷 퍼다 먹거래이.
이 놈의 밥은 왜 이리도 잘 타누"

저는 돈을 아끼기 위해 늘 친구와 밥 한 공기를
달랑 시켜놓고, 누룽지 두 그릇을 거뜬히 비웠어요.
그때 어린 나이에 먹고 잠시 뒤돌아서면
또 배고플 나이잖아요.

그런데, 하루는 깜짝 놀랐습니다.
할머니가 너무 늙으신 탓인지, 거스름돈을
원래 드린 돈보다 더 많이 내 주시는 거였어요.

'돈도 없는데 잘 됐다. 이번 한 번만 그냥
눈감고 넘어가는 거야.
할머니는 나보다 돈이 많으니까'

그렇게 한 번 두 번을 미루고, 할머니의
서툰 셈이 계속되자 저 역시 당연한 것처럼
주머니에 잔돈을 받아 넣게 되었습니다.

그러기를 몇 달, 어느 날 밥 할매 집엔 셔터가 내려졌고,
내려진 셔터는 좀처럼 다시 올라가지 않았어요.

며칠 후 조회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단상에 오르시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어요.

“모두 눈 감아라.
학교 앞 밥 할매 집에서 음식 먹고,
거스름돈 잘못 받은 사람 손들어라."

순간 나는 뜨끔했어요.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다
부스럭거리며 손을 들었습니다.

“많기도 많다. 반이 훨씬 넘네."

선생님은 침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죠.

“밥 할매 집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께서 아들에게 남기신 유언장에 의하면
할머니 전 재산을 학교 장학금에 쓰시겠다고 하셨단다.
그리고..."

선생님은 잠시 뜸을 들이셨어요.
“그 아들한테 들은 얘긴데, 거스름돈은 자취를 하거나
돈이 없어 보이는 학생들에게 일부러 더 주셨다 더라.

그리고 새벽부터 일어나 그 날 끓일 누룽지를 위해
밥을 일부러 태우셨다는구나.
그래야 어린애들이 마음 편히 먹는다고..."

그 날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데, 유난히 '밥할매 집'이라는
간판이 크게 들어왔어요.
나는 굳게 닫힌 셔터 앞에서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할머니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할머니가 만드신 누룽지가 세상에서 최고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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