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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계13:1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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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826) 2016. 3.31 |
의로운 부자가 되라
(요한계시록 13장 16-18절)
<헛된 종말론에 빠지지 말라 >
본문에 나오는 육백육십육이 무엇인가? 알파벳에 설정된 고유의
숫자를 더해 666은 “교황이다! 히틀러다!”란 주장도 하고, “컴퓨터다! 바코드다!”란 주장도 한다. 어떤 사람은 숫자를 통해 비밀을 풀려는
‘수비학’을 진리처럼 맹신한다. 그처럼 수비학과 시한부 종말론을 맹신해서 자기가 선택된 존재인 줄 믿지만 실제로는 영혼이 사탄에 팔려가거나
사로잡힌 상태임을 깨닫지 못하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왜 이단 교주가 수비학과 어설픈 과학적 근거와 어디서 주워들은 종말관련
얘기들을 내세워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가? 1단계로는 호기심으로 영혼의 문을 열고 2단계로는 두려움으로 그 영혼을 속박해서 자신을 영험하게
보임으로 추종자들의 삶과 재산과 노동력까지 통째로 빼앗기 위한 전략이다. 그러므로 건전한 종말의식을 가지고 종말의 날을 힘써 대비하되 어설픈
시한부 종말론에는 빠지지 말라.
노스트라다무스가 썼다는 문서에 나오는 1999년 종말 예언에 의거해서 7년 대환난을 빼고
시간적으로 엉성하게 뜯어 맞춘 ‘1992년의 예수님 재림 및 휴거설’로 한국교회가 얼마나 웃음거리가 되고 그 이후에 전도가 얼마나 크게 지장
받았는가?
2012년에는 마야 달력이 끝나기에 세상에 끝난다는 종말론이 기승을 부렸고 심지어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이름을 빌어 누가
지었는지도 모르는 3행시를 내세워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가 유튜브에서 10억 명이 보면 종말이 온다는 유치한 종말론까지 등장했었다. 유치한
종말론 얘기들에 지나친 호기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종말 및 예수님의 재림은 사람이 유치하게 뜯어 맞춘 해석으로 정한 때가 아닌 하나님이 정한
때에 이뤄진다.
자기 추종자를 만들려는 악한 종교인은 끊임없이 시한부 종말론과 위기설을 조장해 심약한 대중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만든다. 그렇게 종말론으로 심약해진 사람들이 종말의 때를 착실히 준비해 나가겠는가? 오히려 허무주의와 쾌락주의와 나약주의에 빠져 교주가 통제하기
쉬운 대중들이 된다. 그것을 악한 교주들이 노려서 영혼을 지배하고 정신적인 노예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임박한 종말과 재림’을 강조하면서
‘부동산 취득과 건축’에 열을 올리는 교주의 자기부정 및 자기모순을 뻔히 보고도 미혹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 의로운
부자가 되라 >
악한 지배계층의 제일 신조가 무엇인가? “대중들이 지배당함을 깨닫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다. 결국 영혼을
나약하게 만드는 것은 악한 종교인이 영혼을 지배해 혼자 잘 먹고 잘 살려는 전략이다. 그러므로 호기심과 두려움을 유발하는 유치한 해석들로부터
자기 영혼을 잘 지켜내라. 신기한 종말 해석에 잘 끌리는 것은 신앙의 초보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고 그런 호기심을 통해 종말론 이단이 기생함을
잊지 말라.
666표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짐승을 나타낸 상징적인 수’라고 아는 정도로 넘어가라. 그처럼 666표의
정확한 실체는 잘 몰라도 이 표가 어디에 쓰이는지는 성경이 분명히 말한다. 실제로는 그 사실이 더 중요한 사실이다. 그 표가 어디에 쓰이는가?
본문 17절에 나오는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란 말씀에 의하면 이 표는 경제적 권리를 박탈하는 힘을 가진
표임을 알 수 있다.
결국 본문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사실은 마지막 때에 사탄의 주공격 통로는 경제문제란 사실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더욱 경제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선교와 나눔을 선도하는 의로운 부자의 꿈을 가지라.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돈을 영혼의 적처럼 생각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돈 자체를 탓한 곳이 없다.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딤전
6:10).”고 말했지 돈 자체를 나쁘게 보지 않았다. 돈의 성격은 소유자의 인격과 마음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돈을 자기만 위해
쓰고 과시와 허영을 위해 쓰면 돈이 악하게 되지만 돈을 선교와 나눔을 위해 잘 사용하면 돈이 선하게 된다. 선의 수단이 충분히 될 수 있는 것을
악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이 잘못이지 돈 자체는 악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악한 의지가 개입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어떤 창조물에도 함부로
저주스런 딱지를 붙이지 말라.
의로운 부자의 꿈도 가지라. 믿음이 좋은 성도들이 팔짱을 끼고 있으면 아까운 돈이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의 수중으로 넘어가기에 사회의 고통과 상처는 더 심해진다. 이런 때에 의로운 부자들이 많이 일어나야 선한 미담들도 많아지고 의로운 사회가
되고 더욱 선교도 많이 할 수 있다. 안일하게 지내면서 건전한 재산 증식을 외면하는 소극적인 삶을 버리라. 주일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삶’도 중요하지만 주중에 경제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생활 중에 예배를 드리는 삶’도 중요하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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