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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할 수 있는 한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일 4:11)
하나님은 사람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여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여서, 선하고 진실된 관계로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이브는 서로 벌거벗었음에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둘 사이에 숨길 것 하나
없이 서로 믿고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을 자기 마음에서 지워 버림으로
하나님과 분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도 못 믿게 되어 자신과 분리되고 이웃과 분리된 것입니다.
무화과나무 잎으로 앞을 가려도 수치심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사이에 완전한 신뢰는
사라지고 서로 겉과 속이 다르게 행세하게 된 것같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쪽에서 먼저 죄인을 당신과 화해토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원죄와 모든 윤리적 죄들의 원인이었던
하나님과의 분리가 십자가로 제거된 것입니다. 언제든 예수님의 공로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있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죄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용서받은 죄인들 끼리 믿음으로 서로 진정하게 화목해 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 1:5-7)하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락한 사람이 복음의 능력으로 자신의 구원을 얻고 이웃이 있는 그대로 보이기 시작해서 사랑할 소망이
생기면, 그 이웃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없음을 깨닫는 때가 오는 것같습니다. 이웃이
예수를 믿든 안 믿든 모두가 불쌍하다고 생각이 들어도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나 연약한
존재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체질이 여전히 진토이고 죄의 본성이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듭난 신자에게 성령을 내주케 하심으로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덕을 세우며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성령이 당신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적합한
은사를 나눠주십니다. 그래서 은사는 오직 이웃과 성도와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려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더욱 확대되는 목적과 방법으로만 사용되어야 합니다. 거듭난 신자마다 어떤 종류의 은사라도 하나
이상씩은 다 받습니다. 은사를 사용하여서 그리스도가 증거되고, 이웃을 사랑으로 세우는 열매를 맺도록
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거듭난 우리들이라도 이웃과 진실로 서로 화목해 질 수 있는 방법은 성령님의 능력과
은사를 통하여 우리 스스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변하는 방법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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