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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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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강종수 목사 |
참고 : |
성경 : 창4:7
제목 : 죄를 다스리라
창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아멘.
성경이 말하는 죄(罪)는 두 가지로 하나는, 원죄(原罪)라고 창3:에서 하와와 아담이 금령의 실과를 먹음으로 지은 사망의 죄이며(롬6:23), 그로 인해 일어나는 온갖 인간의 죄를 자범죄(自犯罪)라 합니다. 본문은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가인의 중심을 보시고 곡물을 받으시지 않는 바람에 가인이 화를 냈을 때 주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가인은 괜히 동생을 쳐 죽이는 살인 사건이 났습니다. 가인이 지은 죄는 스스로 지은 자범죄인데 인간은 누구나 이런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범죄를 스스로 다스려야 합니다. [죄를 다스리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선하지 않으면 악이 나타남
성경이 말하는 선이란 하나님 보시기에 받으실만한 것이고 악은 불신앙적인 모든 언행을 말합니다. 본문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가인의 범죄는 주변의 사람으로부터 사회적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영향도 아니고 단지 하나님 앞에서 분노가 났습니다. 그 이후 인류사는 전쟁사라 할 만큼 끊이지 않는 국가 간의 전쟁과 또한 이웃 간의 다툼이 끊이지 않는데 주된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바로 경외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는 라는 말씀대로 믿음 안에서 선한 정신과 행위를 하지 않으면 문 앞에 엎드려 있는 죄에 걸려서 언행을 시도할 때마다 걸려 넘어지는 시험을 받게 됩니다.
믿음이라는 단어 피스티스(πίστις)는 충성이라는 말과 같이 쓰입니다. 충성은 믿음의 양심을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교회생활에 충성이 없이 너무 조용하기만 하면 오히려 위험합니다. 충성하지 않는 것은 영적으로는 태만한 상태이고 사탄의 시험이 들 가능성이 많아집니다.
(1)다윗이 백성들은 전쟁에 내보내고 기도하지 않고 왕궁 옥상에서 어슬렁어슬렁 거닐다가(삼하11:2) 아래 어떤 여인이 목욕을 하는 것을 보고 탐을 내어 범죄하니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습니다. 놀면 범죄하기 일쑤입니다. 하나님께 믿음의 선을 좇아 긴장하며 살지 않고 태만하면 죄악이 기회를 타서 멸망을 가져옵니다.
(2)엘리 제사장도 자식들이 무서운 죄를 짓고 있는데 따끔하게 고치지 않고 태만하다가 나라가 블레셋에게 망하고 자식들도 죽고 하나님의 법궤도 빼앗기고 이에 충격 받아 의자에 앉아 있다가 뒤로 나자빠져 죽었습니다(삼상2:-4:).
욥은 상당히 신앙적으로 예민한 사람이었습니다.
욥7:18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라고 했는데 이는 그리 긴장하고 산다는 뜻입니다.
시험을 하시는지 안 하시는지 알지 못하고 사는 것은 영적 어두움이고 지극히 위험한 상태입니다. 큰 어렴이 오면 신앙적 대체 능력이 없습니다. 깨어 있도록 해야 합니다. 깨어 있으려면 충성스런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2. 자범죄(본죄,本罪)에는 형벌이 따름
죄에는 형벌이 따릅니다. 그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통치 방법입니다.
롬2:8 ‘..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원죄는 영원한 형벌인데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결되었습니다.
더 이상 지옥을 가야할 저주는 없어졌습니다. 이것이 특별하신 계시적 은혜입니다.
엡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엡2:8,마25:34)
그러나 성도라도 자기의지로 지은 죄에 대해서는 징계가 따릅니다. 연약한 인간이기에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논리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본문 후반부에 ‘..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고 했습니다. 마솰(ַׁלשמָ), reign[rein], 통치,군림,지배,재임,집권하다는 뜻인데,
해와 달이 주야를 주관하다(창1:18),아담이 하와를 다르시다(창3:16),요셉이 애굽 온 땅의 치리자(창45:8),한 나라의 억압적인 통치(삿14:4,15:11),하나님의 섭리적 통치(시89:9,103:19) 등에서 같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잠16:32 ‘..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다스리는, gain control, 이득억제를 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죄를 다스려야 하겠습니까?
1)마음의 문 앞에 놓여 있는 죄를 양심으로 보아야 합니다
죄가 육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양심으로 깨닫는 것이지요?
본문에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문 앞이니 그리 멀지 않고 시각적으로 살필 수 있는 거리입니다. 조금만 자아를 돌아보면 죄가 보입니다.
딤전3: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히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 ’
벧전3:21 ‘ ..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2)죄는 열정적으로 나를 원하고 있음을 알아야
죄는 우리로 하여금 선택의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라 기어이 죄를 범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 죄가 너를 원하나..’ 고 할 때 원하다는 말, 테슈카토, /tq;WvT](תְּשׁ֣וּקָת֔וֹ)는 열정적(desire)으로 느낌까지 주는 소원을 말합니다.
죄는 논리나 낭만이 아닌 하나의 인격으로 양심과 대화하고 눈을 마주치며 강압적으로 끌어 당겨 죄를 짓도록 하는 영적 힘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가 죄를 멀리하고 살기 위해서 권고하는 말씀 중에는,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히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3)다스려야 하는 의지적인 의무
본문 끝에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고 했습니다.
죄를 다스리는 것은 몽둥이로 쳐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의지하며 부탁하며 인내로 죄가 무너지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죄를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께 의지하며 죄를 이기기까지 인내하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유1:9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이라고 한 말에서 우리는 마귀와 다툴 때에도 주님이 꾸짖으시기를 원했다는 이 말을 닮아야 할 것입니다.
‘..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하니 성도는 늘 긴장을 놓치지 않고 열심을 다해 주를 따라 살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가 문전에 나를 넘어지게 하고 실패하여 낙망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죄를 거듭 지으면서 용서 받는 일을 반복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언제라도 죄를 회개하면 사하시나 사람이 신뢰성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은총 받기에는 사회 상식적으로도 온전하지 못한 자가 되어 버립니다.
그것은 공의요 하나님을 신뢰치 못하는 자의 형벌이기도 합니다. 죄와 싸우며 주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늘 죄인의 마음을 다스리는 우리가 되어 많은 은총을 받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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