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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느냐?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403 추천 수 0 2016.10.02 15: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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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4:3-9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4장 3절-9절: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는 이 말이 안 믿는 사람들은 참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가난한 자들에게 주면 좋겠다’ 한 이 말이 육의 개념으로 한 말이냐, 영의 개념으로 한 말이냐? 육의 개념으로 말한 거다.


그리고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면 좋겠다’고 말한 게 만일 자기가 그렇게 실천을 하고 이 말을 했다면 맞는 말이 되는 거냐? 아니다. 왜 아닌 거냐? 선과 악을 행동의 방편에서 찾아야 하는 거냐, 신앙의 질에서 찾아야 하는 거냐? 질에서 찾아야 한다. 따라서 육의 개념으로 한 말이기 때문에 자기가 실천을 하고 그 말을 했다고 할지라도 잘못된 말이다. 질이 잘못됐다.


예수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이런 일이 일반적으로 있는 일이냐?


그리고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께서 식사를 하시니 여자와 문둥이 시몬 두 사람이 예수님을 독차지한 셈이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공모를 하는데 그러나 문둥이였던 시몬은 예수님을 모시고 식사를 하고, 한 여자는 지극히 값진 향유가 담긴 옥합 깨뜨려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그러면 이들이 오누이 간이냐, 아니면 부부냐? 어쨌든 큰 은혜를 받은 자들임이 분명하다. 은혜를 받지 않고는 이런 행동이 안 나온다. 하나님 앞에 모든 감사는 은혜를 받은 데서 되는 거고, 또 앞으로 은혜 받을 일에 감사를 하는 거다.


성경에 보면 ‘너희들은 내 앞에 올 때 빈손으로 오지 말라’ 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자칫하면 잘못될 수가 있다. 이 안에 들어있는 뜻을 낱낱이 말하면 이해가 되지만 이 성경구절을 그대로 말을 하게 되면 거짓 종들이나 사기꾼들이 얼마든지 교인들을 이용해 먹을 수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 믿는 게 인간 자기의 분분이기 때문에 안 믿을 수는 없는 거다.


이 향유가 보통 향유가 아니다. 뿌리에서 짜내는 인도산의 향이다. 그러니까 멀리 외국에서 가져온 거다.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라면 10개월을 먹지도 않고 모아야 살 수 있는 양이다. 그러니까 이 향유는 큰 재산의 한 목록으로 들어가는 거다.


‘보화라 보물이라’ 할 때 시간적 질적으로 창세부터 마지막 때까지 어느 나라에서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만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야 보화요 보물이다. 그런데 그림이 안 썩느냐? 그릇이 안 깨지느냐?


보화나 보물은 급할 때 쓴다거나 요긴할 때 쓸 수 있도록 깨어지거나 부서지거나 해체할 수 있는 곳에 넣어야 되지 죽을 때까지 못 쓰도록 해놓는다면 보물의 가치가 없다. 어려울 때 귀할 때 최고의 은혜 받는 일에 쓸 줄을 알아야 한다. 아니면 그게 무슨 보화냐? 보화를 가진 의미가 없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향금과 유향과 몰약을 가지고 아기예수님께 왔다. 이 박사들이 멀리서 오면서 아무 데서나 구할 수 있는 것을 갖고 온 게 아니다. 그리고 와서는 십자가가 달린 건물을 보고 드린 게 아니고 아기를 보고 드렸다. 건물을 보고 예루살렘 안에 들어가니 예수는 없었고 그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그 바람에 나중에 아이들을 죽이는 일이 나오고 했다. 큰 실수였다.


그러니까 신앙의 발상이 건물을 보고 들어가면 거기에는 반드시 헤롯왕이 있다. 그 다음에 그 밑에는 세계에서 알아준다는 성경 학박사들이 있다. 그러나 예수는 없다. 그러니까 동방박사들이 신앙이 좋았었는데 그만 눈으로 보여지는 것에서 큰 실수를 했다.


그러나 아기예수를 보자마자 기쁨으로 가지고 온 예물을 예수님께 드렸다, 이게 그냥 나오는 거냐? 마음이 열려야 그들의 마음속에서 준비한 게 나오는 거다. 단순히 물질만 생각을 말아라. 그러면 그 생각은 얕다.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린 여인은 주님을 위해 쓰기 위해 하루 하루 노동을 해서 지극히 순전한 나드 한 방울 한 방울을 깨어질 항아리에 채웠다. 항아리라는 의미도 생각을 해 봐라. 자기에겐 다 항아리가 있다.


그리고 항아리의 뚜껑을 열어서 향유를 예수님께 부으면 될 것인데 왜 항아리를 깨뜨렸다고 표현을 했나? 뚜껑이 안 열려서 깬 거냐? 깨뜨렸다는 표현은 ‘단번에, 사정없이, 아낌없이’ 라는 뜻이다. 주님을 위해 아낌없이.


예수 믿는 사람이 주님을 위한다는 표현을 어디에 써야 하는 거냐? 사람을 살리되 영원히 살리는 그 일에 쓰는 거다. 그런데 오늘날 육덩이 교회, 세상적인 교회에서 교회에 뭘 갖다 바치면 물질축복 운운하는데 이건 틀렸다. 이건 이방사상이다. 참 가치 있는 데다 돈을 쓰는 거, 가치 있는 데다 자기 몸을 깨뜨리는 거, 그게 주님을 위하는 거다. 그런데 자기 몸을 어디에 깨뜨리고 싶으냐? 자기 몸을 어디에 던지고 싶으냐? 그걸 가만히 생각을 해 봐라. 생각하는 사람에게 성령님의 감화가 들어가는 거다. 안 그러면 악령의 감화요 시험의 감화다.


이런 걸 생각하면서 내가 주님 앞에 전적으로 드린다면 인간 편에서 생각하면 자기의 모든 것은 없어진다. 그러면 주님 앞에 자기의 전 혼신을, 전 인격을 쏟아놓지 않고 자기의 계획대로 자기의 소원대로 한다면 세상 것이 자기 뜻대로 될 런지? 주님 앞에 혼신을, 전 인격을 자기의 전폭의 삶을 다 쏟는다면 자기는 망하고 죽을까, 천대 만대 하늘에까지 영원히 존귀영광의 명성이 날까? 그런데 그걸 안 믿고 못 믿고 있다. 목사님들의 세계도 그렇더라. 자기의 어떤 생애문제를 해결코자 하는 발상에서 목사의 길을 택하는 것.


‘첫 아들은 내 것이니 나에게 바치라’ 하는 것은 ‘둘째 것은 네 것이니 네가 가져라’ 그 말이냐? 첫 아들을 바치라는 의미가 뭐냐? 인간 편에서의 표현이지만 부모로서 첫 신앙을 갖는,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 앞에 사상적으로 신앙정신이 바로 들어간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이다.


사정없이 항아리를 깨뜨린 것은 ‘단번에, 앞뒤도 볼 것 없이’ 그 말이다. 주님을 위해 아낌없이 단번에 드리는 여자의 신앙성정을 보면, 심성을 보면 참 아름답다. 그렇게 되니 깨뜨리면 향유가 쏟아지는 거다. 그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일반적으로 향을 머리에 들어 붓는 사람은 없는데 향을 예수님의 머리에 들어 부었다고 표현을 한 게 더 깊은 뜻은 없을까? 또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을 하는 바람에 닭이 두 번 울었는데, 한 번 부인할 때 닭이 한 번 울고, 두 번 세 번 부인할 때 닭이 또 울고 한 그렇게 두 번인지, 아니면 세 번을 부인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닭이 두 번 연속으로 운 건지? 어쨌든 닭이 두 번을 울었는데, 닭이 운 이게 ‘새벽이니 닭이 울었겠지’ 하는 게 아니다. 닭이 울 때 하늘을 보고 우느냐, 땅을 보고 우느냐? 하늘을 보고 운다. 그런 것을 사람의 마음을 담아서 봐라.


그러니까 그 닭에게 인격을 넣어서 의인화 시켜서 생각을 해 보면 베드로의 처음 부인, 두 번 부인, 세 번 부인이 있었고, 그리고 베드로의 부인에 앞서서 예수님께서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고 하신 걸 같이 볼 때 닭이 우는 소리에서 닭의 심정이 들리는 거다. 그냥 우는 것과 마음속에 엉겨 있다가 폭발되어 나오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이제 예수님의 온 몸이 향기다. 그런 게 있느냐? ‘이번에 부모님이 다녀간 그 길이 마지막 길이었구나. 그럴 줄 알았으면 뭘 잘 해 드려야 했을 텐데’ 하고 속에서 맺히는 게 있다. 세상에는 이런 일이 많이 있다. ‘아, 그 사람의 그 걸음이 마지막 걸음이었구나. 새벽같이 돈 벌어온다고 나간 그 부모님의 길이 마지막 길이었구나.’ 마음속에서 느껴져 오는 그런 게 있다.


예수님으로서는 그 길이 마지막 길이다. 그 길이 창조의 목적적으로 볼 때 그 분에게는 마지막 길이었다. 그러나 시몬과 여자는 예수님의 이 길이 마지막 길인 줄을 잘 모른다.


아브라함이 자기 집에 손님을 맞아들였는데, 딴 데 표현하길 천사를 영접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그 때 아브라함이 천사를 영접한다고 한 것이냐? 그건 아니다. 그런데 나그네를 대접하는 그 심성이 있는 거다. 그러면 어떤 나그네냐? 인생 길, 험한 길을 가는 나그네이다.


우리도 나그네인데 그러나 세상으로 여리고로 향해 내려가는 나그네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대로 홀로라도 가는 나그네 길이다. 나그네 길을 가면서 위로부터 옳은 진리이치의 말을 들을 때 그게 자기의 신앙화 돼서 하나님 앞에서 사는 길이다. 이런 길을 가는 사람의 마음이 생각도 풍부해야지 어떻게 먹는 것만 생각하고 자기 고집대로만 사느냐?


마리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여 아기를 배면 처녀가 아기를 배는 것이기 때문에 돌에 맞아 죽는 거다. 그럼에도 마리아가 말씀을 영접하여 아기를 배었지만 그렇게 되었더냐? 절대 그렇지를 않다. 그 순종을 한 마리아의 이름이 성경이 가는 곳곳마다에서 드러난다. 기념을 하고 있다. 예수를 배었던 여자로 기념을 하고 있다. 본문의 여자도 성경이 가는 곳곳마다에서 기념이 되는 거다.


자기의 신앙이 후대 자자손손 교인들에게도 기념될만한 것을 남겨놔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교인들끼리 싸우고 ‘저 사람은 없으면 좋겠다’ 하고, ‘안 보였으면 좋겠다’ 하고, 온 교인들 가슴에 이상한 감정을 남겨놓고 하느냐? 이건 저주다.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가 생활은 각자 자기 처소에서 하지만 소원 목적이 전폭적으로 전 인격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길이 열린다. 다만 열리기까지는 연단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옳다함을 인정을 받은 후에’ 이게 들어가는 거다.


그런데 만일 이 여자가 다음 기회에 하자고 미뤘다면 어찌 되었을까? 영원히 못하는 거다. 부모님을 섬기는 것도 돌아가신 후에 후회하지 말고 살아계실 때 해야 하는 거다, 하되 무엇이던 진리가 있을 때 진리로 인해서 하라. 그러니까 진리가 아니면, 구원이 아니면 하지를 말라. 진리가 있을 때 하되 하나님 앞에 똑바로 마음을 모으고 하라. 그게 아닌 자기 계산부터 먼저 하고 들어갔으면 해 놓고도 너에게는 앙화다. 해 놓고도 괴롭고 시험에 든다. 사람을 보고 하지도 말라. 내가 못한 것을 성경에서 찾고, 성경에서 찾은 것은 열심히 해 나가고.


그런데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죽일까’ 한다. 이건 존재적으로는 예수를 죽이려는 것이지만 교훈적으로 보면 구원의 말씀을 죽이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여자가 한 일에 대해 그 자리에서 서로 분 내어 말하되 ‘무슨 뜻으로 예수라는 사람에게 이 값비싼 향유를 들어 붓느냐’ 한다. 이 사람의 말만 들으면 여자가 허비한 것처럼 들린다. 세상이치로 보면 그건 허비한 거다. 그러나 여자의 언행심사 모든 열심 충성봉사는 진리로 된, 하나님의 뜻에 적중성으로 된 감화로 된 것이니 절대로 허비 낭비가 아니다. 하나님은 받으시고 채워주신다.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것은 예수님의 구원운동에 쓰여지고 투자된 것인데, 이 면을 모르는 사람은 세상 물질적 사고방식으로 ‘무슨 뜻으로 허비하는가’ 하게 된다. 타락된 정신은 ‘그 사람이 돈을 얼마나 가졌느냐’로 사람의 값을 매긴다. 어떤 사람은 사람의 모양만 보고 그 사람을 논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람의 신앙심성을 보신다.


5절의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줄 수 있겠다’ 하는 걸 세상적으로 들으면 일리가 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예수님에게 투자하면 즉, 자타의 구원에 투자하면 예수님은 구원이니 영을 살리는 생명운동, 천국 복음운동이 되지만 팔아서 세상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준다면 구원으로 살리는 것은 없다. 육덩이로 나가는 교회인 줄도 모르고 거기에 바치는 그런 정신과는 다른 것이다, 오늘날 교회적으로 하는 것을 이치적으로 봐라.


만일 여자가 자기의 일생을 세상 가난한 자들을 위해 소비했다면 이 여자에게는 영적인 면에서 구원은 없다. 하나님 앞에 온전히 산 것은 없고 전부는 세상이 보는 임시적인 삶이다.


그리고 여자에게 그런 말을 한 자들이 세상 가난한 자에게 했다면 얼마나 했겠느냐? 그리고 이 자들이 했다고 할지라도 예수구원의 운동을 위해 투자한 것은 전혀 없게 된다. 그러니 이런 자는 여자를 책망할 자격도 없는 거고, 아주 사악한 자들이다.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을 앉혀놓고 그 말을 하고 있으니 그들이 얼마나 교만하고 시건방진 거냐?


그래서 우리가 어느 교회든 하나님을 놓고 볼 때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인정해 주시는 믿음을 가지라는 면에서 세상적인 정신으로 하는 것이라면 이건 하나님 앞에서 교활하고 사악한 자와 같은 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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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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