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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13:31-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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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수도원교회 http://blog.naver.com/malsoom |
2012년 4월 22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13장 31절~32절
설교제목 : 작은 씨앗의 삶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들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심었다. 겨자씨는 어떤 씨보다 더 작은 것이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 더 커져서 나무가 되며,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마태 13장 31절~32절)】
<삶 이야기, 세상 이야기>
더 낳은 삶, 더 행복한 삶, 하루하루 즐거운 나날을 꿈꾸는 인생 …… 그것은 아주 오래된,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인류의 희망사항입니다. 저 역시 그렇고, 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꿈 역시 같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늘나라의 삶’! 그래요. 이 꿈 같은 삶을 우리 현실에서 직접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예수께서는 겨자씨의 비유로서 하늘나라의 삶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그 겨자씨 이야기를 잘 새겨보도록 하겠습니다.
<겨자씨 이야기>
예수께서 말씀해 주신 겨자씨 이야기를 세 가지 차원에서 한번 곱씹어 보았습니다.
첫째, 예수의 겨자씨 비유에서 방점(傍點, 강조점)은 ‘씨앗’이어야 합니다. 즉 이 비유에서 강조점이 ‘어떤 풀보다 더 커진다’든가,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는 차원들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다시 말해 예수의 이 비유에서 가장 중요한 초점은 ‘씨앗 그 자체’이지 씨앗의 놀라운 성장이 아닌 것입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개혁적인 교회라는 곳의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서 설교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영상의 설교자가 첫마디로 강조하는 메시지는, “생명이 있는 교회 공동체는 반드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글쎄요. 무슨 말씀인지 대충 알겠습니다만, 그러나 수도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깊은 공감은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공동체를 생명으로 비유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새순-성장-결실-죽음(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과정들을 겪는다는 이야기인데, 그 설교자가 강조한 성장은 ‘죽음’(겨울)을 배제한 비유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설교자는 성장이라고 말하면서, ‘새순-성장-결실’까지만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온당치 않지요! 그리고 제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영성의 수도란 삶과 죽음을 초탈하는, 즉 생명과 생명 아님의 경계를 넘어서는 차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겨자씨 비유 이야기에서 우리가 정말 잘 생각해야 할 아주 중요한 차원은, ‘씨앗도 역시 열매’라는 점입니다. 작은 겨자씨를 자기 밭에 뿌릴 수 있는 사람, 즉 그 스스로 작은 씨앗이 되어 그의 삶터에 그 씨앗을 뿌리는 사람, - 그 사람이 평화의 씨앗, 사랑의 씨앗, 정의의 씨앗, 영성의 씨앗 등이 되어서 세상의 밭에 뿌리워지는 삶. 그게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그 씨앗이라는 것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 년 열두 달 땀방울과 핏방울들이 모아져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인생의 밭에 영성의 겨자씨를 뿌리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그 이전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가꾸고 일하고 땀 흘리고 노력하고 성찰하고 되뇌이고 기도하고 추수하는 ‘노동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즉 씨앗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공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갈고 닦아야만 만들 수 있는 노동의 산물인 것입니다.
셋째, 언제이든 어디서이든 ‘하늘나라의 씨앗’은 반드시 작아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공동체라고 하더라도,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면 ‘하늘나라의 씨앗’일 수는 없습니다. 작으면 작을수록 하늘나라에 가깝습니다.
교회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학교도 그렇습니다. 삶의 환경자체가 다 그렇습니다. 수십만,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좁은 곳에 모여서 도시문명을 일구면서 살고 있는 이 현실, 거대한 규모 속에서 톱니바퀴처럼 쪼여서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하늘나라의 행복한 삶’은 멀고먼 이야기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미운정 고운정을 나누면서 인격적인 대인관계를 일구며 사는 ‘작은 삶의 공동체’, 그게 대안이겠지요!
<설교의 결론>
예수의 친구들인 우리들, 진리의 길벗들인 우리들이 각자의 삶터에서 ‘하늘나라의 겨자씨’가 될 수만 있다면, 세상은 아름다워질 것이고 행복해질 것이고, 신비로운 그 본래적 성정(聖情)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세상의 곳곳에 숨겨져 살고 있는 진리의 길벗들이 각자 나름으로 ‘하늘나라의 겨자씨들’로 열심히 살고 있어서, 세상살이가 이 만큼이라도 행복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작은 씨앗의 삶’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잘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하늘의 님이여. 땅의 예수여. 바람의 성령이여!
이제는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이 땅에서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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