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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두려워 말라
살쾡이가 높은 나무 위에 있는 다람쥐를 잡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람쥐를 본 살쾡이는 특별히 큰 소리를 내거나 요란한 몸동작을 하지 않고 매서운 눈으로 다람쥐의 눈을 쏘아봅니다. 그러면 다람쥐는 두려움 때문에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다가 스스로 땅위에 엎드린 살쾡이 앞에 툭 떨어져 먹이가 됩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종종 두려움에 빠집니다. 두려움은 우리의 마음을 약하게 하고, 내적 평안을 빼앗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의 실체를 가만히 살펴보면 허수아비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어리석은 참새들은 허수아비를 보고 무서워 달아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참새들은 허수아비 근처에 잘 여문 곡식들이 많다는 사실을 압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딤후1:7) 라고 하였습니다. 두려움은 인생의 독소입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미신을 섬깁니다. 즉 두려움은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두려움을 없애고 이기는 방법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조그마한 배 한 척을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계셨습니다. 갑자기 심한 풍랑이 일어나서 배는 침몰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등의 제자들은 평생을 갈릴리 바다에서 산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능히 이 풍랑을 극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조용히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겁에 질려 쩔쩔매면서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우리들이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예수님께서는 잠을 깨시더니 오히려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참 평안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진정한 평안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고요한 바다입니까? 능숙한 항해술입니까? 배가 좋아야 됩니까? 아니면 기술이 좋아야 됩니까?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고 오직 믿음입니다. 언제든 어느 때든 믿음이 있는 그곳에 진정한 고요함과 평안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하지말라"(요14:27)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세상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시46:1-3)
어떤 사람이 공동묘지를 넘어 막 마을로 가려하다가 너무나 밝은 얼굴로 뛰어노는 한 꼬마를 만났습니다. "공동묘지 근처인데 너는 무섭지 않니?" 이 사람이 이렇게 묻자 꼬마는 "아뇨"라고 하면서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습니다. "왜 무섭지 않지?" 다시 이 사람이 묻자 꼬마는 활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우리 아빠가 이 묘지 관리인이거든요" 하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삼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사41:10)
정말로 자기 하나님을 아는 성도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아니합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느부갓네살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고 모든 사람이 다 이 신상에게 절하라고 하면서 만일 절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있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진다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던 이스라엘 청년 사드락과 메삭과 야벳느고는 신상 앞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안 느부갓네살왕은 크게 노해서 그들을 불러다 놓고 "이제 다시 한 번 기회를 기회를 주는데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살려주지만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당장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불 속에 집어 던질 것이다. 어떤 신이 너희를 내 손에서 건진단 말이냐?" 이때 이들은 침착하고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일에 왕께서 우리를 풀무불에 던져 넣으면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거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입니다. 혹시 그렇게 아니하신다고 하더라도 왕이시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3장)
이 얼마나 담대합니까? 이런 담대함이 어디서 나옵니까? 자기 하나님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사람을 두려워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두려움은 불신앙의 표시입니다. 사람의 이해와 기준으로 문제를 판단할 때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려움은 보통의 두려움과 다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수록 다른 두려움은 적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면 누가 나를 대적하겠으며, 하나님이 나를 의롭다 하시면 누가 나를 정죄할 수 있습니까?(롬8:31) 우리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이를 두려워합시다.(마10:8)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신31:8)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되었으니 많은 참새보다 귀한 우리가 두려워해서는 안되겠습니다.(눅12:7, 마10:28-3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27:1)
한태완 목사<예화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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