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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33: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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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2016.04.24 희망의교회 http://hopech.kr |
에서를 만나는 야곱
창33:1-17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만일 이 세상의 모든 것과 우리의 일들이 사람에게 달려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시고 신실하시며 선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기 때문에 우리는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인생의 절박한 순간에 야곱은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이겼다고 인정해주시고 그에게 축복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바꾸어주셨습니다. “그가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32:28) 32장에서 우리는 야곱이 어떻게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야곱은 그가 붙들고 씨름하고 있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고는 울면서 간구했습니다. 그 밤에 야곱은 자신의 자아와 교만과 기질을 내어놓고 항복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이겼다고 인정해주셨습니다. 야곱은 울며 하나님께 항복함으로써 승리했던 것입니다.
33장에서 우리는 그가 어떻게 사람과 겨루어 이겼는가를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후에는 아무도, 심지어는 에서도 야곱의 적수가 될 수 없었습니다. 야곱에게는 에서를 만나는 순간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절박한 순간이었습니다. 야곱은 두려운 마음으로 에서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태도로 야곱을 맞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변화시켜주셨던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도 다스리십니다.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16:7)
에서를 만나는 야곱
밤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한 야곱은 다음 날 드디어 에서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보니 멀리서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야곱은 에서를 만나는 순간 자기와 가족들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을 분산시켜 대열을 편성했습니다.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여종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1-3절)
야곱이 아끼는 순서대로 대열이 짜여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야곱은 에서가 와서 가족들을 죽이려고 하면 뒤에 있는 가족들이라도 도망칠 수 있게 하려고 그렇게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에서는 사백 명을 거느리고 있었고, 가족들은 빨리 도망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별 효과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야곱은 가족들을 이렇게 배치한 후, 자기는 맨 앞에 나가서 에서를 만났습니다. 에서를 만날 때, 야곱은 에서에게 몸을 땅에 굽혀 일곱 번이나 절을 했습니다. 이것은 동생이 형을 만날 때 갖추는 예의가 아닙니다. 야곱은 마치 천한 사람이 왕을 만나는 것처럼, 죄수가 왕의 선처를 간구하면서 왕 앞에 나아가는 것처럼 에서에게 예의를 갖추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야곱이 그렇게까지 했을까요? 물론 야곱은 형 에서에게 지은 죄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형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선처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그렇게 한 것은 단지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에서에게 절을 일곱 번이나 한 것은 형 에서의 환심을 사기 위해 비굴하게 행동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였습니다. 야곱의 행동은 비겁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변화된 사람의 행동이었습니다. 과거 같으면 야곱은 에서에게 결코 이런 식으로 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에서는 야곱의 쌍둥이 형이었으며 라이벌이었습니다. 에서는 나름대로 자기가 잘났다고 날뛰고 다녔지만, 야곱은 에서를 경멸했습니다. 천박하고 무식하고 영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야곱이 왜 에서에게 이렇게까지 예의를 다하고 있을까요? 이것은 야곱이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하면서 자아와 교만을 버렸습니다. 이제 그는 기꺼이 에서에게 머리를 숙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나 할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에서의 태도가 달라짐
야곱이 이렇게 일곱 번이나 절을 하면서 에서에게 나아갔을 때, 에서에게는 더 이상 야곱과 싸울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에서는 뜻밖에도 사랑과 눈물로 야곱을 맞이했습니다. “에서가 달려와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 맞추고 서로 우니라”(4절) 야곱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었을까요? 본래 에서는 야곱을 해칠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사백 명을 거느리고 왔을까요? 유일한 설명은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변화시켜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 믿는 사람들의 마음도 다스리십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사람의 마음도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변화시켜 주십니다. 그래서 대적하는 악한 마음을 버리고 협조하게 만드십니다. 처음에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올 때는, 아마도 야곱을 가만 두지 않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출발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야곱을 만나자 증오심과 적대감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사랑스럽고 반가운 마음으로 변했습니다. 그 전날 밤에 야곱이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할 때, 이 문제는 이미 해결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사람을 만나러 갈 때는 꼭 기도하고 가야 합니다. 특히 어려운 관계에 있는 사람을 만나러 갈 때는 더욱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인간관계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인간관계가 어렵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앙 때문에 욕을 먹고 따돌림을 당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따져보면, 신앙의 문제를 떠나서 우리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의 깨지지 못한 자아와 교만 때문에 욕을 먹으면서, 신앙 때문에 핍박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야곱처럼 자아와 교만을 깨뜨리고 겸손하게 이웃을 대한다면, 불필요하게 당하는 미움이나 적대감을 상당 부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양보하지 못하고, 겸손하지 못하고, 깨지지 못한 성품 때문에 틀어진 인간관계는 없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 때문에 사람에게 미움과 핍박을 당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반드시 사람과 원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들에게 좋은 이웃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된 성도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고 바르게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좀 더 겸손해야 하고 양보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자존심을 굽혀야 합니까? 내가 무엇이 아쉬워서 참고 양보해야 합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불가능해집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변화시키실 때, 우리는 이런 일들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야곱이 바로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야곱 자신의 마음이 변화되자, 가장 어려웠던 형과의 관계가 너무나도 쉽게 해결되었습니다. 본래 야곱은 에서와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에서에게는 질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야곱은 옛 자아와 라이벌 의식을 버렸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변화되고 성숙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형 에서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렇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할 때 자존심과 교만과 자아를 깨드렸습니다. 그래서 쌍둥이 형 에서에게 기꺼이 머리를 숙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했을 때 가장 어려웠던 관계가 가장 쉽게 풀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예수 믿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의 교만과 자아와 고집이 꺾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마지막 남은 교만과 자아를 깨뜨립시다. 이제는 라이벌 의식 같은 것은 다 버립시다. 당신의 자아와 교만과 자존심이 깨어지고, 당신의 인간관계가 완전히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야곱이 에서를 만났을 때 일어났던 것과 같은 기적이 당신의 인간관계에서도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풍족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야곱과 에서 두 형제는 이렇게 감격적인 상봉을 했습니다. 이제 에서는 야곱의 가족들에 대해서 관심을 보입니다.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5절) 에서가 야곱을 사랑스럽게 보게 되자, 아곱의 가족들도 사랑스럽고 귀하게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에서는 또 야곱이 자기에게 보낸 선물에 대해서 묻습니다.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8절) 에서는 그것들은 야곱이 자기에게 보낸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물은 것은 굳이 그런 선물을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9절) 에서가 한 말은 이런 뜻이었습니다. “너를 만났으니 되었다. 더 이상 무슨 선물이 필요하겠느냐?” 에서에게 이런 마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강권하여 에서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니 받으니라”(10-11절)
에서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다’고 말했으며, 야곱도 ‘나의 소유도 족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에서는 야곱이 떠난 후에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물려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서의 소유가 많았을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야곱도 자신의 소유가 족하다고 말했는데, 야곱의 말은 에서의 말과는 그 의미가 다릅니다. 에서의 말은 단지 자기의 소유가 많다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말은 자기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야곱이 어떻게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시는 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부하거나 가난하거나, ‘나는 모든 것을 다 가졌다’라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것의 주인이시며 모든 것을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위로와 기쁨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모신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해도, 하나님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은 것과 같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다 가졌다”라는 야곱의 이 고백이 오늘 당신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에서의 얼굴에서 하나님을 보다
야곱은 형 에서의 얼굴을 보니 마치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10하) 이 얼마나 엄청난 말입니까? 아부도 이렇게 심한 아부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야곱의 이 말은 아부가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에서의 얼굴에서, 즉 에서가 그렇게 변한 모습 속에서 하나님께서 간섭하신 손길을 보았던 것입니다. 야곱은 에서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에서는 이렇게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를 맞아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준 선물을 순순히 받으면서 기꺼이 자기와 화해할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에서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야곱을 맞아주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아니고서는 에서가 그렇게 변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에서의 변한 모습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늘 문제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무겁고 걱정이 앞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공급해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당신의 어려운 일에 하나님께서 개입해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당신이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당신이 직면한 어려운 일들 속에서, 당신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얼굴과 손길을 보게 되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온전히 달려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에서의 호의를 사양함
에서는 이렇게 야곱을 맞이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든 야곱을 도와주고 싶어 했습니다.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가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12절) 그러나 야곱은 에서의 이 호의를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에서는 조금이라도 야곱을 도와주고 싶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서가 이르되 내가 내 종 몇 사람을 네게 머물게 하리라”(15상) 그러나 야곱은 에서의 호의를 끝까지 사양했습니다. 야곱은 에서가 계속해서 자기와 함께 있는 것을 매우 부담스럽게 여겼던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이 아직도 에서와 완전히 화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야곱은 에서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에서가 이렇게 달라진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위해 에서의 마음을 강권적으로 변화시키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고 일시적인 변화였습니다. 언제 에서의 마음이 다시 본래대로 되돌아갈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에서가 계속해서 야곱 곁에 있는 것은 마치 폭탄을 품고 있는 것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에서의 호의를 끝내 거절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켜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쉽게 해결되게 해주십니다. 그럴 때면 이제 그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친하고 좋은 사람처럼 생각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의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그 사람의 마음을 잠깐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의기투합해서 그 사람과 하나가 되겠다고 하면 곧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야곱처럼 정중하게 사양하고 조심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야곱은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을 했습니다. 그 때 야곱은 그의 교만과 자아와 고집을 내어놓고 눈물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렇게 하자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네가 하나님을 이겼다고 하시면서 축복해주셨습니다. 이제 야곱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기 때문입니다.
에서를 만났을 때 이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렇게 두려워했던 문제가 너무나도 쉽게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세워지면, 사람과의 맺혔던 관계가 풀리며 막혔던 문제들도 해결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고집과 자아와 교만을 깨뜨리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오늘 당신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고집과 자아와 교만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 속에 놀랍게 역사하실 것입니다. 당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당신이 고심하며 두려워하는 문제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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