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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귀한 세가지 금은 황금, 소금, 지금 이라고 한다. 나도 좋아하는 세가지 금이 있다. 현금, 지금, 입금 이다 ㅋㅋㅋ(햇볕같은이야기 사역 후원 클릭!) |
목회자의 자세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아시아마켓인텔리전스가 한국 홍콩 태국 필리핀 등 아시아권 나라들을 상대로 이상적 배우자의 조건을 묻는 전화 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배우자의 성격이 1순위로 꼽혔습니다. 성격 다음으로 경제적 안정, 외모, 지적 조건 등이 꼽혔습니다. 성격이란 타고나는 경우와 후천적으로 다양한 조건에 의해 형성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회 적응이나 신앙도 성격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지도자가 되려면 먼저 그 사람의 성격부터 검증되어야 합니다. 독선적이고 이기적이고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사람은 지도자가 된 뒤에도 그 성격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포근하게 감싸고 보듬는 사람들이 요청됩니다. 세상살이가 너무나 살벌하고 전투적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의 착각 가운데 하나는 설교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스스로 의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점입니다 마치 자기가 곧 하나님의 대변자나 된 듯한 착각입니다. 물론 설교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그 시대에 전하는 입장에 서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자기 자신이 곧 하나님이 된 것처럼 생각하거나 나는 문제가 없는데 너희들이 문제라는 식의 발상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의 나쁜 습관 가운데 하나는 언제나 남을 충고하려는 태도요, 남을 가르치려는 태도를 갖는 점입니다.
사실 설교자 자신도 죄인이요, 그래서 그 자신이 청중에게 설교를 하면서 동시에 그 설교를 들어야 하는 사람이 본인 자신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설교를 잘한다고 곧 그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요,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잘못하면 내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자칭 의인의 옷을 설교 때의 가운처럼 입기 쉽다는 점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 많은 교인들에게서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것은 "설교가 몹시 역겹다"는 말입니다. 왜 그런 말들을 합니까? 한마디로 설교자의 위선적인 태도 때문입니다. 역겹다는 말은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그가 하는 말과 그의 행동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진리와 의를 말하려면 누구든지 먼저 자신의 불의와 거짓과 위선을 바로 보고 고백하면서 말해야 하며, 남을 정죄하고 비판하려거든 먼저 자신의 허물과 연약함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즉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 앞에서 함께 서서 함께 참회하고 함께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로마서 2장 1절에 보면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허물과 약점을 감추고 다른 사람의 허물과 약점을 지적할 때 한편으론 동의하면서 또 한편으론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어떤 분노를 주게 됩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7장 7절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겸손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바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똑같은 죄인입니다. 의로운 사람이 의를 말해야 의가 통하지 않겠습니까? 불의한 사람은 아무리 의를 말한다 해도 자신의 불의 때문에 의가 감추어집니다.
요즘 정치하는 사람들이나 정당을 보면 모두가 똑같다는 생각을 숨길 수 없습니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고 누구를 좇아가야 할지 당황하게 됩니다. 또한 노사의 문제나 사회정의와 경제정의를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계추의 양면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정으로 겸손하게 심령을 비어 회개하고 자신의 허물을 고백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모습을 좀처럼 보기 어렵습니다. 오늘 우리 목회자의 출발점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사야 6장 5절에 나타난 이사야의 고백과 같은 것입니다.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상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열변을 토합니다. "우리가 침묵하면 누가 입을 열겠는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결코 죄와 불의에 대해서 비겁하게 침묵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화로다 나여 상하게 되었도다"라고 가슴을 치며 먼저 고백하면서 통회자복하는 일입니다. 실제로 영향력은 소리보다 행동에 있고 말보다 동기에 있습니다. 우리들이 몰라서 못하기보다는 눈이 어두웠기 때문이며, 마음이 둔하기 때문이며, 귀가 닫혔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고백하고 심령을 겸손하게 낮추면 우리가 소리치는 것보다 더 큰 능력과 영향력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 의인입니까? 그리고 누가 의를 말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의인은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의를 요구할 자격이 없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어있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도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우리는 영혼 깊은 곳에서 이렇게 외쳐야 할 것입니다.
가끔 베드로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어도 한 마리의 고기를 잡지 못한 그가 예수님의 말씀 따라 깊은 곳에 그물을 던졌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잡혔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예수 앞에 무릎꿇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락 고백했습니다. 정말 실감나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설교를 하고 난 후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담대하게 삶을 전환하는 것을 볼 때 똑같은 베드로의 심정을 느끼지 않습니까?
주여 이것이 왠일입니까?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까? 또 어떤 때 여러분이 강단에 올라섰을 때 제단에 찾아온 성도들을 보면서 하나님 어찌하여 이 귀한 영혼들을 여기에 이처럼 많이 보내주셨습니까? 앉을 의자가 없이 서서 비좁게 있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나는 한 일이 별로 없는데 열매가 맺히고 기적들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영적인 깊은 충격을 받게 됩니다.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한 것과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한 것은 수고와 피곤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은 30배, 60배, 100배의 기적입니다. 우리 목회자의 또 하나의 출발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목회에 있어서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 언제나 모든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 목회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지 않는 목회는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믿음을 강조하면서 목회는 인간적으로 할 때가 많습니다. 특별히 당회나 재직회를 보면 그렇습니다. 또한 총회나 노회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솔직히 이것은 믿음의 태도가 아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태도와 방법이다."라고 양심이 소리칠 때가 많습니다. 자신이 겸손히 죄인이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될 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지만 스스로 의인이요, 스승이요, 무엇이 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는 자기의 경험과 지식과 지혜를 의지하게 되고 사람들의 인간적인 방법과 심지어는 세상적인 방법도 가리지 않고 사용하게 됩니다. 목회는 사람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이요 사람의 방법이 아니고 하나님의 방법이어야 합니다. 목회에 있어서 시작도 중요하고 끝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결코 빼놓을 수 없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공적인 목회보다는 신실한 목회, 기적을 일으키는 목회보다는 인격적인 목회가 더욱 중요합니다. 가끔 부흥회나 성회를 하는 전단이나 포스터를 볼 때 그런 생각이 들고, 성공했다는 교회와 목회자를 볼 때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신뢰하고 있는가? 이것은 과연 하나님의 사역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결국 누구보다도 목회자는 스스로 의인이 아님을 깨닫고 설교를 해야 하며 자신을 의지할 수 없는 무능한 인간임을 고백하면서 사역을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마23:10-11)
한태완 지음, 요나출판사, "기쁨의 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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