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역자 : 조나단 에드워즈/원광연  | 출판사 : 크리스천다이제스트
판매가 : 12,000원10,800원 (10.0%, 1,200↓)
▶읽으면 읽을수록 감동이 느껴지고 도전이 되는 브레이너드의 일기.▶조나단 에드워즈, 앤드류 머리 등의 강력 추천.▶시대를 초월하는 신앙도서의 대표적인 고전.데이비드 브레이너드(1718-1747)는 일반적으로 교회사에서 북아메리카 인디언 선교에 생애를 바친 미국 식민지 시대의 한 선교사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지속적 중요성은 그의 일기에 기인한다. 이 일기는 그가 죽은 후 영국과 미국의 복음주의 계통에서 널리 읽혀졌다. 본질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투쟁하는 한 영혼의 개인적 기록인 이 일기는 임종 직전에 일부는 브레이너드 자신이 편집하고 조나단 에드워드(1703-1758)가 일부 자료를 첨가하여 1749년에 …[더보기▶]



데이비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생애와 일기 

(조나단 에드워즈/원광연 옮김/크리스챤다이제스트)


책 좀 읽었다고 자부하는 내가 그동안 읽은 책 중에서 몇 권 추천해 보라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책은 신학교 다닐 때 교수님의 추천으로 읽은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생애와 일기>였다. 이 책의 영향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도 오랫동안 일기를 쓰고 있다.

기독교 고전 중에 상당히 많은 책들이 일기 형태로 남아있다. 책상에 앉아서 머리로 쓰여진 책보다는 온 몸으로 살아 낸 기록이 오랫동안 살아남아서 고전이 되는 것 같다.


1.기록연도-1718-1742


1718년에서 1742년까지 24년 동안의 삶의 기록인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생애와 일기>30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선교사들의 불멸의 고전으로 읽히는 책이다. 한 개인의 내면일기가 왜 이토록 계속해서 감화와 감동을 주는 것일까?

그것은 철저한 자기부인의 삶, 인디언 원주민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눈물의 기도,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불꽃처럼 생애를 살다간 그의 생애가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2.저자-데이비드 브레이너드(1718-1747)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미국 코네티컷 주 해담에서 의회의원이던 아버지 해저카이어 브레이너드와 어머니 도로시 호바트의 아홉 자녀 중 여섯 째 아들로 태어났다. 브레이너드가 9살 때 아버지가, 열네 살 되던 해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는 21세에 온전한 회심을 경험하고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예일대학에 입학했고, 17434월 카우나우믹 인디언들을 위한 사역을 시작하면서 델라웨어 강에 사는 많은 원주민들, 뉴저지 주 크로스윅성 인디언들을 위한 사역 등을 펼친다.

그는 1년에 4천 마일의 거리를 말과 함께 풍찬 노숙하면서 혼신을 다해 인디언 원주민들을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다. 그는 병이 깊어져 사역을 할 수 없을 때까지 원주민들과 함께 살았다.

그는 21세가 되던 해, 조나단 에드워즈와 조지 휫필드 1차 대각성운동이 한창이던 17397월에 회심을 경험했고, 예일대학의 졸업 기념예배에서 조나단 에드워즈를 만났다. 그리고 인디언 선교를 하다가 4년 뒤 폐결핵을 앓았던 그는 병든 몸이 되어 조나단 에드워즈의 집을 찾았고, 5개월 동안 조나단 에드워즈의 딸 제루사의 간호를 받던 중 이 세상을 떠났다.

제루사는 데이비드 브레이너드가 죽고 난 일주일 후 그녀 역시 병을 얻어 이 세상을 떠났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가 맡긴 내면의 일기와 일지를 조나단 에드워즈는 책으로 펴내게 이른다. 그들의 소중한 만남으로 이 책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3.추천사


마틴 로이드 존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제정신이 들지 않는다면, 단언하건대, 여러분은 아무 희망이 없는 직업 목사나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에 불과합니다. 이 책은 여러분의 영적 자만심을 막는 해독제입니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존 웨슬리 주님의 일이 쇠퇴한 곳에 주님의 일을 다시 부흥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든 설교자에게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생애와 일기>를 주의 깊게 읽도록 해야 합니다

김남준 목사(열린교회) “20여년 전, 이 책을 처음 접한 이래로, 나는 이 책을 네 번을 사서 여섯 번을 읽었습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자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지를 보여준 사람입니다. 그는 눈 덮인 언덕에서 인디언들의 영혼을 끌어안고 각혈로 인해 하얀 눈밭이 붉은 선혈로 물들이기까지 기도했던 복음 사역자입니다. 이 책은 내 마음이 건조해질 때면 언제나 꺼내 읽고 그 삶과 신앙에 도전을 받는, 내가 가까이 두고 읽는 소중한 책입니다.”

 

4.내용요약


윤기향 옮김/크리스챤다이제스트사 (기독교고전시리즈1)을 중심으로 1~9장까지는 브레이너드의 일기이고, 앞부분에는 요나단 에드워드 목사의 서문이 있고, 뒷부분에는 프랭크 마길의 해설이 붙어 있다.


 제1장 1718년 4월 20일 - 1741년 2월
. 태어나서 목회 수업을 하기까지
. 데이비드 자신의 이야기와 예일대학과의 관계, 그리고 그가 제적된 배경


 제2장 1742년 4월 1일 - 7월 29일
. 신학 수업을 시작하여 설교 자격을 인정받기 까지의 기간


 제3장 1742년 7월 30일 - 11월 25일
. 그가 설교할 자격을 얻고 나서 선교사로 임명되기 까지

 

제4장 1742년 11월 26일 - 1743년 3월 31일
. 선교사로 임명되고 나서 뉴욕주의 카우나우믹에 사는 인디언들 틈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하기 까지

 

제5장 1743년 4월 1일 - 1744년 6월 12일
. 가우나우믹에 사는 인디언 틍에서 일년 가까이 사역함
. 일시적인 파면과 고통
. 학교 설립
. 예일대학 교수회로 보낸 신앙고백
. 금식의 날
. 인디언 교육 방침
. 뉴저지와 커넥티커트를 방문함
. 델라웨어의 휙스에 사는 인디언들에게 사역을 시작함
. 안수식

 

제6장 1744년 6월 13일 - 1745년 6월 18일
. 델라웨어의 휙스와 그 근교에서 인디언들을 위하여 사역함
. 우상숭배를 위하여 베풀어진 향연과 춤
. 오페홀하우풍이나 서스퀴한나 까지 황야를 거쳐 여행함
. 델라웨어 휙스에 조그만 오두막집을 마련함
. 인디언 가운데서 일어난 성령의 사역과 성령사역의 몇 증거들
. 동료를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모금하려고 뉴잉글랜드로 감
. 서스퀴한나에 사는 인디언들을 찾아감
. 뉴저지의 크로스윅숭으로 감

 

제7장 1745년 6월 19일 - 11월 5일
. "스코틀랜드 전도협회의 명에 의하여 뉴저지와 팬실바니아의 인디언들 사이에서 일어난 은혜의 놀라운 사역의 발생과 진전" 이라는 공개된 일기의 제 1부
. 크로스윅숭에서 선교사역 개시
. 델라웨어의 휙스에서 새로이 사역을 함
. 그의 통역자가 개종함
. 크로스윅숭에 돌아옴
. 성령이 임하심

. 델라웨어의 휙스와 서스퀴한나를 심방함
. 포와우에 대하여
. 마술사의 회심
. 크로스윅숭에서 선교를 다시 시작함
.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일어난 사역을 진술함

 

제8장 1745년 11월 24일 - 1746년 6월 19일
. "스코틀랜드 전도협회의 명에 의하여 뉴저지와 팬실바니아의 인디언들 사이에서 일어난 은혜의 놀라운 사역의 발생과 진전" 이라는 공개된 일기의 제 2부
. 크로스윅숭에서 사역을 다시 시작함
. 성령을 부어 주심
. 가장 현저한 경우
. 주님의 능력이 나타남
. 개종자
. 델라웨어의 휙스에서 많은 기독교도
. 금식일
 인디언들이 그를 따르다
. 성찬식
. 마술사의 개종
. 개괄적인 평가

 

제9장 1746년 6월 19일 - 1747년 10월 9일
. 1746년 6월 19일 그의 공개된 일기를 끝내고 임종까지
. 크로스윅숭과 크랜버리에서 부단한 사역을 하다
. 서스퀴한나에 사는 인디언 여섯
. 그로스윅숭에 돌아오다
 사람과 여행하며 거기서 사역하다
. 건강이 쇠약하여져 부득이 인디언들을 떠나게 되다
. 엘리자벳타운에서 병으로 발이 묶이다
. 인디언들에게 작별을 고하다
. 그의 동생 요한이 선교 사역을 계승하다
. 커넥트커트에 사는 친구들에게 도착하다
. 노드햄프톤에 사는 에드워드 학장을 방문하다
. 임종에 가까워서 보스톤을 가다
. 보스톤에서의 유익한 시간들
. 노드햄프톤에 되돌아 오다
. 최후의 질병에서 은혜로 승리하다
. 임종


5.서평


브레이너드는 30세의 여름이 채 여물기도 전에 이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오래오래, 천천히 삶을 살은 사람들도 그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얼마나 드문 일일까. 그는 짧은 생애를 불꽃처럼 타올라 자신을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한 영혼들, 인디언 원주민들의 영혼구원을 위해 몸을 돌보지 않고 그들의 영혼구원에 온몸을 바쳤다.

짧은 생애였지만 그의 위대한 신앙은 오늘날의 많은 이들의 가슴과 영혼 속에 불을 질러놓고 있다. 나태한 신앙인들에게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고, 교만한 자들의 심령을 낮아지게 하며, 경솔하기 쉬운 신앙인들의 삶의 옷깃을 여미고 깨어있게 한다. 회심했다고 장담하는 자들에게조차 자신을 낮은 자리에서 재를 무릅쓰고 참 믿음인지를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시험하게 만든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서문에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를 천재적인 통찰력과 명확한 사고력, 면밀한 이성, 정확한 판단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브레이너드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분별력을 가진 현명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신학적으로 탁월한 판단력과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특별히 내적이고 체험적인 신앙에서 더 탁월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브레이너드의 기도는 끈기와 인내의 기도이자 천국을 향한 결코 굽히지 않는 적극적인 침노의 기도였다 말한다. 그는 기도의 거장이었다. 책을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다 보면, 거룩하시고 높으신 하나님,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재를 무릅쓰고 당신은 간절히 기도하고 싶어질 것이다.

오늘날 뉴잉글랜드 지역의 주들은 250년 전에는 대부분 문명의 혜택이라고는 거의 받지 못했다. 영국의 문화가 이식된 식민지 도시들이 대서양 해변과 내지 수로를 따라 따로따로 흩어져서 번창하고 있었고, 이 정착지 사이에는 널찍한 황야가 펼쳐져 있었다. ...당시에는 하천만이 골짜기를 누볐고, 개척자가 울창한 언덕들을 헤집고 다니던 곳이었다.”

그 시대의 인디언 선교란 정말 힘든 것이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그의 일기 곳곳에서 그가 얼마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사역했는지 엿볼 수 있다.

몸이 몹시 안 좋은데도 입에 맞는 음식을 먹을 수 없어서 더 힘들었다. 빵이 떨어졌는데 구할 수도 없었다. 빵을 얻기 위해서는 10,15마일 떨어진 곳에 직접 나가거나 다른 사람을 보내야 했다. 빵을 많이 얻은 경우에도 때로 먹기도 전에 곰팡이가 피거나 상하기 일쑤였다. 어떤 때는 곁에 아무도 없이 며칠을 보내야 했다. 그러면 빵을 구하러 보낼 사람도 없고 내가 직접 가기 위해 숲에서 말을 찾을 수도 없었다. 지금이 그런 상태다.”

홀로 인디언 선교를 하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쉬지도 못하고 굶주림과 추위, 노고 속에서 힘에 넘치도록 수고하는 그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힘을 다해 인디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썼으나, 2년이 넘도록 단 한 명의 회심자도 없었다고 고백한다. 인디언들의 영혼을 위해 밤낮없이 부르짖고 기도하며 그들을 위해 험한 산과 계곡을 넘으며 굶주림과 추위와 피를 토하는 몸을 돌보지 않으면서까지 혼신을 다했지만, 아무런 성과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사명을 준 선교협회에 짐이 된다고 생각하고 자리를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의 임재가 나타났고, 많은 사람이 회심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의 첫 열매는 모세스 핀다 포토리라는 그의 통역자로, 그는 쉰 살 즈음에 회심했다. 그는 원래 술 주정뱅이었으나 브레이너드의 말을 여러 번 듣는 가운데 구원의 필요를 느끼게 되었고 독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작은 물방울에 불과했다. 그 뒤로 많은 사람이 '전능자의 화살'을 몸에 맞았다. 그때의 상황을 브레이너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후에 원주민들에게 말씀을 전했다. 그 수가 남녀노소를 합해 65명 정도였다...회중앞에서 말씀을 전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눈빛에서 영혼에 대한 관심을 읽을 수 있었다. 그 후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느꼈던 사람들과 한 사람씩 이야기를 나눌 때 하나님의 능력이 회중 가운데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임하시는 것 같았다. 실로 놀라운 능력으로 그들 앞에 임하셨다. 나는 거의 청중 전체를 사로잡는 영향력에 놀라서 다만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강력한 급류와 용솟음치며 쇄도하는 홍수의 저항할 수 없는 힘 같았다.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사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그냥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다...이는 우리가 아니라, 도구와 수단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에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은 전적으로 혼자서 일하고 계시는 것 같았고, 나는 이 일 가운데 어느 부분도 피조물이 한 것이라고 결코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사역은 길지 못했다. 원래 약한 몸을 인디언 선교에 힘쓰면서 너무 돌보지 못한 까닭에 깊은 병을 얻었고 결국 그의 사역은 4년밖에 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집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불꽃처럼 남김없이 자신을 인디언 선교를 위해 바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오늘도 복음을 들고 선교지에 나가는 이들의 손에 들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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