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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씨와 도둑>은 최용우 개인 책방의 이름입니다. 이곳은 최용우가 읽은 책의 기록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최용우 책방 구경하기 클릭! |
저자/역자 : 어거스틴/김종웅 | 출판사 : 크리스천다이제스트 판매가 : 10,000원 → 9,000원 (10.0%, 1,000↓) 세계 3대 참회록의 하나로서 1600여년 동안 수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려주고, 그들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쳐준 성 어거스틴의 참회록이 이제 한글세대에 의해 한글 세대를 위하여, 한글세대의 결정판으로 발행되었다.어거스틴은 히포에서주교로서의 사역을 시작하면서 이 참회록을 집필하였다. 참회록은 단순한 자서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와 선하심에 대한 웅장한 찬양송이다. 그가 고백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그의 죄악뿐만은 아니며 위대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에 대한 찬양인 것이다.2000년은 고백록이 나온지 1600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 1600년 동안 참회록은 어거스틴 당시의 이교도 플라톤주의자들…[더보기▶] |
1.ST.어거스틴
어거스틴은 북아프리카의 산악지대에 사는 베르베르족 원주민출신이고 그에게는 신실하게 눈물로써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 역시 위대한 성자였지만 과거에 한 사람의 방탕아였고, 17세에 유학 중 동거녀를 두었으며, 18세에 사생아를 낳았다. 9년의 세월을 마니교 이단에 빠져 지냈으며, 어릴 적에 어학 공부를 싫어했으나 젊은 나이에 수사학 교수를 지내고, 후에 마니교의 수장격인 사람과의 논쟁에서 가볍게 상대를 굴복시켰다. 그의 아들 아데오다투스 역시 천재적이어서 그가 10대 였을 때 어거스틴과 공동으로 책을 냈다는 점 등...주목할 만한 사실들이다.
2.제1장부터 제9장 요약
이 책은 1장~9장까지는 자신의 행적을 성경의 정신에 조명시켜 낱낱이 고백한 것으로, 유아기부터 시작되어 회심하기까지의 삶의 여정을 담고 있다. 그는 회상할 수 없는 유아기나 소년기의 기억을 어린아이에 대한 일반적인 감정을 투사시킨다. 유아기 때는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울음이나 웃음, 사지를 흔드는 방법으로 밖에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답답함에 많이 힘들었다는 가상의 기억으로 유머를 구사하기도 했고, 초등학교시절 매 맞는 일은 여간 크고 견디기 어려운 불행이 아니었다고 회상하기도 하고, 말솜씨만 능하면 된다고 가르친 아버지의 교육방침을 비판하기도 했다. 사춘기 때는 정욕에 눈을 떳고, 물건을 훔치는 일을 좋아했고, 어머니께 심한 불효를 저질렀음을 회고한다. 마니교의 거짓된 논리에 빠져 어머니를 신학적으로 조롱하기도 했고 그것이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었음을 고백한다. 동거녀와 헤어지고 2년 후의 결혼을 앞두고 정욕을 이기지 못해 또 다른 동거녀를 두었음을 고백하면서 그는 특히 죄를 혐오하되 극복할 힘은 없었다는, 죄의 욕망 앞에서 종노릇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한탄한다. 회심에 이르기까지 그는 깊은 영적 고뇌에 빠지게 되고 그 속에서 친구들과의 대화, 암브로시우스의 설교 등을 통해 말씀을 접하게 된다. 결국 그는 자신의 죄로 인하여 깊은 영적 고통에 내몰렸고 로마서13장 13~14절 말씀을 통해 회심하게 된다.
3.제10장 요약
10장은 주교시절 자신의 내면상태를 고백한 것으로 인간의 기억과 욕망에 대한 심리적, 신학적 사색을 담고 있다. 그는 기억을 크게 감각기억과 비 감각 기억으로 구분한다. 감각기억은 청각, 시각, 촉각, 미각, 후각 등 오감이 감지하는 어떤 사물에 대한 영상을 담고 있고, 비 감각 기억은 오감이 인식할 수 없는 밖의 영역에 존재하는 추상적인 것들의 영상을 담고 있다. 감정에 대한 기억, 심지어 망각에 대한 기억 등이 이 기억의 범주에 속한다. 어거스틴은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공고화시키는 작업을 표현할 정도로 기억에 대한 굉장히 학문적인 사색을 한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기억의 용량이 무한하며, 이것이 인간의 자아를 형성하고 그의 영혼을 구성한다고 이해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억을 통해서 현재에도 이해하고 알 수 있으며 참된 영적 지식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 기억마저도 초월하는 경험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4.제11장부터 제13장 요약
11장~13장까지는 시간에 관한 사색과 함께 창세기 서론에 관한 그의 신학적 이해를 소개하고 있다.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에 대하여 잘 모른다고 답변하면서도, 시간자체도 창조된 것이므로 창조 이전에는 시간 대신 영원만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영원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때 그것이 길고 긴 시간 정도라고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영원이라는 개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가 그 영원을 전제로 일어났을 일들을 상상할 수 있을까? 또한 성서에 관한 명상으로서 창세기 1장의 1절부터 2절까지를 풀이한 것을 담아내었다
그는 궁창을 비유적으로 해석해서 하나님의 책(성경)으로 해석한다. 아마도 이사야서의 “하늘이 두루마리 같이 말릴 것이나...” 나, 시편의 “궁창이 그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는 도다...” 등의 인용을 사용한 것 같다. 또한 궁창 위의 물을 천사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하고, 바다와 육지를 나눌 때 육지는 물이 없는 마른 땅이므로 갈망을 상징하는데 그래서 바다로 그 욕망의 한계를 정하셨다는 해석, 그것 이외에 6일 동안 창조한 모든 피조물들에 대한 기사를 영적인 비유로 해석한다. 특이한 해석을 열거면서 어거스틴은 자기 스스로 해석의 억지성을 보여주는 것 같으면서도 그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며, 성령의 내적 조명을 통해 모세가 기록한 그 본의를 알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5.서평을 쓰면서...
“하나님 당신의 평화를 주시옵소서. 당신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평온의 평화를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안식의 평화를 주시옵소서. 저녁이 없는 평화를 주시옵소서. 이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모든 것들은, 그것들이 매우 선하지만, 그것들은 그들의 과정이 지나면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모두 아침과 저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곱째 날에는 저녁이 없습니다. 당신께서 그날을 영원한 거룩한 날로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창조의 사역 후에 일곱째 날 안식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영생의 안식의 때에 당신 안에서 쉬게 될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은 자신의 자서전 형식을 띠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간증의 형식을, 또 다른 부분은 기독교의 기본 진리에 대해서 담고 있다. 그의 3대 논쟁 중 하나였던 마니교 논쟁도 이 가운데 있으며 선악의 문제에 대한 그때까지의 고민들에 대한 답과 그리고 그의 방탕했던 생애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 궁극적으로 그가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그는 그것을 동일하게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나타내고 있다.
또한 어거스틴의 생애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삶의 여정들 속에도 우리가 미처 깨닫지는 못했다고 할지라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순간 순간 간섭하심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우리 인간은 죄로 인하여 어쩔 수 없는 구제불능임을 깨달아 어거스틴과 같이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라는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었으면 바란다. 그리고 “나의 나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 임을 깨닫고, 우리가 행복이라는 무지개를 찾아 방황하며 혼자 길을 나설 것이 아니라 더욱 “하나님 안에 붙잡혀, 하나님 안에서 영혼의 안식을 누리며 행복을 맛보는 삶을 영위하는” 성도가 되었으면 하고 소망한다.
제 1 권
1.그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며, 하나님을 간절히 구하다가 마침내 하나님을 발견한다.
2.우리가 간구하는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한다.
3.하나님은 천지만물에 충만하시다. 그러나 하늘도 땅도 그를 모셔들일 수 없다.
4.하나님의 주권은 지고하시고 그의 섭리는 헤아릴 수 없다.
5.그는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찾으며 죄사함을 간구한다.
6.그는 그의 유년 시절을 서술하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보호하심을 찬미한다.
7.비록 유년 시절이라도 죄를 지을 수 있음을 예를 들어 보여 준다.
8. 어린 아이가 말하는 법을 배울 때, 어떤 특정한 방법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언어와 행동을 따라 배운다.
9.배우기를 싫어하고 놀기를 사랑하며, 소년 시절에 볼 수 있는 회초리에 대한 두려움과, 어른과 교사들의 어리석음에 관하여
10.공놀이와 연극을 좋아하여 부모님의 명령과 자신의 학업을 소홀히 하다.
11.병에 걸린 아들을 염려하는 어머니, 그는 세례 받기 원했으나 세례는 투병으로 연기되다. 그의 아버지는 아직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다.
12.강요에 못이겨 그는 학문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이모든 일이 하나님의 역사이심을 인정한다.
13. 그는 라틴어 공부와 시인들의 공허한 신화는 좋아했으나 헬라어와 기초 학문은 싫어했다.
14.그가 헬라어를 무시하고 라틴어를 쉽게 배운 이유
15.소년시절에 그가 배운 모든 유익한 것들이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기를 간구하다.
16.그는 청소년 교육방법에 불만을 느끼며 시인들이 꾸며낸 신화의 위험성을 지적한다.
17.청소년들에 대한 문학 과목 교육 방법이 부적절함을 계속 지적하다.
18인간은 학문의 규칙들은 지키고자 하나, 영원한 생명의 영원한 규칙은 무시한다.
19.유년시절의 과오
20.은혜와 감사
제 2 권
1.젊은 시절의 사악성을 뉘우치다.
2.깊이 통회하는 마음으로 16세 때에 그가 몰두하던 방탄한 정념을 기억하다.
3.타가스테의 자유인으로 아들의 학문을 돕는 아버지와 경건한 삶을 살도록 훈계하는 어머니
4.친구들과 어울려 저지른 도둑질은 가난 때문에 행한 것이 아니라 선행에 대한 일종의 반향에서였다.
5.범행동기는 죄악을 향한 추구하기보다는 남의 것을 소유하고 싶은 단순한 욕망에서였다.
6.선한 모양은 지녔으나 악을 행하기에 빠른 만물들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참되고 완전한데, 그럼에도 그가 도둑질을 즐긴 이유
7.그는 자신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더 큰 죄악으로부터 우리를 보존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되살린다.
8.도둑질을 하며 그는 함께 범죄하던 자들을 사랑했다.
9.그는 사람들을 속이고 비웃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10.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 참된 평안과 영원한 생명이 있다.
제 3 권
1.거짓 사랑에 현혹된 그는 저속하고 명예롭지 못했으나 고상하고 우아한 사람으로 여겨지기를 원했다.
2.공허한 정욕에 사로잡혀 대중오락에 심취하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영적 질병에 시달리다.
3.심지어 교회에서 예배 드릴 때에도 그는 정욕을 억제하지 못하다. 학교에서 수사학을 재울 때 불량배들의 행동에 혐오를 느끼기도 하다.
4.아버지가 사망한지 2년후인 19세에 그는 키케로의 [호르텐시우스]의 영향으로 하나님에 관해 더 나은 사상 체계를 수립한다.
5.성경은 너무 단순하며 키케로의 위럼과는 비교도 안된다며 거절하다.
6.스스로의 잘못으로 마니교의 오류에 빠져들다. 그들은 하나님에 관한 진실한 지식과 사물에 관한 완전한 이해를 지녔다고 자처 하는 자들이었다.
7.하나님과 악, 그리고 족장들의 의에 관한 마니교의 교리를 반박하다.
8.죄의 근원에 대한 마니교 교리를 반박하다.
9.폭력 행위에 대한 인간의 판단과 하나님의 심판은 다르다.
10.땅의 열매에 관한 마니교의 주장을 논박하다.
11.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과 눈물
12.아들의 회심을 간구하는 어머니에게 들려준 주교의 유명한 대답
제 4 권
1.많은 사람들에게 속고 속였던 지극히 불행한 시벌에 관하여 : 그의 고백을 조롱하는 자들에 관하여
2.그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수사학을 가르치다. 그리고 그에게 성공을 약속한 점쟁이를 비웃다.
3.그는 점성술에 심취했으므로 아무리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4.친구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던 그는 스스로 위로를 찾다.
5.불행한 사람들에게 눈물이 위로가 되는 이유
6.갑작스러운 친구의 죽음에 가슴의 절반을 도려내는 고통과 괴로움을 느끼다.
7.고통과 슬픔 속에서 그는 그의 고향을 두번째 떠나 카르타고로 가다.
8.세월이흐르자 슬픔은 가라앉고 친구들의 위로를 받다.
9.이 땅에서 주고 받는 사랑의 행위는 순간이기에 인간의 사랑은 덧없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결코 친구를 잃지 않는다.
10.만물은 시들고 멸망하나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자는 영원히 안전하다.
11.이 세상의 것들은 사랑받을 수 없는 것들이나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불변하시며 그의 말씀은 영원하다.
12.사랑은 정죄받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참안식이 하나님 안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13.사랑은 우리 속에 있는 은혜와 아름다움에서 시작된다.
14.[아름다움과 조화]라는 책을 저술하여 히에리우스에게 헌정하다.
15.그 책을 저술하면서 물질적인 심상에 눈멀어 하나님의 영적인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다.
16.그는 쉽게 인문과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을 이해할수 있었으나 실제로 얻은 수확은 열매없는 공허뿐이었다.
제 5권
1.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고백을 드리는 영혼이 되어가다.
2.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역을 벗어나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공허한 생각
3.마니교의 가장 박식한 주교인 파우스투스의 말을 듣고, 그는 모든 생물과 무생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주로 겸손한 자를 찾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4.이 세상과 우주에 관한 어떤 지식도 참행복을 줄 수 없으나 오직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이 우리에게 행복을 준다.
5.거짓 교리를 가르치면서도 성령이 임한 것처럼 당당히 사칭하는 마니교도들
6.파우스투스는 실로 훌륭한 연설자였으나 인문과학에 관하여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7.마니교의 거짓교리를 확인한 그는 마니교를 떠나며. 현저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시작하다.
8.어머니의 만류도 허사로 그는 로마로 떠나다.
9.열병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다.
10.마니교를 떠난 후 그는 구세주의 기원과 죄에 관하여 여전히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11.헬피디우스는 신약의 진정성에 관하여 마니교를 잘 논박했다
12.로마에서 수사학을 가르치며 그는 학생들의 사기 행각을 발견하다.
13.수사학을 가르치기 우하여 밀라노로 파송된 그는 암브로시우스를 만나게 되다.
14.주교를 만난 후 신앙의 강력한 능력을 인정하지만 당대 아카데미 학파의 영향으로 여전히 의심을 품는다.
제 6권
1.아들을 뒤따라 밀라노까지 온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이 기독교신앙을 믿고 따르기 전까지는 결코 죽을 수 없다고 선언하다.
2.암브로시우스의 금지령에 순종하여 순교자들을 기념하여 드리는 제물을 포기하다.
3.암브로시우스가 사역과 연구에 몰두하자 어거스틴은 성경에 관하여 그와 상담하기가 힘들어진다.
4.자신의 견해에 오류가 있음을 깨달은 그는 암브로시우스의 말을 기억하며 따르기로 하다.
5.신앙은 인간생화의 기초이며 사람은 성경이 드러내는 모든 진리를 다 깨달을 수 없다.
6.참된 기쁨의 원인과 근원에 관하여 행복한 거지를 예로 들며 설명하다.
7.서커스 묘기에 열중하는 친구 알리피우스를 개혁시키다.
8.로마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려 원형극장에서 검투사들의 경기를 보며 즐기다.
9.죄없는 알리피우스가 도둑으로 몰리지만 한 건축가의 기지로 풀려나다.
10.정직하게 재판을 처리하는 알리피우스의 뛰어난 인격, 네브리디우스와 어거스틴의 지속적인 우정
11.자신의 잘못된 행실에 고통을 느끼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기로 생각하다.
12.알리피우스와 함께 독신 생활에 관하여 의논하다.
13.결혼을 강권하는 어머니의 요청에 따라 마음에 드는 여인을 구하다.
14.친구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하려는 계획이 급속히 방해를 받다.
15.동거하던 여인을 버리고 새로운 여인과 동거하다.
16.전에는 에피쿠로스의 쾌락설을 믿었으나 이제는 그 오류에서 벗어나 영혼불멸설을 믿으며 죽음과 심판을 두려워하게 되다.
제 7권
1.그는 하나님을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분으로 파악하지 못했고 우주 전체에 충만한 육체의 본체를 지닌 자로 여겼다.
2.하나님은 영원히 불변하는 분인가, 부패하는 자인가라는 질문으로 마니교를 반박하는 네브리디우스
3.죄악은 의지의 자유로운 판단에서 연유한다.
4.하나님은 부패함이 없으신 불변자이시다. 만약 그가 변한 다면 그는 하나님일 수 없다.
5.하나님을 거스르는 악의 기원에 관한 질문들 하나님은 최고 선이므로 결코 악의 근원일 수 없다.
6.별자리에서 연역된 점성술을 반박하다.
7.악의 기원에 관하여 신중히 고찰하다.
8.하나님의도우심을 얻어 점차 진리에 이르다.
9.그는 로고스 사상에 관하여 플라톤의 교리와 그보다 더 뛰어난 기독교 교리를 비교하다.
10.마음에 안정을 찾은 그에게 신적인 섭리가 더욱 분명히 나타나다.
11.피조물은 변하며 하나님만이 변하시지 않는다.
12.선하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매우 선하다.
13.천지에 선한 것들을 창조하신 창조주에게 찬양을 드리는 일은 당연하다.
14.하나님의 창조물 중 일부에 싫증을 느낀 그는 이원론으로 이를 설명하려 하다.
15.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
16.죄악은 본체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의 남용으로 말미암는다.
17.그의 마음은 변화를 받아 진리를 창조하신 불변자를 발견한다.
18.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구원의 유일한 길이시다.
19.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요한의 글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다.
20.플라톤 사상을 버리고 성경에 귀의한 사실에 기뻐하다.
21.플라톤 사상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진리를 성경에서 발견하다.
제 8권
1.거룩한 일을 위해 소명을 느꼈으나 아직도 정욕적인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는 마음에 변화를 받기 위해 심플리키아누스와
상담하다.
2.그 경건한 노인은 어거스틴이 플라톤과 성서를 읽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수사학자 빅토리누스가 성서를 읽은 후 기독교 신앙
으로 개종했다는 이야기를 들려 주다.
3.하나님과 천사들은 많은 의인들보다도 한 명의 죄인이 주께로 돌아오는 것을 더 기뻐한다.
4.그는 빅토리누스를 예로 들며 귀족들의 회심에 더 큰 기쁨이 있음을 시사한다.
5.우리를 하나님으로 부터 분리시키려는 죄악들에 관하여
6.수도원 창설자인 안토니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에 관한 폰티키아누스의 이야기
7.그는 32년 동안 방탕한 생활을 하며 진리를 발견하지 못한 사실을 후회한다.
8.알리피우스와 대화를 마친 후 그는 정원으로 가고 알리피우스는 그를 따라간다.
9.마음은 원이로되 온전히 따르지 못하는 의지
10.인간 정신을 선과악으로 이원화하는 마니교 교리를 반박하다.
11.육과 투쟁하여 공허의 굴레로부터 벗어나려는 영
12.소나기 같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할 때 경책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그는 성경을 열어 로마서 13:13의 말씀을 읽는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영혼을 변화시켰으며 그는 친구와 어머니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한다.
제9권
1.그는 생명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신의 사악함을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한다.
2.폐질환이 심해지자 그는 교직에서 물러날 것을 생각한다.
3.아직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은 그의 친구 베레쿤두스의 집으로 찾아가 자신과 네브리디우스의 회심과 죽음에 관하여 들려주다
4.별장에 머물면서 그는 문학에 관심을 갖고 알리피우스의 행복한 회심과 연관하여 시편 4편을 설명한다. 그는 치통으로 고생한
다.
5.암브로시우스의 권유로 선지서 이사야서를 읽지만 이해하지 못하다.
6.밀라노에서 친구 알리피우스와 아들 아데오다투스와 함께 세례를 받다. 저서 {교사론}
7.밀라노 교회의 찬송 유스티나에 의하여 박해를 당하는 암브로시우스, 그리고 두 순교자들의 시체 발견
8.에보디우스의 회심, 그리고 아들과 함께 아프리카로 귀향하던 중 주님의 품에 안긴 어머니의 죽음과 그의 교육에 관하여 서술하다.
9.남편에게 순종하고 아들을 사랑한 존경받을 만한 그의 어머니의 경건한 습관에 관하여 서술하다.
10.하늘나라에 관하여 어머니와 함께 나눈 이야기
11.열병으로 어머니는 오스티아에서 운명하시다.
12.어머니의 죽음과 아들의 처절한 슬픔
13.그는 어머니를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독자들에게 경건하신 그의 어머니를 기억하도록 경책한다.
제 10권
1.하나님 안에서만 인간의 소망과 기쁨이 존재한다.
2.만물은 그 모습을 하나님께 드러낸다. 그에 대한 고백은 육신의 언어로 루어지지 않고 영혼의 언어와 성찰의 외침으로 이루어
진다.
3.하나님께 올바르게 고백하는 자는 자신을 가장 잘 알 수 있다.
4.고백을 통하여 선을 행하여 이웃을 생각한다.
5.사람은 자신을 온전히 알지 못한다.
6.모든 피조물 위에 뛰어난 속성인 하나님의 사랑은 감각적 지식과 이성의 활용을 통하여 인지할 수 있다.
7.육체나 영혼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다.
8.기억의 속성과 그 놀라운 능력
9.사물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형상들도 기억의 영역에 속하며 기억 작용에 의하여 유출된다.
10.문학은 단순한 감각 능력에 의하여 기억되지 않고 좀 더 은밀한 장소에 기억된다.
11.배운다는 것과 생각한다는 것
12.수학적인 것에 대한 기억
13.기억은 만물을 수용한다.
14.기쁨과 슬픔이 정신과 기억으로 수용되는 과정
15.형상이 없는 개념이나 논리도 기억할 수 있다.
16.기억의 상실은 망각이다.
17.동물이나 조류들이 소유한 기억 능력으로는 하나님을 인지 할 수 없다.
18.기억 속에 수용되지 않은 잊혀진 사물은 발견할 수 없다.
19.기억력이란 무엇인가?
20하나님과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한 그들을 찾을 수 없다.
21.행복한 삶이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기뻐하는 것이다.
22.모든 사람은 진리 안에서 즐거워하고자 한다.
23.모든 사람은 진리 안에서 즐거워하고자 한다.
24.진리를 발견하는 자는 하나님을 발견한다.
25.하나님께서 기억 속에 거하는 자는 행복한 자이다.
26.하나님은 어디서든 자시의 권고를 듣는 자들에게 응답하신다.
27,그는 하나님 없이 오랜 세월을 방황했음을 고통스러워 한다.
28.인간 생활의 비참에 관하여
29.모든 소망은 하나님의 자비하심 안에 존재한다.
30.차라리 잊기를 원했던 사악한 꿈의 형상들
31.육신의 정욕에 관한 유혹을 말할 때 그는 먼저 먹고 마심에 관한 탐욕을 말한다.
32.좀 더 쉽게 극복할 수 있는 향기의 매력에 관하여
33.그는 교회 안에서 가사보다도 곡조에서 자주 기쁨을 얻었으나 귀로 말미암는 쾌락을 극복했다.
34.매우 위험스러운 안모그이 정욕에 관하여 아름다운 형상을 창조한 창조주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실 분이다.
35.또 다른 종류의 유혹은 호기심으로 이는 안목의 정욕에 의하여 자극된다.
36.세 번째 유혹은 교만으로서, 이는 하나님이 아닌 인간을 기쁘게 한다.
37.칭찬 받기를 사랑함으로 어려운 고통을 겪다.
38.헛된 영광은 극도로 위험한 것이다.
39.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나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자들의 죄악에 관하여
40.영혼의 유일하게 안전한 안식처는 하나님 안에서 발견된 다
41.세 가지 유혹을 정복한 후 그는 구원에 이른다.
42.어떻게 많은 사람들이 중보자를 찾았는가에 관하여
43.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의 능력이 있는 진실한 중보자이다.
[요약] 聖 어거스틴의 고백록
Ⅰ. 序 論
성어거스틴의 참회록은 그가 히포에서 주교로 사역을
시작하면서 바로 집필한(A.D. 397 - 401) 책이다. 본 책에서의 참회록은 두부분으로 나뉘는데 제 1권에서 9권까지는 자신의 과거에 대한
기억과 회상으로 인간의 죄와 그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관용에 대해 서술하고 제 10권에서는 현재의 자신의 영적 상태를 묘사해 준다.
참회록은 성 어거스틴의 개인적인 인생담에 얽힌 시련과 승리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기독교인이 걸어가야 할 삶의 여정이라는 교훈을 준다. 여기서 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일생을 잠깐 언급하고 그의 일생을 통한 죄와 은혜를 살펴 봄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Ⅱ. 本 論
1. 아우구스티누스의 일생
아우구스티누스는 작은 마을 타가스테에서 서기 354년 11월 13일 베르베르 원주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집과 약간의
토지는 있었으나 그리 넉넉한 편은 아니였다.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열열한 기독교인이었으나 아버지는 이교도로서 370년 죽기전에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는 타가스테에서 초급교육과정을 마치고 10살때에 마다우라 지방으로 문법과 고전문학을 배우기 위해 유학했다. 370년에 고향에 돌아와 있던중 타가스테의 부자 로마니아누스의 도움으로 수사학을 공부하게 된다. 학문에 뛰어난 그는 곧 교사가 되어 타가스테에 문법학교를 세우고 383년까지 키르타고에서 수사학을 가르쳤다. 성녀로 불리우는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어려서부터 그를 신앙으로 양육해 왔으나 그는 신앙에 별로 관심이 갖지 않은 듯 하다.
수년동안 그는 어느 소녀와 동거해 오던중 372년에는 아데오다투스라는 아들까지 낳았다. 그 다음해 그는 마니교에 입교했고 대략 9년 동안 충실한 마니교 신도가 되었다. 학문적인 열정에 불타던 그는 유명한 마니교 감독 파우스투스를 만나 마니교 교리의 철학적 교훈을 듣고자 했으나 실망하고 오히려 마니교 감독을 자신의 제자로 만들어 버리고 만다. 이로부터 그는 마니교에 실망과 환멸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보다 깊은 학문을 위해 로마로 가지만 그만 병을 앓게 되고 수사학 교사로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하게 된다. 이때 그는 마니교와 완전히 결별한 상태였고 잠시지만 회의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384년 말에 로마의 수사학교사에 합격하면서 밀라노에 머무르게 된다. 밀라노에서 경제적 안정을 찾은 그는 친척들과 친구들을 초청하여 함께 살게 되었고, 로마 카톨릭 주교인 성 안부로시우스와 사제인 심플리키아누스와 만나 절친해 지면서 서서히 기독교를 깨우쳐 가기 시작한다. 마침내 그는 386년 수사학 교사직을 포기한채 카톨릭 교회로부터 세례를 받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한다. 387년 성 암부로시우스는 아데오타투스와 알리피우스와 함께 세례를 베풀었다.
그해 늦은 봄날 그는 어머니 모니카의 죽음을 겪게 된다. 아데오타투스,알리피우스,에보디우스와 함께 그는 타가스테로
돌아온다. 그는 거기에다 일종의 수도원을 세운다. 391년 여행도중 히포에서 사제의 서품을 받는다. 이때부터 그의 성직자의 삶은 시작된다.
396년 그는 히포의 감독이 된다. 그는 성직자로서 명성과 인격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5세기에 들어서면서 마니교 교리와 도나티즘(교회분리론자들)
비판에 관한 강연과 저술을 하였고 이때 그의 중요한 논문들이 대부분 저술되었다. 본서 역시 이때 기록되었다. (400년) 또한 400년에서
416년 사이에 15권의 방대한 삼위일체론이 기록되었고, 거의 같은 시기에 창세기에 관한 문자적 주석이 집필되었고 413년 그 유명한 신국을
집필하기 시작하여 426년에 22권의 작품을 완성 하였다. 한편, 당시 로마는 정치적이며 군사적인 사건들로 인하여 뿌리까지 흔들리고 있었다.
제국은 분열되었고, 방탕과 부패가 성행했다. 끊임없는 전쟁은 제국전체를 불안으로 몰아갔다. 이런상황속에 430년 반달족이 히포를 포위 했을 때
그는 이미 노장으로 병들어 있었고 마침내 430년 8월 28일 운명하였다.
2. 성 어거스틴의 죄에 관하여
제 1 권 어거스틴의 인생의 출발부터 15세에 이르기 까지
7장 유아기의 죄악 :
그때 가지면 해로울 것을 울면서 달라던 짓, 나보다 나이가 많고 지혜로운 이들(종이 아닌 자유인들, 나를 낳아 준 부모님들)에게, 나의 그릇된 욕심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사납게 성내던 짓, 그리고 나에게 해로움을 알고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은 그들에게 원한을 품어 해를 끼치려고 했던 짓들을 좋은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나는 일찍이 어린아이가 질투하는 것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 말도 할 줄 모르는 아이가 제 젖을 먹는 다른 아이를 보자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배불리 먹고 남아 흐르는 젖을 배고파하는 아이나 또는 생존의 지속을 위하여 젖을 꼭 필요로 하는 다른 아이와 같이 나누어 먹기를 싫어하는 그 짓이 어찌 순결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내가 죄 중에서 잉태되었고 내 어머님이 자기 태 안에서 나를 죄 가운데서 길렀다면 내 주 하나님이여, 내가 기도하오니 당신의 종 내가 어디서나 언제나 죄 없었던 때가 있었겠습니까
8장 어떻게 언어를 배웠는지를 말함 :
거친 풍랑이 일고 있는 인간 사회로 점점 깊숙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9장 학문을 싫어하고 놀기를 좋아하며 채찍을 무서워하던 소년 시절 :
내가 세상에서 번영하고 인간의 명예와 헛된 부를 얻게 하는 웅변술에 능하게 되기 위해서는 선생님에게 복종해야만
하였습니다. 배우는 데 게으르면 매를 맞곤 했습니다. 어른들, 더욱 나의 불행을 원치 않는 내 부모님까지도 내 매맞음을 웃음거리로 여겼으니 그때
이런 일은 나에게 대단히 심한 마음의 고통이 되었습니다. 주어진 과제, 즉 쓰기, 읽기, 연구(학습)에 있어서 항 태만하여 죄를 짓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있어 이것 때문에 선생님들로부터 벌을 받았습니다만 사실 선생님 자신들도 노는 데 마음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때린 그 분도 별 다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도 역시 동료 선생과 하찮은 논쟁을 하다가 지면 내가 공치기
하다가 친구에게 질 때보다 훨씬더 분노와 질투에 못 이겨 몸부림치는 것이었습니다.
10장 놀기 위해 부모님의 말씀을 거역함 :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말씀을 거역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그들이 무슨 동기를 가지고 나에게 그 공부를 하라고 했는지는 몰라도 그들이 나에게 하라고 요청한 공부는 나의 훗날을 위해 도움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경기에서 승리하기를 좋아했고, 내 귀를 거짓된 우화로 즐겁게 하는 것을 좋아했으니 그것은 내 귀를 더욱 더 빛나게 되었습니다.
11장 세례를 연기함 :
나의 죄 씻음은 늦어졌으니 그 이유는 내가 만일 더 오래 살면 더 더럽혀질 것이 불가피한 것이었고 또한 세례 받은 후에 지은 죄는 더 크고 위험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고삐가 늦추어져 죄를 더 짓게 한 것이 참으로 나에게 좋은 것이 되었습니까 귀에 들리는 소리는 "그를 내버려두어라. 자기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어라. 그는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다
12장 강제로 공부를 함 :
나는 이 소년 시기에 공부하기를 싫어했고 또한 강제로 공부시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강제로 공부시킨 그들의 관심은 다만 부끄러운 영광과 재물에 대한 끝없는 욕심을 만족시켜 보자는 목적뿐이었습니다.
13장 무슨 공부를 좋아했는지를 말함 :
이런 것이 나의 죄와 허영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어디서부터 왔겠습니까? 사랑 때문에 자실한 디오를 위해 울어 주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내 자신의 방탕을 생각하지 않았고, 나의 생명이신 하나님, 당신을 떠나서 죽어 가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서는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고 당신을 멀리 떠나 음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내 주위에 있는 자들은 같이 죄를 지으면서 "잘했다. 잘했다"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을 떠나 세상을 사랑함이 바로 간음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잘했다. 잘했다" 하는 소리는 이러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나는 이러한 내 상황에 대해서는 슬퍼하지 않았지만 칼날에 엎드러져 자실한 디도의 죽음은 슬퍼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나 자신은 당신을 떠나 당신이 만든 피조물의 맨 밑바닥을 찾아 내려갔으니 흙이 다시 흙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만일 나더러 이런 것들을 읽지 못하게 한다고 슬퍼했을 것입니다. 나는 이런 어리석은 것들이 초기에 배운 읽기와 쓰기보다 훨씬 더 훌륭하고 유익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유익한 공부보다 헛된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오히려 전자를 미워하고 후자를 사랑했습니다.
16장 신화에 대하여 :
그러나 그는 신의 속성을 죄를 지은 인간들의 속성처럼 보았는데 그 이유는 인간이 범한 범행이 신들의 행동을 모방하는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 범죄를 범죄로 간주하지 않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아주 절망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오, 지옥의 급류여! 인간의 자녀들은 그러한 학문을 배운다 하여 사례금을 바치고 너의 속으로 던져지는구나. 더욱 이것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특히 공개 광장에서 가르칠 때 법이 정해 준 봉급을 받고, 또한 사례금 이외에도 더 많은 이윤을 얻는구나. 그리하여 너는 바위를 치며 소리지르기를 "여기는 말을 가르치는 곳, 네가 생각한 대로 사람을 설득하고 조종하는 데 필요한 웅변을 통달할 수 있게 하는 곳, 너의 의견을 토로하는 데 아주 적절한 곳"이라 하는구나.
이런 추행을 통해서 배우는 것은 절대로 그러한 말만은 아니다. 그런 말을 통해서 그와 같은 추행이 더욱
떳떳이 행하여지고 있는 것이다. 술취한 선생님들에 의해서 우리들의 그릇에 부어진 오류의 술이다. 우리가 그 술을 마시지 않을 때는 매를 맞았고
식별 있는 재판장에게 호소할 수 있는 자유마저 빼앗겼다.
18장 문법은 지키지만 하나님의 법은 대수롭지 않게 봄 :
그때 내가 나의 모범으로 삼고 추종하였던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동- 을 문법에 틀린 말로 묘사하다가 비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고 또한 자기들의 음탕한 행동을 정확하고 아름다운 말로 묘사하다가 칭찬을 받으면 좋아하던 자들이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얼굴에서 멀리 떠나 욕정의 어두운 그늘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인간이 남을 미워할 때는 그 자신을 흥분케 하는 그 증오 자체가 미워하는 원수보다 자신을 더 해롭게 한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또한 사람들은 그 증오로 말미암아 자기 원수보다 자기 영혼이 더 해를 받고 있음을 모릅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의 분노로 인해 사람들 인간들의 사회로부터 소외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는 하지 않습니다.
19장 행동의 부패보다는 말의 실수를 피하려는 데 더 열중함 :
나는 거기서 문법적으로 틀리지 않게 말하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기보다는 내가 실수를 범하지나 않을까 하여 더 무서워하였습니다. 나는 당신의 눈에서 멀리 떨어져 치욕의 심연 속으로 빠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내 자신이 싫을 정도로 거짓말을 많이 하여 나의 가정교사, 학교 선생님들, 부모님을 속였습니다. 놀고 싶었고, 쓸데없는 구경을 하고 싶었으며,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을 보고 그 흉내를 내고 싶은 욕망 때문에 그런 거짓말을 했던 것입니다. 더욱이 나는 부모님이 쓰는 창고에서 또는 식탁에서 좀도둑질을 했습니다. 때로는 무엇이 먹고 싶어서 그랬고 때로는 경쟁 놀이를 할 때 다른 아이들에게 무엇을 주어 그 경쟁 놀이에서이기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놀이에 있어서도 다른 아이들을 다 이기고 싶은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남을 속이기까지 하면서 부정직한 승리를 추구하였습니다. 내가 남에게 하는 거짓말을 다른 아이들에게서 발견할 때 나는 참지 못해 얼마나 가혹하게 욕설 먹을 때는 그것을 시인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시비를 걸어 싸우려고 달려들었습니다. 임금님들과 지사들에게 옮겨져서 그들로 하여금 황금과 토지와 노예를 더 차지하려는 데 급급하게 합니다.
20장 어렸을 때 받은 은총에 감사 ;
그것은 나의 즐거움, 명예, 진리를 당신 안에서 찾지 않고 피조물, 나 자신, 그리고 다른 것들 속에서 찾으려는
데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나는 슬픔과 혼돈과 오류 속으로 빠져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제 2 권 어거스틴이
열 여섯 살 되던 청년 시절
1장 청년기의 죄 :
나는 청년기로 접어들면서 세상적인 것에 만족하려는 욕망으로 불타 있었고 여러 가지 허망한 사랑을 추구하는 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리하여 나의 미모는 시들어졌으니 당신이 보기에는 썩어진 존재였으나 내 자신의 눈에는 좋게 보였으므로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보이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2장 욕정에 젊음을 써버린 자기를 비판함 :
진흙투성이인 육체의 정욕과 사춘기의 열정적인 상상력이 안개같이 일어나 나의 마음을 흐리게 하였고 어둡게 하였기 때문에 나는 무엇이 순수한 사랑이고 무엇이 추잡한 정욕인지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나의 마음에서 복잡하게 엉키어 나를 안절부절못하게 하였고, 나의 젊음을 불결한 욕심의 낭떠러지로 이끌어 가 치욕의 소용돌이로 던져 버렸습니다.
내 영혼의 교만 때문에 내게 주어진 벌, 즉 죽을 수밖에 없는 몸의 쇠사슬 소리가 땡그랑하게 들려도 나의
귀는 어두워져서 당신을 멀리 떠났습니다. 나는 음탕한 생활에서 이리저리 뒹굴며 자신을 낭비하고 쏟아 버리면서 헤매고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멀리 떠나 길을 잃고 거만한 낙담과 불안한 피곤감에 젖어 슬픔의 불모지에 더욱 깊이 빠져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련한 나는 당신을 떠나
바다의 노도와 같이 거품을 내뿜고 내 정욕의 조류를 따라 당신이 정해 주신 법의 한계를 벗어났습니다. 나의 부모들까지도 망해 가는 나를 결혼으로
구해 줄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내가 훌륭하게 연설법을 습득하여 설득력 있는 웅변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3장 유학과 부모의 목적 :
아버지는 내가 당신을 향해서 잘 나아가고 있는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 정결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경작할 내 마음의 밭이 불모지가 되든지 말든지간에 내가 웅변에 능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 정욕의 가시덤불이 내
머리 위에 자라나 우거져 있어도 그것을 뽑아 줄 손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이란 세상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술에
취하여 창조주이신 당신을 잊어버리고 당신 대신 피조물을 사랑하며 즐기는 것밖에 안 됩니다. 그 술취함이란 사람이 당신을 떠나 저속한 것들을 향해
구부러지고 왜곡된 의지에 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당신의 여종의 아들인 나는 그 여종의 말을 듣지 않았으므로 실은 당신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알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질주해 나갔습니다. 뻔뻔스럽게 자기들의 추행을 자랑하는 동년배들보다 내가 덜
뻔뻔스러움을 나는 부끄럽게 생각하였습니다.. 더 나빴던 것은 내가 그 추행을 행하는 것은 쾌감을 얻기 위해서뿐 아니라 친구들로부터 찬사를 받기
위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친구들로부터 흉잡히지 않고 찬사를 받으려고 하다가 더 못된 짓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가장 타락한 자들이 한 짓을 내가 하지 않은 것 같았을 때에는 내가 하지 않은 것까지도 했다고 말하였습니다.
나는 마치 값진 기름과 향료의 침대에서처럼 그 거리의 흙탕물에서 뒹굴고 늘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보이지 않는 원수는 그 도시의 한복판에 가까이 끌고 가기 위해서 나를 발길로 차넣어 유혹하였으니 나를 유혹하기가 쉬워서 그랬나 봅니다. 내
육신의 어머니는 이미 바벨론의 복판에서 몸을 피하여 그 가장자리로 서서히 가고 계셨습니다.
당신에게바라는 어머니의 희망은 내세에 대한 것이 아니고 내가 출세하는 데 필요한 공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에 나에게는 마음대로 놀 수 있는 자유의 고삐가 늦추어져서 있었으므로 어떤 심한 제한도 없이 내가 하고 싶은 놀이의 한도를
넘어 방탕의 지경까지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오, 하나님, 이런 짓을 하는 동안 안개가 자욱히 끼어 내 눈으로 하여금 당신 진리의 광채를 못 보게
하였으니 나의 죄는 마치 피부 지방질이 부풀어 나오둣 나에게서 튀어 나왔습니다.
4장 배가곱파 도둑질 :
도둑질은 당신의 법과 인간의 마음에 새겨진 법에 의하여 금지되고 있습니다. 그 법은 인간의 죄악이 감히 말살할 수 없습니다. 어느 도둑놈이 자기의 것을 훔친 도둑을 용서해 줍니까? 넉넉한 도둑놈이라 할지라도 궁핍해서 자기의 것을 훔친 도둑을 용서해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도둑질을 하고 싶었고 또한 사실했습니다. 내가 도둑질을 하게 된 것은 배가 고파서도 아니요, 궁핍해서도 아니요, 다만 착한 일을 무시하고 싶고 또한 죄를 짓고자 하는 강한 충동에 어찌할 수 없어 범한 것입니다.
어느 날 밤늦게- 우리들은 그렇게 늦게까지 광장에서 노는 나쁜 습성이 있었는데-불량배인 우리들은 다같이
가서 나무를 흔들어 배를 땄던 것입니다. 우리는 한아름씩 배를 가지고 와서는 그것을 먹지 않고 몇 개 겨우 맛만 본 다음 돼지 떼에 던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짓을 하는 것이 즐거웠으니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재미였습니다.
내가 어떤 뚜렷한 이유 없이 악한 일을 할 때 거기에서 찾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악한 일을 할 때 악한
일을 하도록 자극한 동기는 바로 악한 의지였습니다. 그것은 더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사랑했습니다. 나는 내가 망해 가는 것을
사랑했습니다. 나의 나쁜 짓을 사랑했습니다. 그 나쁜 짓으로 무엇을 얻는다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쁜 짓 그 자체를 사랑한 것입니다.
타락한 내 영혼은 당신을 굳건히 의지하고 사는 데서부터 멸망의 구덩이로 떨어져 아무것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부끄러움만 찾고 있었습니다.
5장 죄를 짓는 데는 동기가 있음 :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얻는다는 이유로 당신을 떠나거나 당신의 법도에서 벗어나면 안 됩니다.
우리 주여,
이러한 가치, 즉 하층의 질서에 속한 것들을 더 사랑하고 참 좋고 아주 좋으신 당신, 당신의 진리와 법도를 게을리 하는 무분별한 사랑 때문에
죄를 짓게 됩니다.
사람이 하층에 속하는 어떤 것을 얻으려고 하는 욕망이라든가 혹은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두려움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의 아내를 사랑했거나, 그의 재산에 욕심을 냈거나 혹은 먹고살기 위해 도둑질한 것이었거나, 또는 무엇을 그에게
빼앗길까 두려워서 혹은 해를 당하고 복수심에 불타 있었으므로 그랬을 것입니다. 사람이 살인 행위 그 자체가 좋아서 어떤 동기도 없이 살인을
합니까?
이러한 죄악을 저질러서 성곽을 점령한 다음, 명예와 제국과 부를 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법의
두려움과 가정의 궁핍으로부터 벗어나고 죄책을 느끼는 양심으로부터 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고로 카타리나까지도 자기의 죄악을 사랑한 것이
아니었고 다른 무엇을 사랑했으니 바로 그것이 동기가 되어 그 범행을 저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6장 죄를 짓게 되는 동기 분석 :
그 배에서 내가 만족을 느꼈던 것은 내 죄였으니 나는 바로 그것을 좋아했던 것입니다. 만일 약간의 배가 내 입에 들어갔다면 그 좋은 맛은 그것을 먹는 내 죄였을 것입니다. 그 도둑질에는 어떤 아름다움도 없습니다. 즉 정의나 지혜, 정신이나 기억, 감각이나 활력 있는 생명에 있는 아름다움이 없었습니다. 또한 거기에는 제 궤도를 따라 달리는 별의 영광이나 아름다움도 없고 끊임없는 신진대사로서 생명을 풍성히 이어가는 지구나 바다의 아름다움도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악을 행할 때 보통 나타나는 거짓된 색깔이나 그림자 같은 매력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교만은 당신의 높으심을 흉내내려 합니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는 그 잔인성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외에 참으로 두려울 자가 누구입니까? 누가 언제, 어디서, 어디로, 누구를 통해서 당신의
능력으로부터 감히 벗어나 피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음탕한 자들의 매혹이 사랑을 끌기 원합니다.
무지와 어리석음이 단순하고 무해한 것처럼 가면을 쓰고 자기를 나타내지만 참으로 당신과 같이 단순하시고
무해하신 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고로 악인들에게 해를 주는 적은 바로 자기 자신들이 지은 행동입니다. 게으른 자가 안식을 찾고 있으나 주님
안에서 누리는 안식 외에 더 확실한 안식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치를 가리켜 만족과 풍부함이라 하지만 당신만이 다함이 없고 상하지 않는 기쁨의
풍성이요 충만 입니다. 인간의 낭비가 무엇을 관대하게 주는 것 같이 보이지만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시는 분이 당신이십니다. 탐욕은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하지만 당신은 이미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질투는 서로 높은 자가 되려고 다투지만 당신보다 더 높으신 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분노는 보복을 하려고 기회를 노립니다. 하지만 당신보다 더 공정하게 보복하시는 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기치 않았던 일이 돌연히 일어나 우리가
사랑한 것이 위협을 당할 때 우리는 놀라 위축되거나 또는 그것들의 안전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인간은 자기의 욕심이 좋아하는 것을 잃어버릴 때 슬픔으로써 그것을 다시 찾으려고 갈망합니다. 이처럼 영혼이
당신을 떠나 돌아서서 당신 밖에서 순수하고 깨끗한 것을 찾으려고 할 때 곧 외도를 하는 것이 됩니다. 사실 내 능력으로 할 수 없어서
몸짓으로나마 당신의 법을 어기는 것을 내가 좋아했습니까? 그리하여 나는 포로가 되었으면서도 전능이라는 그늘진 가면 아래서 하지 말라는 것을
함으로써 거짓된 자유를 내보이고 있지 않았습니까? 나의 주님, 당신을 피하여 그늘을 좇고 있는 당신의 종을 보시옵소서. 아, 부패여! 아,
생명의 괴이함, 죽음의 심연이여! 다만 옳지 않기 때문에 그 옳지 않는 일을 하는 데서 내가 그렇게 즐거울 수가 있었습니까?
8장 도둑질을 하게 된 이유 :
내가 그때 도둑질을 하게 된 것은 함께 행동했던 공모인 들과의 사귐을 사랑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도둑질만 사랑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느낀 쾌감은 그 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죄악을 범하는 데 있었고 그 죄악은 나의 나쁜 친구들과 함께 저지르는 것이었습니다.
9장 나쁜 동료의 영향 :
우리들은 우리들이 무엇을 하는 줄도 모르고, 속아넘어갔던 자들을 생각하고서는 마음이 간지러워 한바탕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를 기분 좋게 해준 것은 내가 훔친 물건이 아니라 그 훔치는 행동 그 자체였습니다. 너는 영혼을 이상하게 유혹한 자, 탐욕과 장난의 충동으로 해로운 짓을 갈망하는 자, 자신의 사욕을 차리거나 남에게 복수할 생각은 없으면서도 다른 사람이 잘못됨을 보고자 하는 자였습니다.
10장 모든 선은 하나님 안에 있다 :
그러나 나는 당신으로부터 떨어져서 길을 잃었습니다. 나의 젊은 시절에 나를 붙들어 주시는 당신을 멀리 떠나 헤매고
다녔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스스로 황폐한 땅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제 3 권 카르타고의 학생시절과
마니교
1장 사랑에 빠짐 :
그곳은 가증한 사랑으로 가득 찬 후라이팬이 내 주위에서 펄펄 끓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나는 아직 사랑하고 있지는 않았으나 사랑하기를 사랑하고, 깊이 숨겨진 욕구불만에서 내가 그 욕구불만을 더 강하게 느끼지 못함을 스스로 미워했습니다. 나는 사랑하기를 사랑하고 올가미가 없는 평탄한 길과 안전한 길을 미워하면서 사랑의 대상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하나님, 나는 내 마음의 양식인 당신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었지만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썩지 않는 음식을 갈망하지 않고서 그대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썩지 않는 음식으로 이미 배불러 있어서가 아니라 내 속이 비어 있으면 있을수록 구역질이 났기 때문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내 영혼은 건전하지 못했으니 종기 투성이가 되고 곪아 터져서 그 가려움을 없이하려고 나는 감각적인 것으로 긁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감각적인 것은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진정한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것은 내게 달콤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사랑한 자의 육체를 즐길 수 있을 때는 훨씬 더 그 도수가
높았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우정의 맑은 광휘를 지옥의 욕정으로 흐리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나는 추하고 부정직한 놈이었지만 지나친 헛된 생각에
사로잡혀 고상하고 점잖게 보여지기를 원했습니다.
2장 연극 관람을 좋아함 :
또한 연극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그 연극이란 내 비참한 모습을 그린 장면으로 가득 차 있어 내 욕정의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불쌍한 이 놈은 슬퍼하기를 좋아했고 내 마음을 슬프게 해주는 것들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다만 가상의 연극의 소리를 듣고 봄으로써 내 감정의 표면을 가볍게 긁어 스쳐가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긁어 주던 손톱자국은 유독한 손톱으로 긁은둣이 부풀고 염증이 생겨 썩고 있었습니다.
3장 학우들의 난폭한 행위 :
당신의 신실한 자비는 멀리서 내 위를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큰 죄에 빠져 나를 탕진하고 있었고,
신성모독의 호기심을 쫓아가다가 당신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부정한 행동의 맨 밑바닥, 즉 요사스런 악마를 섬기는 데까지 전락하여
그에게 내 천한 행동을 제물로 바치기까지 하였습니다. 나는 언젠가 엄숙한 의식이 거행되는 당신의 교회 건물 내에서 뻔뻔스럽게 욕정을 내어 죽음의
열매를 맺는 일을 꾸미기까지 하였습니다. 내가 교활하면 할수록 나는 더 유명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짓을 하는 것이 인간의 맹점이었는데
사람들은 이 맹점을 자랑으로 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쯤 되어서 나는 이미 우리 수사학 학교에서 수석을 차지하여 몹시 좋아 뽐내며 교만으로 잔뜩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 사이에 들어가 지내면서 그들과 같지 않음을 오히려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들이 보통하는 짓이란
새침하고 수줍어하는 하급 학년 학생들을 까닭 없이 때려 눕혀 비웃고 괴롭히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지독한 장난의 기질을
계속 만족시키고 있었습니다. 이런 짓을 하는 자들의 짓보다 더 악마적인 행동을 닮은 것이 없기에 그들을 뒤집어엎는 자들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그들이 남을 속이고 놀리기를 즐기는 동안 속이고 유혹하는 마귀들은 그들을 속이고 비웃고 있었으니 완전히 뒤집어지게 된 놈들은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4장 키케로의 책에 접함 :
그것은 인간의 헛된 영광을 좋아하는 바람으로 잔뜩 부풀어 잇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철학을 빙자하여 위대하고 달콤하고 영예스러운 이 이름으로 자기들의 오류를 색칠하고 가리면서 사람들을 유혹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책은 키케로의 시대나 그 이전에 있었던 그러한 사람들을 전부 지적하여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만 키케로가 말한 그 권유를 좋아한 나머지 그 액의 가르침을 따라 이 학파 저 학파를 초월하여 지혜 자체를 사랑하고, 탐구하고, 소유하고, 포용하고자 일어섰고 불타 있었습니다.이렇듯 내 마음이 지혜로의 갈망으로 불타 있었으나 그 책에 한 가지 석연치 않았던 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이 그 속에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5장 성서로 마음을 전향해 보다 :
나에게는 그때 성서의 뜻에까지 꿰뚫고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없었고 그 말씀에 고개를 숙이고 따를 겸손도 없었습니다.
6장 마니주의를 따름 :
그들은 미친 듯이 교만했고 육적인 것을 너무 따랐으며 말을 너무 많이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입은 당신의 이름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의 위안 자이시고 보혜사이신 성령의 이름이 뒤섞인 말들로 재잘거리는 악마의 덫이었습니다. 내가 진리를 찾기 위해 애태우며 허덕이고 있을 때 실은 나의 하나님이신 당신을 찾고 있었습니다만 동물보다 뛰어나게 만들어 주신 우리 마음으로 찾지 않고 내가 이 고백을 하기 전에 당신이 먼저 나를 자비롭게 여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7장 이치에 맞지 않는 마니주의자들의 가르침 :
이런 문제에 대하여 잘 몰랐기 때문에 내 마음은 대단히 어지러웠습니다. 진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고 있으면서도 마치 진리에 접근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었습니다. 악이란 선의 결핍으로서 그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었습니다. 내 눈의 시력은 보이는 것(물체) 이상을 보지 못했고 마음의 눈은 환상만을 보고 있었으니 어찌 이것을 알 수 있었겠습니까?
8장 마니교도의 죄 :
그러므로 자연(인간 본성)에 거슬리는 악한 행위는 언제 어디서나 미워해야 하고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한 행동은 바로 소돔 사람들이(창13:13) 저지른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왜곡된 욕정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인간 본성을 더럽히면 실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제를 망치는 것이 됩니다. 또한 인간 관습에 거슬리는 행동도 그 관습을 여러모로 고려하여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거짓말과 난잡한 행동으로 다른사람을 해치는 범죄를 생각해 봅시다. 원수를 대하듯 보복을 한다던가, 강도가 여행자들에게 하듯 수고 없이 어떤 이익을 취하려고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또는 자기가 두려워하는 자를 공격하여 어떤 해를 미리 피하기 위해서, 또는 덜 행복한 사람이 더 행복한 사람을 질투하여 그럴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성공한 사람이 누군가 자기와 동등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거나 싫어서, 또는 칼 싸움을 구경할 때 다른 사람의 고통을 즐기던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비웃고 조롱하는 마음에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욕심과 권력의 욕심에서 생겨난 죄악의 주요한 형태로서(요1 2:16) 때로는 이 중에서 하나만, 때로는 둘, 때로는 전부 함께 동시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당신에게 죄를 짓는 경우, 실은 자기 자신들의 혼을 망치는 일을 범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죄를 짓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으로서, 당신이 만드시고 제정하신 본성을 왜곡하거나 나빠지게 하는 것이고, 좋게 사용하라고
주신 것을 함부로 하여 잘못 사용하는 것이며, 금지된 것을 바라고 본성에 어긋나는 짓을 좋아하는 것이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말과 마음으로
당신을 향해 성을 내고 쓸데없이 반항하는 죄를 짓는 자들입니다. 또한 그들은 인간사회의 한계선을 대담하게 뛰어넘어 자기들 기분에 따라 서로 다른
파당을 지어 공모하기를 즐깁니다.
인간이 생명의 원천이시며 참으로 유일하신 우주의 창조자와 통치자이신 당신을 버리게 될 때 이런 일들을 하게
됩니다. 또한 사람이 스스로의 교만으로 인해 부분을 전체인 양 헛되이 사랑할 때 이런 일을 하게 됩니다.
10장 마니교도들을 비난함 :
나는 이것을 몰라 당신의 예언자들과 거룩한 종들을 비웃고 있었습니다. 나는 점점 알게 모르게 어리석은 것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제 4 권 마니주의에 빠짐
1장 유혹하고 유혹 당하는 생활
:
여러 가지 욕정으로 인해 남을 유혹하기도 하고 유혹 당하기도 하며, 또는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면서 살았습니다. 공직생활에 있어서는 학예라고 부르는 학문의 이름으로 그랬고 개인생활에 있어서는 거짓된 종교의 이름 하에서 그랬던 것입니다. 전자의 경우에 있어서 나는 거만했고 후자의 경우에 있어서는 아주 미신적이어서 모든 면에서 볼 때 나는 헛되고 비어 있었습니다. 한편, 나의 공직생활에 있어서는 헛된 대중의 인기를 추구한 나머지 극장의 박수 갈채를 얻고자 시 낭송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이것은 사실 지푸라기의 월계관을 추구한 무대 연기의 허망함이요, 절제 없는 욕심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내 개인 생활에 있어서는 이 모든 추잡한 행동으로부터 깨끗함을 얻고자 소위 성자
혹은 선택받은 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갖다 바쳤습니다. 그들은 이 음식을 먹고는 위장에서 천사와 신을 만들어 뱉게 되고, 그 천사와
신에 의하여 우리들은 깨끗하고 자유롭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을 나는 친구들과 함께 행하고 잇었으니 그들은 나와 함께 혹은 나에 의해
속고 있었습니다.
2장 수사학 교수로서의 어거스틴 :
그때쯤 나는 수사학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명성을 얻고 싶은 욕망에 나는 말로써 달근 사람을 굴복시키는 재주를 팔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즈음에 내겐 한 여자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정식 결혼으로 나와 맺어진 사람이 아니고 생각 없이 이리저리 헤매는 정욕이 찾아낸 자였습니다. 어떤 점장이가-나는 이제 그를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만- 나에게 와서 그 대회에서 꼭 이기게 해주면 무엇을 주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그런 더러운 푸닥러기가 싫고 가증스러워서 딱 잘라 "만일 승리의 월계관이 금으로 만들어졌다 할 지라고 승리를 얻기 위해 파리한 마리 죽이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점쟁이는 산 짐승을 잡아 제물로 바치고 그 덕으로 마귀들을 불러 나를 돕게 할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상상으로 꾸며 낸 허구의 것을 좋아하는 영혼들은 당신을 떠나 간음을 행하는 것이요, 거짓된 희망을
믿는 것이며 "바람을 먹으며"(호 12:1) 사는 것이 아니옵니까? 그런데 나는 이렇듯 내 승리를 위해 마귀들에게 제사 드리는 것을
거절했으면서도 마니주의의 미신에 빠져 아직도 나 자신을 마귀들에게 바치고 있었습니다. 이 마귀들에게 먹을 것을 바친다고 함이 바로 바람을 먹으며
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렇듯 우리들은 자신들의 오류로 인해 마귀들의 웃음거리와 노리갯감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3장 점성술 :
그러면서도 나는 또한 자칭 점성가라고 말하는 사기 군들과 의논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점을 치되 제사를 드리지도 않고 귀신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도 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점성가들은 이 건전한 말씀(진리)을 파괴하기 위해 "너로 하여금 죄짓게 한 원인은 필연적으로 하늘의 별이 결정한 것이다." 또는"금성이나 토성이나 화성이 하는 일이다"라고 합니다. 이 말은 육신과 피를 지니고 있으며 교만하고 타락한 인간은 아무런 책임이 없고 하늘과 별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당신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를 참 신앙에서-그는 아직 어려서 참 신앙에 온전히 그리고 철저하게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어서-돌이켜 나오게 하여 허구의 이야기나 해로운 미신으로 빠져 들어가게 했습니다.
7장 슬픔을 잊고자 :
고향 다가스테를 떠남 그래서 나는 안달하고 한 숨지며, 울고 괴로워하며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없었고 바른 생각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나는 부서지고 피흘리는 내 혼을 이리저리 끌고 다녔으나 내 혼은 나에게 끌리어 다니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혼이 쉴 수 있는 어느 곳을 찾아 거기에 놓아 두고 싶었으나 그러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고
또한 할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나는 당
신을 확고하고 부동한 실체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은 내가 그때
이해한 하나님은 당신 자신이 아니고 나의 오류의 산물인 헛된 환상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11장 모든 것은 다변하지만 :
하나님만이 불변함 내 영혼아, 그러면 어찌하여 너는 그렇게 삐뚤어져 네 자신의 육체를 따르고 있느냐?
12장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피조물을 사랑하는 것 :
오, 인간의 자식들아, 언제까지 너희 마음이 세상을 사랑하는 무게에 눌려 흐느적거리고 있겠느냐? 네가 교만해져서 네 머리를 하늘을 대항하여 높이 들면 너는 어디로 오를 것 같으냐?
13장 처음으로 기록한 책 :
그때 나는 이러한 진리를 모르고 있었으므로 낮은 층에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다가 심연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습니다.
14장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마음 :
오, 나의 하나님, 이처럼 내가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될 때 당신의 판단에 의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근거하여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교만으로 인해 오류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엡4:14)하고 있었습니다.
15장 진리의 추구 :
내 영혼은 진리 자체가 아니니 진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다른 빛에 의하여 조명되어져야 함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온갖 힘을 다하였습니다. 어리석게도 나는 본질적으로 당신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을 했으니 이것보다 더 교만한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도 나와 같이 변화하는 존재라고 보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그러기에 당신은 나를 밀쳐 내리시고 나의 변덕스러운 교만을 격퇴하셨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물질적인 형상만을 생각하게 되었고 나 자신도 육체뿐이라 하여 내 육체만을 탓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떠돌아다니는 바람처럼(시 38:39) 당신께 돌아가지 않고 당신 안에나 내 안에나 물체 안에도 존재하지 않는 허망한 것들 사이를 그저 떠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허망한 것이란 당신의 진리에 창조된 것이 아니고 물질적인 사물을 토대로 내 어리석은 상상력이 만들어 낸 산물이었습니다. 내 자신의 잘못된 음성으로 말미암아 나는 나 자신의 밖으로 끌리어 나왔고 내 자신의 교만의 무게로 말미암아 계속 심연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16장 실존적 지혜 :
이토록 나는 당신이 주신 자산의 대부분을 내 힘으로 간직하려고 애만 썼지 그 힘을 전부 바쳐 당신을 위해 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당신을 떠나 먼 나라로 가서 당신이 주신 선물을 음탕한 정욕에 탕진하였습니다. 좋은 선물을 좋게 쓰지 못한다면
그것이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진리되신 주 하나님, 그러나 나는 당신을 크고 빛난 물체로만 보았고 나 자신을 그 물체의 한 조각으로
생각했으니 그러한 생각이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겠습니까? 아, 그것은 너무도 지나친 왜곡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내가 그러한 지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오, 나의 하나님, 그러나 내가 그때 사람들 앞에서 당신을 공공연히 모독하고 당신을 거슬려 개처럼 짖어 대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제 나는 당신의 면전에서 나에게 베푸신 당신의 자비를 고백하고, 당신의 이름을 불러 아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제 5 권 로마와 밀라노에서
2장 아무도 하나님의 면전을 피할 수 없다
:
이리하여 불의한 자는 당신의 자비를 피해 가다가 당신과 당신의 공의에 부딪혀 그들이 택한 험한 길에 넘어지게 되고 그에 합당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3장 마니교도인 파우스투스와 자연 철학자들 :
그는 악마의 큰 올가미였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독생자는 우리의 지혜와 의와 성화가 되시고,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시어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덫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자신으로부터 그 분께로 내려가서 그 분에 의하여 그 분에게고 올라가는 길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길을 모르기에 자신들은 하늘에 높이 달린 별들처럼 빛나는 줄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하나님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이 길을 모르기에 자신들은 하늘에 높이 달린 별들처럼 빛나는 줄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땅으로 떨어졌고,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은 어두워지고 말았습니다.(롬 1:21-25) 그들이 어떤 피조물에 대하여 한 말은 사실 맞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진리시요, 세상을 지으신 분을 경건한 마음으로 찾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찾지 못하였습니다. 혹시 그 분을 찾았고 또한 그 분이 하나님이심을 안다고 할지라도 그 분에게 영광을 돌리지도 않고 감사드리지도 않아 그들의 생각은 오히려 허망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한 나머지 당신의 업적을 자신들의 업적에 귀속시켰습니다. 또한 이와 똑같은 왜곡된 맹목성을 가지고 그들은 자신들의 속성을 당신에게 돌리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그들은 불멸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네 발 달린 짐승과 기어다니는 버러지의 형상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들은 당신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창조자를 찬양하는 대신에 피조물을 예배하며 섬기고 있었습니다.
4장 참 행복은 하나님을 아는 지혜다 :
사람이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당신을 모르면 불행하게 됩니다. 그 반면에 나무를 재고, 그 가지의 수를 셀 수 잇는 지식이 있어도, 그것을 소유하고 잇지도 않고 또한 그것을 만드신 창조자를 알거나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5장 마니교의 교리와 그 성격 :
당신은 인간에게 "보라, 경건이 곧 지혜이니라"(욥 28:28)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니는 세상 사물에 대해서는 잘안다 해도 이 경건의 지혜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는 사물에 대해서조차 잘 모르면서 뻔뻔스럽게 다른 사람들을 감히 가르치려고 대들었으니 그는 경건의 지혜를 갖지 못한 자임에 분명합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믿는 자를 풍성하게 하고 위로하시는 성령이 친히
권능으로 자기 안에 거하고 있음을 믿으라고 설파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학과 일월성신의 운동에 대하여 말한 것이 틀렸음이 드러났을 때는 그의
아는 체하는 것은 정말 신성모독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모르는 것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또한 자기가 왜곡한 것을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의 말을 신적 존재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할 정도로 어리석었고 미쳤으며 또한 교만에 찬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만일 이런 세상 사물에 대한 지식이 경건의 교리의 본질 속한다고 생각하든지 혹은 자기가 잘
알지 못하는 이런 지식을 지나치게 독단적으로 주창하게 되면 그 지식은 그에게 해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신앙의 요람기에는 그러한 사람의 신앙의
허약함도- 그 사람이 성장해서"완전한 성인"이 되어 여러 교리의 바람에 불리어 요동하지 않게 될 때까지- 어머니의 사랑이 참고 돌보아
줍니다.(엡4:13)
그러나 마니는 스스로 교사, 권위자, 혹은 자기의 교리를 믿는 자들의 수령이 되어 그의 추종자들로 하여금
그를 단순한 보통 인간으로가 아니라 당신의 성신이라 믿고 따르게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그의 거짓된 가르침이 판명된 이상 누가 그러한 미치광이
짓을 따르기를 거절하지 않겠습니까? 그가 성자라는 평판 때문에 내 신앙을 그의 권위 위에 세워 놓기로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8장 로마로 떠남 :
그들은 무례하게 교실로 뛰어들어 미친 사람들처럼 학생들을 위해 고사가 세워 놓은 규칙을 무너뜨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가지 난잡한 행동을 행하였으니 관습은 용납하지만 법으로는 엄하게 처벌받아야 할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관습이 용납해 준다 할지라도 당신의 영원법이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이었으니 그런 짓은 더욱 비참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관습이 용납해 준다 할지라도 당신의 영원법이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이었으니 그런 짓은 더욱 비참한 것이 되고 맙니다.
10장 그릇된 철학과 신학 :
그때까지도 나는 "죄를 짓는 것은 우리가 아니요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생각은 내 교만에 만족감을 주어 스스로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게 허였습니다. 따라서 내가 죄를 지었을 때도 그것을 내 죄로 당신께 고백하여 용서를 받으려고 하기보다는 , 오히려 나 자신을 변명하고, 내 안에 잇는, 나 아닌, 나도 모르는 어떤 것에 죄를 돌렸습니다. 그러나 실상 나는 하나뿐이었는데 내 불경건은 나를 둘로 나누어 그러한 분열을 내 안에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를 죄인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 고침을 받을 수 없는 더 큰 죄였습니다. 오, 전능하신 하나님 내가 당신에게 패배를 당해 구원을 받게 되기보다는 당신을 내 안에서 패배시켜 스스로 멸망에 이르는 것을 더 좋아했사오니 이것이 나의 가증한 죄악이었습니다.
12장 로마의 간사한 학생들 :
그러나 내가 들은 바로는 대부분의 로마의 학생들은 교사에게 보수를 주지 않으려고 작당을 해서 갑자기 다른 교사에게
함께 가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약속을 어긴 자들이요, 돈을 사랑한 나머지 정의를 경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나는 그들을 미워했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떠나 무상한 시간적인 노름과 부정 이득을 사랑함으로 자기들의 손을 더럽히는 자들이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영원히 머무시며 우리를
돌아오라 부르시는 당신, 간음한 자가 돌아올 때 용서해 주시는 당신을 저버리고, 지나가는 이 세상을 포옹한 자들입니다.
제 6 권 어거스틴의 고민
1장 어거스틴을 찾아온 어머니
:
나는 내 마음의 하나님을 찾지 못했습니다. 내가 바다의 깊은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았어도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과 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3장 암브로시우스의 말씀과 모습 :
내 마음은 학문 탐구와 논쟁에만 몰두해 이었습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의 행복의 표준에 따라 그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내가 정말로 경솔하고 불경건했던 것은 애를 써서 탐구해 보려고 하지 않고 쉽게 저주해 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4장 문자와 그 정신 :
그때 내가 과연 무엇을 확실하게 포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불안은 나의 내장을 더욱 심하게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오랫동안 확실성에 대한 약속에 속아 유치한 열성과 오류로 확실성 없는 것을 마치 진리인 양 계속 지껄이고 다닌 것을 나는 더욱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것이 확실한 줄 알고 맹목적으로 논쟁하기 위해 당신의 가톨릭 교회를 반박하였습니다. 나는 아직 교회가 진리를 가르치고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한 가지 알게 된 것은 이때까지 내가 맹렬히 반박해 왔던 것은 교회가 가르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6장 헛된 행복의 추구 :
그때 나는 명예와 돈과 결혼을 열망하고 있었고, 당신은 나를 보고 웃고 계셨습니다.
7장 다가스테의 알리피우스 :
그는 마니교도들의 밖으로 행하는 그럴듯한 절제 생활을 좋아했고 또한 그것이 참되고 순수한 것인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에게 말했던 세상의 출세를 버리지 못하여 법률을 공부하러 나보다 먼저 로마로 떠났습니다. 거기서 그는 또 다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열정으로 칼싸움 경기에 휘말려들어 가고 말았습니다. 그는 처음에 그러한 경기를 아주 반대하였고 그것을 구경하는 것조차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잔인 무도한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어느 날 그는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몇몇 친구들과 학우들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고함 소리를 내게 했던 그 투사의 넘어짐보다 더 비참하게 쓰러져 넘어졌습니다. 그 고함 소리는 그의 귀로 들어가 그의 눈을 뜨게 했고 마침내 그의 영혼을 쳐 넘어뜨렸으니 그의 영혼은 용감했다기보다 뻔뻔스러웠습니다. 그의 혼이 이렇게 더 약하게 된 것은 당신을 의지하고 않고 자신의 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피를 보자마자 야만인처럼 그것을 들어마신 듯했고 그 광경을 외면하기보다는 그것을 쏘아보았습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열광의 술을 마시어 그 사악한 투쟁을 즐기게 되었고 나중엔 잔인한 쾌락에 취하게 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제 그는 그곳에 들어올 때의 자신이 아니었고, 그곳에 온 관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그를 이끌고 온 자들의 진정한 동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내가 이 이상 무엇을 더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그는 다른 사람들을 충동질하여 끌고 오기까지 하였습니다.
12장 독신과 결혼 생활 :
나는 육욕의 질병에 걸려 있었고 그 치명적인 쾌락의 쇠사슬에 얽매여 그것을 이리 저리 끌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병에서 풀려나기를 두려워하였습니다. 내 아픈 상처를 건드릴까봐 쇠사슬에서 나를 풀어 주려는 손을 거부한 것처럼, 나는 알리피우스의 현명한 충고를 거부하였습니다.
알리피우스는 자기가 그렇게 높이 평가하고 있던 내가 성적 쾌락에 밀착되어 있어서-우리가 그 무너제에 대하여
말을 할 때마다-독신생활은 결코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랐습니다. 나는 그가 그렇게 놀라는 것을 보고 나 자신을 변명하는 뜻에서
말하기를 그의 성적 경험은 한때 잠깐 동안 은밀히 맛본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지금은 거의 잊게 되어 비방할 수 잇지만 나의 성적 경험은 이미
습관화된 쾌락인 만큼 끊기가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였다면 그는 아마 그의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나의 쾌락의 노예 생활로 빠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렇듯 "사망과 언약"(시 28:15)을 맺으려 하였으니 위험을 좋아하는 자는 그 위험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아무튼 그나 나나 부부의 명예인 결혼 생활을 잘하고 자식을 낳아 잘 기른다는 의무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나는 충족될 수 없는 정욕을 만족시키려는 습관성의 노예가 되어 큰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고 알리피우스는 단순히 경이와 호기심에 의해 그 노예 상태로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15장 어거스틴의 동거인 :
이로 인하여 그녀를 사랑했던 내 마음은 심한 타격을 입고 상처를 받아 피를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부인으로서가 아닌 한 여자를 얻게 되었으니 사실 나는 동거가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욕의 노예가 된 탓으로 더 심해져 갈 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나의 전 동거인과 이별한 데서 받은 상처가 아물어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16장 죽음과 심판을 두려워함 :
내가 이렇듯 진흙탕에 깊이 빠져 눈이 어두워진 탓으로 목적으로 삼고 사랑해야 할 덕과 미의 빛을 식별하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나의 불행의 원인인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또한 내가 더욱 불행했던 것은 비록 추잡한 이야기이지만 그러한 것들에 대하여
친구들과 환담하는 그 즐거움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나는 이 친구들을 목적으로 삼아 사랑했습니다. 또한 그들 역시
나를 목적으로 삼아 사랑한다고 나는 느꼈습니다.
제 7 권 신의 본성, 악의 본질, 기독론 문제에 대하여
1장 신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 :
이렇둣 나는 내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도 확실히 알지 못하는 우둔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장 마니교도들을 비판함 :
오, 주님, 남을 속이면서 스스로 속고 있으며, 말은 많이 하면서도 실은 벙어리인 저 마니교도들-그들을 벙어리라고 함은 그들의 입술에서부터는 당신의 말씀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3장 자유 의지와 악의 문제 :
우리가 악한 행동을 하게 됨은 우리의 자유의지 때문이요, 우리가 그 행동의 결과로 고난을 당하게 됨은 당신의 공정한 심판 때문이라는 말을 나는 듣고 그것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무엇을 하려고 원하든지 안 하든지간에 의지의 주체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교만하게 당신을 거슬러 일어서고 곧은 목을 방패로 삼아 당신께 달려들었을 때 내 밑에 있는
낮은 사물들이 내 위로 올라가 나를 무겁게 내리눌러서 나는 쉬거나 숨을 돌릴 여유도 없었습니다. 내가 눈을 떠서 보려고 하면 세상의 사물들이
사방으로부터 무더기로 떼를 지어 내 눈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것들을 피해 내가 좀 생각을 하려고 하면 이런 사물의 영상들이 주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나에게 "이 더럽고 쓸모 없는 인간아? 네가 어디로 간단 말이냐?"하고 말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상처에서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14장 온전한 마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피조물을 다 즐거워한다. :
당신이 창조한 것을 싫어할 때 내 마음이 온전하지 못한 것처럼 다어신이 창조한 어떤 것이라고 싫어하는 자들이 있으면 그들의 마음도 온전치 못합니다. 그래서 내 영혼은 나의 하나님이 되신 당신을 감히 싫다고 할 수 없어 내가 싫어한 것들이 당신에게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내 영혼은 두 개의 실체를 주장한 이원론으로 떨어져 안식을 찾지 못했고 어리석은 말만 하였습니다. 이 그릇된 생각을 버리고는 나의 영혼은 무한한 공산에 퍼져 있는 하나님을 만들어 그분이 당신이신 줄 알고 내 마음에 모시었으니 이리하여 내 영혼은-또 다시 당신에게 가증한 것이 되는-자신이 만든 우상의 신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16장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음이 악이다 :
이리하여 "사악이란 무엇인가?" 추구한 결과 내가 알게 된 것은 사악이란 어떤 실체가 아니고 의지의 왜곡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의지의 왜곡이라 함은 그 의지가 최고 실체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서 자신 안에 깊이 놓여 있는 보배를 버리고 낮은 부분으로 떨어져 밖으로 잔뜩 부풀어 있음을 말합니다.
17장 무엇이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마음을 방해하는지 :
내가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에 쏠리었다가도 다시 내 자신의 무게로 말미암아 당신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슬퍼하면서도 낮은 부분으로 향해 떨어져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 무게란 육체의 버릇이었습니다. 나빠져 버린 내 육체는 혼을 아래로 눌러 내리고 있고 지상의 장막 생활은 마음을 무겁게 눌러 그 마음은 여러 가지 것들의 생각에 잠겨 흩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또 다시 나의 약함으로 격퇴되어 나는 보통하는 일들의 세계로 되돌아왔습니다. 나는 그 아름다운 기억과 그에 대한 동경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뿐이었으니 그것은 마치 음식은 먹지 못하고 냄새만 맡는 것과 같았습니다.
18장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 :
그러나 나는 아직도 겸손하지 않아서 겸손하신 나의 주님 예수를 붙들 수가 없었고 그의 연약하게 되심이 우리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지를 알지도 못했습니다.
19장 그리스도의 수육에 대한 견해 :
그러나 나는 그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 주 그리스도를 다만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한 지혜를 소유한 하나의 인간으로 본 것입니다. 또한 그의 육체는 당신의 말씀과 결합된 것이 아니고 인간의 혼과 정신에만 결합되었다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20장 플라톤주의자들의 책을 읽음 :
나는 사실상 벌을 충분히 받았음에도 지혜로 나타내 보이기를 원하여 나의 무지를 슬퍼하기보다는 오히려 지식의 교만으로 부풀어 있었습니다.
21장 플라톤주의자에게서 찾지 못한 것을 성서에서 찾음 :
우리의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우리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볼 때(롬 7:22-23) 우리가 무엇을 감히
할 수 있습니까? 오, 주님, 당신은 의로우시나 우리는 죄를 지었고 불의를 행하였습니다.
제 8 권
어거스틴의 회심
1장 고민 끝에 심플리키아누스 사제를 찾아감 :
그러나 내 육신의 생활은 아직도 혼돈 속에 빠져 있어 내 마음은 묵은 누룩을 내버리고 정화되었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그 길"-우리 구주 자신이신-이 나에게 호감은 주었으나 나는 그 좁은 길을 걸어가기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세상을 좇아 사는 나의 삶의 모습이 싫었습니다. 이제 과거에 나를 사로잡았던 명예와 돈을 추구하는 욕심의 불도 사라진지라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이 나에게는 오히려 무거운 짐이나 종살이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나의 의지력이 약하여 보다 더 안일한 길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혹은 선하게 보이는 사물들을 통하여 선 자체이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는 자들은 모두 허망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는 자들(롬1:21)입니다.
2장 빅토리누스의 참회에 대하여 :
그는 나이가 많을 때까지 우상을 숭배하였고 로마의 모든 귀족들이 열을 올렸던 그 신성모독의 종교의식에 적극 참여한 자였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고무시켜 한때 네프투누스와 비너스와 미네르바에게 대항을 했던 개 귀신 아누비스나 괴물과 같은 잡신들을 섬기라고 하였던 자였습니다. 이러한 잡신들은 한때 로마가 정복한 신들이었으나 이제는 로마가 숭배하는 신들이 되어 빅토리누스까지도 우뢰와 같은 웅변으로 오랫동안 옹호해 왔었습니다. 그가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부인할 경우, 그리하여 그는 스스로 교만해진 악마들의 뒤를 따르며 그들을 섬기는 의식에 참여한 신성모독은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도 당신 말씀의 겸손의 성례는 부끄럽게 여긴 것을 큰 죄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4장 위대한 인물의 회심에 대하여 :
위대한 인물의 회심과 그 영향 마귀에게 강하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나 그의 도구가 되어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자를 정복하면 마귀의 세력은 그만큼 정복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고위층에
있는 자들을 귀족의 이름하에 강하게 사로잡고 있으며 또한 그들의 권위를 통해서 다른 많은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절대로 빼앗기지 않을 자기의 성곽이라고 여겼던 빅토리누스의 마음과 그의 강하고 예리한 웅변-마귀가 그것에 의해 많은 영혼을 살해했던-을 사람들이
높이 평가한 만큼.
5장 내적 투쟁 :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의 쇠사슬에 의해서가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의 의지의 쇠사슬에 의해 묶여 있었던 것입니다. 마귀가 내 의지를 쇠사슬에 의해 묶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왜곡된 의지에서 욕심이 생겼고 욕심을 계속 따름으로 버릇이 생겼으며, 그 버릇을 끊지 못함으로 필연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는 내 경험을 통하여 내가 읽은 "육체의 소욕은 영을 거스리고 영이 원하는 것은 육을 거스린다"는 뜻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확실히 나는 양쪽에 다 마음을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좋지 않게 여겼던 편에 내 마음이 가 있을 경우에는 내가 좋아서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내 본뜻에는 거슬리나 할 수 없이 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에 그러한 버릇이나를 거슬려 싸우는 원수가 된 것도 실은 나 때문이었으니 내가 지금
원하지 않는 상태에 있게 된 것도 결국은 내 의지에 의해 행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땅에 매여 있었던 탓으로 당신의 병사가
되기를 싫어했습니다. 또한 나는 당신에게 나아가는 길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두려워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그 장애물에서 벗어나게 됨을 두려워했습니다.
이리하여 나는 잠이 몹시 와서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처럼 이 세상의 짐에 눌려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에 대한 나의 명상은 마치 잠에서 깨어 일어나려고 하다가도 그 잠에 못이겨 일어나지 못해 다시 누워 자버린 사람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후자의 길이 쾌락으로 내 의지를 사로잡아 포박하여 버렸습니다. 그 죄의 법이란 다름 아닌 습관 폭력으로서 이로 인해 인간의 마음은 자신의 의지에
역행해서까지 붙잡혀 있기도 하고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그렇게 붙잡히게 된 것도 처음에는 스스로 원해서 습관화된 것이니 핑계할 수
없습니다.
7장 자기 성찰 :
그리하여 당신은 나로 하여금 내가 얼마나 보기 흉하고, 비뚤어지고, 더럽고, 얽었고, 종기투성이인지 보게 하셨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보기 싫어서 나를 피해 어디로 가고 싶었으나 갈 곳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세상의 낙을 끊어 버리지 못하여 지혜를 탐구하는 일을 미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당신이 너무 빨리 내 소원을 들어주시면 꺼지기보다는 충족되기를 원했던 내 정욕의 병으로부터 내가 너무 빨리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신성모독의 미신을 좇아 사악한 길(마니교)을 헤매며 돌아다녔습니다. 내 영혼은 습관의 흐름이 저지 당하는 것을 죽음처럼 두려워하였으나 사실은 바로 그 습관 때문에 영혼은 죽음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습니다.
8장 정원에서 소위 모든 학문을 닦았다고 하는 우리들은 지금도 혈육의 진흙탕에서 뒹굴고 있는 것을 보라!
:
다른 사람들이 우리보다 앞서 갔기에 우리가 그들의 뒤를 따라가기가 부끄러워서 그럴까?
10장 마니교도의 착오 :
그런데 그들은 영혼의 본성이 하나님의 본성과 같다고 상상하여 주님 안에서 빛이 되기보다는 자기 안에서 스스로 빛이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11장 영과 육의 싸움 :
그것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선보다는 습관화된 악이나를 더 강하게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오랫동안 애착심을 가지고 대해 왔던 헛되고 헛되며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들이 아직도 나를 꼭 붙들고 있었습니다.
제 9 권 어거스틴의 세례와 모니카의 죽음
4장 카씨키아쿰에서 :
내가 바라기는 아직도 허사를 좋아하고 거짓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내가 한 말을 들었으면 합니다.
내가 내
자신을 향해 분을 내는 것이 옳은 것은 내 안에서 죄를 짓게 한 것이 마니주의자들이 말한 것처럼 어둠의 왕국에 속해 있는 다른 본성이 아니요,
나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당신을 멀리 떠나 세상 사물만 보는 자신들의 눈에 마음을 둔 채"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가 누구뇨?"
하고 나에게 묻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8장 모니카의 젊은 시절 :
그런데 술맛을 보는 "조금씩"은 이 "조금씩"이 매일 더 가산되어-조그만 것을 경시하는 자는 조금씩 조금씩 넘어지게 된다는 말처럼-나중에 어머니는 그 조그만 잔을 거의 가득 채워 마시기를 좋아하는 습관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9장 파트리키우스의 부인 모니카 :
그 법을 따라 살았던 부인들은 어머니의 충고에 감사할 이유를 바고 그렇지 않았던 자들은 계속 눌려 살며 고생만
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시어머니는 자기 아들(어거스틴의 아버지)에게 가서 말하기를 하녀들이 혀를 잘못 놀려 자기와 며느리를 이간질시켰고 가정의
평화를 어지럽게 했으니 그들을 엄벌하여 행동을 고쳐주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사람이 옆에 있는 친구에게 그 자리에 있지 않은 자기 원수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는 흔히 과장하여 차마 들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붓고 증오심을 격한 말로 표현합니다. 나는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떤 무서운 전염병과 같은 죄에 감염되어 서로 싸워 원수된
사람들의 말을 상대편에 전해 줄 뿐만 아니라 서로 싸워 원수된 사람들의 말을 상대편에 전해 줄 뿐만 아니라 하지도 않은 말까지 덧붙여 말 전주를
하는 슬픈 사실들을 경험하였습니다.
제 10 권 기억의 신비
6장 하나님의
존재와 그 인식 :
그러나 인간들은 피조물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 피조물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노예는 판단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들은 판단력을 가진 사람들의 질문에만 대답을 하게 됩니다.
22장 참다운 행복 육체의 욕심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슬려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될 때 자기들이 할 수 잇는 것으로 전락되어 거기에서 만족하는 것입니까?
23장 진리와 행복 :
육체의 욕심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려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될 때(갈 5:17)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전락되어 거기에서 만족하는 것입니까? 진리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진리 아닌 것을 진리인 것처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속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들이 속고 있음을 시인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진리의 자리에 자기들이 사랑하는 것들을 가져다 놓고는 그것들을 위해 진리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가 그들을 조명해 줄 때는 그것을 사랑하나, 진리가 그들을 꾸짖을 때는 미워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속기는 싫으나 남을 속이기는 좋아하므로, 진리가 그들에게 드러날 때는 그것을 사랑하나 진리가 잘못된 그들을 들추어 낼 때는 그것을
미워합니다. 그러나 진리에 의하여 들추어 낼 때는 그것을 미워합니다. 그러나 진리에 의하여 들추어냄을 받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싫지만
진리에 의하여 노출되고 마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은 눈이 어둡고 병들었으며, 악하고 흉하여서, 자기 자신은 숨기려 하면서
자기에게는 아무 것도 숨겨져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27장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랑 :
그리하여 흉하게 되어 버린 나 자신은 당신이 아름답게 만드신 피조물들 속으로 거꾸로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당신이 나와 함께 계셨건만 나는 당신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그 피조물들의 외형적인 아름다움이 나를 당신에게서 멀리 떠나게 한 것입니다.
31장 식욕의 유혹 :
그러나 지금 나는 먹어야 사는 필연성에서 쾌락을 맛보고 있으며 그 쾌락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계속 싸우고 있습니다. 나는 건강을 목적으로 먹고 마시는데 위험한 쾌감은 종처럼 따라다닙니다. 때로는 쾌감의 목적이 건강의 목적을 앞질러 나가 내가 먹고 마시는 것이 건강을 위한 것이라 말하면서도 실은 쾌감을 위한 것이 되고 맙니다. 뿐만 아니라 때로는 내 몸을 돌보기 위한 필요성이 음식을 요구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쾌감을 만족시키려는 탐식의 기만이 잘 먹기를 원하는지 나는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애매한 상태를 불쌍한 내 영혼은 좋아하며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을 은폐하고 변명합니다. 내 영혼은 건강에 넉넉한 적량이 얼마인지 확실히 모르는 그 애매함을 이용하여 건강을 위한다는 미명아래 쾌감의 추구를 즐거이 은폐하는 것입니다. 나는 매일 이러한 유혹을 물리치고자 애를 쓰며 당신의 오른손이나를 도와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나는 아직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나의 괴로움을 당신께 아룁니다.
"너희는 과식함과 술취함으로 마음을 둔하게 하지 말라"(비교, 눅21:34)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불결한 음식이 아니오라 불결한 내 욕심이옵니다. 내가 아는 음식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한 고기는 어떤 것이라도 먹었고, 엘리야도
고기를 먹었으며, 금욕주의자였던 세례 요한이 산 동물인 메뚜기를 잡아먹었어도 불결하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 반면에 에서는 팥죽 한 그릇이 먹고
싶어 속아넘어갔고, 다윗은 목말라 물을 찾는 자신을 꾸짖었으며, 우리 왕되신 그리스도는 고기가 아닌 빵으로 시험을 받으셨음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꾸지람을 받은 것은 고기를 원하여서가 아니고 고기를 먹고 싶은 탐심에서 주님을 원망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시험의 와중에서 나는 매일 이렇듯 먹고 마시고 싶은 탐욕과 싸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탐욕은 단번에 끊어 버리고
다시는 만지지 않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 정욕과는 아주 다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33장 청각의 즐거움에 대하여 :
육체의 감각은 이성을 돕도록 되어 있는데 그를 인내로 뒤따르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앞에 서서 인도하려고 합니다.
이런 경우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나 후에야 내가 죄지었음을 의식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혹시 찬송의
가사의 뜻보다는 찬송 부르는 그 자체에 의하여 감명으을 때는 슬퍼해야 할 죄를 짓고 잇는 것입니다.
34장 안목의 유혹 :
이제 나는 내 육체의 눈을 통하여 들어오는 시험에 대해서도 당신에게 고백합니다. 나는 육욕의 시험에 대하여 끝을 맺으려고 합니다. 그 빛이 내게 주는 영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갑자기 없어지면 그리워 찾게 되고 오랫동안 없게 되면 내 마음이 우울해집니다. 그러나 내가 방금 말한 바 있는 물질적인 빛은 그것을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현 생활을 위험스러운 화려함으로 매혹을 합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안목의 쾌락을 위해서 이런 것들을 더 만들어 내놓고 있습니다. 그들은 밖으로는 자기들이
만든 물건들을 좇아 살고 있고, 안으로는 자기들을 만드신 창조주와 창조주가 그들 안에 만들어 놓으신 인간성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판단의 기준을 받아들여 그 아름다운 것들을 사용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 판단의 기준이 거기에 있는데도 그들은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35장 호기심에서 나온 유혹 :
육신의 정욕은 우리의 모든 감각과 쾌락의 추구를 충족시켜 주려고 하다가 그들의 노예가 되고 당신을 멀리 떨어져 있다가 힘이 탕진되어 그들의 노예가 되고 당신을 멀리떨어져 있다가 힘이 탕진되어 망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 영혼이 육욕의 쾌락을 얻으려고 하기보다는 감각을 통하여 어떤 경험을 얻으려고 하는 허망한 호기심입니다. 이 호기심은 학문과 지식이라는 미명의 가면을 둘러쓰고 있습니다. 그런 지식은 주로 오관 중에서도 제일 주요한 눈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므로 성서에서는 이것을 가리켜"안목의 정욕"(요1 2:16)이라 부릅니다. 왜냐하면 "본다"는 것은 특별히 눈의 기능이지만 우리가 다른 감각기관을 통하여 지식을 획득하는 경우에도 이 "본다"는 단어를 적용해 쓰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호기심 때문에 극장에서는 괴상한 광경의 장면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며, 이 호기심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활에 관계없는 자연의 비밀마저 알아보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우리 인간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않지만 사람들은 다만 아는 그 자체를
목적으로 알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은 무엇을 알려고 하는 그릇된 호기심 때문에 마술도 추구합니다. 이런 경향은 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사람들은 기사와 이적을 보여 달라고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다만 기사와 이적을 얻고자 하는 욕구에서 그러는 것입니다.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이와 같이 함정과 위험이 많은 끝없는 광야에서 나는 당신의 은혜를 힘입어 많은
유혹을 내 마음에서 짤라 내고 밀쳐 냈습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많은 시험은 아직도 내 생활의 주변에서 와글거리고 있으니 내가 어찌 그것들에게
흥미를 갖도록 자극을 받지 않는다고 또는 그것들을 탐하는 욕구가 없다고 감히 말할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호기심이 매일 여러 가지 사소하고 쓸데없는 것들에 의해 시험을 받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때때로 사람들은 쓸데없는 말을 우리에게 합니다. 그때(주의를 주고 싶으나) 혹시나 마음이 약한 자들을 기분 상하게 할까 염려하여 우리는 처음에는 그런 말을 듣기 싫어도 꾹 참고 들어줍니다. 그러다가도 나중에 우리는 그런 말을 좋아하게 되고 듣고 싶어하는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내 마음이 이런 것들을 받아들이는 창고가 되고 수없는 헛된 것들로 가득 차 눌려 있을 때는 헛갈리게
됩니다. 우리가 당신의 면전에서 마음의 소리를 당신의 귀에 여쭐 때도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쓸데없는 생각으로 이와 같은 중요한 기도가 단절
되기도 합니다.
36장 교만의 유혹 :
그것 때문에 우리의 참된 행복을 해치는 원수는 우리에게 가까이 와서 "잘했다. 잘했다"라는 칭찬의 덫을 우리 주위에 많이 펴놓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칭찬의 말을 좋아서 듣다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 덫에 걸려들어 당신의 진리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사람들의 위선에서 그것을 찾으려고 합니다.
우리는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고 "당신 대신" 사람들이 우리를 두려워하고 사랑해 주기를 좋아합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우리의 원수는 사람들을 자기와 같은 자로 만들어 소유하게 되며 사랑 안에서 연합하게 하기보다는 같이 벌을 받는 도당들은
되게 합니다. 또한 저 원수는 자기의 보좌를 북쪽에 이룩해 놓고 부당하고 왜곡된 방법으로 당신을 모방하면서 춥고 어두운 백성들로 하여금 자기를
섬기도록 만들려고 합니다.
죄인이 자기의 욕구대로 칭찬을 받는 일이 없으며 악을 행하는 자가 축복을 받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통 당신이 어떤 사람에게 주신 선물(재능)을 보고 그를 칭찬합니다. 이 경우에 만일 그 사람이 당신에게서 그 선물을 받은 것에 대해
즐거워하기보다 사람들이 칭찬하는 것을 더 즐거워하면 그 사람은 사람들에게서는 칭찬을 받지만 당신에게서는 비난을 받습니다. 그럴 때는 그를
칭찬하는 사람들이 칭찬을 받는 사람보다 훨씬 낫습니다. 왜냐하면 전자는 그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을 좋아하지만 후자는 하나님이 주신 것보다
사람들이 준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37장 사람의 칭찬과 그 문제 주님 :
우리는 이런 유혹으로 인해 매일 시험을 받고 있습니다. 아니, 끊임없이 시험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시련을 받고 있는 도가니는 인간의 혀입니다.(잠 27:21) 나는 다른 종류의 유혹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을 알고 제어할 수 잇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유혹을 저어할 수 있는 능력은 거의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과 무엇을 알아보려는 헛된 호기심은 내가 그런 유혹들을 의도적으로 피하든가 하여 나 지신이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때 그것 없이 내가 얼마나 좌절감을 갖게 되는지 스스로 물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38장 허영에 대하여 :
그러기에 칭찬을 좋아하는 자는 자기 개인의 영광을 내세우기 위하여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거지가 동냥을 구하듯이 다른 사람들로 칭찬을 구걸하고 수집합니다. 이렇듯 칭찬받기를 좋아하는 허영의 시험은 내가 속으로 그것을 꾸짖을 때도 나를 시험합니다. 아니, 내가 그것을 꾸짖는다는 그 자체 속에 남에게서 칭찬을 받고자 하는 허영의 유혹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의 허영을 꾸짖는 일 그 자체에서 자기를 헛되이 자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9장 자기 만족에 대하여 :
우리 마음 안에는 유사한 유혹에서 일어나는 다른 종류의 악이 또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 만족(사랑)에 도취된 사람들의 허영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에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남을 좋아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좋아함으로써 당신을 심히 노여웁게 하는 자들입니다. 여기에서 좋지 않은 것을 좋은 것처럼 즐기는 데 있을 뿐 아니라, 당신께서 주신 좋은 것을 마치 자기들의 것인 것처럼 생각하는 데 있으며, 또한 당신께서 주신 것을 마치 자기들이 받을 만한 공로가 있어서 받은 것처럼 생각하거나 혹은 당신의 은혜로 그것을 받은 줄 알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주신 당신의 은혜를 질투하여 그들과 함께 즐길 줄 모르는 데 있습니다.
41장 진리와 거짓 :
나는 욕심 때문에 진리이신 당신을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거짓도 놓고 싶지 않았으며 당신과 거짓을 동시에 소유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진리를 알고 있기에 거짓말을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42장 거짓 중보자 :
그 결과는 그들이 이상한 환상이나 보기 바라는 정신빠진 자들로 전락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높다
하여 가슴을 치기보다는 앞가슴을 내밀며 학문의 교만에서 당신을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교만의 동역자요 공모자인 "공중의 권세잡은
자"(엡2:2)를 자기들에게고 끄러들였습니다. 그들이 순화되기 원하여 중보자를 찾았으나 그를 찾지 못하고 오히려 권세잡은 자에게 마력으로 속기만
하였습니다. 그들이 찾은 것은 중보자가 아니고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이었습니다(고후 11:14). 그 사탄은 육체가 없었으므로 그들의 교만의
육체를 더 유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 거짓 중보자(사탄)는 인간과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죄입니다. 당신의
은밀한 심판은 인간의 교만이 그 사탄에 의하여 미혹되게 하십니다.
제 12 권 무로부터의 창조, 질료와 형상
그러나 그들이 말하기를 모세가 의도한 것은 내가 해석한 대로가 아니고 자기들의 해석한 대로라고만 우겨댄다면, 나는
그들의 주장을 존경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혹시 그들의 주장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무모한 독단은 지혜에서보다 자만에서 온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당신이 모든 사람과 함께 누리라고 부여하여 주신 것을 자기 개인에게만 돌리려고 하든가
모든 사람에게 속해 있는 것을 자기 소유물로 삼으려 한다면, 그는 공에서 사로, 진리에서 거짓으로 전락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개인의
생각을 말하는 사람은 거짓을 말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 모세가 그것을
기록한 목적은 사랑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었는데 그 기록을 우리가 해석하다가 사랑의 덕을 파괴하는 논쟁을 일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재 13 권 세계 창조와 그 은유적 해석
2장 존재와 가치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 :
우리는 참빛이 되신 당신으로부터 등을 돌려 한때 그와 같은 어두운 생활을 하였습니다.
10장 영적인 피조물의 행복 왜 사람들은 내가 마치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요 1:9)인
것처럼 나를 괴롭힙니까? :
땅과 같은 우리들은 형상과 같은 교리를 받기 전에는 보이지 않고 형상이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지의 어두움에 덮여 있었습니다.
21장 땅이 내놓은 동물 :
너희는 무절제한 교만의 야만성과 사치를 즐기는 태만과 거짓된 지식을 멀리함으로써 너희 안에 있는 야수를 길들이고 가축을 다스리며 뱀의 독을 빼라. 비유로 말하면 이것들은 모두 영혼의 운동을 뜻하는 것이다. 즉, 겸손하지 못한 교만과 쾌락을 따르는 정욕과 독약과 같은 호기심은 죽은 영혼의 충동이니라. 여기서 영혼이 죽었다 함은 영혼의 충동이 없어졌다 함이 아니요, 생명의 원천을 떠남으로 지나가는(무상한) 이 세상의 것들에 휩쓸려 들어가 그 세상을 본받게 됨을 말함이라.
30장 이원론에 대한 반박 :
그들은 당신이 만드신 피조물을 당신의 영을 통하여 보지 않을 뿐더러 피조물을 통하여 창조자를 인식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3. 성 어거스틴의 은혜에 관하여
제 1 권 어린이
시절
4장 하나님의 속성 :
사람들은 당신께 필요이상 더바쳐 당신을 인간에게 빚진 자로 만들려 하나 사실 인간이 가진 것중에 당신 것 아닌 것이 어디 있습니까? 당신은 인간에게 빚진 것이 하나도 없으시나 마치 빚진 것처럼 그들에게 갚아 주십니다. 또한 당신에게 진 빚을 없이 해주신다 해도 그것 때문에 당신은 손해보는 것이 없으십니다. 내 영혼의 집은 당신이 들어오시기에는 너무 비좁으니 넓혀 주소서. 폐허가 된 집이니 수리해 주소서. 당신의 눈에 거슬리게 한 것이 너무 많이 있는 것을 알고 고백하옵니다. 그러나 누가 그것들을 깨끗이 씻어 주겠습니까? 당신 외에 누구에게 "주여,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당신의 자비의 위로하심이 처음부터 나를 붙들어 살게 하셨음을 나의 육신의 부모님들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내가 비록 여인의 젖의 위로로 양육함을 받았으나 실은 나의 어머니나 나의 유모가 자기들의 유방을 가득 채운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당신의 풍성하심과 법칙에 따라 당신이 그들을 통해 나의 유아기에 음식을 주신 것입니다. 당신은 또한 나에게 본능을 주어 당신이 주시는 분량 이상
먹지 않게 하셨고 나를 기르는 분들에게는 당신이 그들에게 주신 것을 내게 먹이도록 하셨으니 그들은 당신이 풍성하게 주신 것을 인간의 애졍으로
즐거이 내게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통해서 오는 나의 축복이 바로 그들의 축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은 그 축복이 그들에게서 온 것이 아니오라 그들을 통해서 내게 온 것입니다. 오, 하나님, 모든 축복(선)은 당신으로부터 내려오며 나의 모든 건강도 당신으로부터 옵니다. 물론 이것은 훨씬 후에 당신이 나의 안과 밖에서 베풀어주신 은혜로 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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