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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9:23-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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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9장 23절: 예수께서 그 직원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훤화하는 무리를 보시고
직원의 집에 도착해서 들어가 보니 난리법석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무리가 되었습니다.
일반세상을 보면 부잣집이거나 직분이 높은 사람들 집에 초상이 나면 큰 무리가 형성이 됩니다. 부모 형제 일가 친척집이 다 모이고, 어디에 있었던, 무슨 일을 했던, 어떤 신분을 가졌던, 어떤 직업을 가졌던, 어떤 소원과 목적을 가졌던, 친구들, 좀 알고 지냈던 사람, 좀 인사를 가졌던 사람, 그리고 이웃 사람들 등 별의 별 사람들이 다 모입니다. 모여서들 별의 별 얘기를 다 합니다. 술상, 음식상을 벌려 놓고 상주는 손님만나 인사할 적마다 곡을 하고,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술투정하는 사람, 그릇 두들기며 노래부르는 사람, 웃는 사람들, 화투치는 사람들, 시국이 어떻고 사업이 어떻고 인간이 어떻고 하는 제 잘난 박사가 많고, 담배연기 속에서 상복을 입은 여자들은 여기 저기서 뭐가 떨어졌다고 주문하면 국수 나르고 부침개 나르고 술 나르고 돼지머리 나르느라고 온통 난리법석입니다. 그러다가 싸움까지 일어납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것도 있습니다. 한 쪽에서는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한 쪽에서는 중이 와서 목탁을 치고. 위로를 한답시고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어쨌든 중복이 되지 않도록 사전에 알아서 해야 할 일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평소에 남편이 소주를 워낙 잘 먹었기 때문에 소주를 먹고 그 병에 타서 죽었는데 아내가 울기를 ‘남편이 소주를 그렇게 찾았는데 죽으려고 찾는 줄 알았으면 실컷 먹고 가라고 마지막 이별주를 줄 것을!’ 하며 술을 못 준게 안타까워서 울고, 이별주를 같이 못 먹은게 서러워서 울고, 마지막 술을 못 먹고 간 그 신세가 불쌍해서 웁니다. ‘이렇게 쉽게 죽을 줄 알았으면 먹을 것 실컨 먹고 입을 것 실컷 입고 신나게 놀러 다니게 내버려 둘 걸 왜 그렇게 못 했나!’ 그게 한스럽다는 거지.
직원이 집에 들어가니 역시 무리들이 방안에 가득 찼습니다. 슬픈 무드 잡아주느라고 피리 불고 곡하고 야단법석입니다. 세상에 대한 애착심을 갖게 하느라고 눈물을 더 뺍니다. 피리소리는 더 구슬프고.
지금도 눈물 빼는 예배가 있습니다. 지금 교회나 가정이나 신앙생명이 죽어 가는 줄도 모르고 세상에 대한 애착심을 갖게 하는 피리소리, 나팔소리가 많습니다.
9장 24절: 가라사대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들이 비웃더라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물러가라, 다 사라져가라 하니까 저들이 비웃더라’
비웃는 것은 무리들이 볼 때에는 분명히 목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주님이 보실 때에는 죽은 것도 잠을 깨우듯이 하는 분이시고, 마지막 부활 때에도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을 자는 자들을 깨우듯이 다 깨워서 변화 부활을 시키실 것입니다.
죽음을 연구해 보면, 우리가 죽는 것을 심사해 보면
① 하나님과 분리되고 끊어진 것. 하나님과 영적 생명선이 끊어진 것.
영은 죽었고 활동불능이고 영적 무감각이고, 그러나 육은 살아 있고 이성은 움직이고 밥은 먹고. 그러나 죽어가고 필경은 죽을 것이고 죽는 것입니다.
② 육신이 죽는 것인데 자연목숨이 분리되어 떠나가는 것.
이렇게 되면 육신의 세포조직이 활동정지가 되고, 오각과 오감이 모두 정지가 되고 부패가 되고 냄새가 나고 썩습니다. 죽으면 부패되어 똥파리가 날아들고 구더기가 씁니다.
③ 믿음이 죽은 것. 신앙생명이 죽은 것.
기본구원을 얻어서 죽었던 영은 살았지만 진리생명의 말씀을 받지 못하고 먹지 못해서 영적 성장성이 중단된 것.
비 진리, 세상적인 가르침을 받으면 신앙성장은 중단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세상냄새 풀풀 풍기고 마귀가 새끼 치고 거짓 운동으로 전염시키는 짓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어떤 경우이던 사람의 생명과 신앙의 생명을 마음대로 살릴 수 있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생명을 살리시는데 인간의 무드 조성, 위로, 세상적인 것, 물질적인 것, 육적인 이런 것은 다 필요 없다. 사라져라. 없애버려라!
사람의 생명은 인간의 타락적인 그 어떤 것의 도움을 받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역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도 신앙생명을 살리는 것은 세상 육본주의 것이 아닙니다. 무드 조성, 분위기가 아닙니다.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하나님의 본질적인 것이라야 신앙생명은 살아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것, 세상적인 것, 타락적인 것은 다 내어보내라, 다 쫓아버려라, 하나님의 진리생명과 연결시켜라. 그래야 살아난다.
자기의 교회가 무엇이 죽어 있는지, 무엇이 죽어 가는지 알아야 하고 진리생명으로 살려야 합니다. 아들이던 딸이던 교회이던 사는 원리가 이런 것입니다.
9장 25절: 무리를 내어 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지라
‘손을 잡으매 일어나는지라’
주님은 죽은 영혼을 살리시고 죽은 시체도 살리십니다. 영적 기능, 육적 기능을 다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일단 주님이 살려 놓으면 산 것은 자극을 주면 일어나고, 자는 것은 자극을 주면 일어나고, 일어난 것은 활동하기 마련이고, 활동하는 것은 성장하기 마련입니다.
부활 때 일으키는 것은 마지막 때의 일이며 주님께서 하실 일이고, 현재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진리생명으로 일으킴을 받고 계속 성장성입니다. 교회는 특수적인 성장성입니다.
아이가 주님의 역사로, 길과 진리와 생명의 역사로 일으킴을 받았습니다. 아이가 어떤 마음으로 살겠느냐? ‘예수라는 분이 나를 살렸으니 나는 예수님의 것이다. 이제는 사나 죽으나 예수로 살자!’ 이것이 나오는 것이 당연합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에 대하여 어떤 마음가짐이겠느냐? ‘예수라는 분이 살렸어도 내 목적대로 키워야지’ 그럴까? 아닙니다. ‘예수가 살렸으니 예수님처럼 만들어지고 예수님처럼 키워야지, 못된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말아야지’ 그 마음이 안 들겠습니까?
9장 26절: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소문은 본대로 들은대로 나갑니다. 방에서 쫓김을 받은 무리들도 예수님의 소문을 냅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좋게 내겠느냐, 나쁘게 내겠느냐? 아버지는 어떻게 소문을 내겠으며, 일으킴을 받은 여자아이는 어떤 소문을 낼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소문을 낼까?
소문은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어떻게 달라졌을까?
① ‘예수께서 잔다 했으니 자는 아이 누군들 못 깨우랴! 나도 할 수 있다’ 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도 죽은 사람을 갖다 놓고 깨운다고 하며.
② ‘예수는 능력이 있다. 나도 그 능력 받아가지고 죽어가는 사람을 돈 받고 일으키자’
소문을 잘못 듣고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전할 것 같으면 정확하게 전해야 합니다. ‘그 날에 다 직고하리라’ 했으니 바르게 정확하게 전해야지!
9장 27절~31절: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가실새 두 소경이 따라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하셨으나 저희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전파하니라
● 두 소경을 고치심.
예수님께서 한 직원의 집에서 여아를 일으키고 거기서 떠나가시다가 두 소경을 만났습니다. 두 소경은 따라오면서 큰 소리로 외치기를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면서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알았을까? 이들은 이미 소문을 들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26절에서 이미 예수님의 소문은 나갔었습니다. ‘직원의 딸을 일으켰단다. 피리불고 울고 하던 사람들은 분명히 여자아이가 죽었다고 했는데 예수님께서는 잔다고 하면서 일으켰단다. 너도 보았니?’ ‘그래, 나도 확실히 보았다’ 하는 소리들을 들은 것입니다.
‘저기 예수와 제자들이 간다’ 하고 누군가가 하는 소리에 두 소경은 그 소리 나는 쪽을 향하여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소경이 부른 것을 볼 때 예수님을 조금은 압니다. 육적 혈통적으로 족보적으로 역사적으로 조금은 압니다. 역사적 혈통적으로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은 알지만 예수님의 성육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실존체는 아직 보지는 못했습니다.
9장 28, 29절: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
예수님께서 집으로 들어오셨을 때 소경 둘은 더듬거리면서 곧 따라 들어온 것입니다. 정말 끈질기게 따라 들어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소경들에게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 믿느냐’ 하니까 ‘주여, 그러하오이다’ 했고, 이에 저희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어라’ 하며 눈을 만져서 눈을 밝게 보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 이 말씀이 신경이 쓰입니다. 예수님께서 눈을 만지신 것만으로도 소경의 눈은 뜨입니다. 말하자면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는 그 선언을 하지 않아도 말입니다. 그런데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 이것이 소경이 믿음이 있어서 그 말을 했고, 그 믿음 때문에 나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주님의 선언이 있어야 눈이 뜨이는데!
지금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고 그들은 눈을 떴는데 왜 30절에서 그들에게 엄히 경계하시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을까? 눈을 떴으면 예수님께서 눈을 보게 해 주었다고 전하라고 해야 할 터인데 말입니다. 어쨌든 그들은 나가서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주님이 엄히 경계하신 말씀과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 말씀의 그 이유들을 보면 소경들이 부르짖기를 자기들의 육신의 눈만 밝게 보이기를 구한 것이고, 그 눈이 뜨게 해 주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이왕이면 영의 눈까지 열어달라는 마음의 소원을 품고 믿고 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일 그랬었다면 엄히 경계의 말도 안 들었을 텐데!
그들은 육신의 눈을 떴으면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3년 동안 따라 다니면서 보고 듣고 깨달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똑바로 전했어야 할 일이었는데 육신의 눈 뜨임을 받고 예수님을 쳐다본 그것이 전부 다 인줄 알고 예수님을 다 아는 것처럼 알고 있었는고로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엄히 경계를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 소경 되었던 두 사람은 예수님을 무엇이라고 전했겠느냔 말입니다. 단순히 육신의 눈을 뜨게 해 주신 그 예수로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고도 예수를 다 아는 것처럼, 예수님을 다 본 것처럼, 예수님을 다 깨달은 것처럼 예수님을 다 체험했다고 말하지 않았겠느냔 말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예수 믿고 육신의 병이 나았다면 그만 그것이 예수를 다 아는 것처럼 떠들고 있는 것입니다. 간증을 하고 난리법석을 떠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조용히 하라면 그 엄한 명령에 순종할 줄 알아야지 명령에 순종은 하지 않고 교만해져서 그만 육신의 병을 고쳐주고 육의 소원을 들어주는 육의 예수, 구복주의 예수로 떨어뜨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정확하게 알수록 손해는 없고 성화구원 면에서 영원한 많은 유익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소경의 종류를 크게 보면
첫째, 육의 소경이 있습니다.
이 육의 소경은 누구든지 다 압니다. 모든 하나님의 창조물을 눈으로 볼 수 없고, 볼 수 없으니 구별을 못 합니다. 관찰도 안 되고 이용도 어렵고 활동도 자유로이 할 수도 없고 누군가의 눈밝은 자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둘째, 영의 소경, 영적인 소경이 있습니다. 신령한 천국의 세계와 하나님의 은밀한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창조의 목적과 인간 창조의 원인 동기와 궁극적 구원을 알 길이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영원히 구원 면에서 망하게 되고 심판을 받게 될 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육의 소경, 육적 소경만 알고 있으면 안 되고 영의 소경, 영적 소경이 어떤 건지 잘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소경이 되어 있으면 예수가 어떤 분인지, 나와 무슨 관계이며 어떤 관계인지 인격적으로 나와 관계성이 없어져 버립니다.
결국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는 이것을 어디다 쓰는고 하니, 예수님께 부르짖기를
① 세계에서 제일 큰 예배당 짓겠습니다.
②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유명한 부흥강사가 되게 해 주십시오.
③ 나에게 만능의 능력을 주십시오. 병 고치는 전문가가 되어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결국 사망성공을 이루어 심판 받을 것만 장만하게 됩니다. 영의 눈이 어두우면 사단 마귀의 활동과 감화성도 모르고, 죄가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넓은 길을 가면서도 자기는 좁은 길인 줄만 압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그러하오이다’ ‘저희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 - 영적 면에서는 100% 에누리가 없습니다. 영의 눈 뜨이기를 믿으면 믿는 대로 될 것이고, 안 믿으면 안 믿는대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이 영의 눈이 밝아야 세상을 세상만큼, 천국을 천국만큼, 인간을 인간만큼, 하나님을 하나님만큼 알 수가 있어서 성경대로 잘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같이 예수를 믿어도 영의 눈을 뜬 자와, 못 뜬 자가 예수를 전하는데 있어서 질적으로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늘의 운동이요 영의 운동이요, 하나는 땅의 운동이요 육 운동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땅의 운동, 세상운동은 궁극적 결과적으로 주님의 천국복음운동에 대적노릇을 하고 간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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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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