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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4:1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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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강종수 목사 |
참고 : | 2017. 3. 22 수요일 밤 |
성경 : 요14:16-17
제목 : 임마누엘 실제는 일상적인가?
요14:16-17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아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의 임마누엘( Ἐμμανουηλ,마1:23,사7:14)은 우리 교회시대에는 어떻게 적용되느냐 하는 점을 깨닫고 신실한 신앙인으로 살기 원합니다.
1. 뜻이 있는 진리로 함께해주심
성경이 완성되기 전에는 구약시대, 맨 처음 족장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노아,아브라함 등에게 하나님께서 개인을 상대로 직접 말씀하시고 믿음의 생활 진행 중에 필요한 말씀을 그때마다 계시하실 때 순종하므로 나아갔습니다.
모세같은 선지자도 지도자들에게도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출33:11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뒤 늘 따라야 할 계명을 십계명과 함께 성문화하셔서 그 행위 규칙대로 살면 함께 역사하시고 그렇지 않으면 형벌을 하시는 가운데 하나님의 존재를 알리시고 백성과 함께하심을 보이셨습니다. 동시에 직접 말씀하시는 경우와 성문화된 말씀 두 가지 방편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그리고 메시아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는 그때 선지자도 있었으나 세례요한으로 구약의 메시아 예언자는 끝이 납니다(마11:13). 그 뒤 사도들이 신약을 다 쓰게 되고 서기 100년쯤 되었을 때는 신구약 성경 66권이 완성이 되었습니다.
복음서 시대, 예수님이 직접 함께 하신 후 사도행전의 사도가 교회를 창설할 무렵에는 성령께서 그들과 함께 역사하심을 통하여 예수님을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이를 강하게 역사하시기 위해 행1:8의 유언대로 성령의 권능을 입어(행2:)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가 곧 예수라는 사실을 증거하는데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 뒤 신약이 완성된 후, 소위 교회시대에 와서도 그런 성령의 강한 역사는 있었으나 사도같지는 않았습니다.
20세기까지 교회의 역사는 가끔씩 성령님의 폭풍같은 강한 역사가 있기 했으나 늘 사도행전 같지는 않았습니다.
한국교회 역사에도 초기에 많은 권능의 역사가 있었지만 후대에 와서는 주로 교회가 종교교육의 현장 비슷한 정도로 권능이 약해졌습니다.
더 잃어버린 것은 복음의 본질적 사상이 흐려지고 심리철학이 동원되며 세상 잘 살아가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종교로 비하되어버렸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알 것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과 교회가 되려면 우선적으로 진리의 말씀을 사모하고 진리대로 살려고 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실 성령님은,
요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고 하셨습니다.
시31:6 ‘..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요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성삼위 하나님은 모두 진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은총의 사람이 되려면 진리를 사모하고 따르고 실행하려고 할 때 함께 하실 것이라는 보증입니다. 요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믿음은 어떤 경험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 하나님의 진리에 서서 살아가는 과정입니다. 성경 외에 딴소리로 믿음이라는 것들은 모두 이단 영입니다.
갈1:8-9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고후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2. 기도해야 함께해주심
설교에서 믿으라는 말을 할 수 있어도 지금 그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든가 모두가 승리를 공유할수 있다든가 하는 말은 객관성이 없습니다. 기도도 하지 않았고 믿음의 역사를 얻을만한 정신도 안 되어 있는 사람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간주해버리는 것이 타당성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도란 이름을 가졌다고 언제나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막9:에는 사도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실망이 되었을 때,막9:28-29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우리는 믿음을 지녔다고 자처하나 아는 만큼 역사를 할 수 있느냐 할 때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두 가지로 진리대로 일을 풀어나가려 하고 실제로 생활을 선택하며 실천하느냐에 따라 담력이 생길 것입니다. 또한 기도생활이 결정적으로 하나님이 함께해주시는 통로입니다.
세상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말씀대로 사는 자는 주님이 지켜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무장하고 열심히 기도하는 이와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역사하심을 믿으시기를 원합니다.
교회 직분이나 교단이름이나 예배당 크기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이 되지 못하면 외부적인 요소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으로 살 수 없다면 과연 우리는 기억만 하는 하나님을 모신다고 신앙생활하는 것이 유익하겠습니까? 유대인들이 신앙을 그런 식으로 형식만 가지고 있다가 망했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받았고 그 영이 이끄시는 대로 잘 따라서 진리 가운데로 역사하시는 체험적 신앙이 생활이 될 수 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 임마누엘은 듣기 좋다고 우리가 생각도 없이 축복의 말로 서로 자주 해대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화 되기 위해서는 진리 가운데서, 기도하므로 그 은혜를 입어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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