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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누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002 추천 수 0 2017.03.23 22: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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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6:9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6.9.28 성암감리교회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눅16:9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가 오신 한 참 후에도 성전에서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성전에서 종교의식을 했다는 말은 짐승을 잡아 제물로 바쳤다는 것입니다. 유월절에 비둘기와 밀가루 파는 상인들의 상을 뒤엎어버렸다는 예수의 사건이 바로 당시의 신앙풍습을 말해주는 것이죠.

 

그런데 서기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의 침략에 의해 완전히 불타 없어지고 맙니다. 성전의 불을 밝히고 제사를 올리던 사두개인들은 가문이 멸족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봉쇄되어 유대인 접근이 금지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제물로 제사를 할 수 없게 되겠지요. 그래서 제사 대신 생긴 게 경전 즉 탈무드를 공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모든 신앙인들은 탈무드 공부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오직 탈무드 공부를 통해 하나님과 합일을 경험할 수 있었고, 이 길 만이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니 모든 제의는 곧 탈무드 학습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4살이 되면 탈무드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렇게 해서 현자가 되는 게 모든 인생의 가치이며 신앙의 최종 목표였습니다. 서기 220년 에 유대교 성문법으로 편찬된 미쉬나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아버지와 탈무드 교사가 물에 빠지면 아버지가 아니라 탈무드교사부터 구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과거의 나를 낳아 준 부모지만 탈무드 교사는 미래의 나 곧 구원을 가능하게 해 주는 부모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스승은 다음 세상으로 나를 데려갈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죠.

 

마4:18-22을 읽어 보세요. 네 명의 어부가 고기 잡다 말고 예수를 만나자 마치 귀신에 홀린 것처럼 예수를 따라 나서는 장면을 보면서 조금 의아한 생각을 가슴에 품고 계셨을 겁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가치는 부모보다 스승을 따르는 게 바르고 훌륭한 일이었기 때문에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장면입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아버지는 내버려 두고’예수를 따랐다고 되어 있습니다. 탈무드를 배우는데 있어서 소득의 절반을 써야했습니다. 자기가 번 소득의 절반만으로 생활을 하고 나머지는 모두 탈무드를 공부하는데 써야 했던 겁니다. 육신의 부모도 자녀에게 교훈을 하지만 그 교훈은 객관성이 없습니다. 토라의 가르침과 부모의 가르침이 같은 게 아닙니다. 그래서 성서에 나오는 대부분의 ‘부모’라는 말은 사실 토라 선생을 일컫는 말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말도 유교의 그 부모가 아니라 토라를 가르치는 선생의 가르침을 잘 받으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중요한 성서 공부를 어떤 자세로 해야 하느냐? 그것은 마치 고시공부 하듯이 해아 한다고 말합니다. 절간으로 가던지, 고시 방으로 들어가던지, 문을 걸어 잠그고 죽기 살기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조들의 어록 2:16절에 보면 토라를 공부할 때는 회당 또는 학교에서 귀양을 간 것처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서 공부 하는 곳으로 귀양살이를 갈 것이다.

그것이 네 뒤를 따라 온다고 하지 말라.

네 동료들이 그것을 네 손에서 이루어준다.

 

눅16:9절에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 대목을 이해하는데 곤혹스러워 합니다. 그러나 선조들의 어록에 나온 것처럼 ‘네 동료들이 그것을 이루어준다’고 해서, 같이 토라를 공부하는 동료가 스승 다음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스승이 토라의 길을 안내하면 그것을 완성하는 것은 동료와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니 만큼, 세상의 재물을 다른데 쓰지 말고 토라 공부의 성취를 이루어 주는 동료를 사귀는데 쓰라는 겁니다. 다른데 돈을 쓰지 말고 토라 공부하는데 쓰라는 것입니다. 그게 불의한 제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희생제의에서 토라 학습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오죽 하면 회당과 신학교(예쉬바) 두 곳 중에 한 곳의 문을 닫아야 하면 회당 문을 닫아야 한다고 했을까요. 신학교를 살려두고 회당을 허물 만큼 토라를 배우는 일은 중요했습니다. 이제 이러던 유대교 신앙에서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 삶을 실현하려는 공동체를 고린도교회에 이룹니다. 처음에는 예수처럼 사는 것이었다가 차츰 예수를 숭배하기 시작했고, 드디어는 숭배의 정성 행위조차 ‘믿음’이라는 관념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러니 기독교는 토라공부에서 얻는 진리의 깨달음과 신과의 합일도 없고, 믿음을 내면화 하여 자신을 변모시킴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정성도 사라졌습니다.

 

오늘날 이단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종교집단들은 ‘예배’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배움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기존의 교우들은 이 ‘아는 것’에 걸려 넘어지거나 미혹됩니다. 기존의 기독교공동체는 그동안 배우는 일을 게을리 하고 신앙을 지나치게 의례화 의식화했습니다. 믿음이 관념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런 신앙의 태도를 되돌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성서강좌를 엽니다. 부디 불의한 제물로 친구를 사귀는 데까진 못 가더라도 속빈 자신이 내면을 들여다보기(Metacognition-메타인지)는 해야 할 게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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