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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을 두드려요(Knocking on heavens door).
누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370 추천 수 0 2017.03.23 22:43:57성경본문 : | 눅17: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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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허태수 목사 |
참고 : | 2016.10.12 성암감리교회 |
천국의 문을 두드려요(Knocking on heavens door).
*밥 딜런-2016년 노벨문학상
눅17:20-21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과 ‘에덴동산’이란 말을 같은 뜻인 줄 알고 있습니다. 천국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로 생각하죠. 즉 에덴동산이 곧 하나님의 나라이며 천국이라는 것이죠.
1500년대엔 에덴동산이 이 지구 어디에 있다고들 믿었어요. 그래서 콜롬부스가 1492년 8월 3일에 배를 타고 스페인의 팔로스 항구를 떠나는 겁니다. ‘에덴동산’을 찾으러 말입니다. 당시 콜롬부스를 비롯한 종말론자들은 산타마리아, 니냐, 핀타라는 배를 바다로 가다보면 ‘시팡구’가 나오는데 거기가 성경이 말하는 에덴동산이라고 믿었습니다. 이 ‘시팡구’는 오늘날의 일본입니다. 시팡구를 향해가던 콜롬부스의 배는 10월 12일 새벽에 드디어 에덴동산에이라 불릴만한 육지를 발견합니다. 그들은 거기가 그들이 찾는 에덴동산인 줄 알았습니다. 천국ㅇㄹ 찾은거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고 믿은 거예요. 그러나 그 섬은 산살바도르라는 섬으로 바하마 제도의 한 섬이었습니다. 일본과는 거리가 너무나 먼, 에덴동산은 턱도 없는 곳에 이른 것입니다.
이게 에덴동산을 찾으려는 신앙인들의 시도였습니다. ‘에덴의 추적자들’이라는 책을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 이후 하나님의 나라라고 일컬을만한 에덴동산을 찾기 위해 인생과 가산을 몽땅 바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콜롬부스가 그리고 또 다른 에덴의 추적자들은 에덴동산을 찾았을까요?
콜롬부스는 에덴을 찾을 때 황금이 있는지를 보고 에덴이라는 걸 알려고 했습니다. 그 이후 에덴의 추적자들은 성경에 나오는 대로 동산 중앙에 있었다는 두 나무를 보고 에덴인 걸 알려고 했습니다. ‘두 나무’가 있었다고 하니까 놀라는 분들이 있는데, 창3:22을 보면 “선악을 알게 되었으니 저들이 손을 들어 생명나무 과실도 따 먹을까 염려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 이렇게 두 그루가 있었던 거죠.
그러면 먼저 에덴동산의 있던 두 나무 중에 한 나무인 생명나무의 그 생명은 뭡니까? 생명이란 말이 히브리어로 ‘하임’입니다. 이 ‘하임’이라는 단어는 ‘살아있음’의 복수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들이쉬고 내쉬는 숨이 생명이 아니라, 매일매일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 생명입니다. 그 바로 그 살아 있음 자체는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는 순간의 연속인 거죠. 그게 생명입니다. 그걸 하늘과 이어주는 게 바로 나무고요. 생명의 영속성을 확인하는 바로 그것, 그게 생명나무 즉 ‘영생할까’두려워 하시는 그 나무입니다.
그러면 다른 나무, ‘지식의 나무’혹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뭔가요?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니까 ‘그럼 우리더러 선악을 구별하지 말라는 거냐? 바보처럼 멍청하게 그냥 살라는 것이냐?’라고 생각합니다. 혼란스러운 거죠. 그런데 이 ‘선과 악’이라는 표현은 히브리 사람들이 사용하는 고전문학 양식 중에 하나입니다. 이걸 [메리즘]이라고 하는데, 서로 다른 정반대의 단어를 나열하여 전체를 말하고자 할 때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선’이 있고 ‘악’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선악’이란 ‘전체’혹은 ‘모두’를 말하는 거죠. 이런 표현은 알파와 오메가 라는 표현과도 같습니다. 창세기의 첫머리가 알파고, 신명기의 마지막이 오메가입니다. 그러니까 ‘알파와 오메가’란 ‘전부’ ‘모세오경 전부’를 말하는 것이죠. 그러니 ‘선악을 알게 한다’는 말은 ‘전체를 알게 된다’ 또는 ‘하나님처럼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선악 다음에 나오는 ‘안다’라는 말이 중요한데, 이 말이 바로 ‘신만이 가질 수 있는 우주의 운행원칙’입니다. 이 [다아쓰]라는 ‘안다’는 말이 바로 ‘지식’인데,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경이로운 사건과 힘 같은 것을 갖게 된다는 뜻이죠. 우주의 운행원리, 원칙, 경이로운 지식들 말입니다.
뱀이 기독교에선 악마로 표현되는데 이는 중세에 등장한 이해입니다. 구약성경이 기록되던 시기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뱀이 바로 ‘다아쓰’를 소유한 동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뱀처럼 지혜로우라고 하셨습니다. 우주의 운행원칙을 알라는 것이죠. 전체에 도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지식의 나무’열매 즉 ‘선악과’를 다 먹고 눈이 밝아졌습니다. 신과 같이 전체에 도달한 것입니다. 22절에서 하나님도 이 사실을 인정합니다.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와 같이 되었다‘고 말하고 계시죠?
여러분에게 퀴즈삼아 문제 하나를 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 중앙의 두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뱀의 꼬임에 빠져 지식의 나무 열매를 먹었죠. 그러면 이들이 생명나무 열매도 먹었을까요, 안 먹었을까요? 우리가 뱀의 말을 추측하건데 먹었을 겁니다. 뱀이 이렇게 말하거든요. “만일 인간이 지식의 나무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의 경지인 전체에 도달한다. 그러니 그런 상태에서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않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지식의 나무열매와 생명의 나무열매를 모두 먹었을 겁니다.
그들이 이제 쫓겨나서 고생하며 살게 된 건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걸로 원죄설을 구성한 기독교지만, 사람이 두 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 신처럼 되었다는 사실은 인간이 유한한 삶을 살게 되지만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그런 영적인 지식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생명’은 ‘연속적인 살아 있음’이고 ‘선악’은 ‘전체 도달한 상태’니까요. 인간이 연속적으로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신과 같이 전체에 도달했다는 말은 이미 ‘영원’에 대한 길을 알아다는 것이 아닙니까? 지금 우리가 순간을 사는 거 같지만 사실은 그 순간을 영원이 되게 하는 비밀도 안다는 것입니다.
이 ‘에덴’이 바로 콜롬부스와 그토록 많은 신앙인들이 찾아 헤매던, 그리고 지금도 믿음의 사람들이 소망하는 ‘천국’이거나 혹은 ‘에덴동산’이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면 그 ‘천국’혹은 ‘하나님의 나라’ 혹은 ‘에덴동산’은 찾아 헤매면 되는 장소일까요? 아닙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만이 알 수 있는 전체적 인간이 되고’, 매일매일 ‘살아 있음’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그 상태가 천국이요, 에덴이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수메르의 쐐기문자에서 ‘에덴’은 하늘과 땅이 하나로 만나는 신성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수메르의 영향을 받아 이상적인 장소를 히브리어로 ‘에덴’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과 인간이 올바른 관계를 맺는 상태입니다.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는 건 뭔가요? 밖으로는 우주의 운행원리와 같은 큰 지식을 갖는 것이고, 안으로는 매일매일 살아 있음이 하나님의 뜻인 걸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게 인간과 신의 올바른 관계고, 이 관계는 장소와 시간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상태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 어디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너희 안에 있는 것이다”라고 하시는 겁니다. 이런 각자의 상태가 ‘에덴동산’이고, ‘천국’이고, ‘하나님의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니 크게 알아야 하고, 생명이 매일매일 이어지는 걸 하나님의 뜻으로 알며 살아야 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천국에, 하나님의 나라에, 에덴동산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댓글/ 이상건
에덴의 추적자들 서평입니다. 이현주 (목사.동화작가) : “세상에 무엇이 있다는 것은 그 기원이 있다는 이야기다. 제 기원을 추적하는 일은 아마도 인간들만이 할 수 있고 실제로 하는 일이겠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추방당한 ‘에덴’이라는 이름의 낙원을 찾아 나선, 이른바 지적 호기심으로 충만한 지식인들의 실화를 기록한 이 책에서 독자들이, 존재하는 그 무엇도 제 기원에서 떨어져 있을 수 없다는 우주의 법칙에 근거하여, 아담의 ‘그때 거기’가 바로 자신의 ‘지금 여기’임을 읽을 수 있다면, 그리하여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안다면, 이 책의 저자는 결코 헛수고를 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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