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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지배하는 세상

마태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308 추천 수 0 2017.03.23 22: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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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4:8-9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6.11.2 성암감리교회 

악마가 지배하는 세상

마4:8-9

 

지난 학기에 강의를 나가던 때의 일입니다. 강의가 끝나고 광화문에 있는 감리교 빌딩에 가서 누군가를 만나려고 택시를 탔습니다. 그런데 교문 앞을 나와 큰 길로 들어서려는데 교통경찰들이 도로에 쫙 깔려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일반 차량들을 통제하더니 경찰 오토바이 십여 대와 검은 차량이 독립문 쪽으로 내 달리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이 뭔지 아시겠지요? 그렇습니다. 이른바 브이아이피(VIP)께서 지나가는 길목에 재수 없이 들어선 거고, 그가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고 지나가게 하려고 장애가 되는 사람들, 자동차와 그 밖의 것들을 모두 한 순간 제거해 버린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바로 이것입니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단지 효율성만을 따지는 이 자본주의 사회의 달콤한 시스템에 관한 것이고, 이것이 바로 악마가 사람들을 유혹하고 지배하는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 악마의 꼬임에 빠져 나만의 편리와 이익을 위해 숱한 타인을 희생의 제물로 삼는 것입니다.

 

어릴 때, 횡성의 아주 깡 시골 초등학교에 다닐 때, 교육청 장학사가 온다고 하면 일주일은 유리창을 닦았습니다. 우리는 맨 날 유리창을 닦았는데 막상 그 날이 되니 이유도 없이 아무도 오지 않던 유년의 그 황망함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자주 작고 큰 행사에 동원이 되었고, 다 자란 이후에는 텔레비전을 통해 외국 대통령이나 우리나라 대통령이 외국이라도 나갔다 들어올 때 공항에서부터 수십만의 인파가 줄지어 서서 태극기를 흔들고, 통제되어 텅 빈 도로를 내달리는 까만 자동차와 그 자동차 위로 상체를 내밀고 웃으면 손을 흔들던 모습들이 남아 있습니다. 나는 그런 장면을 보며 두 가지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나는 저렇게 환영받는 탄탄대로의 인생이라야 사람이 산다고 할 수 있는 거로구나 하는 생각 하나와, 그 많던 자동차는 다 어디로 갔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어디 저 개인의 역사가운데 벌어진 장면뿐이겠습니까. 여러분 모두 이런 장면과 역사를 체득하면서 여기까지 살아왔습니다. 비록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귀빈이 지나갈 때면 경찰들은 비상상황에 돌입하고, 교통통제 관행은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교통통제는 왜 해야 하는 걸까요? 처음엔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요량입니다. 그곳을 지나는 이의 단순한 권위 때문이라면, 독재정권이면 모르되, 지금은 전혀 국민을 설득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럼에도 교통을 통제한다면 그건 아마도 그의 직무가 다른 이의 것보다 더 위중한 것이라는 국민적 동의가 전제되어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나는 그가 하는 일에 비해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 중요한 일을 하는 그를 위해 중요하지 않은 내가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동의하에서 정당화 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이익을 위해 분주히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렇게 교통을 통제하고 모든 사람을 우선하여 행동하는 이들은 사익이 아니라 국민의 공공적인 이익을 대변하는 일에 종사하는 자들이니 다른 보통 사람들보다 더욱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공직자의 업무 일체를 관장하는 고위 공직의 귀빈을 위한 교통통제에 국민이 자발적으로 동의하는 이유일 겁니다. 그들이 그런 당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당위성이 있기 때문에 국민은 어느 정도 개인의 불편을 감수할 각오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신의 업무를 ‘더 효과적’으로 수행하는데 방해가 되는 일체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 교통통제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시행되는 게 아닐까요?

 

다시 학기 중에 만난 어느 학생의 경우입니다. 제가 가르치는 이들이 나이든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자녀들이 고등학교나 대학을 다니고 있거나, 졸업을 시키고 늦게 평생교육으로 공부를 하는 이들이라 자녀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학교 구내식당에서 제가 학기 중에 두어 번 밥을 샀습니다. 그러자 친밀감을 느낀 어느 학생이 제게 자기 아이들 공부시키는 일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자녀가 둘 있는데 아이들을 모두 조기 유학을 시키려고 했었는데, 조금 늦어서 지금 보내려고 하는데, 어느 나라가 좋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세계화에 뒤지지 않는 자식으로 키우겠다는 생각에서 그는 그의 자녀들이 가장 효과적인 준비할 수 있게 준비시켜 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장차 그의 자녀들이 사회생활을 할 때 있을 법한 장애물들 중에 몇 개라도 제거해 주고 싶다는 것, 그는 자기 자녀들의 인생에서 일어날 시행착오를 없애기 위해 일종의 사사로운 교통통제를 기획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한 조치가 바로 유학인 것입니다.

 

사실 이 부모의 경우는 별난 게 아니죠. 우리 주변의 수많은 부모들이 실제로 그런 계획을 세우거나 실행함으로 자식을 위해 자신이 어떤 희생을 해야 할지 각오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영어 잘하는 사람이 되게 하려고 혀를 수술시키는 부모의 광기를 낳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자기 자식으로 하여금 시행착오 없이 인생을 살게 해 주려고, 아니 적어도 남들 보다는 덜 시행착오를 겪게 하려고, 남들 보다 유리한 고지를 먼저 차지하게 하려고 장애물을 없애주려는 것입니다. 물론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라는 그럴싸한 표현이 있지만 말이죠. 그러나 이것들은 개인적인 교통통제에 다르지 않습니다.

 

가만히 따지고 보면 이 세상은 이런 류의 ‘교통통제’의식이 신경망처럼 사람들 속에 깔려 있습니다. 장애물을 제거하여 가장 효과적으로 일을 수행하는 것을 우선하는 문화가 우리의 자본주의 문화입니다. 그리고 그걸 능력이라고도 합니다. 그건 다시 권력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권력이 있는 사람(그게 돈이든 정치든)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모든 일을 손쉽게 하는 법 아닙니까? 그래서 손 쉽게 하는 그 능력이나 권위를 동경하며 추구하며 사는 거 아닙니까? 이런 사회의식이 신경 줄처럼 뻗혀 있다 보니 개개인은 시행착오를 두려워하게 되고, 사회는 시행착오 하는 사람을 비난하게 됩니다. 남보다 빨리, 남보다 크게 성취하는 것을 격려하고 재촉하게 됩니다. 이러면서 점점 세계는, 인간 삶은 정글 속으로 편입되어 갑니다. 이런 폐단을 알면서도 세계가 그리 굴러가니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더 깊은 수렁으로 자기와 자식들을 그리로 들이밀고 있습니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회학자는 막스베버(Max Weber)라는 분입니다. 그는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이러한 효과적인 업무수행능력을 통해 ‘더 많은’ 발전을 이룩했고, 그리하여 인류에게 많은 이익을 부여했지만 동시에 바로 그것 때문에 세계는 암울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경쟁사회의 승자들을 ‘가슴이 차가운 관료들’이라고 묘사합니다. 이들이 지배하는 세상, 이들을 지배자로 만드는 세상에 대한 따가운 문명비평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작금의 대한민국이 겪는 아픔, 국가의 관료들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살지 않고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산 것을 알게 된 배신감은 바로 ‘교통통제 문화’와 같은 문명적 암세포에서 자란 것입니다. 교통통제문화와 같은 사회의식은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디든 장애물을 통과하는 귀빈은, 장애물이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세상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인식을 품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교통통제는 모든 사람이 매일매일 겪는, 그리하여 서로를 존중해주어야만 자신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일상적 현실로부터 그들을 차단합니다.

 

자식을 경쟁사회의 승자로 만들려는 부모의 욕망은, 그 시행착오가 제거된 인생을 선물해주고픈 부모의 교통통제 욕구는, 인생은 승리해서 남을 누르기보다는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관계를 통해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자녀에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기는 방법만을 강조하는 효율성 문화는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에 관한 생각을 마비시키는 악마의 유혹입니다.

 

광야에서 예수를 시험한 악마의 유혹의 요체는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영웅적인 능력을, 남보다 탁월한 권위를 통해서 무엇을 이룰 수 있다는 믿음, 더 빠르게, 더 손쉽게 세상을, 세상 사람들과 논리를 이겨보겠다는 욕망, 장애물 없는 탄탄대로를 달리는 공주의 마차에 올라타려는 욕망, 이것이 바로 악마가 예수에게 던진 유혹의 미끼가 아닙니까?

예수의 실천은 바로 이러한 유혹을 넘음으로써 시작됩니다. 예수를 따르는 우리의 신앙과 삶은, 교회는 바로 이러 문명의 유혹에 순순히 동조하지 않으려는 저항의 몸짓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악마에게 조종당하는 나라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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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이상건
안승준의 <국가에서 공동체로 - 붕괴된 한국의 공동체 회복시킬 사회생태학적 대안 모색>

서구사회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있다면, 한국사회에는 안승준이 있다. 안승준은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1991년 미국에서 사망한 젊은 생태학자였다. 그가 남긴 <국가에서 공동체로(From State to Community, 1994)>는 사회생태학의 시각에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 대한 거시적 비판과 새로운 대안 모색을 다뤘다.

안승준에 따르면, 한국의 성공적인 근대화는 고도로 중앙 집중화된 국가가 강력한 통제를 행사함으로써 달성된 것이었다. 이 산업화는 가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세계시장에의 의존 심화, 경제적 집중과 소득 불평등, 농민계층의 희생 등과 같은 구조적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들 가운데 안승준은 생태 위기에 주목했다. 한국 산업화의 역사는 국가에의 예속과 자율적 공동체 붕괴의 역사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는 생태 위기의 원인의 하나로 식민지 시대의 근대 국가 형성을 부각시켰다. 근대 국가의 형성은 자치적인 마을공동체를 무력화하는 동시에 파괴했고, 이러한 과정은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가속화됐다.

일방적인 자연 지배와 중앙집권적 국가관료제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안승준이 주목한 것은 머레이 북친의 사회생태학적 구상이었다. 생산자를 생산과정에서 분리시키는 게 근대 국가 형성의 핵심을 이뤘다면, 이를 극복하는 것은 그 생산과정에 생산자의 새로운 참여를 모색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안승준의 주장이었다.

안승준은 ‘공동체 토지 신탁’을 구체적인 방법으로 제시했다. 공동체 토지 신탁은 토지를 사용하는 개인들이 투자한 가치는 보유할 수 있되 그 토지 자체는 공동체가 관리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전략은 고유한 문화와 상호결속에 의해 형성되는 지역 공동체의 활성화를 겨냥하고, 나아가 그 공동체 속에서 인간이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실현해 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렇듯 이 책은 한국사회에서 공동체의 중요성을 계몽하고 생태학적 대안을 모색한 선구적인 저작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날카롭고 진지했던 안승준이 불의의 사고로 스물다섯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점이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한국사회 생태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을 게 분명하다. 영어로 발표된 <국가에서 공동체로>를 우리말로 옮긴 안창식은 안승준의 아버지다.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는 마음 시린 저작이다.

 [김호기의 세상을 뒤흔든 사상 70년](32)자본주의 문명의 한계 성찰한 생태학, 과거에서 답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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