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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대통령의 실패한 리더십을 통해 돌아본 교회 현장
김영봉 기사승인 2017.03.24 00:11:29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패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리더십 이론가들은 벌써 이 문제에 대한 분석과 집필을 시작했으리라. 나는 이 문제에 대한 전문가도 아니고 이 문제를 꼼꼼히 추적해 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보통 사람에게도 드러나는 두드러진 문제들이 있다.
그 문제들은 리더십의 다른 영역에서도 흔히 드러난다. 내가 속해 있는 목회의 영역에서도 박근혜식 리더십은 심각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만 적어 본다.
1. 소통의 부재 |
목회 리더십에서도 소통은 중요하다. 목회자와 교인들 사이에 막힘없는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목회자의 생각은 정직하게 교인들에게 전해져야 하고 교인들의 뜻이 목회자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목회자는 여러 통로를 통해 교인들의 생각을 들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교회는 소통이 가장 안 되는 영역 중 하나다. 대한민국 대통령제가 '제왕적'이라고 하는데, 한국교회의 목회자도 가히 제왕적이라 할 만하다. 제왕적인 차원을 넘어 신적 권위를 주장하기도 한다. 교인 수가 많아질수록 그럴 가능성은 커진다. 목사의 뜻은 하나님의 뜻으로 전달되고, 교인의 직언은 자주 사탄의 음성으로 정죄당한다. 임원회의(혹은 제직회)에서도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하달과 지시만 존재한다.
그동안 뉴스에서 본 각료 회의의 장면은 일방적인 지시와 하달의 형식이었다. 대통령 주변에 둘러 앉은 장관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엄숙하고 침울했다. 열정과 활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일방적인 의사소통은 이렇듯 한 조직의 생명력을 압살시킨다. 지도자에게 경청의 의지가 없다 싶으면 입을 다물거나 그 자리를 떠난다. 열정을 잃은 조직은 쇠락하게 마련이다.
2. 자존감의 결여 |
지도자가 소통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존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내어 놓기에 자신이 없다. 그 사람의 생각이 곧 그 사람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 앞에 자신의 생각을 꺼내 놓기를 주저한다. 자신의 의견이 논의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에 의해 거부되는 것은 더더욱 견디지 못한다. 자존감이 낮을수록 거부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 거부가 자신의 전부에 대한 거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드러난 사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자신의 생각에 자신감이 없었다는 것이다. 누군가 써 준 원고가 없이는 공개적인 말을 삼갔다. 심지어 각료 회의에서도 준비한 원고만 읽고 끝내기가 다반사였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청취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능력이 없었다.
얼마 전, 그를 '모셨던' 공직자의 글을 읽었다. 그가 겪은 박 전 대통령은 매우 총명하고 정치적인 감각이 탁월했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어찌 최순실같은 사람에게 의지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자존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는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인해 자신의 눙력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 이유는 심리학자들이 풀 과제다.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들이 대개 그렇다.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자신감을 잃었기에 충분한 능력이 있음에도 자신을 표현하기에 불안을 느낀다.
자존감이 결여된 목회자들에게서도 같은 행동 패턴을 본다. 언로를 활짝 열지 못하는 이유도 그렇고, 직언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설교를 통해 반격하는 이유도 그렇다. 자존감이 낮은 목사에게 강단은 피신처요 요새가 된다. 일방적인 선포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에게 자존감의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산 사람의 자존감은 더 이상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다. 그렇다면 두려움 없이 자신을 열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러지 못하는 목회자들이 많다.
박 전 대통령에 가까웠던 장관들조차 독대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 우리를 놀라게 한다. 믿어지지 않는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일대일의 만남을 두려워한다. 집단적으로 만나 일방 소통만 하려 한다. 자신을 은폐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일대일의 독대는 준비된 말만 할 수 없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3. 비선에 대한 의존 |
요즈음 초등학생들이 제일 선호하는 직업이 '비선 실세'라는 조크가 나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이 자신을 이용한 것이라 했지만 문제의 발단은 공적 라인을 배제하고 혹은 공적 라인 위에 비선 라인을 두었다는 데 있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인지상정에 있다. 편한 사람에게 의존하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경향성이다. 그것이 편하기는 하지만 결국 지도력을 속으로부터 갉아먹는 심각한 문제다. 리더십의 자리는 많은 경우 인지상정을 역행해야 하는 자리다.
목회의 영역에서도 자주 비선 실세에 의존하여 문제가 발생한다. 교회의 일들을 공적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편에 선 몇몇 사람들에게 의존하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로만 임원회를 조직하기도 한다. 때로는 임원회를 압박하는 사적 친위대를 조직하기도 한다. 사모가 비선 실세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임원회에서 결정한 것을 다음 날 목사가 뒤집어 엎는 일이 빈번하다"는 자조 섞인 고백을 가끔 듣는다. 목회에 있어서 사모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지만 공식 라인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한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김용갑 전 의원은 어느 인터뷰에서 "지금의 문제는 직언하는 보좌관이 없었다는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직언'은 그 의견이 관철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인데, 박 전 대통령은 그런 사람을 견제하고 내쳤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 곁에는 입 다물고 시키는 대로 "알아서 기는" 사람들만 남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목회 현장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누군들 반대 혹은 비판의 소리를 좋아하겠는가만, 그것이 주어진 권한을 오용하지 않게 하는 안전 장치일 경우가 많다. 물론 반대를 위한 반대 혹은 악의적인 비판도 없지 않다. 하지만 어떤 권력이든 견제 장치가 없으면 오용과 타락의 길로 미끄러진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방송을 국민의 적이라고 공격하고 있는 트럼프가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4. 진정성 없는 사과 |
리더십의 자리에 있는 사람의 잘못은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 의도성이 있는 잘못이든 실수이든 그것은 공동체 전체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태가 발생했을 때 지도자는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 하고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진정성 있는 사과의 과정에서 필수적인 요소는 세 가지다. 첫째, 문제의 소재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둘째, 그 문제에 대한 자신의 책임의 정도를 인정하는가? 셋째, 그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게 할 구체적인 방안이 있는가? 이 세 가지가 분명해야만 사과가 제 역할을 하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는 이 세 가지 요소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그래서 위기를 넘어가지 못했다. 그는 문제의 소재가 자신에게 있음을 부인했고 그 문제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과의 자리에서 보인 눈물이 자신의 잘못을 아파하는 눈물이 아니라 동정심을 유발시키려는 위장의 눈물로 보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재발 방지에 대한 약속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이 사건이 불거졌을 때 국민에게 했던 약속을 그 이후의 조사 과정에서 번번이 어겼다. 그때의 사과가 진실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사과하기에 가장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중 하나가 목회자들이다. 자존감의 결여도 이유가 되겠고, 목회자는 신성불가침의 존재라는 근거 없는 믿음도 이유가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문제를 정직하게 대면하지 못한다. 자기방어적으로 모든 현실을 보고 해석한다. 상황이 악화되어 사과를 한다 해도, 형식적인 말로 때운다. 사과의 자리에서까지 여전히 거짓을 말하고 자기를 변호한다. 이런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지만 그 눈물은 자신을 은폐하고 교인들의 동정을 자극하려는 수단이다. 상황을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피해 가려는 속셈이다.
이번에 많은 국민이 겪어 안 사실이지만, 한 공동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지도자가 그 문제에 대해 정확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으면 공동체 구성원들은 심한 좌절감과 갈등을 겪는다. 해결의 가장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의 상황 판단에 문제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교회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목회자가 바른 시각을 가지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깨워야 하는 이유다.
5. 잘못된 우선순위 |
박근혜 전 대통령은 독신으로서의 자신의 처지를 비유로 삼아 "국민과 결혼한 사람"으로 자신을 선전했다. 행복한 결혼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서로 상대방의 행복을 위해 섬기겠다는 헌신의 다짐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 원리를 뒤집는다. 나의 행복을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려 하는 것이다. 그것이 급증하는 이혼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박 전 대통령이 이 비유로 전하고 싶었던 말에는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실은 자신을 위해 국민과 나라를 이용해 왔음이 드러났다.
지도자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는 위기의 순간에 드러나는 법이다. 우선순위가 제대로 잡혀 있는 사람에게는 위기가 기회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지도자에게는 위기가 그대로 위기가 된다. 911 테러 사건이 일어났을 때 조지 부시 대통령은 신속하게 안전모를 쓰고 재난 현장으로 갔다. 그 위기가 부시의 흔들리던 지지 기반을 공고히 다져 주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일곱 시간 동안 대통령의 행적은 아직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 어디서 무엇을 했든, 수많은 사람이 속수무책으로 수장되고 있는 동안 대통령이 부재했다는 것은 그의 우선순위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미다. 게다가 일곱 시간 만에 나타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봉창 두드리는 질문이나 던졌다.
목회 현장에는 크고 작은 재난의 상황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런 상황에 목회자는 신속하게 응해야 한다. 모든 것이 무너진 듯한 교인들의 삶의 현장에 목회자의 존재는 엄청난 무게와 의미를 가진다. 목회자의 최우선 순위가 설교에 있다는 말은 평상시에만 적용될 말이다. 위기의 상황에서 목회자는 모든 것을 제쳐 두고 달려가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한 지도자의 진가는 따나는 모습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인용 발표 후에 취한 행동과 언사는 그가 어떤 가치를 가지고 4년 13일 동안 통치했는지를 보여준다.
지도자는 공동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자신의 잘못을 따져 보아야 한다. 그리고 억울한 면이 있어도 공동체를 위해 말하고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은 파면 이후에 나라와 민족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다. 나라가 쪼개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때 모든 문제를 자신이 끌어안고 자신으로 인해 분노한 사람들을 진정시켜야 한다. 지금으로서 갈라진 국민 감정을 치유하기에 가장 좋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박 전 대통령이다. 불행하게도 그에게는 그럴 마음이 없어 보인다.
목회자들은 하나님을 위해, 교회를 위해 혹은 성도들을 위해 인생을 바쳤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우선순위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말은 멋있게 하지만 행동은 늘 자기 자신의 이익과 명예에 있다.
특히 떠나는 뒷모습에서 그 사실은 여실히 드러난다. 수십 년간 훌륭한 설교로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었던 사람이 은퇴하면서 세습으로 혹은 전별금 분쟁으로 마각을 드러낸다.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해 목회해 왔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노출시킨다. 교인들이 갈라져 싸울 때 십자가를 지고 화해시키려 하기보다는 자기편을 선동하고 자극한다. 어쩔 수 없이 교회를 떠나야 하는 상황이 되면 교회가 몇 쪽으로 갈라지든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몫을 지키려 한다.
6. 반성으로서 |
글을 쓰다 보니 "너는?"이라는 내면의 음성이 들린다. 그렇다! 나는 이 글을 반성으로 쓰고 있다. 또한 앞으로의 나의 목회 여정에 대한 지침으로 쓰고 있다. 쓰다 보니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제는 우리 자신을 비추어 주는 거울임을 알겠다. 부디, 박 전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아 옷깃을 여미고 초심을 돌아보는 은총이 더 많은 이에게 있기를 기도한다.
김영봉 / 와싱톤사귐의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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