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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10: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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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0장 2절~12절: 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시몬은 예수를 따르기 전의 이름이고 베드로는 신앙고백 후에 받은 이름인데, 육신은 예수 믿기 전의 그 육신이고, 피부와 골격도 예수 믿은 후에도 예수 믿기 전의 그 육신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은 후 믿어 갈수록, 나이가 들고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이 달라져야 합니다. 내면적 속 사람이 달라져야 합니다. 인격과 사상과 정신이 달라지고, 소원 목적 취미 추구성이 달라져야 합니다. 예수 믿기 전의 자기를 보고, 또한 예수 믿은 후의 자기를 보고 서로 딴 사람을 보듯이 깜짝 놀라야 합니다. 예수 믿기 전의 친구가 현재의 나를 보고 깜짝 놀라야 합니다.
예를 들면 베드로의 친구가 와서 옛날처럼 ‘야, 내일 우리 고기 낚으러 가자. 고추장하고 코펠과 쌀하고 준비해 올께. 낮에 갈까, 밤에 갈까, 안식일 날 갈까?’ 해서 내가 ‘안 돼 내일은 주일이야!’ 하니 그 친구가 ‘그러면 오전에 예배드리고 오후에 가면 되지 뭐’ 이런 게 나오도록 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식구라도 가족들의 생일날이나 돌잔치나 환갑잔치 때에 나에게 ‘오너라, 가너라’ 하며 가족들의 입에 내가 오르내리지 않도록 아예 나를 그런 날에는 가족들이 의례히 참석하지 않는 사람으로 알고 제쳐 놓겠금 살아야 합니다.
제일 나이가 많고, 그리고 제일 먼저 부름을 받은 반석이라고 하는 베드로를 위시해서 제자들의 이름들이 나가는데, 만일 베드로가 옛날처럼 그 버릇으로 나간다면 그 다음의 사도들의 얼굴이 어떻게 되겠느냐? 사도라는 그 이미지가 어떻게 되겠느냐? 베드로를 사도로 뽑은 주님의 얼굴이 있고, 동역자들의 얼굴이 있고, 교회의 얼굴이 있습니다. 직분을 받은 자는 그 교회의 얼굴이 있고, 그 교회 목사님의 얼굴이 있고, 주님의 얼굴이 있습니다. 교인들도 주님의 얼굴입니다.
우리 교회에 주님이 보내신 사도가 있다, 그래서 나는 참 진짜 주님의 사도로부터 배우고 있습니다’ 하면 자랑스러울까요? ‘우리 교회는 유명한 연예가수가 와서 간증을 한다더라’ 하면 ‘와’ 하며 부러운가요? ‘우리 교회 목사님은 총회신학을 나오고, 대학원도 나오고, 미국에 가서 며칠만에 박사를 따오고, 목사님이 어떻게 바쁜지 목사님을 만나려면 1년 전에 예약을 해야 돼’ 하면 ‘와!’ 합니까? 그게 천국입니까, 세상입니까?
예수신학은 사람 바꾸어지는 신학입니다. 사람이 바꾸어지지 않는 신학은 신학이 아닙니다. 예수교회는 사람이 바꾸어지는 교회입니다. 사람이 바꾸어지지 않으면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르침은 예수 가르침인데, 참 교회인데 자기가 안 바꾸어지면 자기는 참 교회 밖의 사람입니다. 집사 장로 목사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의 형제 안드레~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형제가 한 본질의 예수를 믿는 것이 참 보기가 좋습니다. 온 가족이 한 본질의 예수 믿는 것 참 보기가 좋습니다. 한 형제라도 비 진리적, 이질적, 육적 교역자는 참 보기가 흉합니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자녀들이 교회를 따로 따로 나가는 것은 참 보기가 고약합니다. 잘못된 부부상입니다. 육체결합은 될지언정 부부를 통한 가정천국은 참 힘듭니다. 예수정신으로 결합된 형제, 예수정신으로 결합된 부부는 인간 궁극적 창조의 목적에서 바로 된 것입니다.
10장 3, 4절: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
‘예수를 판 자라’
이 마태복음이 예수를 팔아먹은 후 AD 50에서 70년경에 기록된 것이니까 역사적으로 보면 예수를 팔아먹기 전의 일을 기록하면서 ‘예수를 판 자라’ 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를 팔아먹기 전 12제자를 막 뽑아놓고 ‘예수를 판 자다’ 라고 마태가 기록해 놓았습니다.
왜 뒤에다가 기록해 놓았을까요? 별별 여러 가지 생각이 다 듭니다.
① 사도가 뭔지 하나님 앞에서 깊이 생각을 해 보았을까?
② 다른 동역자들처럼 왜 잘 믿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③ 동역자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는구나!
④ 교회에 슬픔을 안겨주는구나!
⑤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구나!
⑥ 아무리 사도라도 사람이 안 만들어지니 결국은 저 모양으로 제 갈 길을 가는구나!
⑦ 처음과 나중이 변질이 없어야 하겠고, 인생으로 끝맺음을 잘 해야 하겠구나!
⑧ 마지막 시대의 교역자들의 신앙의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고, 따라서 교회들의 신앙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⑨ 거짓 선생, 거짓 선지자, 거짓 목사, 거짓 사도를 제도적으로 찾지 말고 이스라엘 안에서, 더 나가서 지도자들의 신앙성분에서 찾으라는 것 같기도 합니다.
‘12사도는 누구 누구다’ 라고 이름만 기록이 아니라 ‘12사도는 누구 누구’ 해 놓고는 ‘가룟유다는 예수를 판 자라’ 한 것이 느낌이 씁쓸합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를 팔아먹기 전인데 예수를 팔지도, 안 팔지도 가룟유다 자신도 모르는데 마태가 가룟유다 이름을 불러놓고 ‘예수를 판 자다’ 라고 미래를 미리 끄집어 당겨 이미 판 것처럼 말을 했다면 가룟유다가 기분이 나빠서 홱 토라지면서 ‘나 12사도 안 한다. 내가 뭐 할 짓이 없어서 월급도 안 받고, 하루 일당도 안 받고 이 짓을 하는 줄 아느냐? 지금도 제사장한테 가서 양 잡는 심부름을 하면 하루 일당으로 은 30은 받을 수 있다. 나를 어떻게 보고 그렇게 말하느냐?’ 하며 기분이 되게 나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가룟유다의 당당한 말을 듣는다면, 특히 ‘하루 일당도 안 받고’ 하는 그 대목에서 가룟유다의 대단한 그 신앙의 말 한 마디에 ‘과연 쓸만한 놈이다’ 하며 달아 날까봐 벌벌 떨었지?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사건이 지난 후 그 말대로 맞았습니다. 만일 가룟유다가 되살아나서 이 성경구절을 읽는다면 기분이 나빠서 그 때 그 성질이 그대로 나올까요, 아니면 미안하고 죄송스러워서 얼굴이 홍당무가 될까요? 동역자 얼굴을 다 구겨 놓았고, 교회의 성도들 보기에 미안해서 ‘가짜 사도, 거짓 사도는 나였다. 예수 이름으로 이단 짓을 한 자는 나였다’ 하며 얼굴을 들 수가 없을까요? 무엇보다도 자기를 사도로 세워주신 주님께 대해 ‘주님의 나에게 대한 그 높으신 뜻을 저버리다니! 차라리 내가 사도가 되지 않았더라면 이제 와서 이 가슴을 쥐어뜯지나 않을 텐데!’ 라고 할까요?
가룟유다가 ‘예수를 판 자라’ 라는 이 성경구절을 볼 적마다 목매단 통곡을 하게 될까요? 울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면 ‘기독자들아, 내가 왜 목매단 통곡을 하는지 아느냐? 내가 왜 이렇게 창자가 끊어지는 줄 아느냐? 너희들은 목숨이 달아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돈 한 푼에 예수를 팔지 말고, 물질 때문에 진리 팔지 말고, 세상 인정 때문에 구원 팔지 말아라’ 라고 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사도들의 이름을 읽고 가룟유다의 신앙성, 소원 목적성, 통곡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속에 가룟유다의 성분을 모르면 가룟유다와 같은 일을 저질러 놓고 맙니다.
만일 가룟유다성을 아는 자에게 ‘너도 예수 그리스도를 팔 자라’ 라고 말한다면
① 미리 통곡을 하고 회개를 할까?
② ‘너만 주의 종이냐?’ 그 말을 하고 성을 벌컥 낼까?
어쨌든 자기 속에 들어있는 정신 사상은 반드시 하나님의 예정대로 사건화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을 자기가 저질러 놓는다는 말입니다.
가룟유다가 예수 당신을 팔아먹을 줄 아시는데 왜 선택을 했느냐? 몰랐다면 예수가 전지전능자가 아니지! 우리의 구원의 자격이 안 되지! 예수님께서 알았지마는 워낙 일손이 바빠서 일하는데 이용을 해 먹고 나중에 배 터져 죽게 하려고 선택을 했느냐? 만일 그렇다면 여기엔 하나님의 애정성이 없어집니다. 만일 몰랐다면 주님의 전지전능성이 없어집니다.
그렇다면 팔릴 줄 알면서도 왜 사도로 뽑았느냐? 예수님의 가르침은 특수적인 가르침인데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를 때에는 그 특수 가르침에서 듣게 하고 보게 하고 가르쳐주고 깨닫게 하시려는 것임을 알고 사도로 선택받을 때 자신을 다시 한 번 쳐다보고 회개하고 겸손해져서 자신에게 대한 주님의 소원 목적인 영원히 영광자, 존영자가 되는 이것을 깊이 깨달았다면 고맙고 감사하면서 얼마나 사람이 잘 만들어졌을까 하고 느껴집니다.
오늘날 가룟유다의 성분을 듣고 알고도 고치지 못한다면 그게 누구냐? 그는 가룟유다보다 더 악한 자라서 가룟유다에게 심판을 받을 자입니다. 소돔 고모라와 니느웨의 심판을 당할 자라면 얼마나 악한 자이고 악한 시대이겠습니까? 불신자들보고 하는 말이 아닌 줄 알아야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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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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