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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10:24-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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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0장 24, 25절: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제자는 선생 밑에서 배우면 그 선생의 실력을 닮기 마련이고, 종이 그 상전 밑에서 순종을 하면 상전을 닮기 마련입니다. 그 삶을 배우고, 그 실력을 써먹기 마련입니다.
‘높지 못하나니’ 라고 하는 것은 그 선생의 제자였고, 그 상전의 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 ‘높지 못하다’ 한 것은 그 이상은 없다라는 뜻인데, 주님 이상 모든 실력 능력 도덕성 인격 면에서 더 이상은 없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 모든 세상 사람들이 제 아무리 잘났다고 날고 기어도 주님 이하이지 주님 이상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선생으로 최고자시요, 주권자로서 최고자 이십니다. 능력자로서 만능의 능력으로 최고자 이십니다. 이 이상은 없습니다. 아무리 종교지도자들이 높다해도 말입니다. 그래서 제자가 그 선생 같으면 족하고, 종이 그 주인 같으면 족하다 한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닮으면 그 이상으로 족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제자가 선생으로 되고, 종이 주인으로 된다면 말입니다.
그리고 그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고 했으니 그 집 사람들이랴! 바알세불은 귀신의 왕이라는 뜻이고 사단이라는 말입니다. 당시에 종교인들이 예수님에게 그런 별명을 붙인 것입니다. 예수님께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했으니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역시 무시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고로 그 소리를 듣는 것이니까 섭섭하게 듣거나 고깝게 듣고 마음 상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성경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외식운동을 하는 종교지도자들과 바리새교인들이 그랬고, 지금은 성경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외식운동을 하는 종교지도자들과 세상으로 속화된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신앙의 노선을 걷는 자들을 이단시하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에서 말하고 있지만 일곱 교회 중 다섯 교회들이 주님의 책망을 들었습니다. 말세교회의 신앙사상의 흐름이 필연적으로 물질적이요 육체적이요 세상적이요 이단적이요 거짓적이요 마귀적으로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인도자는 지금 자기의 신앙사상의 흐름이 넓은 길인지 좁은 길인지, 신앙의 노선이 어느 길인지, 간구성의 계열은 어디인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① 기독교 구복주의 - 세상축복 위주.
② 기독교 신비주의 - 신유은사 위주.
③ 기독교 사회주의 - 세상 사회 위주, 봉사 위주.
④ 기독교 구국주의 - 세상국가 정치참여, 간섭 위주.
⑤ 기독교 은둔주의 - 기도원 굴속에서 사는 위주.
⑥ 기독교 세대주의 - 역사적으로 계산. 계시록도 ‘무슨 시대, 무슨 시대’ 하며.
⑦ 기독교 극기주의 - ‘시집 장가 가고 싶어도 참자, 배고파도 참자’ 하며 자기 몸을 학대.
⑧ 기독교 내세주의
예수님께서 어느 주의로만 살았느냐? 우리는 철두철미한 내세주의입니다.
내세주의란 오직 천국만 소망하고 현세에서 세상을 발로 밟고(발등상) 즉, 세상을 이용하고 활용하고 응용하여 자타의 하나님의 온전 즉, 성화구원을 잘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딤후3:16, 17. 마5:48) 이 신앙이 아니면 전부 다 세상에 속한 신앙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10장 26, 27절: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그들이 아무리 종교적으로 의인인 척, 죄가 없는 척 해도 주님의 말씀에 양심은 찔리는데 사람들이 자기 양심을 보지 못하니 남이 보지 못한다고 스스로 속여도 그것이 다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들 속에 무엇이 숨어서, 귀신인지 사단 마귀인지 무엇이 숨어서 그 행동, 그 활동이 나오는지 그것이 적나라하게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야 말할 것도 없지만 지금 이 현실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건이지만 자기는 누가 주었는지 모른다 해도 어쨌든 자기에게 사건이 왔을 때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나는 이런 사람이요!’ 하고 자기가 자기를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또 사건이 그 사람을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이렇소!’ 하고 다 들추어냅니다. 생각한 것, 마음먹은 것, 속에 들었던 것은 다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세히 깨닫고 보면 그 사람의 활동이, 자기의 활동이 은연중에 자기도 모르게 다 자기를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10장 27절: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예수님께서는 모르는 것이 없으십니다. 현재 사람들의 마음도 다 아시되 동시에 다 아십니다. 그 사람의 앞일까지, 세상의 되어질 일까지, 마귀의 활동까지 모르심이 없습니다.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
비밀스러운 말을 비공개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감쪽같이 알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도들을 무시하고 환난 주고 핍박을 주지만 예수께서는 다 사도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광명한 데서 말하며’
① 떳떳하게 자신 있게 담대하게 말하는 것이며 공개적입니다.
② 듣는 사람마다 시인을 할 수밖에 없는 말인 것입니다. 확실하게 분별이 되는 말이라는 말입니다.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비밀스러운 말들이)’
주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씀이 또 다시 들려오고 이해가 되고 순종이 됩니다.
‘집 위에서 전파하라’
공개적으로 높은 데서 전하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듣습니다. 주님은 사도들에게 귓속으로(숨은 것, 감추인 것) 소곤소곤 가르쳐주면 제자들은 지붕 위로 올라가서 외치고, 선포를 하고, 설교를 하고, 가르치고.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절대로 방해를 못한다는 말입니다.
10장 28절~31절: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우리 예수 믿는 기독교는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내 곁에서 떠나가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내 곁을 떠나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사람을 두려워 말라’
사람은 기껏해야 몸은 죽일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하나님의 허락 하에 말입니다. 몸을 죽이려고 해도 못 죽이는 때도 있습니다. 어쨌든 몸까지는 죽일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사람의 정신이라든지 사상이라든지 사람의 영혼은 못 죽입니다. 죽일 수가 없습니다. 죽일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몸도, 영혼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몸 신체를 불의 고통, 지옥의 맛을 보여줄 수도 있고, 그들의 영혼을 영원한 지옥의 꺼지지 않는 불 속에 영원히 집어넣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기독자들이 이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을 더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의식을 하고 마음이 약해지는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람을 두려워 말 것은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은 생명이 두 개입니다.
① 하나는 자연생명, 육신생명으로 이 생명은 부려먹는 생명, 소비되는 생명.
② 또 하나는 영의 생명. 중생된 영은 하나님의 생명과 직결된 영의 생명으로 자연생명은 죽어도 이 영의 생명은 영원히 안 죽습니다. 영의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영원히 사는 생명입니다. 자연생명은 밥, 물질을 먹고 살아도 이 중생된 영의 생명은 하나님 진리생명 말씀을 먹고 삽니다.
이방 세상 사람들은 육신생명, 자연생명 하나만 알기 때문에 이 육신생명이 죽을까봐 벌벌 떨고, 이 생명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필경은 죽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육의 생명과 영의 생명 두 생명을 가졌고, 영의 생명을 자기의 주격적인 원 생명으로 삼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신앙을 사수하면서 육신의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참 생명은 영의 생명입니다. 이 생명 때문에 살고, 이 생명을 위해서 사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믿는 것입니다. 인간의 진정한 가치는 이 영의 생명에 있는 것입니다. 육의 생명을 위해서 예수 믿고 사는 것은 전부 다 날탱이들입니다.
10장 29절~31절: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모든 우주만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서 창조되었고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세상만물은 다 하나님 아버지의 소유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주권적으로 통치 보존 섭리하십니다. 여기 나오는 참새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새는 아주 흔한 새입니다. 한 앗사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의 16분의 1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흔하고 값싼 참새가 사람의 손에 팔려 죽는 위기에 있다 할지라도 인간의 손에 사라지지 않게도 할 수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섭리에 있는 것입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그 만큼 세밀적이고 자상하게 보살피신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머리 빗다가 머리카락이 몇 개 빠지고, 아침에 머리 감다가 머리카락이 몇 개 빠지고, 아침에 머리 긁다가 머리카락이 몇 개 빠지고 하는 그것을 다 아실까요? 한 사람도 아니고 수 십억의 사람의 머리카락을! 머리카락을 붙잡고 싸우다가 머리카락이 몇 개가 빠졌는지 다 아실까요? 머리카락을 심으신 분이 모르시겠습니까? 가만히 보면 머리카락 하나하나 간격이 일정한 것 같아. 한 웅큼 쥐고 한 자리에 푹 꽂아 놓은 것이 없어요.
중국에서 불어오는 황사 그 먼지가 몇 개인지 다 아실까요? 황사의 먼지 숫자가 많을까요, 우주공간의 별의 숫자가 많을까요?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암산력이 빠르시고 기억력도 대단하십니다. 인간의 조그만 두뇌로서는 상상도 안 됩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을 알진대야 왜 안 믿겠느냐? 모르니까 의심을 하고 안 믿지!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자기가 많은 참새보다 귀한가? 존재 가치적으로, 존재 목적적으로 그렇게 느껴집니까?
①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인간 외에 다른 피조물을 만드실 때는 이 말씀이 없다.
② 지은 목적 면이 달랐고,
③ 신령천국 상속권이 있고,
④ 영원천국에서 누림성이 있다.
인간 우리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이 있고, 영능의 실력이 자라도록 아버지 하나님의 특별 간섭이 있었고, 천군 천사들이 나의 성화구원을 위해서 늘 비상대기를 하고 있고, 사건 환경 존재가 다 동원이 되고, 목적이 귀하고, 출생이 귀하고, 누림이 귀하고 이렇게 귀하게 여겨주는데 여기서 인간 자기가 귀한 자로 만들어지지 못한다면, 자기가 자기를 천한 자로 여긴다면 모든 만물이 와서 자기를, 사건이 와서 자기를 짓밟아 놓을 것입니다. 그런 자기에게는 짓밟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의 귀함이 참새와 비교할 소냐?
우리의 귀함이 일반인과 비교할 소냐?
우리의 귀함이 천사와 비교할 소냐?
주님께서 오셔서 십자가로 구속하시기까지 한 귀한 사람이 아니더냐? 신령세계인 그 천국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애정적 인격적 수수관계로 살 우리들입니다. 이렇게 귀하니 귀하게 만들어지자 그 말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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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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