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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계3:1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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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허태수 목사 |
참고 : | 2017-01-04 춘천 성암감리교회 |
지금은 플루토스가 눈을 뜰 때 입니다.
계3:17-19
기독교에서 하나님을 부를 때 ‘데오스’또는 ‘디오스’라고 합니다. 이는 본시 그리스의 신 제우스에서 나오는 말로 ‘최고의 신’이나 ‘우두머리 신’을 부를 때 쓰는 용어입니다.
우리는 유일신을 믿지만 고대 그리스나 고대인들은 여러 명의 신이 협력하여 세상을 다스리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여러 신들 중에 제일 강력한 우두머리 신이 제우스입니다. 그리고 그 밑으로 장사(삽업)의 신 헤르메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중재의 신 크레뮐로스, 부자의 신 즉 돈의 신인 폴루토스가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신들이 있었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인물들은 이쯤이기 때문에 이들만 소개했습니다.
아리스토파네스라는 이가 그의 외동아들을 위해 신전으로 빌러 갔습니다. 이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비는 내용이 이것입니다. ‘내 외동아들이 이제 인생을 살 때 못할 짓이 없이 교활하며, 불의에 능하고,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사람으로 살게 해 주세요.’였습니다. 이게 인생의 성공을 얻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해서였습니다. 이렇게 외동아들이 아버지가 신에게 기도하자 그걸 들은 크레뮐로스라는 중재자의 신이 그를 데리고 어느 집을 찾아갔는데 그가 바로 ‘돈의 신’ ‘부자가 되게 해주는 신’ 플루토스신이었습니다.
자, 여러분 생각에 이 부자의 신, 돈의 신의 풍채는 어떠해야 할까요? 그 어떤 신보다 기름진 모습과 여유와 행복이 철철 넘쳐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들을 위한 기도에 응답을 받고 아버지가 초대받아 간 ‘돈의신’의 몰골은 영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유인즉 이렇습니다.
“제우스가 이렇게 만들었네. 소싯적 나는 정직하고 현명하고 점잖고 욕심없이 나누는 사람에게만 방문하도록 되어 있었네. 헌데 제우스가 나를 장님으로 만들었어. 내가 그런 사람들을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말야.” 본래 돈의 신인 플루토스는 정직, 성실, 근면, 정의의 수호자였습니다. 그런데 제우스가 그의 눈을 멀게 하여 그런 사람을 찾아가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 이후 이 폴루토스라는 돈의 신은 돈이 찾아가야하는 그런 사람과는 정반대인 시기와, 기만과, 협잡과 욕심의 공모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본래 돈의 신은 열심히 노략하고, 힘써 나눠서 정의를 이루려는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신이었습니다. 그게 폴루토스의 의무였습니다. 그러면 제우스는 왜 돈의 신의 눈을 멀게 하여 거짓과 술수의 협잡꾼들이 부자가 되게 한 걸까요? 이건 이렇습니다. 만약 제우스가 있고 플루토스가 있어서 제우스가 우두머리고 플루토스는 눈이 밝아 부자가 될 만한 사람들에게 부자가 되게 했다면, 사람들은 제우스와 플루토스 두 신 중에 누구를 더 찾고 사랑했을까요? 제우스보다 플루토스를 더 사람들이 우러르고 존경하고 사랑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제우스는 플루토스에게 돈을 늘리는 재주만 주고 돈을 나눠주는 능력은 거둬서 자신이 차지했던 것입니다. 이게 부자의 신 ‘플루토스가 장님이 된 이유입니다.
이런 자초지종을 크레밀로스가 듣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를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부탁하여 장님에서 눈을 뜨게 해주겠다고 말입니다. 크레뮐로스의 부탁을 받은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가 부자의 신, 돈의 신이지만 장님이 된 플루토스의 눈을 뜨게 해줍니다. 플루토스가 눈을 뜬 다음에 제일 먼저 한 일은 이겁니다. “내 친구들인 농부들을 불러줘. 그들은 아마 들판에서 일만하고 있을 거야. 그들더러 이리 와서 플루토스가 농부들을 위해 마련한 선물들 가운데 각자 자기 몫을 받아 가지고 가라고 해줘.”
자, 이제 여러분에게 여쭤보겠습니다. 부자의 신, 돈의 신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다시 그의 본성 즉, 공정한 나눔, 성실, 근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주기 시작한 거죠. 이러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요? 완전히 뒤집어 집니다. 혼돈과 분노가 난무했습니다. 세상이, 사람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 중에 가장 분노한 신은 상업의 신 헤르메스였습니다. 여하튼 프루토스가 눈을 뜨자 세상이 변했습니다. ‘각자의 몫이 각자에게 돌아가는’ 그런 세상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겪는 이 시대의 정치적, 경제적, 인간성의 혼란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요? 각자의 몫이 각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부자의 신이 눈이 멀어서 부자가 될 만한 사람에게 찾아가지 않는 까닭입니다. 이것이 정의, 분배, 자유, 공평, 인간 존중과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그 스스로 눈이 멀어서 눈먼 돈의 신 플루토스를 추종했습니다. 그게 옳은 가치관인 줄 알았습니다. 아닌 줄 알면서도 은근슬쩍 장님의 대열에 편승해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지금 힘 있는 장님과 힘없는 장님만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눈이 감긴 돈의 신 플루토스는 힘 있는 장님들과만 짝을 이뤄 세상을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이 시대의 혼란은 바로 그 눈먼 플루토스가 눈을 뜨는 때 입니다. 플루토스가 제 눈을 뜨면 온갖 격변이 일어납니다. 인간의 이성과 경험과 관성을 넘어서서 말입니다. 시대적으로는 프랑스혁명이나 미국의 독립과 같은 일들이 역사적 증거입니다. 울가 겪는 이 혼란은 바로 그 혁명의 징조, 플루토스가 눈을 뜨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동안 장님 플루토스를 붙들고 살던 사람 개개인은 어떻게 되나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도 눈을 떠야 하는 겁니다. 완전히 새로운 눈으로 세상과 세상의 일, 인간 개개인의 가치관, 삶의 방향성과 삶의 목적에 대해서 새로운 눈을 떠야 하는 겁니다.
만약 돈의 신, 부자의 신인 플루토스가 눈을 떴는데 인간들이 눈을 뜨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제우스가 다시 플루토스의 눈을 닫아 어둡게 할 것이고, 그러면 인간들은 영원히 돈의 노예가 되어 그 악마의 사슬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세상은 정의롭지 않을 거고, 공평하지 않을 것이며, 자유며 사랑은 공허한 구호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혼돈의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눈을 뜨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안약을 사서 여러분 각자의 눈에 바르고 보시길 바랍니다. 세상은 눈을 뜨는데, 부자의 신 플루토스는 눈을 떴는데, 사람이 눈을 감고 살아서 그 부자의 신의 초대에서 멀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게 요한의 숙제였던 것처럼, 지금 이 시대 우리의 존재론적인 과업인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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