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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누가복음 양창천 목사............... 조회 수 307 추천 수 0 2017.06.01 23: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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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1-4 
설교자 : 안창천 목사 
참고 : d3왕의사역 평신도제자훈련원 http://d3.or.kr 

무엇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눅1:1-4

2015.4.12


오늘부터 절기나 성령께서 특별히 말씀하시지 않으면 누가복음을 지속적으로 강해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본서의 저자는 ‘누가’입니다. 누가는 의사, 역사가, 이방인이기 때문에 누가복음에는 이러한 누가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의사이기 때문에 다른 복음서보다 예수께서 당시 소외당하던 각종 병든 자들, 귀신들린 자들, 여인들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또 그는 역사가이기 때문에 다른 복음서보다 저술가들의 글을 면밀히 살피고 있을 뿐 아니라, 시대적인 환경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 그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다른 복음서 기자와는 달리 헬라 역사가들이 기록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즉 먼저 수신자와 편지를 쓰는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먼저 수신자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수신자는 데오빌로 각하입니다. ‘데오빌로’란 말은 하나님이란 뜻의 ‘Theos’와 사랑한다는 뜻의 ‘Philos’의 합성어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혹자는 데오빌로가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데오빌로가 알고 있는 것을 더 알게 하려고 편지를 썼다고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데오빌로 다음에 각하라는 칭호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데오빌로’를 특정인의 이름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봅니다. 누가는 데오빌로가 누군가로부터 예수님에 대해 듣고 배웠지만 무언가 미심쩍어 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을 알리기 위하여 이 편지를 보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2000년 전, 누가가 데오빌로 각하에게 보낸 편지를 살펴보아야 할까요? 그것은 누가가 개인적으로 데오빌로 각하에게 보낸 편지이지만 이 편지의 주인공은 데오빌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편지의 주인공은 데오빌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약 2천 년 전, 세계사에는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예수님은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고 당시 역사가들의 눈에는 별 볼일 없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한 마디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킬만한 인물로 생각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나사렛에서 자라서 갈릴리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소개하다가 33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젊은 청년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역사를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누신 분이십니다. 역사를 ‘History’라고 하는데 이는 ‘his’와 ‘story’의 합성어로서 예수의 이야기가 바로 역사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은 단지 역사를 기원과 기원후로 가르는 분기점만 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계 22: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분이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훌륭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도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으로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시는지를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한 번 누가복음 1장 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누가는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의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 이루어진 일’이 무엇일까요? 좁게는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그러나 넓게는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을 뜻합니다. 즉 예수께서 어떻게 태어나셨고, 그분이 어떻게 사셨고, 어떻게 사역하셨고, 어떻게 죽으셨고, 어떻게 다시 살아나시고 승천하셨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공생애기간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시고, 물위를 걷기도 하시고,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수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인류역사 이래 이러한 삶을 산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의 생애와 사역은 신비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런 일에 대하여 목격자가 있었고, 일꾼 된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사역 초기부터 3년간 함께 따라 다니면서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목격한 자들입니다. 즉 그분의 제자들과 그분을 따라 다녔던 많은 여인들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이 신비였지만 그것은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는 제자들에게 의해서 사실로 확인된 그 ‘신비’를 찾아내고 연구하여 편지를 보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시고, 수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사실은 사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실 자체를 주관적인 잣대로 판단하여 취사선택 하는 것은 사실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실을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사실에 대한 의미는 바뀔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을 사복음서가 기록하고 있지만 복음서마다 다소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자체는 바뀌지 않습니다. 사복음서가 각각 관점이 달라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결코 왜곡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십자가와 부활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믿지 못하고 신화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이성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은 양파 껍질을 벗기듯이 하나하나 벗겨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에 붙잡혀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예수의 생애 가운데 동정녀 탄생과 부활을 사실로 믿지 않고 신화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요? 기독교 중심에 하나님은 사라지고 사람만 남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눈높이에 갇혀있는 기독교는 죄와 사망과 심판의 굴레에 갇혀있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을 죄와 사망과 심판과 지옥의 굴레에서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신비한 일들을 이성의 잣대로 의심하지 말고 이미 검증된 사실로 알고 그런 기적이 자신에게도 일어나기를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비한 것을 ‘사람을 통해서’ 전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은 신비 중의 신비입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시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얼마든지 신비한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을 직접 목격한 자들을 통하여 그들의 언어로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우리와 동역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사실, 즉 복음이 우리와의 동역을 통하여 널리 전파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승천하시면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복음서마다 다소 다르지만 누가복음에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받아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속에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성령 하나님과 우리가 동역자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전능하십니다. 그분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혼자서 일하시지 않고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방관자로 있으면 안 됩니다. 복음을 먼저 받은 자로서 복음을 함께 전달해야 할 책임이 있음을 절감해야 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가 양극화 현상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가 너무 심합니다. 공부나 한다고 하는 아이들이 들어가려고 하는 특목고에 다니려면 한 달에 최하로 3,4백만 원은 듭니다. 중고등학생을 둔 부모의 나이는 일반적으로 40세 초반에서 중반이기 때문에 직장생활을 할 경우는 보통 연봉이 4-5천만 원 정도이고, 좀 더 받는 사람들은 7-8천만 원 정도입니다. 그래서 직장인 부모는 이런 학교에 보내고 싶어도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돈이 많은 사람들은 과외 한 과목 당 800-1000만 원을 주고 합니다. 부잣집 학생이 좋은 대학에 들어갈 확률이 훨씬 높아져 가기 때문에 이제는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을 듣기가 점점 힘들게 되었습니다. 왜 우리 사회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가진 자가 가진 자로서의 책임을 감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노블레스 오빌리주의 실천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을 주시는 것은 혼자서만 배부르고 자기 마음대로 펑펑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없는 자와 함께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즉 가진 자는 안 가진 자와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혼자서 그 복을 누리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복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책임을 온전히 감당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은 점점 더 타락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으니까 세상이 교회를 세속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음의 동역자로 삼으셨음을 알고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누가는 ‘목격자들’과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해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기 위해 어떻게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3절을 보십시오.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누가는 이루어진 일을 자세히 미루어 살펴보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자세히 살펴보았을까요? 자신이 좀 더 정확히 알아야 올바로 전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면 주님을 바로 전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지식으로 만족하지 말고 주님을 좀 더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많은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좀 더 알려고 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겸손히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 지식도 끝이 없는데 어떻게 이 세상을 만드신 주님을 제대로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겸손한 마음을 갖고 좀 더 주님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구원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우리가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는 피와 땀을 흘리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복음을 확실히 전하기 위해 성경을 부지런히 읽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해서 습득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비신자에게 예수님을 믿도록 할 수 있을지를 계속해서 연구하고 개발해야 합니다. 제가 집필한 책 가운데 전도소책자가 몇 권 있습니다. ‘진짜 주인이야기’, ‘명품인생이야기’, ‘진짜친구이야기’, ‘진짜아버지이야기’ ‘콩 심은데서 팥을 거두는 이야기’ 등입니다. 이런 소책자 하나를 출판하려면 적어도 2백만 원이 듭니다. 게다가 책값이 저렴할 뿐 아니라 판매금이 조금씩 들어오기 때문에 언제나 재정적으로 쪼들립니다. 그런데 이런 책들을 계속해서 출간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 하면 복음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데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얻은 구원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노력은 목회자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는 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려고 했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누가가 여러 가지로 예수님에 관한 것을 더 알아 데오빌로에게 편지를 보냈던 것은 그로 하여금 더 확신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자가 복음을 자세히 아는 것과 그 복음을 전해 듣는 자의 확신이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복음을 알면 알수록 그것을 전달할 때에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같은 말을 해도 그 말을 확신하고 있는 정도에 따라 그 말이 전해질 때에 미치는 영향이 다릅니다. 따라서 우리가 복음을 능력 있게 전파하기 위해서는 복음을 더 우리 안에 충만히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초대교회의 평신도들에게 파격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까? 그것은 사도행전 5장 42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초대교회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라고 한 번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가르쳤습니다. 예수께서 구원자라고 반복을 하자 그들안에 복음이 충만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나가서 복음을 담대히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순교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3분복음스피치를 암송하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주 3분 복음스피치를 반복하면 예수께서 구원자이심이 굳게 믿어져서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다른 사람에게 큰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보다 나은 삶을 살기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학생은 학업 성적을 올리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직장인은 승진을 하기 위해 직장에 충성하고, 사업하는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수고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것보다 더 힘쓰고 노력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복음을 어떻게 하면 전할 수 있는지를 가지고 애를 써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이 아니면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도 복음이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것도 복음입니다. 이보다 더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이것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누가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더 알기 위해 노력하고 더 안 것을 가지고 데오빌로에게 편지를 보낸 것처럼 우리도 복음을 잘 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누가처럼 복음을 보다 더 잘 전하기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은혜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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