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나이 많아 임신이 불가능한 사가랴 부부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장차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전한 말, 즉 수태고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천사가 미리 잉태할 것을 알려주는 ‘수태고지’는 여기에만 등장하지 않고, 성경에 여러 번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구약에 등장하는 수태고지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수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수태가 고지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가 1차적으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을 들은 때는 75세였습니다. 아내의 나이는 65세였습니다. 그 나이는 경수가 끊어진 나이입니다. 2차로 수태고지가 있었던 때는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사라의 나이 89세였습니다. 도저히 낳을 수 없는 나이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 말을 듣고서 웃으며 심중에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하고 의심했고, 장막 뒤에서 이를 들은 사라도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 등장한 수태고지는 연령으로 임신이 불가능하거나 불임증을 앓고 있는 자들에게 들려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수태고지를 하실 때에 한결 같이 임신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계시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에게 수태고지가 전달된 것을 보면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불가능한 일이 없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수태의 기적은 사가랴에게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적은 상식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언제 어떻게 임할지 알 수 없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다 늙은 나이에 아들을 낳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그것은 현실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상황이 절망적일지라도 여전히 주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생각지도 않고 보지도 못한 일이 현실이 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가랴는 수태고지를 듣고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18절을 읽겠습니다.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이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무엇하는 사람입니까? 날마다 하나님께 나아가 제사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즉 제사장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하신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사가랴 제사장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우리가 살펴보았지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에 웃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모습인 것입니다. 입으로는 믿는다고 말하지만 얼마나 믿음이 없는지 모릅니다. 문제가 생기면 기도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믿음이 없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온 교회가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무슨 기도를 했겠습니까? 풀려나기를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풀려 나오자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계집아이가 베드로의 소리를 듣고 문을 열러 갔다가 너무 반갑고 놀라서 문을 열어주지 않고 안에 들어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왔다고 하자 그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네가 미쳤다”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녀가 “내 말이 참말이라”라고 하자 “그러면 그의 천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수태고지에 대한 사가랴 부부의 반응을 보면서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나의 믿음의 현주소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믿음이 없음을 깨닫고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이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과 더불어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간구에 믿음을 달라는 기도제목이 빠질 이유가 없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귀신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가 예수님께 와서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달라고 하자 예수께서 아주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의 아버지가 한 말이 있습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그는 주님께 믿음을 구했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에 믿음을 구하시길 축복합니다. 특별히 ‘절대적인 믿음’을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절대적인 믿음이 무엇입니까? 눈에 보이는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에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왜냐하면 돈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구원자로 생각해야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지식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지식은 합리적인 사고를 하게하고 교만하게 하므로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실을 예수께서 미리 아시고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사가랴가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을 믿지 않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20-22절입니다.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가 성전 안에서 지체함을 이상히 여기더라 그가 나와서 그들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가 성전 안에서 환상을 본 줄 알았더라 그가 몸짓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말 못하는 대로 있더니.” 사가랴가 수태고지를 들었을 때에 이를 믿지 않자 수개월간이나 벙어리로 지내야 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합니까?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으면 그에 따른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아도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안 믿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뀝니다. 믿으면 구원을 받고 믿지 않은 상태로 죽으면 지옥에 던져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이미 말씀을 믿고 구원을 받았어도 또 지속적으로 말씀을 믿지 않으면 그에 따르는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내용을 한치의 의심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닣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자주 읽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경의 내용이 자신에게 이해가 되지 않아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통해 낳을 아이가 어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5절을 읽겠습니다.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한 마디로 요한이 ‘주 앞에 큰 자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람 앞에서 큰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큰 자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 큰 자가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영원히 큰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큰 자가 작은 자가 되고 작은 자가 큰 자가 되기도 합니다. 즉 세상에서는 큰 자가 되어도 일시적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한번 결정된 것은 영원합니다. 즉 주 앞에서 큰 자라는 것은 영원히 큰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무엇 때문에 큰 자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6절을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무엇 때문에 주 앞에서 큰 자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스라엘백성들을 주님께 많이 돌아오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큰 자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께 사람들을 돌아오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주님께로 향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큰 자가 됩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금주에 ‘자유사상가가 다녀온 천국과 지옥’이라는 책을 출간합니다. ‘이안 맥코맥’ 이라는 사람이 평소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쾌락을 좇아 살다가 야간 다이빙을 하던 도중에 맹독성 상자해파리에 쏘여 죽은 후 천국과 지옥을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세상에 보내시면서 그에게 주신 미션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과 사후세계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 사명을 주시고 다시 그를 살리셔서 세상에 보내셨을까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몰라 지옥을 향해 달려가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한 사람이라도 더 주님께 인도하기 위해 노력하므로 하나님 앞에 큰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오셔서 이런 아들을 낳게 하실 것을 말씀하셨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나이 늙어 자녀를 낳을 수 없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세례 요한을 낳은 것은 하나님께 그들에게 엄청난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즉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수고로 세례 요한을 낳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세례요한에게 임한 은혜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그들이 어떻게 이런 은혜를 받을 수 있었는지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받은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요?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사가랴 부부가 의롭게 살았기 때문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무슨 의미입니까?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아무에게나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아가는 자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물론 구원은 은혜로 받습니다. 즉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우리의 선한 행실과 전혀 무관합니다. 죄를 범한 인간도 구원의 은혜를 받습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가 택함을 받은 것은 그의 의로운 행실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부르셨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택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잘못된 확신을 가지고 바르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는데 혈안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들이 구원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구원받은 그리스도들에게 임하는 은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에는 순종하려고 몸부림을 치지 않으면서 기도만 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계명대로 살아가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따라서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싶다면 기도도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쳐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맡은 바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8-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쌔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본문은 사가랴가 제사장으로 직무를 하나님 앞에서 행하고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처럼 제사를 드린 것은 다윗 시대부터 성전에 봉사할 제사장을 24반차를 따라 세웠기 때문입니다. 당시 제사장이 약 2만 명으로 일 년에 1주일씩 2번 봉사를 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가랴가 차례를 따라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있을 때에 천사가 나타나서 수태고지에 관한 소식을 전한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때에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은혜를 받기 원한다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자신에게 맡겨준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그곳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셋째로,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3절을 읽겠습니다.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이 본문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당시 사가랴는 나이가 많아 자식을 낳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지만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끈질긴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원한다면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도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최적의 상황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상관없이 자신이 꿈꾸고 있는 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곳에 더처치를 개척하고 곧 D3선교센터를 건립하여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된 것도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우리의 비전이 이뤄지도록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기도하면 우리가 수고하고 애쓰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도는 기적을 불러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기적같이 일어난 사건은 지금도 저와 여러분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믿었던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기적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하나님 앞에 보였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즉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의로운 삶을 살아가고, 자신이 맡은 직분을 잘 감당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기도를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임한 기적이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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