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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벳에게 통큰 믿음을 배운다

누가복음 인창천 목사............... 조회 수 309 추천 수 0 2017.06.02 23:5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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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57-66 
설교자 : 안창천 목사 
참고 : d3왕의사역 평신도제자훈련원 http://d3.or.kr 

엘리사벳에게 통큰 믿음을 배운다

눅1:57-66

2015. 5.17

우리는 지난주 마리아가 어떻게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그가 한나의 기도를 암송해서 찬가를 부를 정도로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삶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말씀을 가까이 하면 믿음이 견고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가 엘리사벳과 오랜 기간 교제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은 나이가 늙어 임신할 수 없는 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수태고지를 받고 임신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성령충만한 엘리사벳과 교제하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두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믿음이 견고하게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믿음의 사람과 교제하면 믿음이 견고해집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까? 자신의 믿음을 상대방의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은 한 주간 마리아의 믿음에 영향을 미친 두 가지 요소에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전보다 말씀을 가까이 하셨습니까? 그리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 교제하셨습니까?


오늘 본문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세례요한을 낳고 이름을 지어주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엘리사벳은 나이가 많아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아이를 낳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58절을 읽겠습니다.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그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 누가는 주께서 그를 크게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크게’ 긍휼히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크게’ 긍휼히 여기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녀에게 긍휼을 베푸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긍휼에는 일반적인 긍휼과 특별한 긍휼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긍휼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베푸시는 긍휼입니다. 예를 들어 악인이나 선인이나 햇빛과 공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반면에 특별한 긍휼은 특정인에게만 베푸시는 긍휼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엘리사벳이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 엘리사벳에게 베푸신 긍휼은 일반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여인은 일반적으로 아이를 낳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에게 베푸신 긍휼은 특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여인이 아이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특별한 긍휼은 엘리사벳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저와 여러분에게도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아담의 후손으로 결코 구원 받을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주셨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죄에서 해방되어 구원받은 것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은 것보다 더 크게 긍휼을 입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께 얼마나 크게 긍휼을 입은 자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크게 긍휼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실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감격과 기쁨이 넘치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크게 긍휼을 입은 자라라는 것을 깨달아야 삶의 의미를 찾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가 어떻게 낙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둘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함께 예레미야애가 3장 19-23절을 찾아 읽겠습니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예레미야 선지자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자신의 소망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긍휼이 무궁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어떤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긍휼을 새롭게 느끼면 소망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께 크게 긍휼을 입었는지를 새삼 깨닫고 하나님께 더욱 소망을 두게 되기를 바랍니다.


당시 유대의 아들 선호사상은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단순히 아들을 선호하고 우선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아들의 탄생은 온 세상의 기쁨의 근거요, 딸의 탄생은 온 세상의 슬픔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남아 선호사상은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녀가 아들을 낳았으니 얼마나 기쁘고 소망이 넘쳤겠습니까? 그러나 그녀의 기쁨은 잠시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곧 아이의 이름 때문에 갈등을 겪기 시작합니다. 60-61절을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그 어머니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 그들이 이르되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이름을 지어야 합니다. 그런데 엘리사벳은 아이를 낳기 전부터 성령께서 아들을 낳으면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에 요한이라고 부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친척들은 지금까지 그렇게 이름을 지은 적이 없다며 다르게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때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심각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순히 아들의 이름을 짓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천사를 통해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느냐 아니면 인간의 생각과 전통을 따르느냐의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보통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지금처럼 핵가족 시대라면 몰라도 당시 상황은 가문의 생각을 개인의 생각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그녀가 내린 결정은 무엇이었습니까? 사람의 생각과 전통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이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신념과 경험과 전통을 버리고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신념과 믿음이 겉으로는 비슷하게 보여도 실제로는 정반대입니다. 신념의 기초는 자신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원수지간입니다.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른 것이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입니다. 한 동안 한 여성이 법륜스님과의 대화한 것이 유투브에 올라와서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 여성이 법륜스님에게 묻습니다. “10년 전 친정엄마가 갑작스레 돌아가셨습니다. 언니들과 함께 엄마의 극락왕생을 기도하며 절도 많이 했는데요. 그런데 정말 극락이란 것이 있습니까? 엄마가 거기에 가신 거 맞을까요?” 그러자 법륜스님은 뜻밖에도 이 여성의 질문에 성경말씀을 인용하여 답합니다.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너희 것임이라”(마 5:3). 그러자 그 여성은 “천국이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되묻습니다. 그러자 법륜스님이 ‘천국이 너희 것임이라’는 말 앞에 무슨 말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 여성은 ‘믿는 자에게’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법륜스님이 이제야 알겠냐고 묻자 그 여성은 알겠다고 답하고 대화를 마칩니다. 그런데 법륜스님이 말한 ‘믿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천국이 있다고 자기 생각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신념입니다. 즉 자신이 천국이 있다고 믿으면 천국이 있는 것이고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천국이 있고 없고는 자신의 생각에 달린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믿음은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좇을 것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좇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만나게 됩니다. 이럴 때에 엘리사벳처럼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선택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엘리사벳이 아들의 이름을 짓는 일에 있어서 친족들의 제의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엘리사벳이 이미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기적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나이가 늙었기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대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때 엘리사벳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아!,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는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녀에게 이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전통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우리는 그런 경우를 아브라함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그가 100세에 낳은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이 어떤 아들입니까? 25년만에 얻은 아들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그 명령에 어떻게 반응을 했습니까? 즉시 순종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즉시 순종할 수 있었던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이에 아이를 낳게 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대로 아들을 낳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경험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주 하나님의 약속을 삶 속에서 누려야 합니다. 눈을 굴리면 눈사람이 만들어지듯이 말씀의 성취를 자주 경험하면 큰 믿음이 생겨서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여러분에게 큐티를 날마다 보내드립니까?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 하므로 말씀의 성취를 삶 속에서 경험하면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연습하는 자가 경기에서 이길 수 있듯이 날마다 말씀으로 살아가는 자만이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 여러분의 물질과 기도의 후원에 힘입어 5박 3일 간의 캄보디아 선교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우리가 선교여행을 다녀올 상황이 아니지만 가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자, 하나님께서 물질을 주시고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설교 후에 말씀을 드리겠지만, 이런 경험이 우리에게 준 유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비전이 성취될 것이라는 확신이 더 강해지게 된 것입니다. 즉 ‘D3왕의사역’을 통하여 세계복음화를 이루실 것에 대한 확신이 더 커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말하지 못하던 사가랴의 입이 열리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65-66절을 읽겠습니다.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골에 두루 퍼지매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이르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 하니 이는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심이러라.”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꼈고, 그 일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온 유대 산골에 기적에 관한 소문이 두루 퍼졌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는 곳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고 그분의 이름이 두루 퍼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된 자가 사가랴가 아니라 그의 갓난 아들인 요한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말하지 못하던 사람이 말하는 기적이 일어났으면 그 사람에게 시선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요한의 작명사건을 통하여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라고 생각하며 그들의 모든 관심을 요한에게 쏟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요한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하셨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장차 요한이 대단한 인물이 될 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할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요한을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하신 것은 요한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혹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신다면 그것은 우리를 높이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드러내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뜻밖의 물질을 주시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게 하시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는 물질과 명예와 권력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교만으로 나아가게 하고 죄에 빠지게 하여 결국은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헐리우드에서는 가끔 배우들과 영화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함께 아침 식사를 나누며 최고급 영화배우나 유명 인사를 초빙하여 간단한 연설을 듣습니다. 한번은 세계적인 사진잡지 라이프 표지에 얼굴이 실린 적이 있었고, 룩크라는 유명 잡지에서도 ‘미국의 최고 미인 열 명중의 한 사람’으로 뽑힌 콜린 T. 에반스가 출연했습니다. 이 여자가 마이크 앞에 앉자 박수와 휘파람 소리로 장내는 흥겨운 환영의 물결이 넘쳤습니다. 그녀는 입을 열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이 한 마디에 장내는 박수와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운수 좋은 행운의 사나이는 누구냐는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곧 이허게 대답했습니다. “네, 저는 예수그리스도라는 분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너무나도 예상외의 대답에 온 장내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게 조용해졌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영화배우의 일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겠다고 했습니다. 콜린 T. 에반스는 그 후에 목사와 결혼하고 선교사로 나갔습니다. 한 번은 빌리 그래함 목사가 이 부부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물어보았습니다. “콜린 자매님은 헐리우드의 그 별과 같은 성공을 물리치고 주님을 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헐리우드의 스타나, 영국의 여왕의 자리나, 미국의 대통령 자리와도 지금 저의 위치와는 바꿀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저에게 이처럼 귀한 분입니다.” 94장 찬송하시겠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고 말씀에 순종한 엘리사벳에게 통큰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기위해서 평소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삶에 적용하므로 말씀의 맛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을 주시거나 높여주시는 것은 그분을 높이 드러내라는 뜻으로 알고 그분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주님을 드러내는 일에 쓰임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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