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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4:23-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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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 (2039) |
굳건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로마서 4장 23-25절)
<구원의 믿음을 가지는 방법 >
본문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 믿음의 원리를 설명하는 로마서 4장의 결론적인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위한 예표였습니다(23-24절).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 부활하셨습니다(25절).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담대한 순종의 발걸음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근거를 둡니다. 또한 양심과 감정이나 기적이나 체험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 근거를 둡니다. 참된 구원의 믿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특별히 3가지에 좌우되지 마십시오.
1. 논리에 좌우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이성과 논리에 호소해 믿음을 심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선악과를 왜 만드셨는가? 사람은 몇 살로 부활하는가? 예수님은 언제 재림하는가? 천국은 어디에 있고 어떤 모습인가?” 등등의 어려운 주제에 대해 그럴듯한 정교한 해답을 제시하며 전도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성적인 정교한 논리가 참된 구원의 믿음을 주지는 않습니다.
파스칼은 ‘신의 존재에 대한 도박’이란 주제로 이런 논리를 폈습니다. “신이 존재함에 내기걸 때 그가 옳으면 구원을 얻지만 옳지 않으면 약간 손해를 본다. 반대로 신이 존재하지 않음에 내기걸 때 그가 옳으면 손해는 없고 큰 유익도 없지만 그가 옳지 않으면 구원을 잃는다. 내기걸 때는 손익을 계산해야 한다. 결국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보다 믿는 것이 이익이 많다. 그러므로 주저 없이 신이 존재함에 믿음의 승부를 걸라.”
그런 논리가 의도는 좋지만 참된 믿음을 주지는 않습니다. 예전에 이 파스칼의 논리를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썼습니다. “시한부 종말론을 믿어서 옳으면 영생을 얻고 옳지 않으면 약간 손해를 본다. 그러나 시한부 종말론을 믿지 않아서 옳으면 손해는 없고 큰 이익도 없지만 옳지 않으면 영생을 놓친다. 그러므로 시한부 종말론을 믿으라.” 시한부 종말론을 믿어서 틀려도 손해가 없습니까? 아닙니다. 그런 헛된 믿음을 통해 교주에게 시간과 물질과 마음 등을 얼마나 빼앗겼습니까? 논리적인 믿음의 설득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2. 목격에 좌우되지 마십시오
요한복음 20장을 보면 왜 도마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까? 자기 눈으로 목격하는 것만 믿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부활하신 예수님이 8일 후에 다시 오셔서 도마에게 말했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그때 도마가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하자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보는 것에 믿음의 근거를 두지 마십시오.
두 아이가 바닷가에서 석양을 바라볼 때 한 아이가 수평선으로 가라앉는 해를 보고 말했습니다. “야, 저것 봐라. 해가 물로 빠져든다.” 옆의 아이가 말했습니다. “저건 해가 물로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돌기에 그렇게 보이는 거야.” 먼저 아이가 주장했습니다. “너는 눈도 없니? 저기 봐. 분명히 해가 물로 빠져들잖아.” 옆의 아이가 또 말했습니다. “저건 지구가 돌기에 그렇게 보이는 거라고 얼마 전에 아빠가 그랬어. 나는 아빠 말을 믿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리가 아닙니다. 눈에는 진리가 아닌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 진리라고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믿으십시오. 자신이 약하게 보여도 하나님께서 강하다고 하시면 강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했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셨다면 예수님 안에 있는 성도도 ‘세상을 이긴 자’가 됩니다. 세상을 이긴 자는 누구보다 강한 자입니다. 그처럼 자신이 약하게 보여도 실제로는 강한 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3. 감정에 좌우되지 마십시오
믿음 생활을 잘하려면 감정이 아닌 말씀 위에 믿음이 굳게 세워져야 합니다. ‘감정적인 믿음’이 아닌 ‘순종적인 믿음’을 보여주십시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감정과 순종의 격렬한 투쟁을 벌이실 때 마태복음 26장 39절, 42절, 44절에서 세 번이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며 감정을 이기고 순종하셨습니다. 그런 의지적 순종이 참된 믿음의 징표입니다.
바다에서 항해할 때 순풍이 불면 돛을 올려서 ‘기분 좋은 감정’으로 노래하며 나아갑니다. 그러나 역풍이 불면 돛을 내리고 두 소매를 걷고 두 팔에 힘을 주고 ‘의지적인 행동’으로 노를 저어야 합니다. 참된 믿음은 역풍이 불 때도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부들이 말에 의하면 순풍이 불 때보다 역풍이 있을 때 태킹(tacking)이란 기술을 이용하여 배를 더 빨리 진행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믿음만 잃지 않으면 고난 중에 더욱 놀라운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결국 구원의 믿음이 주는 핵심적인 축복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이고, 부수적인 축복은 어떤 일을 만나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 기쁨과 평안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역풍 중에 헛된 믿음은 쉽게 흔들리지만 참된 믿음은 말씀의 반석 위에 건축되었기에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 믿음을 견고히 하는 삶 >
믿음을 견고히 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실천적인 삶의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으십시오. 믿음의 길은 쉽지 않은 고난의 길이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누가 은혜를 받습니까? 굳건한 주일성수는 기본입니다. 그처럼 예배하는 삶을 기본 바탕으로 겸손해야 하고 윗사람에게는 순종할 줄 알고 아랫사람에게는 은혜를 베풀 줄 알아야 합니다. 위로는 드리고 옆으로는 나누고 아래로는 베푸는 ‘드나베의 삶’은 은혜의 문을 여는 핵심 열쇠와도 같습니다.
둘째, 즐겁게 교회생활을 하십시오. 교회생활은 믿음생활의 원천입니다. 교회에서 전해지는 말씀을 통해 견고한 믿음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고 교회 봉사를 통해 행동하는 믿음을 실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어떤 성도는 교회생활을 즐겁게 하고 싶지만 상처도 많고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나 받기보다 줄 각오를 하고 권리주장보다 책임이행에 힘쓰고 불평보다 감사를 앞세우고 자랑보다 사랑을 앞세우면 즐거운 교회생활이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셋째, 좋은 믿음의 동료를 많이 가지십시오. 결혼할 때도 믿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좋습니다. 믿음의 기둥을 하나 이상 굳게 세울 때 가정 행복의 가능성도 커집니다. 친구도 믿는 친구를 사귀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믿는다고 하면서 교만하고 자랑하고 감사를 모르고 돈에 집착하고 제 몫만 챙기는 약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현실을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은 감사를 아는 좋은 성도가 되기에 힘쓰고 좋은 성도를 옆에 두기에도 힘쓰십시오. 믿음이 약해져도 좋은 믿음의 동료가 있으면 금방 일어설 수 있습니다.
넷째, 현재적인 믿음을 가지시오. 믿음과 희망은 다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믿음은 미래의 희망형인 ‘바라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완성형인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믿음은 ‘가질 것’이 아니라 ‘가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1장 24절에서 말씀했습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예수님은 “받을 줄로 믿으라.”고 하지 않고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해야 그대로 된다고 하셨습니다.
월새기(월간 새벽기도)를 발행하면서 200페이지가 넘는 책을 택배비까지 계산해서 한 권에 약 700원 받는 결정을 할 때 사람들은 염려했지만 저는 믿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만약 재정 부족으로 발행이 중단되면 거기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진행시켰습니다. 그런 믿음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월새기 사역이 기적적으로 지속되고 있습니다. 현실은 부족해도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믿고 믿음의 행진을 하십시오. “언젠가는 되겠지.”라고 하면서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가만히 있지 마십시오. 믿음이 현재형으로 나타나게 하십시오.
< 굳건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
믿음을 아는 것에서 끝내지 말고 실천과 행동과 모험이 따르게 하십시오. 말씀대로 행하는 신앙이 참된 신앙입니다. 때때로 마귀가 다가와 낙심시키고 두려움에 빠지게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미 마귀의 정수리를 깨뜨리셨기에 마귀는 성도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십시오. 부러워하면 지는 것이고 두려워하면 더 지는 것입니다. 마귀가 두려움을 줄 때 예수님이 주신 승리자의 DNA를 가지고 두려움과 유혹을 물리치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마귀는 이길 가망이 없는 사람은 아예 찾아오지도 않고 넘어갈 만한 사람에게 수시로 찾아옵니다. 그래서 두려움은 고난을 벌게 합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찾아와 두려움으로 마음 문을 두드릴 때 담대히 믿음의 고백을 하십시오. “악한 마귀야! 교활한 사기꾼아! 모든 계산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이미 끝났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그처럼 강한 믿음을 가지고 두려움이 임하는 초동 단계부터 두려움을 진압해야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전화해서 실직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그때 마귀가 불안과 두려움으로 마음의 문을 두드립니다. 그때 “큰일 났네. 이제 망했네.”라고 초동 반응을 하면 마귀가 신나게 그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때 마음속에 계신 성령님은 성도의 믿음 없는 모습에 탄식하실 것입니다. 그런 불신적인 초동 반응을 한 후에는 눈물로 울면서 기도해도 반전의 역사를 일으키기 힘듭니다. 마귀의 역사를 이미 마음속에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실직 소식을 통해 마귀가 마음 문을 두드릴 때 “이제 망했다.”라고 반응하지 말고 즉시 하나님은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믿고 고백하십시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는 줄 믿습니다. 지금까지 수고했던 남편을 위로하게 하소서!” 이렇게 마귀의 역사를 초기에 진압하고 그 다음에 간절히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인정해 피할 길을 내어주시고 더 좋은 길을 예비해주십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신세타령을 하라는 말씀이 아니고 계속 믿음의 고백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어느 날, 한 목회자가 맹인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빌! 제일 중요한 것은 당신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담대한 믿음의 고백을 늘 하세요.” 그때부터 맹인은 이렇게 말하고 다녔습니다. “저는 맹인이지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은 그가 믿는다고 하다가 미쳤다고 놀렸습니다. 아이들도 놀렸습니다. “야, 볼 수 있는 맹인아!” 그런 조롱을 들을 때마다 그는 상처를 받기보다 오히려 “아멘! 아멘!”이라고 반응했습니다. 그 모습을 하나님은 불쌍히 보시면서도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얼마 후 그가 이발소에 갔을 때 이발사가 은근히 조롱했습니다. “빌! 당신이 볼 수 있는 맹인이면 혼자 머리를 깎지 왜 여기에 왔소!” 그때 맹인은 그 조롱이 자기보다 예수님을 조롱하는 것으로 여기고 소리쳤습니다. “여보! 나는 진짜 볼 수 있는 맹인이오!” 바로 그때 사람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바로 자기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극적인 얘기가 보편적인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그런 얘기를 보편적인 얘기처럼 하며 치유를 선전하거나 약속하면 거의 ‘종교사기’입니다. 그런 얘기에 현혹되어 몰려가면 교주는 억만장자가 되고 순진한 교인은 마치 주식사기에 속은 개미처럼 마음과 육신이 병들어 죽고 믿음생활에서 혼돈과 회의와 회한에 빠집니다.
그 맹인이 볼 수 있게 된 사실보다 볼 수 있든지 볼 수 없든지 상관없이 참된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런 신실한 믿음을 통해 그에게 상상을 초월한 가장 선한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처럼 사느냐 죽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 것이 중요합니다. 볼 수 있어도 감사하고 볼 수 없어도 감사하는 전천후 감사신앙을 가질 때 지켜보는 사람들이 믿음의 거룩한 도전을 받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 신앙을 통해 큰 영광을 받게 되고 자신에게도 가장 선한 역사가 펼쳐질 것입니다.
참된 믿음을 가지라는 말씀은 먹기 힘든 단단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런 말씀도 잘 먹어야 합니다. 진짜 힘은 먹기 좋은 부드러운 음식보다 먹기 힘든 단단한 음식을 먹을 때 생깁니다. 성년이 되면 단단한 밥을 먹어야 하듯이 단단한 말씀도 먹을 줄 알아야 성숙해집니다. 단단한 말씀이 입에서는 써도 영혼을 살리는 말씀이 됩니다. 늘 바른 말씀을 통해 참된 구원의 믿음을 가지기에 힘써서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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