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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13:18-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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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3장 18절~23절: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그런즉 씨를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우리는 씨뿌리는 비유에서 자기의 마음 밭과 사람들의 마음 밭을 잘 살필 줄 알아야 되겠고, 따라서 이 마음 밭에 떨어진 씨도 잘 살필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가치와 판단과 평가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영원히 손해나고 손해 볼 짓은 하지 말아야지! 진짜 농부는 씨도 잘 고르고 밭도 옥토로 만들어 소출을 많이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13장 19절: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길가 혹은 길바닥에 떨어진 씨인데 깨닫지 못하니까 빼앗기느냐, 빼앗아 가니까 못 깨닫느냐?
못 깨달으니까 빼앗겼는데 이게 누구의 책임이냐?
① 준 자가 책임이 있다?
② 빼앗는 자가 책임이 있다?
③ 빼앗기는 자기가 책임이 있다?
만일에 주는 자가 딴 것을 주었다면 준 자가 큰 책임이 있습니다.
4절과 19절을 연결을 시켜보면 천국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할 터인데 못 깨달으니 손해가 많습니다. 마귀가 다 무시를 합니다. 왜 못 깨달았느냐? 밭이 딱딱했습니다. 왜 길처럼 딱딱해졌느냐? 많은 사람들이 밟았기 때문에 딱딱해졌습니다.
시골에 가면 그런 곳이 많은데 동네마당은 작고, 또 밭 모양이 제 마음대로 되었거나 집에서 길로 나갈 때 밭 때문에 빙 돌아서 가야 하는 길이 많습니다. 밭에서 가을추수를 다 하고 나면 빈 밭이 되어 버립니다. 그 밭가에 말뚝을 박고 새끼줄을 쳐 놓지만 얼마 안 가서 새끼줄이 삭아 내려 안습니다. 그렇게 되면 처음에는 아이들이 밭가로 빙 돌아가지 않고 빨리 가려고 밭 가운데로 가로질러 갑니다. 이러다 보니 너도나도, 아이고 어른이고 가로질러 다니데 되니 그만 딱딱한 길이 밭 가운데로 빤하게 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동네아이들이 모여서 축구를 하기도 하고, 야구놀이도 하고. 이러니 밭 전체가 그만 운동마당이 되어 버립니다. 애들을 따라서 동네 삽살개도 뛰어다니고, 밤에는 동네 개들이 몰려와서 개싸움 하느라고 개판이 벌어집니다.
봄이 오면 밭 주인은 그렇게 된 밭을 좋은 밭으로 만들기 위해서 밭 가장자리 사방으로 빙 둘러가면서 튼튼한 말뚝을 박고 철조망을 쳐버립니다. 이렇게 해 놓고 가만히 내버려두면 비가 오고 눈이 오면서 땅에 물이 스며들어서 얼었다, 녹았다 합니다. 땅속에서 얼음기둥(서릿발)이 생겨 흙을 쳐들고 일어나니까 흙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봄이 되면 밭을 갈고 씨를 심기 편해집니다. 그런 것처럼 내 마음 밭으로 세상 소원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다니지 못하도록 진리사상으로 철조망을 쳐야 합니다.
그런데 말이 쉽지 이게 그렇게 안 됩니다. 그래서 진짜 밭 주인인 하나님께서는 사건이라는 철조망을 갖고 오셔서 사람을 울게 했다가, 으스스하게 오한이 들게 했다가, 뜨거운 열이 나게 했다가 하게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 밭을 옥토로 만들어 진리의 씨가 잘 떨어져 성령의 열매라는 소출을 많이 얻게 하려고 함입니다. 그러니까 원망을 말고 감사할 줄 알아야지!
마음 밭이 옥토가 되면 씨가 안 굴러다닐 것이고, 흙 속에 뿌리를 내릴 것이고, 악한 자가, 마귀란 놈이 빼앗지도 못할 것이고. 일단 누구든지 마음이 길바닥인 줄 알아야 합니다.
13장 20, 21절: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돌밭에 뿌리워진 씨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았지만 그러나 말씀으로 인해서 환난 핍박이 오니 그만 넘어져 버렸습니다.
이 넘어진 이유가 어디 있느냐?
① 환난 핍박 때문이다?
② 신앙에 뿌리를 깊이 안 내렸기 때문이다?
③ 바닥에 깔려있는 돌 때문이다?
선악과 따먹고 저주를 받게 된 이유는?
① 하나님 때문이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었기 때문에!
② 뱀 때문이다?
③ 여자 잘못이다?
④ 남자 잘못이다?
내가 망한 것은
① 다 너 때문이다?
② 내 실수이다?
씨가 밭에 떨어진 후에는 비바람이 반드시 오는 것입니다. 오는 이유는 뿌리를 더욱 깊게 내리게 하려는 것인데, 그런데 밑에는 돌밭이 되어 놓으니 뿌리를 내릴 수가 없습니다. 결국은 말라죽고 말았습니다. 소출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호미를 가지고 갈짝갈짝해서는 안 되고 힘이 들더라도 힘센 소에다 멍에를 얹혀서 쟁기로 깊게 갈아엎어 가지고 돌을 골라내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잘 받는다고 해서 그게 다가 아닙니다. 바닥에는 필연적으로 교만한 돌이 있습니다. 말씀을 뿌리는 자나, 말씀을 받는 자나 이것을 의식해야 합니다. 자기를 늘 돌아보고 살피고, 또 말씀을 받고, 그리고 또 자기를 살피고 뿌리가 내리는 면에서 방해가 되는 것은 자꾸 골라내고.
‘예수 잘 믿으면 육신생활이 뭐든지 잘되고, 환난 핍박도 없어지고 잔잔한 바다처럼 조용해진다, 살기가 편해진다’ 하는 말은 성도를 넘어지게 하는 말입니다. 깨닫게 해서 환난 시험이 오더라도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게 하고, 안 넘어지도록 하는 것이 옳습니다. 충성 봉사만 강요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일단 누구든지 교회 오면 마음바닥에 돌이 있다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한꺼번에 캐어내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고 서서히 되어 집니다. 그러나 빨리 캐낼수록 자기 소출이 많습니다. 자기 소출은 자기 것입니다.
13장 22절: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가시떨기에 떨어진 것은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 때문에 결실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염려란 ‘무엇을 먹고 마시고 살까’ 입니다. 재리의 유혹이란 돈 욕심, 부자될 욕심입니다. 이게 들어있으면 결실은 없는 것입니다.
7절에도 보면 그 상태의 마음 밭은 가시나무 밭입니다. 이 가시나무의 밭이 어떻게 하면 옥토가 되겠느냐? 가시나무 밭은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찔리니까! 그래서 불을 질러 버리고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뿌리를 다 캐어내어야 옥토가 만들어집니다. 자기 마음 밭을 옥토로 만들 생각부터 해야지 ‘예수 잘 믿으면 부자 되고 만사형통 된다’ 하는 그 소리를 듣고 예수 믿은 사람은 아직도 그 마음 밭은 가시나무 밭입니다. 아무리 공들이고 예수를 믿어도 이 마음에는 성령의 결실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예수 믿어 부자 되겠다고 하니, 또 그렇게들 가르치고 있으니 말 같은 소리라야지! 더 가시나무 밭을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참 사람이 안 되어 나오니 하나님께서 불질러 다 태워버리는 그런 사건이나 그런 날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서 자기 마음 밭을 보고 불타질 세상요소들을 하루 빨리 걷어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가시나무들이 가득한 교회들이 많습니다. 영적 수확인 성령의 열매는 있을 수 없습니다.
13장 23절: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결실이 된 좋은 땅에서는 100배, 60배, 30배의 결실이 되었습니다. 30배보다 60배, 60배보다 100배.
좋은 땅은 값이 올라갑니다. 자기의 주가가 올라갑니다. 세상은 일을 한 양을 알아주지만 하나님은 신앙의 질을 놓고 양을 알아줍니다. 이런 사람은 참 온전한 인격의 고상한 사람이고,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좋은 땅이라도 씨를 안 심으면 소출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좋은 땅에 씨가 좋은 것을 많이 심어야 합니다.
① 이제 길바닥 같은 사람이 되고픈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② 자기 밭이 돌짝 밭으로 있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③ 자기 밭이 가시나무가 무성히 자라도록 놓아두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④ 좋은 밭이라도 30배 60배가 아니라 100배의 결실을 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세 가지 밭을 그대로 둔 채로 예수를 헛 믿을 수는 없습니다. 일생을 사망계로 다 낭비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앙개혁을 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네 가지 밭의 비유를 들으면서 ‘결실이 없는 사람은 예수 안 믿는 사람이고, 결실이 있는 사람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다’ 그렇게 볼 것이 아니라, ‘다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았는데 왜 그와 같은 격차와 차등성이 생겼을까’ 하는 그 이유를 알고 고치는데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충성 봉사를 열심히 했다, 안 했다’ 하는 거기에서 그렇게 격차와 차등성이 난 것이 아니라 신앙 질적인 면에서 근본적으로 말씀하고 계심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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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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