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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롬4:18-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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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강종수 목사 |
참고 : |
신앙은 실험이 아닌 적용
롬4:18-22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 라 19.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 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 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약 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 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아멘.
진리를 보고 듣고 확신을 얻었다면 그래서 신앙인이 되었다는 말은 이제 이것이 사실인지 다시 실험을 해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진리가 절대 치라는 사실을 안 이상 이제 적용할 단계만 남았습니다. 우리의 예수믿는 신앙도 결국 신약에서 이른 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신앙을 닮아야 합니다.아브라함의 신앙은 한마디로 [신앙은 실험이 아닌 적용]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1. 비합리적 언약을 소망 중에 믿는 것
성경은 인간의 경험적 합리성에 비추어 보면 오해의 소지가 가득하나 실 행해보면 가장 합리적인 내용임을 알게 됩니다.가령 일주일에 한번 안식 하는 것이 옳겠다는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많은 세월을 보낸 뒤에 사회도 그것을 좀 알게 됩니다.
본문 18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은 세상이 이해해주는 것만 믿으려는 것이 아니 라 상식을 초월한 언약도 믿는 겁니다. 죄 사함을 위해 인류사는 종교사라 할만큼 많은 종교를 통해 죄에서 해탈 하고 신에게 적합하여 복 받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이론상 모든 교주는 죄로 다 죽고 말았지만 예수님은 다시 사시므로 죄의 열매 사망을 이기셨 으니 주께서 하신 말씀을 신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속죄,부활,영생,천국 등은 세상에서 해석하기 어려운 비합리적 명제들이 나 이것이 사실화 되었고 또 재림하실 때 다 이루어주실 일들입니다. 이 것을 믿고 동시에 여러 성경교훈들을 생활에 적용합니다. 긴가민가하고 성경을 실험적으로 여기면 좌절하고 또는 예수를 떠날 수 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을 수 없는 중에 하나님의 뜻을 믿고 나아갔 다는데 신앙의 기본을 말해줍니다.
2. 불가능의 상황에서도 의심,변명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러 환경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외부로부터 혹은 나 자신의 연약 한 죄성으로 인해 지속적인 신앙을 유지하는데 흔들릴 수 있습니다. 방황 도 찾아오고 때로는 의심이 너무 많이 일어나 믿을 수 없는 지경에도 갑 니다. 아브라함도 편안한 인생 살아낸 것 아닙니다. 약속은 믿었으나 언제 이뤄질지 막연한 환경적 요소,미래를 살아야 했습 니다. 그러나 의심을 버렸습니다.왜냐하면 하나님의 진정성을 믿었기 때 문입니다. 그가 고향과 친척을 떠라 하나님이 가자고 하신 약속의 땅으로 가는 것 부터 안정된 상황으로 인도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언약 을 굳게 믿었던 것뿐입니다.
창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 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본문 19-20절, ‘19.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 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라고 했습니다. 사람마다 가진 환경이 달라서 어떻게 인내하고 삶을 잘 살아야할지 같은 답은 없습니다.다만 진리는 변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믿는 자에게 적용되 게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질 줄 확신한 신앙
사회적 인간관계도 신뢰가 있어야 서로 편하고 소통이 잘됩니다. 하나님 과의 관계도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의 진정성을 믿고 확신을 해야 합니다. 확신이 없는 신앙은 처음부터 신앙이 아닙니다. 본문 21-22절,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 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고 했습니다. 확신의 플레로포레오(πληροφορέω)란 말은 플레레스(πλήρης)의 가득 한,충분한 의 말과 포레오(φορέω),항상 착용한다는 말의 합성어로 언제 나 그렇게 확신으로 차있다는 뜻입니다.이 단어는 수동태로 되어 있어서 믿음을 주신 의지로 봐야 합니다(엡2:8).
사14:24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 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사55:11‘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오늘의 사회는 과학적 생각만 할 줄 알고 그 이상은 불안해서 믿고 살고 자하는 의지가 없습니다. 불신적 사회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성경진리를 근거로 하는데,어떠한 세상의 합 리적 제안보다 믿고 의지할만하다는 것이 이미 증명된 책입니다.하나님 의 음성으로 믿습니다.그렇다면 적어도 신의 음성의 차원으로 안다면 믿 고 신뢰하고 살아볼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은 실험적 종교가 아니라 이미 참된 말씀으로 역사 성이 뚜렷하기에 적용만 하면 다 성취 가능함을 시사합니다. 이렇게 믿고 삶을 살아내려고 하는 것이 가장 바른 신앙입니다.진리에 목숨을 걸고 살 면 반드시 승리할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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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사이버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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