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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를 받지 말고 복을 받아야합니다

누가복음 안창천 목사............... 조회 수 208 추천 수 0 2017.07.04 23: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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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1:45-54 
설교자 : 안창천 목사 
참고 : d3왕의사역 평신도제자훈련원 http://d3.or.kr 

저주를 받지 말고 복을 받아야합니다

눅11:45-54절

2016.12.18 


오늘 본문은 지난주 말씀과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예수께서 정결예법을 지키지 않은 것을 이상히 여기는 바리새인을 향하여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라고 책망하신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바리새인들 중, 특별히 율법교사를 향하여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라고 책망하신 것과 관련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율법교사는 한마디로 율법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유대인 세계에서는 지식을 전달하는 교사의 위치가 중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 아버지보다 교사를 더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아버지와 선생님이 함께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두 사람 중 한 사람밖에 구할 기회가 없다면 당연히 선생님을 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율법교사는 일종의 교사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교사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우월감과 자부심은 매우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책망하시자 자신들도 바리새인이었기 때문에 그들 중에 있던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45절)라고 시비를 걸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율법교사들을 향하여 세 번이나 화 있을 것이라고 저주하셨는데, 그 내용이 바로 우리가 읽은 본문입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만일 율법교사가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저주하신 말씀을 듣고 가만히 있었더라면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을까?” 제가 이렇게 생각하고서 평행귀절인 마태복음 23장을 읽으면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미태복음 23장에 나오는 저주의 대상과 누가복음 11장에 나오는 저주의 대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에는 예수께서 ‘화있을진저’라고 7번이나 말씀하셨는데, 그 대상은 모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여기서 서기관이란 우리나라 고위공무원의 직급중 하나가 아니라 율법교사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율법교사와 바리새인’을 저주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기자는 예수께서 이 둘을 구분해서 저주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먼저 ‘바리새인’을 저주하셨고(눅 11:39-44), 다음은 율법교사를 저주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눅 11:46-52).


왜 누가는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외식을 책망하시는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 가운데 율법교사의 항변을 삽입해서 예수께서 저주하신 대상을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로 분리해서 소개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율법교사들의 교만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바리새인 중에서 율법교사 즉 서기관들이 더 교만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때문입니다. 첫째로, 그들이 바리새인이지만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라는 이유로 지나치게 우월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그들이 책망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칭찬을 듣고 싶어하지 책망받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교만한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교사는 우리보다 훨씬 교만했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책망하시면 회개라도 하는 척 하는데,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께 따졌고 심지어 책망을 못 마땅히 여겨서 죽이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따라서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것이 있다고 마음을 높이지 말고, 높은 지위에 있어도 잘못에 대해 지적을 받으면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예수께서 율법교사들을 책망하신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 46절입니다. “가라사대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당시 이스라엘백성들이 지켜야 할 것은 모세의 율법 외에도 613개의 조항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하지 말 것을 규정한 소위, 부작위 조항이 365개이고, 해야 할 것을 규정한 소위, 작위 조항이 248개였습니다. 그런데 이 613개의 조항을 적어놓은 것이 ‘미쉬나’이고, 이를 쉽게 설명해 놓은 책이 ‘탈무드’입니다. 그런데 ‘미쉬나’에 의하면 안식일에 대한 규례가 39조가 있었고, 각조마다 6개 항이 들어 있어서 안식일에 대한 규칙이 234개나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물을 긷지 말라, 짐을 운반하지 말라, 짐승을 타지 말라, 새나 고기를 잡지 말라, 금식하지 말라, 오리 이상을 걷지 말라, 병에 걸려도 고치지 말라, 음식을 요리하지 말라, 새알 크기의 돌보다 무거운 짐을 옮기지 말라. 그런데 왜 이런 일을 안식일에 하지 못하게 했을까요? 율법에 안식일에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렇게 하면 그것이 노동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이런 규례 때문에 너무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율법교사들은 이런 규정을 만들어서 백성들에게 무거운 멍에를 지웠지만, 정작 자신들은 이런 규례를 빠져나갈 다른 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에 물을 긷지 못하는데, 여인이 허리띠를 매는 것은 금지 사항이 아니었음으로 두레박을 여인의 허리띠에다 매고 물을 길었습니다. 또한 안식일에 짐을 운반할 수 없는데, 손등이나 입을 이용해서 짐을 옮기는 것은 금지사항이 아니라 손등과 입으로 짐을 날랐습니다. 즉 그들은 백성들에게 무거운 짐만 지우고 자신들은 필요에 따라 변칙적으로 규정을 피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즉 율법교사들은 실천하지도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행하라고 강요한 것 때문에 책망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의 책망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말씀을 가르치지만 말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이 실천해야 할 교과서로 삼아야합니다. 먼저 우리가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아내지 않으면서 누군가에게 말씀대로 살라고 가르치는 것은 외식하는 것이며 화를 자초하는 것입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은 자신의 동상 제막식이 있기 전날, 오산학교의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기 내 동상이 이렇게 섰지만 내 생각에 오늘이 있게 된 것은 내가 똥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옛날에는 화장실에 난방이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수세식이 아니고 푸세식 이었고, 좌변식이 아니라 입석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조준을 해서 일을 보지 않으면 양 옆으로 쌓이게 되었는데 특별히 겨울에는 변이 얼어서 높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치우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자, 남강 선생이 손수 도끼로 그것을 찍어내는 과정에서 얼었던 똥이 튀어서 입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발생해서 이런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는 제자들을 가르치기만 하지 않고 삶으로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면 율법교사에게 저주하신 화를 입지 않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누군가를 가르치기 전, 먼저 말씀대로 살아내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47-51절입니다. “화 있을찐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도다 저희를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이와 같이 저희는 죽이고 너희는 쌓으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저희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 더러는 죽이며 또 핍박하리라 하였으니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의 조상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수도 없이 죽였습니다. 51절을 보면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벨은 성경의 첫 책 창세기에서 나오는 자로 가장 먼저 형 가인에게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한 자이고, 사가랴는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역대하에 나오는 자로 돌에 맞아 죽은 자입니다(대하 24:21). 혹 여러분 중에 왜 역대하를 성경의 맨 마지막 책이라고 하느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의 성경과 우리성경의 배열순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구약성경을 크게 셋으로 구분합니다.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입니다. 율법서는 모세오경을 말하고, 예언서는 전기예언서와 후기예언서가 있는데, 전기예언서는 여호수아부터 열왕기까지이고, 후기예언서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 3권의 대예언서와 12권의 소 예언서가 있습니다. 성문서는 시문학과 지혜문학과 역사서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대하가 구약성경의 맨 뒤에 자리하고 있는데, 역대하에 스가랴가 죽은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예수께서 스가랴 선지자를 마지막 선지자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떻든 아벨로부터 사가랴 선지자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왜 율법교사들이 선지자들의 무덤을 아름답게 꾸미는 행위를 가지고 그들을 책망하셨을까요? 유대인들은 무덤을 아름답게 꾸미는 풍습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율법교사들이 선지자의 무덤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은 다른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선지자의 무덤을 잘 꾸미면 자신들이 선지자를 존경한다고 이스라엘백성들이 생각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선지자를 죽인 조상들과는 자신들이 다른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들은 조상들보다 더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보내신 예수님마저 죽이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49절). 예수께서 이들의 이중성을 보시고 그들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중성이 오직 율법교사들만의 문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자처하지만 속으로는 믿음이 별로 없습니다. 주일에는 교회에 다니지만 실제로 삶속에서는 이방인과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겉으로는 사랑을 말하지만 자신이 받은 상처로 가족과 가까운 친척조차도 미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의 속과 같이 같아지도록 해야 합니다. 믿음과 삶이 하나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율법교사의 이중성을 책망하시면서 아주 무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50-51절을 읽겠습니다.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결국 주후 70년 로마장군 디도에 의해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이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때 100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당했습니다. 그이후로 이천 년 동안 나라를 잃고 온 세계로 흩어져서 유리방황하게 되었습니다. 2차 대전 때에는 600만 명의 유대인들이 나치들에게 학살당했습니다. 결국 선지자, 곧 하나님이 보내신 종들을 죽인 모든 피 값을 그 세대가 다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입으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행동으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로, 52절입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지식의 열쇠를 가졌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잘 전해서 그들을 구원받게 할 사명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율법교사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다른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율법을 잘 지키게 한다는 미명하에 온갖 부칙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무거운 멍에를 지웠습니다. 그래서 자신들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사실에 대해 마태복음은 보다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3장 13-15절을 찾아 읽겠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3-15). 여기서 우리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그들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했다고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면 그 결과는 엄청난 비극을 불러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먼저 받은 자들은 말씀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주님의 뜻대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저는 신앙의 초기에 빌라도가 예수께서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는 장면을 보면서 매우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빌라도의 모습이 저의 모습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과거에는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를 저주하신 것을 저와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바로 저를 향하여 외치시는 말씀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바리새인과 율법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를 날마다 십자가로 이기지 못하면 그들과 동일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이 우리를 주님의뜻대로 살도록 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삶의 본을 보이고,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삶을 버리고, 먼저 말씀을 맡은 자로서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로 새롭게 결단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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