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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의 영성
오늘은 “걷는다”는 것의 신앙적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인간이 걷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그것은 단순히 “많이 걸으면 운동이 되어서 몸이 건강해진다”는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TV프로그램을 보면, 걷는 일이 건강에 좋다는 일만이 강조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걸음의 의미는 그 이상입니다. 인류학자들이 지적하는 바에 따르면,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를 수 있는 결정적인 이유는 ‘걷는 것’에 있었습니다. 인간이 다른 네발 달린 동물과 달리 ‘두 발로 걸어 다녔기 때문에’ 두뇌가 발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인류가 철학과 문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도 ‘두 발로 걷는 산책’에 있었습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워낙 정확하게 산책하는 사람이라서 ‘인간시계’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고, 미국의 문학가 ‘데이빗 소로우’도 산책을 즐겼을 뿐만 아니라 ‘산책’에 대한 강연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특히 신앙적인 차원에서 보았을 때, 걷는 일, 즉 산책은 모든 수도자들의 공통된 수행의 과정이었습니다. 동양과 서양의 모든 수도자들, 그리고 옛날과 현재를 모든 수도자들에게 있어서 ‘걷는 산책’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수도의 과정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TV에서 가톨릭 수녀원에 처음으로 입회한 예비 수도자들의 일상적 삶을 방영해준 적이 있었는데, 제가 볼 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저녁식사 후에 예비 수녀들이 한 손에 묵주를 들고 시골길을 산책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이제 성경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남자와 그 아내는, 날이 저물고 바람이 서늘할 때에, 주 하나님이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 남자와 그 아내는 주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서,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주 하나님이 그 남자를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하나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제가 들었습니다. 저는 벗은 몸인 것이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하고 그가 대답하였다. (창 3:8-10, 표준새번역).
오늘 성경을 통해서 묘사되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것은 곧 에덴동산을 거시시면서 산책하시는 하나님이었습니다. “날이 저물고 바람이 서늘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을 조용하게 거니시면서 ‘산책’하셨습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다양한 형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만,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형상은 ‘산책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간다고 했을 때, “날이 저물고 바람이 서늘할 때에” 하나님처럼 동산을 조용하게 거니시면서 ‘산책’하면 됩니다. 우리가 산책하면서 갖게 되는 △조용한 마음, △진실된 마음, △지혜로운 생각, △반성하는 마음, △성찰하는 자세, △관대해지는 마음, △용서하는 마음, △여유로운 생각, △기쁨으로 창조세계를 바라보는 마음 … 그런 것들이 곧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런 산책의 마음과 생각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닮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동양철학자 장자의 사상 중에 ‘소요유’(逍遙遊)라는 것이 있습니다. 소요유란 마음이 가는대로 이리 저리 자유롭게 거닐면서 자연을 벗삼아 풍취를 즐기면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소요유는 단순히 한가하게 일없이 노니는 삶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차원에서 이야기하자면, 자유롭게 거닐면서 죄된 마음의 짐을 다 비워서 하나님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김부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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