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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벧전2:1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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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장규 목사 |
참고 : | 고전교회 |
벧전2:19-25(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갑시다)
19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외아들이십니다.
가정에서도 외아들은 부모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깁니다.
하나님 아버지도 이와 같이 귀한 외아들 예수님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낮고 천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1.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외아들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처럼 죄가 하나도 없으신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23절에 보면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라고 했습니다.
이런 죄가 없으신 거룩한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자들입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흉측한 죄투성이인 인생들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왜 죄인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솔직하게 내 자신을 바라보면, 우리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부인 할래야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생각으로 무수한 죄를 지었고, 말로도 무수한 죄를 지었고, 행동으로도 무수한 죄를 지었고, 현재에도 끊임없이 죄를 짓고 있으며, 미래에도 죄를 지을 것입니다.
이런 인생에 대하여 성경은 우리들에게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분명히 단정 짓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도 죄를 지으면, 죄에 대하여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의 마음과 생각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감찰하시고 계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인생이, 어떻게 하나님의 형벌을 면치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런 죄 가운데 있는 인생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형벌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죄인인 우리 인생을 위하여,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사망의 형벌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예수님이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쓰신 것은 우리가 생각으로 범죄한 것을 갚기 위한 것이고, 손과 발에 못이 박힌 것은 우리가 손과 발로 행한 죄를 갚기 위한 것이고, 옆구리에 창으로 찔리신 것은 마음으로 범죄한 것을 갚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전 인격인 지정의로 지은 모든 죄를 대신 갚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끔찍한 사망의 형벌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끔찍한 사망의 형벌을 당하실 때, 우리가 무슨 의인도 선인도 아닌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죄인들을 위해 사망의 형벌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대속을 받아 구원을 얻은 것은, 우리의 어떤 공로나 선행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죄인임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무한한 용서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이 무한한 용서와 사랑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죄로 말미암아 마음이 시커먼 인생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오히려 “네가 무슨 구세주냐?”하며 멸시하고 조롱하고 침 뱉으면서,
“십자가에서 한번 내려와 보라. 그러면 네가 구세주인 것을 믿어주겠다”고 악랄하게 비웃었지만, 예수님은 이것조차도 끝까지 참으시고 십자가에서 무참하게 죽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예수님이 이런 멸시, 천대. 모욕을 참고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신다면, 우리의 죄를 대신 갚아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23절에 보면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라고 했고,
24절 말씀에 보면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멸시와 조롱과 모욕을 참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우리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속죄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믿기만 하면 죄 용서함을 받는다고 하니까, 그렇게 쉬운 일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하지 말라고 비웃으면서 무시해 버립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사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의 삯은 사망”의 형벌을 당하시고 죽음으로만 끝난 것만이 아니라,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망가운데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중에서 만약 스스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형벌을 받고, 스스로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지구 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죽은 것입니다.
왕도 죽고, 학자도 죽고, 부자도 죽고, 의사도 죽고, 위대한 종교의 창시자들인 공자와 맹자와 석가모니도 죽고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오직 죽지 않고 부활하여서 빈 무덤을 남기신 분은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으시고 우리의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사망가운데서 살리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로 죄 용서함 받고, 사망가운데 살리심을 얻는 구원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25절에 보면, 우리가 이런 믿음으로 구원을 얻음으로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입니까?
이런 은혜는 우리의 힘과 능력과 돈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에 ‘영원토록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2.
여러분, 빚을 진 사람은 빚을 갚기 전에는 빚진 사람에게 평생 떳떳하게 얼굴을 들고 살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무한한 사랑의 빚을 영원히 갚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수많은 헌금을 하고 봉사와 헌신을 해도, 심지어는 자신의 몸을 불살라 내 주어도, 예수님 앞에 잘했다고 내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생명을 희생하는 사랑을 베풀었다고 해도, 예수님의 구원의 사랑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잘했다고 얼굴을 들 수도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억울하게 나의 생명을 죽이는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하여 우리가 용서를 한다고 해도, 예수님이 나를 향한 십자가의 용서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못되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잘했다고 자랑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알았던 손양원 목사님은,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학생을 양아들로 삼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신이 이렇게 한 일이 예수님의 사랑에 비하면, 하찮은 일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서, 아들의 순교에 대하여 9가지로 이렇게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1)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을 나게 하시니 감사.
2)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서 이런 보배를 나에게 주셨으니 감사.
3) 3남 3녀 중에서 가장 귀중한 장남과 차남을 바치게 하였으니 감사.
4)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이 순교하였으니 감사.
5) 예수 믿고 제 명을 다하고 죽어도 복이라고 했는데, 전도하다 총살 순교했으니 감사.
6) 미국 가려고 준비했던 아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이 안심되어 감사.
7) 내 아들을 죽인 원수를 회개시켜 아들을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
8) 내 아들의 순교의 열매로서 무수한 천국의 열매가 생길 것을 믿으면서 감사.
9)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이길수 있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용서하지 못하는 것도,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용서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바로 이런 감당하지 못할 용서를 실천하는 예수님의 사람들을 보고, 도전을 받고,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48명 죽인 살인자 용서),
그러니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욕하는 사람들조차도, 불쌍히 여기며 사랑으로 용납할 수 있는 예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에 대하여 세상 사람들이 욕할 때 우리도 같이 욕하고 있다면, 우리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눅6:32-33,35절 말씀에 보면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에게 조차도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라고 용서의 기도를 했습니다.
또한 스데반 집사님도 자기를 돌로 쳐죽이는 자들을 위하여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7:60)라고 용서의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들을 향하여서도 오늘 말씀 20-21절 말씀처럼,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3.
여러분, 우리는 십자가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여, 시시때때로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감격합니다.
그러나 막상 우리들보고 이런 십자가를 지라고 하면 거부하고 마다합니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십자가의 은혜를 아는 성도는, 십자가를 지는 성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8:34)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물론 우리가 이렇게 십자가를 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시때때로 다른 사람들이 십자가를 지는 일에 대하여,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쉽게 판단을 잘합니다.
그러나 막상 자기가 그런 일을 당하면, 자기 자신도 십자가를 지지 못하는 것을 참으로 많이 보게 됩니다.
저도 이런 일들을 당할 때 나중에 후회하곤 하는 것은, “그 때 좀 더 참고, 더 져주고, 더 관용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구나!”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쉽게 남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우리는 이런 십자가를 지는 일에 대하여도, 다른 사람들에게 관용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일은, 우리는 예수님의 무한한 용서와 사랑에 빚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내키지 않아도, 결코 상대방을 미워하거나 정죄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서로를 용납하고, 관용하면서..., 함께 십자가의 길을 꾿꾿히 걸어가면서, 다른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해야지, 실족하게 만들면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서로 이런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도록, 서로 용납하고 관용하며 서로 격려하면서, 이 십자가의 길을 감사함으로 걸어갈 수 있는 성도님들이 다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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