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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마태복음 궁극이............... 조회 수 299 추천 수 0 2017.08.20 15:33:15
.........
성경본문 : 마15:29-39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529, 30: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

 

예수님께서 호수가 산에 올라가 앉으셨습니다. 각종 병자, 각종 환자들을 다 고치니 모든 무리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것인데,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시는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높은 곳을 좋아하시는 것 같고, 또 높은 곳을 올라오는 자는 다 낫게 하시고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물론 높다고 해서 다 똑같은 높은 것이 아니고 진리로 높아진 것이냐, 물질성적으로 높아진 것이냐? 이것은 근원적으로,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주님은 진리의 높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큰 무리들이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각종 병자들 환자들을 예수님의 발 앞에 두니까 다 고쳐주신 것입니다.

 

말은 간단해서 쉬운데 우리가 실지로 있을 수 있는 일들을 이 장면에서 생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병자들 불구자들을 무리들이 데리고 올 때, 그것도 평지가 아니고 산으로 데리고 올라가는 일인데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병자 환자들은 자기 몸을 다른 사람에게 의탁을 해야 되니까 데리고 가는 사람은 병자 환자에게 힘을 써야 되고, 그러면서 자기는 자기대로 안 넘어지려고 힘을 써야 돼 이중으로 힘이 들어가니 땀나는 일입니다.

 

더군다나 지금 이곳은 호숫가입니다. 위험천만입니다. 모두 붙들고 업고 네 귀퉁이를 붙들고 잡아끌고 밀고 허리를 감싸고 겨드랑이를 끼고 예수님께로 가는 길에 어느 길이 제일 돌이 없나? 산 위를 목표로 하면서 갈 때 박힌 돌을 딛으면 괜찮지만 굴러다니는 돌을 딛었다가는 아차 하는 순간에 둘이고 셋이고 간에 전부 다 데굴데굴 굴러서 호수 속으로 풍덩 풍덩 빠질 것입니다. 밑을 보고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땀이 비 오듯 하겠습니까? ‘영차 영차하면서 올라갑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묻는다면

 

벙어리를 데리고 오는 아무개야, 네가 벙어리와 같이 오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데리고 오느냐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을 할까? ‘벙어리와 같이 오니까 아무 재미가 없네요, 대화가 되어야 재미가 있지요

 

소경을 데리고 오는 너는?’ ‘큰 돌을 피하고 구덩이를 피하고 가시나무를 피하고 앞에서 잡아끌고 오느라고 혼이 났습니다.’

 

불구자를 데리고 온 너는?’ ‘업고 오느라고 힘들었습니다.’

절뚝발이를 데리고 온 너는?’ ‘빨리 가고 싶어도 보조를 같이 맞추고 오려니 늦게 가게 되니 갑갑증이 나서 혼났습니다.’

 

, 이제 전체적으로 묻겠습니다.

 

첫째, 힘만 들고 귀찮았다.

 

둘째, 봉사를 하니까 즐거웠다. 왜냐고요? 천국에서 상 받을 걸 생각을 하니까!

 

셋째, 육신적으로 임시적인 것임에도 이렇게 힘이 드는데 영적인 면에서 불구자나 절뚝발이나 소경이나 벙어리가 되면 얼마나 힘들고 답답하고 고통일까?

 

이제 점수를 매기겠습니다. 첫째 번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낙제생, 둘째 번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세상상(), 셋째 번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천국상으로 합격입니다.

 

절뚝발이 불구자 소경 벙어리 등 각종 병자가 나음을 받으려고 올라갑니다. 예수님께서 어디 계시던 계신 자리를 안다면 나음을 받으려고 어디든지 찾아서 찾아서, 물어서 물어서 갈 것입니다.

 

올라갈 때에 모두 같이 고생을 합니다. 그런데 말 많은 사람은 몸이 불편한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닌데 예수님께서 사랑이시고 병자들을 위한다면 병자들이 힘들게 산으로 올라갈 필요없이 예수님께서 산아래 평지로 내려오면 되지 않느냐? 내려오셔서 고쳐서 산으로 올라가면 모두 편할 것인데그렇게 얼마든지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걸 모르시고 호숫가 위험한 산에 가서 앉아 계실까?

 

그런데 이 성경이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계시성은 즉, 하나님의 뜻은 병자들이 하자는 대로 하면 그 모든 병들이 안 고쳐질 병이고, 또 예수님께서 내려오시면 그들의 병이 못 고쳐질 병이기 때문에,(능력이 없어진다는 말이 아니고) 진리를 끄집어내려 자기 차원으로 만들어 버리면 못 고쳐지기 때문에 산으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주님이 올라가 계시고, 모든 병자들도 그 곳으로 올라가야 만이 고쳐질 병들이기 때문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보통 보면 평지에 계실 때 찾아오는 각종 병자들은 많고, 또 평지의 주님을 찾는 병자들은 많으나 산에 계신 진리로, 높이 계신 주님을 찾아서 올라오는 병자들은 쉽지 않습니다. 자기가 영적인 면에서 병든 자라고 하는 것을 아는 자는 산에 계신 주님을 찾지 평지에 계신 주님을 찾지 않습니다. 오늘날 사역적 주님을 찾지 진리의 주님을 찾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정신상태를 깨닫지 못하면 자기는 물론 다른 사람에게까지 정신적 신앙적인 면에서 고통을 주고 살다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1. 절뚝발이.

 

육신의 절뚝발이는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잘 몰라도 걷는 것을 보면 당장 알게 됩니다. 걷기는 걷는데 걷는 것도 고통이고, 뛰는 것은 더 고통입니다. 지팡이에 의지는 해도 사람에게는 의지가 안 됩니다. 사람이 붙잡아 주는 것이 더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과 같이 오고 갈 때엔 성한 사람이 속도를 맞추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성한 사람이 속도가 더디고, 성한 사람이 맞추기란 힘이 듭니다. 붙잡아 주는 것도 싫습니다. 빨리 가지는 못하나 혼자서 천천히 가기는 갑니다. 빨라도 힘들고, 늦어도 힘이 듭니다.

 

영적 신앙 면의 절뚝발이는 예수를 믿기는 믿는데 자기의 형편에 따라서 예수를 믿기도 하고, 예수를 믿어도 신앙의 걸음걸이가 느립니다. 인격적 결합으로 바로 서서 열심히 믿지 못하고 불안하게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진리의 감화성에 열심이 없습니다. 떨어질 것 같기도 한데 또 슬며시 나타나거든.

 

진리가 있는 산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그 신앙성질은 낫습니다. 올라가야, 만나야 예수 믿어도 고통 없이 믿을 수 있습니다. 자유롭게 튼튼히 건강한 신앙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2. 불구자.

 

육신의 지체 중 어느 한 부분을 아주 못 쓰는 사람입니다. 다리 하나를 아주 못 쓴다든지, 손 하나를 아주 못 쓴다든지. 마음은 있는데 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좀 필요합니다.

 

영적 면에서 신앙의 불구자는 진리신앙 자들을 전혀 따라가지 못합니다. 학벌이 문제가 아니고 진리 깨닫는 면에서 못 따라갑니다. 못 깨달으니 신앙이 앞으로 못 나갑니다. 이게 불구자입니다. 진리신앙을 가진 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움을 받아 진리의 주님이 계신 곳까지 힘이 들더라도 올라가야 낫게 됩니다.

 

3. 소경.

 

사람 가는 길을 못 보는 것, 사람 사는 길을 못 보는 것이 소경입니다. 소경은 자기 눈 앞, 자기의 발 밑, 자기의 주위, 앞뒤도 못 보고, 좌우도 못 보고, 위아래도 못 보고, 형체분별 색깔분별 사건분별 아무 것도 모릅니다. 자기가 온 길도 모르고, 자기가 갈 길도 모릅니다. 전부는 캄캄합니다. 신실한 인도자가 꼭 필요합니다.

 

영적 신앙 면에서 소경은 영과 육의 분별, 옛 사람과 새 사람의 분별을 못하고, 거짓도 이단도 모릅니다. 교회가 뭘 하는 곳인지도 모릅니다. 영적 소경은 거짓 종들에게 이용을 당하고, 신앙사기 다 당하고 모든 것을 도둑을 맞습니다. 그러면서도 지금 자기의 깨닫지 못하는 신앙상태를 잘 모르는 것입니다. 신앙사상적으로 자기의 신앙상태가 소경인 줄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성경역사를 아니까 성경에 눈뜬 사람이라고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로 인도하는 인도자가 필요합니다. 힘들더라도 인도자의 손에 이끌리어 도의 봉우리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소경이 영의 눈을 뜹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4. 벙어리.

 

벙어리는 말을 못하는 것이 벙어리요, 의사전달을 못하는 것이 벙어리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이치의 말씀을 듣기는 듣는데 다른 사람에게 복된 말씀을 전달을 못 해. 본인 자신이 얼마나 답답할까?

 

또 하나는 하나님의 의사성을 분명하게 전달을 못하고 딴 소리를 하는 것도 벙어리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전하는 자, 교역자, 가르치는 자가 일반 도덕적인 개념으로 착하게 살아라, 선하게 살아라, 거짓말하지 말아라, 충성봉사 잘 하라, 교역자 잘 섬기면 축복을 받는다그것도 자기가 말을 못하고 남을 통해서 그런 말을 해.

 

성경을 읽어 놓고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의사성인가? 그게 하나님의 뜻인가? 그런 말들은 성경을 몰라도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사성을 전달을 못하면 그것은 벙어리입니다.

 

성경 전부는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의사성이요 권고요 권면이요 명령입니다. 성경의 개인의 생활, 연행심사, 희로애락, 단체의 생활 활동, 이방인들의 활동, 이스라엘의 활동, 전쟁, 평화, 잔치, 노래, , 종교적 활동 등등 그 모든 속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기에게 주시는 의사성이 들어 있습니다. ‘성전을 지어라, 살인하지 말라, 죽여라하는 말들은 다 자기에게 주는 의사성입니다.

 

예를 들면 다윗이 악한 자들에게 쫓겨 다닐 때 앞산에서 꿩이 후다닥 날아갑니다. 꿩이 무엇이라고 하면서 날아가나?

 

내가 날아가니 쏘아라인가?

나 떠난 곳에 적이 있다, 그러니 가지 말라인가?

 

독수리가 화 화 화세 번 하면서 날아갑니다. 뭐라고 하면서 날아간다고 했습니까? 땅에 있는 자에게 화가 있다!

 

이방인들보고 하는 소리인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보고 하는 소리인가?

구복주의자들에게만 하는 소리인가?

종교적 외식주의자들보고 하는 소리인가?

 

이방인들보고 하는 소리라고 믿어지면 전도의 열매가 붙겠지. 그러면 전도해서, 배가운동해서 아닌 말로 대한민국 사람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교회 나온다면 화 화 화가 없겠지? 온 세계가 다 예수를 믿는다면 주님이 재림으로 오다가도 돌아가시겠지? ? 지상천국이 이루어졌으니까! 그게 아니고 교회에 나와 앉아 있어도 화 화 화는 옵니다. ? 모두들 지상천국을 원하고 만들고 있으니까!

 

인간이 지상천국을 다 이루어 놓았다고 불바다를 만드느냐, 인간 너희들끼리 이룬다고 해도 안 되는 것이라는 그 말입니까? 신령천국은 물질성적 바탕에서 이루어지는 것인가? 신령적 바탕, 하나님의 본질에서 이루어집니다. 주님재림천국은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화 화 화가 예수 믿는 교인들보고 하는 말로 듣는다면 주님의 본질,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의사 단일성적인 것을 소원 목적하고 나가야지! 곧 우리의 영인성장 성화구원입니다.

 

주님처럼 온전한 진리자체화로 만들어져 있으면 화를 외친들 즉, 땅에 살아도 땅의 소원 목적을 가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화를 세 번이 아니라 백 번을 외친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목사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불 속으로 앞으로 갓했을 때 평소에 내로라한 사람이라도 신앙 믿음 없고 진리사상화 진리자체화 진리실상화 진리인격화 되지 못한 목사들은 아마 불 속에서 그을러질 것 같아. 진리노선의 신앙 길로 다시 잡고 고쳐나가야지 자기 신앙을 진리노선으로 바로 잡지 못하고 누구부터 고치라고 하겠습니까?

 

진리신앙노선이 아니고 비 진리적인 신앙노선으로 가면서 아무리 강대상을 몇 개를 주먹으로 부숴 먹어도 이것은 벙어리에 불과합니다. 벙어리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육신의 벙어리는 자기가 벙어리인 줄 아는데 기독교인들은 영적 신앙 면에서 벙어리를 모르고 있으니 이방 불신자들하고 수준이 똑같은 거지요.

 

이 영적 벙어리를 고치려면 어디로 가야 되겠느냐? 먼저 영적 벙어리 된 자신을 알아야 주님 계신 곳으로 가서 고쳐달라고, 말문을 열어달라고 할 수 있지 자기가 벙어리가 아니라고 주님 계신 진리의 봉우리로 안 올라가는 데야 주님도 어쩔 수 없는 거지. 자기가 성경을 다 잘 알고, 하나님의 의사성을 100% 잘 안다고 하는데 주님이 고쳐줄게 없는 거지.

 

본문을 헬라어 성경으로 보면 절뚝발이도 남자들이요, 불구자도 남자들이요, 소경도 남자들이요, 벙어리도 남자들입니다. 이것은 고집이 세고 주관성이 강하다는 말입니다. 주관성이 강하니 순순히 오려고 그러겠어? 어린아이들이 병원에 안 가려고 하듯이! 부모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우리 교역자의 세계가 영적으로 보면 절뚝발이도 많고 불구자도 많고 소경도 많고 벙어리도 많습니다. 자기가 온전하게 되려면 진리의 차원으로 주님 계신 곳으로 올라가야 돼. 진리의 본질을 찾아서 올라가야 돼. 그래야 고쳐집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불쌍한 것은 자기가 한꺼번에 복합적인 병자인 경우입니다. 완전 불구에다가 소경에다가 벙어리에다가. 이런 사람이 있을까? 어디에 많아요? 장애인들 집에?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에 제일 많습니다. 그럼에도 안 고치려고 그래요.

 

1530, 31: 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 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하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기이히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벙어리가 말을 한다. 의사와 뜻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주장과 선포가 나옵니다.

 

절뚝발이가 걸으며 불구자가 건전하다. 진리의 주님이 어디를 가시든지,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바싹 붙어서 대화를 나누며 즐거움으로 좋아서 따라갑니다. 그 전에는 웬 군소리가 그렇게 많은지 병자들을 위해서, ()를 위해서 주님이 산에서 내려오십시오했는데, ‘평지에서 고쳐주십시오하며 거져 먹으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게 없습니다. 주님의 의사대로만 따라갑니다.

 

소경이 본다. 다 식별하고 분별하고 평가를 내리고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 가는 삶의 길을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갈 수 있습니다. 주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생각이 척척 잘 따라 올라가면서 어떻게 교제가 잘 되는지? 진리인지 비 진리인지, 육인지 영인지, 거짓인지 이단인지 사교인지, 거짓 종인지 정신 사상에 분별, 성분적 식별, 영적 분별을 어떻게 잘 하는지? 말 잘 하지, 잘 걷지, 분별 잘 하지, 건전하지, 무리들이 볼 때도 이게 하나님께 영광이야!

 

돈이 많아서 예배당을 크게 짓거나, 빚을 내어서 예배당을 크게 지어 영광 돌린다고 하는 것은 보았지만 사람이 다방면으로 온전케 되는 것을 처음 보았거든. ‘, 이게 진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만하다. 이게 정말 성령의 역사요, 하나님의 역사다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종들을 붙들고 지금도 이 역사를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자들이 무엇을 가지고 영광이라 하는가?

예배당 크게 짓는 것?

사회봉사 잘 하여 칭찬 듣는 것?

부자 되는 것?

사람 많이 모이는 것?

 

전부는 물질에 관한 것, 사역에 관한 것, 크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을 손가락질하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자기도 바리새인들과 똑같은지!

 

무리들이 사람 고쳐진 것을 볼 때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온 보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데리고 온 병자들이 낫는 것을 볼 때 보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남자들은 오다 말고 산토끼 뛰어가는 것을 보고 산토끼 잡으러 간 자도 많을까요? 독사에게 물린 자도 있을까요? 다리가 부러진 자도 있을까요? 벼랑에 있는 새집 털다가 호수 속으로 떨어져 물귀신 된 자도 있을까요?

 

내가 올라가서 나아야 하나님께 영광이고, 진리로 온전자가 되어야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진리로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가라!

 

153239: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라사대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제자들이 가로되 광야에 있어 우리가 어디서 이런 무리의 배부를 만큼 떡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가로되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와 그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자는 여자와 아이 외에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마가단 지경에 가시니라

 

산 위에서 진리를 받은 무리들을 누가 염려하느냐? 사흘 동안을 무리들이 먹지를 못한 것 같은데 집으로 보낼 때 길 가다가 쓰러질까봐 주님이 걱정을 하십니다. 제자들이 듣는데서 굶겨서 어떻게 보내겠느냐?’ 했더니 제자들은 이 많은 무리들을 어떻게 먹입니까?’ 말이야 맞는 말이지! 집으로 보내기 전에는 해결불가능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되는지 다 아십니다. 모르고 묻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의 믿음을 보는 겁니다. 어느 정도 믿음이 있는지! 예수님께서 몰라서가 아니라 우리들에게 묻는 거나 마찬가집니다.

 

1413절로 보면 오병이어의 표적을 제자들이 다 보았고, 자기들이 떡을 나누어주고, 먹고 다 경험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하실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해 놓고도 1414절에서 말한 그 제자가 똑같은 소리를 또 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제자가 똑같은 소리를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표적의 떡을 먹은 그 은혜로운 사건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어째 이렇게 쉽게 잊어버릴 수가 있을까?

 

너희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느냐’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습니다’ 1416절에서는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하신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다 아시고 하는 말씀입니다.

 

1535: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축사의 떡을 받아먹으려면 바로 앉아야 하는데 비스듬히 누워 있는 사람, 구부리고 있는 사람, 서있는 사람, 벌렁 드러누워 있는 사람, 뒤를 돌아보고 앉은 사람, 뒤를 돌아보고 서있는 사람, 옆으로 앉은 사람, 나무 위에 있는 사람, 바위에 기댄 사람 등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있을 수가 있습니다. 이제는 바른 자세로 앉아서 축복의 떡을 받아먹는 자세를 취하라는 것입니다.

 

이 떡과 생선은 배부른 부자들이 먹는 생과자 케이크는 아닙니다. 시시하게 보여도 주님의 손에 들릴 떡이요, 그리고 배고픈 자에게 꿀맛 같은 떡입니다. 사람이 온전하게 고쳐져서 음식을 먹으니 음식투정이 없습니다. 어떻게 맛이 있는지! 저번에도 그렇게 먹이셨고, 이번에도 그렇게 먹이셨습니다.

 

이 떡은 장정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의 떡이요, 이 떡은 강한 자를 일으킬 수 있는 생명의 떡이요, 산 위로 오른 자는 먹을 수 있는 만족의 떡입니다. 모두 고침을 받았고, 모두 축사의 떡을 먹고 평안이요 기쁨이요 대 만족입니다.

 

진리의 주님이 계신 곳에서 굶어죽은 사람이 있습니까? 먹고 남은 조각이 이번에는 일곱 광주리, 저번에는 12광주리입니다. 남은 조각이라고 하니까 먹으면서 흘린 것도 있겠지만 손에 들고 있는 떡을 이제는 더 이상 못 먹겠다하고 던진 부스러기입니다. 주님의 뜻이 담긴 생명의 떡을 먹은 자는 영력을 얻어서 집으로 간 것입니다. (계속)

 

*************************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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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22 로마서 성결한 삶을 삽시다 롬12:1-8  강승호 목사  2017-08-20 357
14521 사도행전 축복받는 교회 모습 행2:37-47  전원준 목사  2017-08-18 581
14520 베드로전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갑시다. 벧전2:19-25  이장규 목사  2017-08-17 1209
14519 창세기 멈추지 않고 달려온 믿음의 길 창48:1-7  이정원 목사  2017-08-16 561
14518 창세기 기근에서 살아남기 창47:13-26  이정원 목사  2017-08-16 421
14517 창세기 나그네 인생길 창47:1-13  이정원 목사  2017-08-16 804
14516 창세기 이미, 그러나 아직 창47:1-6  이정원 목사  2017-08-16 411
14515 마태복음 참된 경배 마2:1-12  이정원 목사  2017-08-16 601
14514 창세기 부흥을 주소서 창46:28-34  이정원 목사  2017-08-16 417
14513 창세기 애굽으로 가는 야곱 창46:1-27  이정원 목사  2017-08-16 597
14512 창세기 기쁜 소식 창45:9-28  이정원 목사  2017-08-16 244
14511 마태복음 큰 자 마11:10-11  강종수 목사  2017-08-13 209
14510 요한계시 마라나타 계22:1-21  강종수 목사  2017-08-13 323
14509 마태복음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마15:15-20  김경형 목사  2017-08-13 404
14508 마태복음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마15:5-20  김경형 목사  2017-08-13 241
14507 사무엘하 왕을 섬기는 사람 삼하19:1-40  전원준 목사  2017-08-12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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