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마26:26-28 |
---|---|
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http://blog.naver.com/malsoom/174515319 |
2012년 12월 30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26장 26절~28절
설교제목 : 진리의 느티나무
【그들이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또 잔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그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모두 이 잔을 마셔라. 이것은 많은 사람에게 죄를 사하여 주려고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마태 26:26~28)】
<성경 이야기>
이제 예루살렘 성전 안으로 들어가면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예수께서는 함께 했던 벗들과 마지막으로 모였습니다. 최후의 만찬입니다. 이때 예수는 기괴한 행동을 하나 하셨는데, 즉 빵과 포도주를 벗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그것이 예수 자신의 ‘살과 피’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내 삶을 떼어서, 그리고 내 피를 뽑아서 ‘진리의 벗들’에게 주는 이 기괴함,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예수께서는 이 기괴함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을까요? 오늘 예수의 ‘살과 피’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설교 : 하나 둘 셋>
첫째, “예수는 ‘살과 피’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표현은 단순히 예수의 인간선언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뭐랄까요? 예수는 살을 만들어 내고, 피를 생산해 낸 인간이었습니다. 여기서 ‘살과 피’란 아주 오랫동안 고통스러운 진리의 내면적 투쟁을 통해서 비로소 만들어 내게 된 ‘꿈의 결정체’, ‘이상(理想)의 현실화’, ‘지상의 인간이 품게 된 하늘의 뜻’ … 뭐 그런 차원입니다. 예수는 그 인격 자체에 진리의 내재화가 이뤄져 있는 존재였습니다. 이를 예수는 ‘살과 피’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둘째, 예수는 이 진리의 결정체를 벗들과 나누고자 했습니다. 진리를 나눈다는 것, 그것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며, 신비로운 삶이며, 가슴 벅찬 감동 그 자체입니다. 제가 상상해 보건대, 진리는 요물(妖物)입니다. 나눠지면서 커지고, 깊어지고, 조용해지고, 시끌벅적해지고, 찬란해지고, 소박해지고, 아름다워지고, 따뜻해지고, 정교해지고 … 그런 것입니다. 진리자체가 살아 있는 생명체이므로, 그 생명의 진리는 사람과 사람에게 나눠지면서 그 오롯한 진리의 빛을 무지개처럼 혹은 팔색조처럼 아름답고 신비롭게 변주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빵과 포도주를 함께 먹으면서 나누려고 했던 ‘살과 피’는 바로 이런 차원이었습니다.
셋째, 예수와 함께 ‘빵과 포도주’를 나눠먹은 우리는 - 예수의 ‘살과 피’를 나눈 우리는 - 예수와 진리의 결정체들을 함께 나눠 먹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요? ………. 예수를 구세주로 모셔야 할까요? 물론 그래야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 방향은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되는 일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예수의 진리를 앵무새처럼 읖조리는 삶은 정답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생명체인 진리가 예수의 인격과 만나서 예수의 ‘살과 피’를 만들어냈듯이, 우리도 그러해야 합니다. 진리의 빛이 우리 영혼에 접촉해서 우리들 자신만의 ‘살과 피’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우리들 각자의 인격에 진리의 빛이 각기 다양하게 주체적으로 변주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래된 느티나무>
시골에 가면 마을마다 오래된 느티나무가 한그루씩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3백년에서 5백년쯤 된 그 나무 아래에 그늘이 퍼질 때쯤 되면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평상이 만들어지고, 의자가 놓여지고, 장기판이 놓여지고, 막걸리 판도 벌어집니다. 물론 아이들은 그 느티나무를 오르내리며 소리치고 놀고 있고, 가끔은 여인들의 수다가 느티나무 주위를 시끌벅적하게 합니다.
예수와 ‘살과 피’를 나눈 우리는 한 그루의 느티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지상에 뿌려진 나무의 씨앗들은 많지만, 그들 중 3백년 5백년의 세월을 이겨내면서 ‘따뜻한 그늘’을 만들어 낸 나무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 나무의 씨앗들은 혹독한 고통의 세월, 위험한 세월의 나날, 잠을 이루지 못한 밤과 쉬지 못하는 낮을 이겨낸 후 마침내 독야청청(獨也靑靑)한-즉 홀로 푸르게 우뚝 선 느티나무가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 벗들에게 권면하신 길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진리의 느티나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잘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
하늘의 님이여. 땅의 예수여. 바람의 성령이여!
이제는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이 땅에서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