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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16: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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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6장 5절~12절: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의논하느냐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이던 것을 기억지 못하느냐 어찌 내 말한 것이 떡에 관함이 아닌 줄을 깨닫지 못하느냐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라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더 먼 곳으로 가시는데 표적의 떡이 일곱 광주리나 남았었는데 아마 제자들이 그것을 가져가기를 무관심했던 모양입니다. 이것을 주님은 이미 아시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시니까 제자들이 얼렁뚱땅 알아듣기를 단순히 먹는 떡에 대한 말씀인 줄 알고 떡을 안 갖고 왔다고 서로들 그러면서 ‘다음 번엔 식사당번을 정하자’ 그랬던 모양이지요? 예수님께서 속으로 ‘저것들이 언제 철이 드나’ 그랬을 것 같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음으로 서로 그것을 가지고 논쟁을 하느냐? 지난번에 떡 다섯 개로 장정만 해도 몇 천명이 먹었고, 몇 바구니나 남았느냐? 이번에 또 떡 일곱 개로 장정만 해도 몇 천명이 먹고, 몇 바구니나 남았느냐’ 하시고, 다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그 가르치는 교훈에 대해 더 주의하고 신경을 쓰라는 것입니다.
누룩이라고 하는 것은 부풀게 하는 성질이 들어 있습니다. 누룩의 성질을 좋은 뜻으로도 쓰고, 나쁜 의미로도 씁니다. ‘천국은 마치 가루 서말 속에 넣은 누룩과 같다’ 할 때 여기서는 좋은 뜻으로 썼고, 지금 여기 본문은 나쁜 뜻으로 말씀하심입니다. 누룩은 가르치고자 하는 사상이요 정신입니다.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후 저주를 받고 쫓겨났습니다. 저주를 받아서 오늘날까지 인간의 세상에 범죄가 있고, 산고의 고통이 오고, 병과 질고와 죽음이 왔다고 말은 잘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타락 이후 마지막 그 날까지 타락적 기존적 지식을 자기의 주격적 지식을 삼고 산다는 면에서는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만 보면 선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진실이라든지 모두가 타락적 주관성에서 나온 지식이요 개념인데, 그 개념에다 성경에 있는 선 사랑 진실을 끌어다가 말을 하고 가르치니 꼭 성경 하나님말씀 같지요?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요, 하나님의 의사요,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의사와 그 뜻은 영원궁극적 목적에다가 두신 의사요 말씀입니다. 선이라든지 사랑이라든지 진실이라든지 전부는 영원궁극적 목적에 두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신령적이며 영적인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진리로서 되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선의 개념입니다. 그런데 거의 보면 교인이 일반적인 개념으로만 받아드리고 말하고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인데도 예수이름으로 하니까 신앙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기독자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진리지식을 먹고 그 지혜 지식과 그 신적인 도덕성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들이고, 천국복음이라고 했으니 성분과 질적인 면에서도 천국을 향한 천국의 것, 신령한 것, 아버지 하나님의 것을, 주님 것의 가르침, 진리이치 생명이치이어야 그것이 생명과 양식인데, 이것을 성도는 하루 세끼 다윗처럼 주식으로 먹어야 신적인 지혜 지식성이 자라고 도덕성이 자라고 능력성이 자라고 영적 기능과 지능 면이 민첩하고 민감하게 민활하게 자라나는 것인데 이것은 먹이지 않고 에덴동산에서 따먹은 저주받고 나온 타락적 기존지식을 기준적 지식으로, 주격적 지식을 삼고 가르치니 제 눈에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게 보이는 선악과를 여전히 삶의 목적, 종교적 신앙의 목적적으로 놓고 그것을 따먹고, 다른 사람에게 따먹으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이름으로 부지런히 따먹으라는 것입니다. 말은 예수 그리스도인데 목적은 세상성 물질성적 요소들입니다. 이 신앙사상들은 물질세계, 물질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신앙사상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가지고 도덕성을 가르친다고 해도 일반사회적 도덕적 개념을 벗어나지 못하는 신앙이 됩니다.
우리 기독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적이며 독권적인 기본구원인 사죄 칭의 새 생명을 불가항력적인 은혜로서 입히셨기 때문에 기독자들 속에 하나님의 본질로 중생된 이 영은 우리의 영이 잘 되라고 영을 위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진리이치 신적 도덕이치 신적 생명의 이치의 말씀을 먹어야 신앙 믿음이 자라고 이룰 구원을 잘 이루고 영원궁극적 성화구원을 잘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바리새교인 사두개인의 가르침에는 이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아니면 중생된 영이 자라지를 못합니다. 물질적 세상적 도덕적인 것을 먹으면 진리가 아니고 비 진리이기 때문에 성도의 신앙 믿음은 죽는 것입니다. 중생된 영은 힘을 못 쓰고 그 대신 육의 생각을 지닌 옛 사람 그 자기가 내 속에서 주격이 되어 가지고 종교적 이력, 종교적 업적을 활발히 이루어 나가게 됩니다. 사역목적으로 나가는 이것이 믿음이요 신앙인 줄 압니다. 또 그렇게 가르치고 키우고 보내고.
이것이 음녀요 종교적 바벨론으로서 그 속에서 온갖 귀신의 활동이 새끼치는 보금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강조는 종교적 도덕적 강조 구복강조 종교적인 충성봉사강조 종교적인 생활강조입니다. 이런 것은 껍데기로서 사람이 참 사람으로 만들어지면 자동적으로 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사람에게 진리 깨닫는 이치는 안 주고 도덕적 강조를 하면 사람이 바로 됩니까? 자기부터 못 섰는데!
오늘날 껍데기 위주의 가르침이 그만 진리인 것처럼 기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부피 덩어리를 크게 이루는 그것이 ‘신앙이 좋다 나쁘다, 크다 적다’ 하는 판가름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비 진리적인 신앙사상이 누룩처럼 염병처럼 번져 버렸습니다. 교회가 악한 세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들이 주님의 교훈에 늘 따라다니면서 훼방이고 반발입니다. 양심에 찔리면서도!
주님의 교훈자체가 빛이요 척도요 기준이기 때문에 듣는 이로 하여금 분별이 가고 구별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재의 분별, 성분분별 신앙사상의 방향과 목적 사건 환경 삶의 분별이 가니 자기 출생목적이 뚜렷하고, 자기 재세기간의 목적이 분명하고 뚜렷합니다. 굶으나 먹으나, 앉으나 서나, 자나깨나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닮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업이요, 생활방편은 전부는 부업입니다. 그런 것들은 예수 잘 믿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그들의 신앙정신 사상을 주의하라고, 가르침을 받지 말라고, 그 교훈을 받지 말라고, 그 신앙사상에 감염되지 말고 오직 진리 따라 가자고 더 먼 곳 건너편으로 가버리셨는데 제자들은 그 걱정은 안 하고 떡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먹고 살까!
한편 바리새파 교인들과 사두개파 교인들은 그 정신을, 그 신앙사상을 어디서 감염시켜 왔는지 모르지만 모두 다 하나님 앞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고 고칠 것이 없는 하나님처럼 완전자가 되어 가지고 주님의 진리를, 성경을 인간의 좁은 두뇌로 비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듣는 교인들은 전부 아멘귀신이 들렸는지 분별 못하는 맹종자가 되어 가지고 무슨 말을 어떻게 하든 전부는 ‘아멘’ 입니다. 귀가 간지러워 귀신들의 가르침을 좇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적인 것, 육적인 것, 거짓적인 것, 이단적인 것, 마귀적인 것을 받아먹으면 신앙 믿음이 죽고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으로 자라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이력과 활동과 업적은 세상이 놀랄만한(네피림)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분명히 불탈 구원 부끄러운 구원이요 사망성공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 날에 가서는 ‘난 너희들을 모른다’ 라는 선언을 듣게 됩니다.
16장 13절~20절: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인자 즉, 예수 당신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라고 하더냐고!
사람에 대한 소문은 참 무섭습니다. 특히 이 빌립보지방 사람들은 말이 많은 모양입니다. 하는 일을 보아서 그 사람을 많이 판단하는 모양입니다.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인자는 글자 그대로 본다면 사람의 아들이지만 신학적으로는 예수님의 인성을 말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의 인성, 성육신 하신 사람이다’ 단순히 그렇게만 보지 말고 사람의 질적인 면에서 진짜 참 사람이라는 면에서 강한 인식과 느낌을 가지고 보자 그 말입니다.
참 진짜 사람된 이 예수를 보고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할까요?
사람들에게 묻지 않고 제자들에게 물으신 의도가 무엇일까요?
① 제자들의 믿음을 떠보기 위해서. 말하자면 제자들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서 그걸 알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여 가지고 묻는 것이다?
② 제자들이 바다에서 혼난 일이 있어서 예수 당신을 어느 정도 무섭게 알고 있나 알고 싶어서?
③ 예수 믿는 모든 자들에게 바른 신앙관을 알게 해 주고 싶어서?
앞 절에서 바리새인의 누룩과 사두개인의 누룩 곧, 그들이 가르치는 교훈을 주의를 하라고 한 말끝에 이 말씀이 나왔습니다. 어디서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고 어떤 사고방식으로 알고 있는 것이 바른 신앙관이냐? 어떤 교회가 바른 신앙관을 가지고 가르치느냐? 우리로 하여금 어디서 배웠던 자기의 신앙관을 살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더냐?
① 누구라고 소문을 내더냐?
② 누구라고 가르치더냐?
③ 누구라고 주장을 하더냐?
④ 누구라고 소개를 하더냐?
제자들이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 또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제자들도 귀가 있으니까 그런 저런 소문을 다 듣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못 듣나? 다 듣고 계시지!
어느 소문이 제일 강력했을까?
① 세례요한 설,
② 엘리야 설,
③ 예레미야 설,
④ 기타.
어느 소문이 제일 많이 받아들여졌을까? 아마도 비슷비슷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1. 세례요한 설.
당시에 세례요한을 어떤 사람으로 보았을까? 사람들이 세례요한을 하나님께서 마지막 선지자로 메시아 보내시기 직전의 선지자로 보내서 백성들로 하여금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결심으로 예수님을 영접해서 구원을 얻게 하시려는 이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헤롯의 죄를 강력하게 꾸짖고 감옥에서 헤롯의 칼에 죽었으니까 도덕성을 회복시키러 온 선지자인 줄 알았을 것입니다.
얼마 후에 예수님께서 능력있는 일을 행하니까 헤롯은 세례요한의 권능이 살아나서 예수 속에서 운동을 한다고 했습니다. 헤롯적인 신앙사상을 가진 자들은 예수님의 운동이 세례요한의 운동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운동이 도덕적 회복운동으로 보이기 때문에 도덕성 회복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천국복음이라고 하지만 말하고 주장하는 것이 일반도덕성 회복을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일반개념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일반인들도 그런 사고방식으로 기독교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은 지금은 이것도 허물어져 버렸지만!
2. 더러는 엘리야 설.
엘리야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입니다. 아합 왕과 이세벨에게 다가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게 했고, 3년 6개월 동안 비가 안 오게 하고, 불말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신비로운 이적기사를 많이 행했습니다. 굴속에서도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정도로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지금도 기도 많이 해서 엘리야 같은 능력을 얻어 가지고 종교계를 한 번 통치해 보겠다는 신종 엘리야가 많습니다. 진리로 자체화 되지 않고 병 고치는 능력, 불 떨어지는 능력을 달라고 보채다가 귀신의 능력 마귀의 능력을 그것도 어설프게 받는 자가 많고, 못 받고 목숨 죽어나간 자도 많을 것입니다.
3. 더러는 예레미야 설.
예레미야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입니다.(BC627~586년, 요시아 히스기야 므낫세) 당시에 앗수르 애굽 바벨론 등 강대국 사이에 유다 이스라엘이 끼어 있어 가지고 그들의 세력다툼에 ‘어디로 붙어야 유리할까, 안 죽고 살아남을까’ 할 때 예레미야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하여 일하는 예수님을 보고 아마도 구국운동으로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천국복음을 위해서 하신 예수님의 일을 부분적으로만 보고 따다가 사회적 병 고침, 사회적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심.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오늘날 기독교 안에 성경을 가지고 일반도덕운동, 신비주의 능력운동, 구국운동 등을 하며 그것이 천국복음인양 떠들고 있는 것입니다.
16장 15절: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보느냐? 어떻게 보고 무엇을 가르치며 무슨 운동을 하느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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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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