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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16:1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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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6장 19절: 내가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내가 천국열쇠를 너에게 주겠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천국열쇠를 주십니다. 신앙고백이 안된 베드로에게 준 것인가, 신앙고백이 된 하나님의 본질적인 신앙사상을 가진 베드로에게 준다는 말인가? 그러니까 그냥 사람 자체가 아니라 본질적인 신앙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천국열쇠를 달라고 하면 아무에게나 주겠습니까? 본질적인 신앙사상만 가진다면 베드로에게 주었듯이 주신다는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그 천국열쇠를 가지면 어떤 역할이 되어 나가느냐? 매고 풀고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큰 권세요, 땅에서는 그 어떤 인간이라도 줄 수 없는 하늘의 권세요, 하늘과 땅에서 되어지는 직통권세요, 특수권세입니다. 어부 베드로라는 한 인간의 권세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고백한 그 신앙사상권의 권세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 신앙사상권 권세는 주님이 일임을 한 주님의 권세입니다.
천국열쇠를 준다는 이 말은 어느 종교의 지도자가 사람을 지옥에서 천당으로, 천당에서 지옥으로 보낼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권세는 일단 받아만 놓으면 받은 자기가 공갈치고 협박을 하고 저주를 하면 눈알이 빠지고 다리가 부러지고, 축복만 하면 그게 다시 다 고쳐지고 돈 보따리가 굴러 들어오는 그런 권세냐? 사람 목을 뗐다 붙였다 하는 그런 권세입니까? 주님이 주신 권세는 그런 권세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무슨 일을 하는 권세냐?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는 일입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똑같이 동시에 풀리는 일을 하는 권세입니다. 이 권세는 성도들도 전도로서 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실력상 쉽지 않고 주로 보면 교훈권을 가지고 교역자가 하는데, 그러면 교역자가 땅에서 묶는 일이 무엇이냐? 교역자가 사람을 뭘 묶는다는 말이냐? 직분이라는 것으로 코를 꿰어 자기 교회를 못 떠나도록 묶어놓는다는 말입니까? 교역자가 사람을 묶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이치, 하나님의 생명이치, 도덕이치로서 주님에게 천국사상으로 밀착을 시켜놓는다는 말입니다.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반대로 땅에서 매이면 즉, 묶여 있으면 하늘에서도 묶여 있다는 말이 되는데 묶여 있으면 무슨 자유가 있겠습니까?
땅에서 묶여 있는 것은 사람이 죄에 매여 있고, 사망권에 매여 있고, 세상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매여 있고, 사상적으로 매여 있습니다. 이게 풀려져야 자유가 되겠는데 매여 있으면서 매인 줄을 모르고 자기는 자유하고 있다고 하며 오히려 좇아가고 따라가고 있으니 하나님과 원수가 될 수밖에! 진리의 하나님 말씀을 자기가 싫어서 안 따르니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원수로 묶여 있는 것입니다. 이 원수되어 있는 것을 풀어야지! 하나님과 원수되어 봐야 인간 자기에게 좋을 것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성도에게 주님이 기본구원에서 중보사역으로 사죄 칭의 새 생명으로 천국입국권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子)권을 주었지만(믿는 사람 모두에게) 사도들 또는 교역자들에게도 교훈적인 측면에서 중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훈권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으면서도 어느 부분은 풀린 것 같은데 어느 부분은 안 풀린 것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는 믿는데 바로 안 되고 못 고친 것이 많다 그 말입니다.
예수 믿으면서 자기가 몇 가지나 고쳐진 것이 있습니까? 아직도 어느 부분에서는 못 끊고 세상에 질질 끌려가는게 있습니까? 세상적인 그 어느 면에 개 끌리듯이 질질 끌려가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실 때 보기가 좋을까요?
이런 것을 다 하나님 말씀인 진리이치 생명이치 도덕이치로 깨닫게 해서 사람을 자유할 수 있도록 풀어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목회요, 교역자의 할 일입니다. 교회가 뭐가 우선이냐? 이게 우선입니다. 이게 아닌 것은 교회 교역자가 아닙니다. 자기가 주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사자요, 주님의 교회 인도자라고 여긴다면 반드시 이 일을 해야 합니다.
그 일을 안 하는 교역자가 있느냐? 안 하려고 하는 교역자가 있느냐? 있다면 자기는 거짓 교역자요, 육의 배만 채우고자 하는 세상 사기꾼이요, 강도요, 이단이요, 사단의 종들이요, 양의 가죽을 쓰고 있는 이리요, 양을 잡아먹는 목자라고 단정을 내려야 합니다. 이런 자들은 회개하고 고치기 전에는 교회에 발을 들여놓도록 하면 안 됩니다. 그들에게 교회를 인도할 수 있는 인도권을 주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참 종은 몰랐던 때를 회개하고 바로 나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주님의 의사단일성에 맞추어서 영원궁극적 성화구원에 목적을 두고 그 목적을 현재 현실에서 이루면서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각기 다 그 열쇠를 가졌다고 할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다 고백하기 때문에! 그러면 어떤 것이 진짜냐? 세상에는 복사된 열쇠도 많고, 세상에는 복제된 양도 있고 송아지도 있고 원숭이도 있고. 복제된 인간이 있습니까? 인간의 망가진 창자를 갈아넣기 위해 돼지 속에 복제로 키운다고? 성경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면 가능합니다.
물론 진짜로 하나님 보시기에 바로 된 교역자도 많을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만. 그러나 사단 마귀가 복제하여 내어놓은 교역자, 목사님들도 많으리라 봅니다. 성경에 거짓 목자도 있으니까!
거짓 목자를 신학을 안 했기 때문에 거짓 목자라 한다면 이것은 큰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말할진대 교인도 신학교를 안 나온 사람들은 거짓 교인이 되어 버립니다. 성경에 그런 말은 없습니다. 또 이유를 말할진대 신학을 나와야 만이 진짜라고 한다면 신학을 나왔어도 교회를 어지럽히고 사람 되어먹지 못한 사람도 많이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교역자들은 신학을 나왔으니까 참 목자들인가?
성경을 알려고 얼마든지 공부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준을 어디다 두느냐? 우리 주님은 기준을 어디다 두었느냐? 어떤 신앙사상의 열쇠를 주었습니까? 또 그 열쇠(주권)를 가지고 무슨 일을 하라고 합니까? 자기가 가진 열쇠가 무슨 열쇠인지, 주님이 주신 교훈권이 무슨 열쇠인지 대조가 안 됩니까? 똑같다고 보아집니까? 주님이 주신 열쇠는 절대로 복사가 안 됩니다. 같은 열쇠는 줄 수 있어도! 열쇠통은 주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각 사람이 자기가 가진 것이 다 진짜라고 할 때 각자가 자기 열쇠를 가지고 와서 따보라고 해서 안 열리면 자기가 가진 열쇠는 누가 준 열쇠겠느냐?
주님은 열쇠를 즉, 주님이 주신 교훈권은 즉, 신앙정신 사상은 하나님 말씀 진리이치와 생명이치와 도덕이치로 하나님의 옳음을 가지고 사람을 죄에서 자유롭게 풀어내는 교훈권을 주었습니다. 교훈하는 그 속에 그런 것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을 주님에게로, 주님의 성품과 인격에게로 성품적 인격적으로 주님에게 밀착을 시키게 하는 그 교훈권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사역주의가 아니고, 인본주의가 아니고 신본주의입니다. 이것은 속된 말로 자기 패거리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 사람들마다 자유한다고 하나 실상은 죄에 매여 있으면서 주권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신앙정신 사상을 가진 자들은 사망권세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의 신앙을 못 가지면 이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이것은 말로서만 되는 신앙이 아닙니다. 말로만이야 누군들 못하겠느냐? 이 신앙은 말로서 끝나는 신앙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존재적으로만 믿는 신앙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인격적으로 만들어지는 성령님이 역사가 되어 가는 신앙정신이요 신앙사상입니다.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신앙정신들 하고는 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신앙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 교인들이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고방식으로 예수를 믿는 자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은
‘더러는 세례요한이라 하고’
도덕성 회복운동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러는 엘리야라고도 하고’
이적기사 일으키고 신비주의운동을 하는 교회로 알고 있습니다.
‘더러는 엘리야라고도 하고’
세상구국운동을 하는 교회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런 운동인 줄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그렇게 알았듯이 오늘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그렇게 알고 있고, 그런 사고방식으로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말뿐이지 실지로 그런 질적인 신앙은 보기 드뭅니다.
16장 20절: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이르지 말라고 경계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 이유 - 예수님 당신의 목숨이 아까워서 그랬을까? 물론 죽기는 죽는데 미리 당겨서 죽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둘째 이유 - 예수님 당신 자신을 위해서인가, 제자들을 위해서인가?
그리고 베드로는 스스로는 그런 신앙을 고백할만한 신앙의 사람으로 만들어져 있지 못합니다.
그런데 고백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① 현재 믿음이 적어도 그 신앙사상만큼은 꼭 붙잡으라는 것.
② 신앙이 아닌데도 말은 앵무새처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라는 것.
베드로의 신앙고백은 평소의 그런 신앙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22절에서 허점이 나오는 것을 보아서!
그런데 어떻게 그런 고백이 서슴없이 나왔을까?
① 성질이 급하니까 어떻게 하는 말이 그렇게 튀어나온 것이다?
② 하나님 아버지가 그렇게 가르쳐준 것이다?(17절)
하나님 아버지가 가르쳐준 그 신앙고백대로의 신앙이 질적으로 되어지려면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고 부활 승천하실 것을 보아야 만이 되겠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경계를 하신 것입니다. 부활 승천을 보고, 또 성령을 받지 못하면 안 됩니다.
부활 속에는 하나님으로 닮은 질적 성분적 신비로운 성분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사망권을 정복, 죄를 정복, 세상을 이긴 정복, 마귀를 이긴 정복, 죽음을 정복하여 죄에서, 사망과 죽음에서 해방시킨 성분들이 많습니다. 그냥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이기고 정복을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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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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