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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나 교회에 보내는 말씀

요한계시 양주섭 목사............... 조회 수 501 추천 수 0 2017.09.12 23: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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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계2:8-11 
설교자 : 양주섭 목사 
참고 : 탈라하시장로교회 http://tallakoreanchurch.net 

서머나 교회에 보내는 말씀

(요한계시록 2:8-11/ 2월7일)
 

서론
 

지난시간에 소아시아 일곱 교회중 첫번째로 에베소 교회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진리를 추구하다가 첫사랑을 잃어버린 교회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잃어버린 첫사랑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두번째로 서머나 교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소아시아의 일곱교회중 유이하게 책망을 받지 않은 교회가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교회 이름을 서머나교회나 빌라델비아 교회로 하는데는 많지만, 사데 교회라고 이름하는데는 없습니다.
 

그러면 서머나 교회가 받은 칭찬의 특징은 무엇이냐? 환난과 궁핍 가운데 신앙을 끝까지 지킨 것입니다. 오늘 서머나 교회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환난과 궁핍이 있어도 신앙을 끝까지 지키라” 지금도 중동과 북한 같은데서는 서머나 교회당시처럼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무참히 처형되는 박해가 있습니다. 우리가 생활하는 미국과 한국에서는 그런 직접적인 박해는 없지만 간접적인 박해가 있습니다. 교회 나오라고 전도하면 “너나 잘하세요”라고 하고, 왜 그런데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냐는 눈으로 봅니다. 주일을 성수하고 술자리를 피하는데서 오는 직장에서의 불이익이 있습니다. 또 믿지 않는 가정에서 불신자가족이 교회에 시간과 돈을 왜 그렇게 들이냐며 핍박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서머나교회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는 그러한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네가 잠시 받는 그런 유한한 고난과는 비교할수 없는 영원한 상급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을 끝까지 지키는 자에게 주님께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고,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먼저 본문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8절은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를 보내시는 주님을 처음과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어9,10절에서는 서머나 교회가 환난과 궁핍, 그리고 사단의 사주를 받은 유대인 무리의 비방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킨데 대하여 예수님께서 칭찬하시고 죽기까지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끝으로11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촉구하시고 이기는 자에게는 둘째 사망의 해를 당하지 않으리라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럼 오늘 본문을 한절한절 자세히 살펴보면서 말씀을 통해 얻을수 있는 영적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8)” 먼저 서머나 교회를 향한 송신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소개하는데 이것은 1:17,18에서 인용된 것입니다.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17)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18)”
 

서머나(Smyrna)는 본서에 언급된 소아시아의 일곱 도시 중 유일하게 현존하고 있는 도시로서 오늘날에는 이즈미르(Izmir)로 불립니다. 터키 제3의 대도시 입니다. 요한계시록이 쓰여진 당시에도 서머나는 에베소, 버가모와 함께 소아시아 지역에서 매우 번성하던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대도시들처럼 우상 숭배, 특히 황제 숭배가 성행한 도시였습니다. 더욱이 당시 서머나에는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생활에 큰 위협이 되었던 유대인들이 A.D. 70년 예루살렘 멸망 이후에 대거 이주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서머나 교회는 황제 숭배를 강요하는 로마 정부의 세력과 유대주의적 율법주의로 교회를 박해하는 유대인들이라는 커다란 두 세력으로부터 정치, 종교, 사회, 경제적으로 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그냥 기독교인이 박해당한다 생각하면 잘 안 와닿을 수 있는데 실제로 당시 기독교인들이 서머나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살기가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이제 내일은 한국 최대 명절인 설날인데요. 설날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뭔지 아세요? 3위가 ‘언제 결혼할거니?’ 2위가 ‘살 쪘네(살 빠졌네)’ 등과 같은 외모, 특히 몸무게에 대한 발언입니다. 그리고 1위는 ‘언제 취업할래?’ 입니다. 이걸 보면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문제를 가장 민감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당시 서머나 교회 성도들은 이 취업과 생계에서 치명적인 불이익을 당했습니다. 나라에서 길드라는 상인조합을 만들어서 거기에 가입하지 않은 자가 장사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길드에 가입하는 조건은 로마황제 가이사가 신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자들은 엄청난 세금을 내게하는 것은 물론 수시로 잡아가서 고문을 하는 박해가 이어졌습니다. 한마디로 서머나에서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만약 이런 서머나 교회 성도의 상황에 놓인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런 박해를 이겨내면서까지 신앙을 지킬수 있으십니까? 당장 내 눈 앞에서 자식들이 배고파 죽겠다며 쓰러져 가는데 신앙을 키키며 이겨낸다는게 솔직히 저도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는 이러한 조직적 박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신상을 지켰습니다. 비록 몸은 가난하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신앙만은 굳게 지킴으로 말미암아 영적 부요함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모진 환난과 궁핍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믿음을 키켰던 서머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칭찬만 들은 교회로 기록되었습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9)” 9절과 10절은 서머나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칭찬과 격려의 내용입니다. 이러한 칭찬과 격려는 일곱 교회 사이를 다니시며 신적 통찰력을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서머나 교회에 대해 가지신 지식에 근거한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대로 “알다”라는 헬라어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기노스코”는 경험에 의해 아는 것을 말하고, “에이도”는 육감 내지 영감에 의존하여 직관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본절의 “내가 알거니와”에 쓰인 헬라어는 “에이도”로 예수님께서 전지전능하신 신적 통찰력을 통해 서머나 교회에 대해 알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알고 계시나면 환난과 궁핍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즉 신앙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 제재를 받았고 그로인한 환난과 궁핍 가운데 있었습니다. 얼마나 환난과 궁핍이 강했는지 서머나 교회의 현재 모습은 비참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세상적인 안목으로 본 서머나 교회에 대한 평가입니다. 세상적인 안목이 뭐죠?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데이터와 정보와 눈에 드러나는 것을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에 의하면 서머나 성도들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시는 시각은 정반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지금 서머나 교회 성도들이 신앙을 지킴으로 로마 중앙정부로부터 제재를 받아 먹고 살기도 힘들고 굶어죽을 판인데 사실은 너희가 부요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육적인 관점으로 서머나 교회는 가장 가난한 자들이죠.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영적인 관점입니다. 서머나 교회가 육적으로, 물질적으로는 환난과 궁핍가운데 있지만, 영적으로는 부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3:14-22에 언급된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적 가난과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물질적으로는 부요했으나 영적으로 가난했던 반면 서머나 교회는 물직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영적으로는 부요한 교회였습니다. 오늘날에도 겉으로 보기에는 부하지만 영적으로는 가난한 교회가 있는가 하면, 겉으로는 가난해 보이지만 영적으로 부요한 교회가 있습니다. 저는 우리 탈라하시 장로교회가 비록 물질적으로는 가난한 교회일지라도 영적으로 부요한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머나 교회가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자칭 유대인”은 A.D. 70 년 예루살렘 함락을 기점으로 서머나로 이주해 온 유대인 집단입니다. 이들은 혈통상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내세워 자신들을 선민으로 자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브라함보다 먼저 존재했었던 참 아브라함의 자손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사형시킨 장본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서머나로 이주해 올 때부터 회당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로마 정부와 힘을 합쳐 서머나 교회를 대대적으로 핍박한 ‘사단의 회당’ 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생활을 반성해 보길 원합니다. 내가 교회를 얼마나 오래 다녔는데, 내가 교회에 들인 시간과 노력이 얼마나 되는데, 내가 권사고 집사고 목사인데 적어도 천국에 못가는 일은 없겠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기준은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의 직분이나 교회를 섬긴 기간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하면서도 얼마나 텃새가 심한지 모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새신자가 왔는데 처음 온날은 얼마나 친절하게 맞이하는지 감동해서 계속 이렇게 친절하게 대할거라는 기대를 갖고 두번째 갖는데 어떤 권사님이 거기 내 자린데 왜 거기 앉냐면서 엉덩이로 밀치더랍니다.


또 어떤 교회 가보면 자기가 그교회 개척멤버이고 장로인데 세상말로 터줏대감이라고 텃새부리고 뭐하나 바꿀려고 해도 자기생각이랑 다르면 못하게 압박하고 그런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사람들은 교회가 예수님의 것이 아니라 자기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내가 얼마나 여기에 공을 들였는데 하고. 그런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오래다닌 기간이나 직분이 중요한게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교회성장을 방해하고 다른사람들이 천국문에 들어가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서머나 교회 당시 유대인들은 신앙의 자부심이 엄청났을 겁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누구보다도 경건하게 헌신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23장1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10)” 자칭 유대인들이라 하는 자들은 서머나 교회를 강하게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현재의 핍박을 넘어 대대적인 핍박이 도래할 것이란 말씀입니다. 이런걸 설상가상(to make matters worse)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의 주동과 로마 당국의 가세로 서머나 교회 일부 성도들이 투옥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처음이며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서, 교회의 운명은 사단에게 있지 않고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10장28절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서머나 교회가 당하는 시련이 비록 너무나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것은 영원히 지속되는 고통이 아니라 ‘십 일 동안’ 지속되는 환난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여기서 ‘십 일 동안(헤메론 데카)’은 잠깐, 일시동안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Be faithful, even to the point of death)’는 죽기까지 충성하라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현재의 고통을 참으라는 말씀입니다. 잠깐의 고통을 참고,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가 닥쳐오는 시련가운데 순교의 각오로 신앙을 지키면, 예수님께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거라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11)” 여기서 ‘둘째 사망’은 단순한 육체적 죽음을 의미하는 ‘첫째 사망’과 달리 최후의 심판을 통해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는 형벌을 말합니다. 이 형벌은 영원한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21장8절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자들은 영벌을 받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임을 주님께서 약속하고 계십니다.
 

결론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을 지킴으로 인해 주어지는 결과인 생명의 면류관과 둘째 사망의 해를 면함이 너무도 큰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마나 교회의 감독이요 사도 요한의 직계 제자었던 폴리갑(Polycarp)은 A. D. 156년 어느날, 예수님을 욕하고 자신의 생명을 구하라고 설득하는 로마 총독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86년간 주님을 섬겼는데 그분은 한 번도 저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저를 구원하신 저의 왕을 욕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총독은 한번 더, 제발 고집부리지 말고 한번만 황제를 신으로 맹세하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폴리갑은 여전히 거부하자 총독은 굶주린 야수들을 풀어 죽게 하겠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러자 폴리갑은 어서 야수들을 부르라고. 아무리 야수에게 죽임을 당한다해도 의로운 것에서 악한 것으로 회개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불가능한 변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총독이 “네가 야수를 무시하니 너를 불태울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폴리갑은 “당신은 오직 잠깐 태우고 잠시 후에 소멸되는 불로 나를 위협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악한 죄인들을 위하여 준비된, 다가오는 심판과 영원한 형벌의 불을 모르고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십시오”라며 오히려 총독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폴리갑은 화형을 당했습니다. 죽음으로써 신앙을 지킨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그런 맹목적 희생이 어딨냐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맹목적 희생이 아닙니다. 고난속에서도 신앙의 절개를 지킨 자들에게는 그에 따른 보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생명의 면류관을 받고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탈라하시 장로교회가 서머나 교회를 본받아 끝까지 신앙을 지키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환난과 궁핍을 당하게 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충성으로 이겨내길 바랍니다. 현실은 가난하지만 실상은 부요한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고,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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