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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데 교회에 보내는 말씀

요한계시 양주섭 목사............... 조회 수 410 추천 수 0 2017.09.12 23: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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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계3:1-6 
설교자 : 양주섭 목사 
참고 : 탈라하시장로교회 http://tallakoreanchurch.net 

사데 교회에 보내는 말씀 (요한계시록 3:1-6/ 2월 28일)
 

서론
 
소아시아 교회에 보낸 일곱 편지 가운데 다섯 번째 편지인 사데 교회에 보내는 예수님의 예언적 메시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데 교회는 7교회중 가장 성적표가 좋지 못한 교회였습니다. 형식주의 신앙과 영적 무기력 그리고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 주님께 책망을 받은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서 성경에서 가장 읽기 싫은 부분 중 하나로 읽으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사실은 주님이 사데 교회를 포기하지 않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꺼져가는 등불같은 초라한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어떻게 교회가 저렇게 세속화되고 주님이 원하시는 뜻과 달리 됐을까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자신의 몸인 교회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만약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물으시고 평가 하신다면 나는 과연 주님의 책망을 피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사데는 옛 리디아(Lydia) 왕국의 수도로 정치,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대도시였습니다. 일찍이 무역이 발달하고 양털 가공업과 염색 공업이 발달하여 경제적으로 부요한 도시였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사데에는 사치와 향락이 만연했고 사람들은 교만했습니다. 그리고이러한 사데 지역의 풍조는 그곳에 세워진 교회에게도 그들로 하여금 명목상의 성도들이 되게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디모데후선3장5절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사데 교회의 성도들은 경건의 모양은 가지고 있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었던, 사실상 죽어 있는 형식적인 신앙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이에 주님은 그들에게 신앙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기 전에 남은 신앙의 불씨를 살려 온전한 신앙의 모습을 회복하라고 권면하십니다. 만약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돌연히 임할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임을 경고하십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사데 교회를 책망하시면서도 그들 가운데 소수의 의인이 있다는 것과 끝까지 신앙을 지키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본론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기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1)” 1절에서 3절까지는 사데 교회를 향한 책망과 권면입니다. 사데 교회는 세속화된 교회를 상징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정말 하나님 말씀을 나누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길 기도하는 모임인지 아니면 세상과 별 구분없는 친교모임이고 자기들 이권을 위한 모임인지 구분이 안가는 교회들이 정말 많습니다. 교회와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이용해 자기의 이권을 챙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사람들에게는 그것이 교회다니는 목적이죠.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겉만 교회지 주님 보시기에 죽은 사데교회가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심판의 날 그들에게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라며 평가하실 때 뭐라고 변명하겠습니까? 내가 그래도 수십년 신앙생활하면서 믿음이 좋고 신앙생활 잘해왔다는 자신이 있었는데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도대체 뭐라고 말할까? 주님이 지금 믿음을 탓하지 않습니다. 행위를 놓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것도 사람에게 보여지는 드러나는 행위가 아니라 아무도 없는 곳에서의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 나오는 행위, 오직 주님 만이 아시는 행위를 가지고 지금 말씀하시는 겁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말만살았지 실상은 죽었다는 말입니다. 말만 요란하게 하고 거룩한척 하지 실천은 하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교회를 말합니다.
 

오늘날 세속화된 교회에 주시는 주님의 이 경고의 메시지를 가볍게 여기지 마시고 깨어서 회개하고 순수한 신앙을 지키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으니(2)” 주님께서 사데교회에 영적으로 깨어 각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죽은 교회 같은 사데 교회지만 거기에도 신실한 소수의 백성들을 남겨두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우리의 희망입니다.
 

하남님께서 사데교회에 대해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럴듯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행위를 펼쳐놓고 볼 때 하나님이 인정할 만한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볼때는 경건하고 신앙심 있고 성실하고 사회적으로도 능력있는 사람이지만, 사람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이 볼때는 인정할 만한 참 신앙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얼마나 이중적인 기가 막힌 말입니까? 이것은 결국 사람들 앞에서 신앙을 연극하는 게 되는데,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많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네가 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3)” 사데 교회가 복음을 처음 수용하고 들었던 최초의 태도를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데 교회처럼 세속화되고,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었고,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없는 교회를 보면 특징이 있는데 한때 전성기가 있었다는 겁니다. 한참 순수한 신앙으로 교회가 성장하고 뜨거웠던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데 교회로 대표되는 세속화된 오늘날 교회들에게 과거 처음 성장할때의 헌신적이고 순수한 복음을 받을때를 생각하고 지금의 변질된 신앙을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4)” 1절로 3절까지는 사데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책망과 권면의 내용인 반면, 4절은 사데 교회 일부 성도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격려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2절에서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이라는 언급을 통해서 사데 교회의 영적타락 상태에도 불구하고 ‘남은 자(remnant)’가 있음을 표명하셨는데, 여기서 그들이 다시 거론됩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는 창조적 소수가 좌우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라를 강대국으로 이끄는 것도 소수의 리더가 깨어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남은 자 몇 사람을 통해, 당신의 구속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여기서는 남은 자를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자 몇 명’으로 표현했습니다. ‘옷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덧입은 자신들의  고귀한 신분을 세속화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흰 옷을 입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입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날 세속화된 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정치적으로 되고 신앙의 순수함을 잃을 지라도,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자 몇 명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보시고 희망을 보시는 겁니다. 교회 정치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누가 아무도 안 알아줘도 매일 새벽예배때 앞에 앉아서 눈물로 교회를 위해 기도하시는 권사님들, 매일 교회 나와 정말 주님의뜻을 구하며 회개와 눈물로 간절히 기도하시는 집사님들, 이분들이 있기에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세속화 됐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교회를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5)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6)” 5절과6절은 사데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마치면서 다른 여섯 교회에 언급된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약속입니다.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3가지 약속은 첫째, ‘흰 옷’ 둘째, ‘생명책에 그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는 것’ 그리고 셋째,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그 이름을 시인받는 것’ 입니다.

 
마태복음10장32, 33절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요즘은 식당에서 봐도 기도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이 나라에 얼마나 많은 크리스천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이 보는게 쑥스러워서인지 기도를 안하거나, 해도 잠깐 눈만 감았다 뜹니다. 눈에 안보이는 하나님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세상 사람을 더 의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마음 가운데 이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렇게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섰을 때 만약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지않고, 예수님께서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고 하신다면 우리는 영영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때 얼마나 큰 후회와 좌절과 공포가 몰려오겠습니까? 그러나 세속화 가운데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는 자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그 이름을 시인하리라고 주님이 약속하십니다.
 

결론
 

조지 바나 리서치 센터는 미국의 기독교계 통계를 조사하는 기관중 가장 신빙성 있는 기관입니다. 그런데 조지 바나 리서치 센터가 예수 믿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있는 집단이 되려면 도덕성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비해40% 이상의 격차가 나야 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안믿는 사람 100명중 ‘내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조그만 부정정도는 그냥 한다’라는 질문에 안믿는 사람 30명이 부정을 안한다고 했으면 믿는 사람은 적어도70명이 나와야 되는데, 결과적으로는 40명밖에 안 나온다는 겁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과 안믿는 사람의 도덕적 격차는 10% 밖에 안되어 이걸로는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수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크리츠천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전혀 못하는 거죠.
 

이것이 사데 교회의 현실이었습니다. 교회는 다닌다고 하지만 세속화된 안믿는 사람과 다를게 뭐냐는 겁니다. 주일날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 외에는 월요일부터 세상에서 사는 것 보면 믿는 사람이나 안믿는 사람이나 똑같다는 겁니다. 주님께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고,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들에게, 회개하고 경건의 능력을 갖추라고 말씀하십니다. 처음 복음을 접할때의 순수함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회개하여 흰 옷을 입고 우리 주님과 함께 다니시고,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결코 지워지지 아니하며, 심판의 때에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충성된 종으로 시인받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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