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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을 대비하는 5대 자세

누가복음 이한규 목사............... 조회 수 391 추천 수 0 2017.09.13 23: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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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21:29-38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종말을 대비하는 5대 자세 (누가복음 21장 29-38절)


< 종말을 대비하는 5대 자세 >

 인터넷을 보면 사람의 흥미와 호기심을 유발하는 종말과 관련된 가짜 뉴스나 음모론 등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많이 돌아다닙니다. 또한 각종 자연재해나 사건을 예수님의 재림과 종말에 억지로 뜯어 맞춘 얘기들도 많습니다. 종말과 관련된 잘못된 정보나 지나치게 선정적인 얘기들은 진위 여부를 떠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암울함을 조장해서 영혼을 미혹에 빠뜨리고 바른 종말 신앙을 왜곡할 수 있어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바른 종말 신앙을 가지고 종말을 잘 대비해서 미래를 복되고 희망찬 미래로 만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종말의식을 가지십시오

 어떤 성경학자들은 무화과나무에 싹이 난다는 본문 29절의 언급은 이스라엘의 기적적인 독립을 의미하고 그 독립이 종말이 가까워진 징조라고 해석합니다. 그런 해석도 가능하지만 누가가 ‘모든 나무’란 표현을 첨부한 것을 볼 때 일반적인 나무의 성장과정을 예로 들어 종말의 비유를 했다는 해석이 더 타당합니다. 즉 모든 나무가 봄에 싹이 나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듯이 종말의 징조가 보이면 종말이 가까이 온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말론자들은 종말과 관련된 여러 징조들을 언급합니다. 시편 92편 1절에 언급된 솔로몬 성전 파괴 후 사라진 십현금이 최근에 한 유대인에 의해 2500년 만에 새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탈무드에는 십현금이 나타나면 메시야가 온다는 얘기가 있다면서 그것이 종말 징조라고 합니다. 또한 모세 시절에 정결예식 때 사용된 붉은 암송아지(민 19:2)가 이스라엘의 한 목장에서 거의 2천년 만에 나타났는데 최근에 9마리까지 나타났다고 합니다. 한 랍비는 10번째 붉은 암송아지가 나타나면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면서 그것도 종말이 가까워진 징조라고 합니다.

 그와 같은 ‘아니면 말고’ 식의 각종 선정적인 소문과 주장들을 모아 대단한 종말예언가나 종말연구가처럼 행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주장들을 철석같이 믿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그렇게 철석같이 믿으면 얼마나 복되겠습니까? 그런 선정적인 주장들은 영혼을 미혹하는 거짓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많고 그 주장이 사실이라도 건전한 종말의식 고취에는 거의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런 얘기들을 버무리고 조합해 예수님의 재림 시기의 임박성을 부추기고 예수님의 재림 날짜를 정해 영혼을 미혹한 교주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종말의식은 가지되 종말에 대해 너무 두려하지는 마십시오. 종말 문제에 대한 두려움이 지나치면 건전한 종말의식을 잃고 오히려 이단의 노예가 되어 인생도 망가지고 가정도 망가집니다. 죽음도 너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성도의 인생은 덤으로 사는 인생입니다. 언젠가 예수님은 재림하실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재림 전에 죽으면 천국에서 예수님을 만나 뵐 것입니다. 너무 종말을 두려워하지 말고 건전한 종말의식을 가지고 자기 처소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며 사십시오.

2. 말씀을 꼭 붙드십시오

 이단 교주들은 ‘무화과나무가 싹을 낸 것’이란 표현을 ‘이스라엘의 독립’으로 단정하고 ‘이 세대’를 1948년에 이스라엘의 독립 후부터 한 세대로 여기면서 각종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먹혀든 이단사설은 ‘1999년의 노스트라다무스 종말 예언’과 ‘종말에 펼쳐질 7년 대환난설’을 엮어서 버무려낸 1992년 휴거설입니다. 왜 그런 거짓 예언들을 내세웁니까? 그래야 영혼을 사로잡기 쉽기 때문입니다.

 거짓 예언에 미혹되지 않으려면 말씀을 꼭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천지는 없어져도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살면 가장 안전하고 담대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신 영이 아닙니다. 음산한 두려움이 내포된 예언은 대부분 거짓 예언입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과 말씀의 약속을 붙드는 것입니다. 운명론적인 것이나 암울한 것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이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하리라.”

 너무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여 살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모든 상황을 다 섭리하고 계십니다. 신뢰할 것은 사람이나 경제나 정부가 아니고 바로 하나님입니다. 다윗처럼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리라!”고 다짐하면 큰 두려움이 큰 평화로 바뀔 것입니다. 문제(problem)보다 약속(promise)을 더 크게 보십시오. 시각에 따라 인생도 달라집니다. 문제를 계속 바라보면 그 시각이 상황을 ‘낫게’ 만들지 않고 ‘나쁘게’ 만듭니다. 내일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꼭 붙잡고 살면 그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을 것입니다.

3. 스스로 조심하십시오

 종말이 가까워지면 내적인 타락이 심해집니다. 외적인 환경은 내적인 타락이 결과로 펼쳐질 때가 많기에 사실상 내적인 타락이 더욱 큰 문제입니다. 요새 동성애자들의 인권 옹호 주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동성애를 천성 탓으로 돌립니다. 그러나 일탈적인 성은 대개 강력한 쾌락을 동반해서 한번 맛들이면 누구나 거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멀쩡한 일반인도 한번 그 강력한 쾌락의 문턱을 넘으면 마약 이상의 강한 중독성 때문에 동성애를 추구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일전에 제가 동성애 경험과 마약 경험을 동시에 했던 사람의 진솔한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동성애는 마약보다 훨씬 쾌락의 강도가 커서 더 끊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동성애는 치명적인 육체의 바이러스처럼 그 늪에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기에 천성적인 성적 취향만은 아닙니다. 한번 빠지면 그 강력한 쾌락을 벗어나지 못해 천성처럼 느끼다가 천성으로 확신까지 해버릴 때가 많습니다.

 동성애가 마약보다 더 위험한 이유는 동성애가 상대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현실에서 동성애 인권을 존중한다고 하다가 멀쩡한 자녀까지 거기에 물들 수 있는 환경을 그대로 방치하고 심지어는 군대에서까지 인권존중을 내세워 허용하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동성애를 한번 맛보면 멀쩡한 사람도 동성애자로 만들 정도로 쾌락의 강도가 커서 후천적으로 얼마든지 습성화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동성결혼은 후대까지 끊어 인간의 생육과 번성을 막고 결국 저주받은 멸종상태로 만듭니다. 얼마나 사탄이 신나겠습니까?

 옛날에도 동성애는 있었지만 드러내놓고 추구하지 않아서 확산이 제한적이었지만 지금은 드러내놓고 추구하니까 얼마나 타락상이 심해지겠습니까? 말세가 되면 그런 타락상이 심해지다가 종말은 뜻밖에 찾아와 덫처럼 임할 것입니다(34절). 정교하게 종말 날짜를 계산해서 알아맞히는 것은 의미 없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조심해서 방탕함과 술 취함에 빠지지 않고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해지지 않음으로 종말을 지혜롭게 대비하는 것입니다.

4. 항상 기도하십시오

 예수님은 종말의 순간에 맞이할 비극적인 일을 피하고 심판하실 하나님 앞에 떳떳이 설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36절). “항상 기도하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다른 일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항상 기도합니까? 결국 “항상 기도하라.”는 말은 “생활 중에 은밀하게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암시입니다. 기도하는 자리에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활하는 자리에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저는 목회 초창기에 매일 새벽마다 1시간 이상 열정적으로 기도했지만 지금은 그런 열정이 많이 줄었습니다. 시대가 편해져서 기도에 대한 갈급함이 줄어든 것도 원인일 수 있고 기도생활이 지속되면서 생긴 타성도 원인일 수 있고 점점 체력이 약해져 몸이 따라주지 못하는 것도 원인일 수 있습니다. 또한 나이가 들면서 조금 더 보수적으로 되고 감정적인 열정보다는 이성적인 냉정이 커지는 성향도 원인일 수 있습니다.

 그처럼 외적인 열정은 약해졌지만 한 가지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열정적인 기도생활이 줄어든 것에 대한 아쉬움과 죄송함과 죄책감 때문에 다른 측면에서 더 간절해진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일상생활 중에 틈틈이 간절히 기도할 때가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즉 기도하는 자리에서 소리 내어 하는 간절한 기도는 줄었지만 생활하는 자리에서의 소리 없이 하는 간절한 기도는 오히려 늘었습니다. 그처럼 생활 중에도 기도하는 삶이 항상 기도하라는 말씀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니다. 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으면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을 것입니다.

5. 교회에 나아가십시오

 당시에 예수님으로부터 매일 깊은 진리의 말씀이 들리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부터 성전에 나아갔습니다(37-38절). 종말이 가까워짐을 느끼면 교회에 더욱 힘써 나아가십시오. 왜 교회에 나아가야 합니까? 무엇보다 말씀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교회에서 서로 사랑과 선행과 꿈과 비전을 격려하며 가정적인 사랑을 듬뿍 맛보면 그처럼 건강하고 강건한 영혼을 이단이 어떻게 쉽게 낚아채겠습니까?

 마지막 때에는 특히 거짓 은사, 거짓 예언, 거짓 치유와 같은 교만한 언행으로 사람을 미혹하는 이단 교주가 많아집니다. 아는 척, 있는 척, 높은 척 하는 교주를 특히 주의하십시오. 알면 아는 척을 하지 않고, 있으면 있는 척을 하지 않고, 높으면 높은 척을 하지 않는 것이 정상입니다. 척 하는 것도 일종의 거짓입니다. 열매도 없으면서 말로만 엄청난 것을 해줄 것처럼 혹은 이룰 것처럼 약속하는 교주도 주의하십시오. 허황된 약속도 일종의 거짓입니다.

 이단교주는 자기를 의지하면 복도 받고 기적도 이룬다고 주장합니다. 기복주의자에게는 그 주장이 강력한 마력처럼 작용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이끌리지만 그런 교만한 주장에 이끌리는 것은 복이나 기적이 더 없는 불행한 길입니다. 반면에 바른 리더는 자기가 아닌 주님을 의지해야 복도 받고 기적도 이룬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니까 그런 리더에게 굳이 매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바라보지 않도록 바르게 가르치니까 많은 대중을 마력처럼 이끌지는 못해도 사실상 그런 리더와 함께 해야 진짜 복도 받고 진짜 기적도 이룹니다.

 거짓말이 상습화된 이단 교주를 지극히 주의하십시오. 선행을 감추려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악행을 감추려는 것은 나쁜 것입니다. 지난달 뉴스에 나왔던 진돗개 숭배 사이비 종교에서는 신도의 3살짜리 아이를 죽인 후 알리면 큰일 난다는 갖가지 요설로 아기의 엄마를 미혹했습니다. 그처럼 아이를 죽이고 그 사실을 숨기려고 거짓말을 하게 하는 것은 전형적인 사이비의 행태입니다. 거짓은 이단임을 보여주는 제일 증거입니다. 거짓과 속임수로 어떤 일을 추구하게 하면 즉시 그 집단에서 과감히 탈출해야 저주와 불행의 올가미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왜 수시로 거짓말과 허황된 말을 하는 이단교주에게 멀쩡한 사람들도 미혹됩니까? 상처와 외로움이 핵심 원인일 때가 많습니다. 상처와 외로움은 이단을 살찌우는 밥과 같습니다. 가정에서의 소외감이 이단에게로의 친밀감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른 가정에 속하든지 아니면 바른 교회에라도 속해야 이단으로부터 영혼을 지킬 수 있습니다. 바른 교회를 멀리하면 이단에게 미혹되지만 바른 교회를 가까이하면 이단의 미혹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종말이 가까워지고 이단이 기승을 부릴수록 바른 교회생활은 더 중요합니다.

< 종말을 잘 대비하십시오 >

 1992년에 종말 열풍이 불 때 수많은 시한부 종말론 이단 교회에서 그해 10월 28일에 휴거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날 밤 11시부터 TV에서 생중계를 했지만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교회는 우스워졌고 수치스럽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성도들의 종말에 대한 관심도 약해졌고 종말에 대해 말하면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처럼 여겼습니다. 양치기 거짓 종말론자들로 인해 사탄의 전략이 대성공한 셈입니다.

 종말에 대한 왜곡도 위험한 것이지만 종말에 대한 무관심도 위험한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종말을 향해 급속히 진행 중입니다. 차분하게 미래를 대비하면서 미래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을 버리십시오. 종말 문제로 두려움에 휩싸이면 영혼이 미혹되기 쉽습니다. 종말을 생각할 때마다 오히려 담대함과 사모함이 생겨야 합니다. 미래를 두려워하며 받아들이지 말고 두근거리며 받아들이십시오. 미래에 대한 설레는 마음을 가진 모습이 참된 성도의 모습입니다.

 말기 암 환자들은 고통보다 공포감 때문에 잠을 못 이룰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긴 성도는 평안하게 임종을 맞이합니다. 종말의 때를 생각하면서 두려움에 빠지면 미혹에 넘어가 파멸의 길로 빠져들기 쉽습니다. 두려움을 ‘바른 믿음’이 아닌 ‘큰소리’로 이겨내려고 하지 마십시오. 논리가 부족하거나 두려울수록 소리가 커지게 되어 있습니다. 왜 진돗개나 풍산개는 잘 짖지 않습니까? 무서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겁이 많은 작은 개일수록 겁나니까 멍멍 하면서 많이 짖는 것입니다.

 ‘믿음의 말’이 아닌 ‘겁내며 소리치는 말’은 사탄이 우습게 여깁니다. 기도할 때마다 매번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귀신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표시일 수 있습니다. 사탄이나 종말을 두려워하지도 말고 너무 축복받겠다고 서두르지도 마십시오. 기다림도 사실상 축복입니다. 기도응답이나 비전성취나 환경변화를 너무 빨리 원하지 마십시오. 담대한 믿음으로 종말의 때를 준비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넉넉하게 기다림으로 종말이 어떤 모양으로 펼쳐지든지 그것이 승리의 길이 되게 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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