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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궁극이............... 조회 수 1206 추천 수 0 2017.09.17 15:3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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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16:13-24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61319: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하나님 아버지께서 가르쳐주는 신앙과,

2. 사람들(인간)이 가르쳐주는 신앙이 있습니다.

 

1의 아버지가 가르쳐준 신앙은 16절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한 이 신앙 위에 그 신앙을 가진 자들로 진정 주님의 교회가 세워집니다. 성도들이 그 형상으로 인격적으로 닮아가고 성장을 합니다. 하는 일은 죄에서 풀어내는 일, 예수 그리스도께 밀착시키는 일. 이런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계시록에서 용이 삼키지를 못합니다.

 

2의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들이 가르쳐준 신앙이 있습니다.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예레미야,

더러는 기타 등등.

 

기독교 안에서 일반 도덕성 회복운동은 세례요한의 운동이고, 기독교 안에서 이적 기사 병 고침 등의 운동을 하는 것은 엘리야의 운동이고, 기독교 안에서 구국운동을 하는 것은 예레미야 운동.

 

이런 운동들은 하나님 아버지가 가르친 신앙들이 아니고 사람으로 가르침을 받는 신앙입니다. 사람들이 아는 신앙들이 많습니다.

 

162123: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신앙과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신앙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신앙 -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자하는 신앙으로 죽는 것이 기다린다 해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부활인 예수님을 따라 올라가자, 최고의 종교지도자들이 정죄를 할지라도 올라가자하는 것이 참 신앙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2.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신앙 -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자하는 신앙으로 왜 올라가지 말라고 하느냐? ‘올라가면 죽는다. 최고의 종교지도자들에게 잡혀서 죽는다. 누가 어리석게도 죽을 줄 알면서 올라가겠느냐? 올라가지 말고 이적 기사나 행하고 병자나 고쳐주고 일하자입니다. 교회 안에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 우리의 궁극적 구원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이 없으면, 예수님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천국도 구원도 존귀영광의 영원한 삶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이냐? 보좌 영광 비우시고 성령으로 태어나시고 33년 동안 세파에 시달리시면서 사신 목적이 무엇인가? 죄 한 번도 짓지도 않으셨는데도 정죄받아 십자가에 죽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3일만에 부활하고 40여일 후에 승천으로 보여주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예루살렘으로 주님 따라 올라가야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안 따라가면 예수 믿는 가치가 없어집니다. 그 이유를 알게 해 주시려고 예수님 당신은 제자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신앙입니다. 창세 전, 영원 전서부터 설정된 걸음걸이입니다.

 

사단의 신앙을 가진 자는 올라가지 말자, 올라가면 육신 죽고 몸도 죽고 망해 죽는다입니다. ‘사람들이 아는 대로, 사람들이 알아주는 신앙운동이나 하자입니다. 사랑과 애절성, 간절성으로 사람들을 붙잡고 예루살렘으로 가면 죽는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을 그토록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람을 붙듭니다. 대부분 보면 거기에 그만 다 녹아 떨어집니다. 사단의 함정에 빠져 있으면서 인본주의 사랑이 주님의 사랑인 줄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영원한 존영성이 다 망가지는 줄 모르고 인본주의로 믿으면서 입술로만 신앙고백을 누군들 못하랴!

 

그러나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주님의 참 사람으로 만들어지고 영원히 존영자가 되는 이 일은 말씀의 봉우리, 도의 봉우리, 예루살렘 신앙사상과 정신으로 올라가지 아니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어찌 올라갈 수 있느냐? 시간 핑계, 장소 핑계, 사업 핑계, 돈 핑계, 가정 핑계, 자리 핑계, 날씨 핑계하며 등 따시고 배부르게 따라가려니 참 어렵습니다.

 

학교가 좋은 학교다 라고 소문이 나면 아무리 멀어도 논밭을 다 팔아서라도 그 학교를 찾아가고, 병원이 좋다하면 멀던 가깝던 목숨을 살리려고 재산을 팔아서라도 시간을 다 투자하며 달려갑니다. 썩어질 고깃덩어리를 위해서 축복안수해 준다고 소문이 나면 미친듯이 달려가고, 교회 부흥되는 방법론을 가르쳐준다고 하면 급해서 한 바지가랑이에 두 다리 집어넣을 정도로 마음이 급해서! 그러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자하니 제 죽을까 싶어서 그만 흔적도 없습니다. 언제 다 도망을 갔는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죽고 살아난다’ ‘주여, 그리마옵소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 사단이 하는 짓은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것. 넘어지게 하는 것은 구원을 완성치 못하게 만드는 것인데, 이것을 못하게 하는 방법은 고난을 안 받게 하고 안 죽게 하면 부활이 안 됩니다. 그렇게 하게 만들려니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은 육을 자꾸 감싸는 것. 영을 감싸는 것이 아니고 육 목적으로 예수님을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육 목적으로 예수 믿으면 영적 면은 다 절단나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을 가지되 하나님의 일을 쉽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죽음과 부활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고난없이 죽음없이 영광스런 부활을 욕심 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을 볼 때도 고난과 역경이 없이 영광이 있을까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이 부활의 복음은 사람 대 사람, 인격 대 인격인데 사람이 만들어지는 일이 돈으로 되는 것인가? 예수님의 신앙정신 사상을 성경의 깊은 것이 없이 어떻게 가질 수 있느냐?

 

1. 사람을 살리려면 죄인이 죄인을 살리지 못하고, 무죄인도 안 되고, 의인이라야 죄인을 살리는 것이니, 이 의인은 하나님의 최고의 지공법 앞에 만족을 드린 일생동안 죄 한 번도 짓지 않고 죄가 없는 전부는 의행을 한, 의행으로 된 의인의 삶이라야 만이 죄인을 살리는 것인데 이 의인의 삶이 어찌 고난과 죽음이 없이 되겠느냐?

 

2. 영원궁극적 성화구원의 효력을 능력적으로 가지게 하려면 고난받고 죽었다가 살아나야 하는데 이 일이 어찌 거저 되겠느냐?

 

힘들고 복잡한 그 일을 하지 말고 무조건 믿사오니로 나가면 된다. 뭘 그렇게 따지느냐, 골치 아프게!’ 하는 것은 사단의 짓입니다. 우리가 무슨 물건을 사더라도 출처나 회사를 알아보고, 만져보고 구겨보고 당겨보고 불에 그을러도 보고, 기계 같으면 시험운전도 해 보고, ‘가짜가 아닌가하고 보증을 받기도 하는데 예수 믿는 것을 분별도 없이 믿으려고 하니까 거짓 종들이 생겨나고, 거짓 종 밑에 들어가 그 일에 충성하고, 거짓 종을 자기가 키우고나 있지는 않는가?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 속에서 되어지는 예수 믿는 효력성을 모르면 자기는 예수 믿으면서도 은연중에 예수님과 대립을 하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서도 세상의 일을 했으니 자기의 이룰 구원, 성장구원, 닮는 구원은 쫄딱 망한 것입니다. 망한 것도 모르고 있다면 자기 머리 위에는 심판의 불이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나를 따라오려거든

첫째, 자기를 부인하고,

둘째, 자기 십자가를 지고,

셋째, 예수님을 좇을 것이니라!

 

우리는 먼저 예수님을 따르려면 예수님을 바로 알아야 될 것이고, 바로 알고 나서 인간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인간 자기가 잘났으면 따르지 말아야 할 것이고, 예수님보다 못났으면 부지런히 따르고 배우고 익히고 예수님처럼 만들어져야 할 것입니다. 모르면 따르기가 힘듭니다.

 

예수님은 인격 면에서 지혜 지식적인 면에서 도덕적인 면에서 능력적인 면에서 질적으로나 성분적으로나 존재적 시간적으로나 존귀적 영광적으로나 완전하십니다. 하나님과 동등 동질 동격이십니다.

 

인간 자기는 어떤 자냐?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고 선악과를 따먹은 후 그 영은 즉시 죽었고, 이성과 육체는 점점 죽어가고 필연적으로 죽을 것이고, 육신생활은 저주를 받았고, 타락적 기존적 지식으로 기준을 삼아 모든 인류는 오늘날까지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인간 자기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지만 늘 소원하고 목적하는 것은 임시성적인 세상에서 등 따시고 배부르게 살다가 가자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날고 긴다 해도 이 이상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예수를 믿고 있지만 예수를 믿기 전이나 예수를 믿은 후이나 별로 달라진 자기는 없습니다. 그저 믿는 양심이 있어서 좀 조심하고 사는 것뿐이지 성질이 좋은가, 성격이 좋은가, 가치 판단 평가성이 좋은가, 모든 것이 비뚤어져 있고 굽어져 있고 모가 나 있고 병들어 있고 저질적이고 이기적이고 본능적이고, 그러면서도 그 알량한 자존심은 어떻게 강한지!

 

이런 자기인데 예수님과 자기와 비교를 하면서 자기를 예수님처럼 고치면서 따르는 건지, 아니면 예수를 이용해 먹기 위해서 따르는 건지? 예수님을 따르려면 인간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는데 그렇게 하고 따른다면 어떤 대가가 올 것인지? 나를 이용해 먹고 걷어 찰 분은 아닌지?

 

사람을 사귈 때 맹목적으로 사귀느냐? 속도 모르고 겉만 보고 따라가는 사람이 있느냐? 있다면 그 사람을 볼 때에 어떻게 느껴지느냐? 철없는 어린아이가 사탕 주면 따라가듯이 먹고 마시고 자고 한 달에 월급 200만원하면 그만 웬 떡이냐하고 따라가지? 그 곳에 어떤 상황이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예수 믿는 자가 부자되고 병 낫고 만사형통되는 안수가 500만원이다하면 절반 마음이 움직이고, ‘천만원이다, 그것도 선착순이다하면 후다닥 동작이 빠릅니다. 번개같이 와서 머리 떠밀고 앉습니다. 그러나 진리이치가 공짜다하면 안 옵니다. 가짜인 줄 알고! 돈을 받아야 진짜로 여깁니다. 가짜도 돈을 받으면 진짜로 여기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했으니 돈을 받고 팔면 예수님에게 혼날 것이고, 사기꾼이라고 할 것이고, 거저 주자니 돈 있는 사람은 안 받고 돈 없는 사람만 받아서 갈 것이고. 그러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라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면, 예수님을 따라서 올라가기를 좋아한다면 자기를 부인하라! 자기의 소원성, 자기의 목적성, 자기의 취미성, 자기의 간구성, 자기의 의사성, 자기의 주장성을 모두 버리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아도, 네 마음에 사명감을 가지고 나섰더라도 그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버리고 길과 진리요 생명이요 부활이신 그 예수가 그저 좋거들랑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따라오되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아라

 

건방지게 예수 십자가 지려고 하지 말고 네 십자가나 똑바로 지고 오너라입니다. 너 죽을 각오를 하고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예정된 택자를 위해서 죄를 없이하는 지공법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지공법에 의인이 죄인을 해방시키는 십자가입니다.

사망권 죄권 마귀권 지옥권을 이긴 십자가입니다.

택자를 천국권 영생권 신령적 생명권 안으로 호적이전 등록을 시키는 십자가입니다.

성화구원을 이룬 영원궁극적 영광과 존귀와 효력성을 가진 십자가입니다.

공심판과 사심판의 심판권을 가진 십자가입니다.

 

인간 자기가 지는 십자가는 인간 자기가 죽을 십자가입니다. 인간 자기에게는 예수님을 따르면서 죽일 성질들이 많습니다. 자존심 패역성 아집성 고집불통성 음란성 게으름 누림성 우성성 세상성 시기 질투성 사기성 교활성 등등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내가 나를 보아도 그런데 주님이 내 속을 볼 때는 오죽할까?

 

이것이 들어있는 채로 사명감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지겠다고? 인간 장기 가지고 주격을 삼고 복음을 전하겠다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부활이신 주님을 따르면서 우선 이것을 죽여야 합니다. 죽여가야 하고, 바꾸어 넣어야 합니다. 이것을 안 죽이면 자기 못된 성질이 자기를 잡아먹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의 명령이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사울 왕에게 아각 왕을 죽이라고 했는데 제 눈에 보기 좋다고 한 것은 하나도 안 죽이고 시시한 짐승들만 죽였습니다. 그 일로 인해 왕은 폐위를 당하고 악신이 들리고 전쟁터에 나가서 아들하고 같이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교만한 허풍쟁이 영웅쟁이가 많습니다. 죽일 자기는 안 죽이고, 죽일 자기를 못 찾고 자기가 고칠 것이 없는 완전자가 되어 가지고 사명감을 가졌다고 천지를 모르고 어깨춤을 추고 다니는 것을 보면 참 우습지! 그 일을 하는데 자기 집 식구 중에 고통스럽게 애를 먹이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을 자기 십자가라고 합니다. 그가 자기에게 고통을 주는 십자가요, 주님의 일을 못하게 하는 십자가라고 해석을 붙입니다.

 

자기 십자가는 자기 속의 비 진리요, 이질성으로 주님과 의사적 대립을 지니고 있는 그런 것을 다 죽여야 하는 십자가입니다. 자기 속의 옛 사람을 날마다 죽이면서 예수님을 따라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거짓적인 자기를 안 죽이면 어려운 사건이 부딪치면 전부는 예수를 팔아먹고 다 도망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24절의 말씀은 예수 믿으면 부자되고 병 낫고 땅에서 축복을 받고 하는 사고방식의 신앙자들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신앙자들이라고 본인들이 말을 할 수밖에 없고, 주님과 성경이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라고 말하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왜 따르느냐?

예루살렘으로 같이 가려고 따르느냐?

예수님을 이용하려고 따르느냐?

 

신앙고백은 왜 하느냐? (계속)

 

*************************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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