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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26:5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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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http://blog.naver.com/malsoom/177053128 |
2013년 1월 27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26장 51절~52절
설교제목 : 무기(武器)의 문화
【그 때에 예수의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손을 들어 자기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내리쳐서, 그 귀를 잘랐다. 그 때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 (마태 26:51~52)】
<책 이야기>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소유란 무엇인가』(피에르 조제프 프루동, 아카넷 출판사)입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태초에는 모든 것이 공유였으며, 나뉘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모두의 재산이었다. 그러나 원시 공동체는 결국 야망과 탐욕으로 끝장나 버렸고, 지금 우리는 항구적인 불평등과 사기의 상태에 살고 있을 뿐이다. / 소유권은 결코 자생적인 것이 아니라 획득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품성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다. 원래 토지는 자비로운 하늘이 인간들에게 생활에 쓰도록 준 공동의 재산이다. 그러나 이 재산 및 거기서 나오는 생산물을 나누는 일은 인간들이 할 몫이다. 누구나 ‘다른 이들을 해치지 않으면서’ 그 중 일부를 차지할 수 있도록 필요한 힘과 지성을 하늘로부터 부여 받았다. / 모든 소유물들 가운데는 기억, 상상력, 힘, 아름다움 등과 같이 <생득적인 것>이 있는 반면 밭, 물, 숲 등과 같이 <획득적인 것>이 있다. 자연상태나 고립 상태에서는 가장 수완이 좋고, 가장 힘이 센 사람들, 즉 생득적 소유의 측면에서 가장 우월한 이들이 획득적인 소유물을 배타적으로 취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장 많이 갖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생득적 소유물의 불평등을 가능한 범위에서 획득적 소유물의 평등으로 치유하는 일이 필요하다. 분배가 평등하지 않는 한, 공동 분배자들은 서로 적으로 남으며, 계약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이렇게, 한편에는 고립과 불평등과 적대감과 전쟁과 약탈과 학살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사회와 평등과 우애와 평화와 사랑이 있다. 어느 편을 선택할 것인가.】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말숨들입니다. 프루동(1809~1865)은 “소유는 도둑질이다”는 어록을 남겨서 서구 지성사회에서 파란을 일으킨 인물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바, 그의 요지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인류사회 속에서 소유는 선점(先占)과 노동(勞動), 두 가지 차원을 수단으로 획득되는 것인데, 선점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전쟁일 뿐이고, 노동이란 우월한 노동력을 갖춘 자들이 승리하게 마련인 불평등의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인류는 공유(共有)의 재산을 공유하지 않고 사유(私有)하기 때문에, 모든 소유는 도둑질이라는 결론입니다.
물론 푸르동의 사상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며, 그의 철학을 현실화시키는데 많은 오류가 있다는 점 역시 충분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미 러시아를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이 일으킨 공산공유(共産共有) 혁명이 일부 특권층만의 공산공유 체제로 타락한 역사적 사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루동의 사상은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의 메시지는 아직도 유효하며, 어쩌면 인류를 구원할 거의 유일한 사상일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서 갈고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칼의 문화 이야기>
예수는 “칼을 들지 말라”고 했습니다. 칼이란 뭘까요? 그것은 우월한 무기입니다. 맨손으로 서 있는 사람들 중에서, 칼은 든 자는 우월한 무기를 든 자입니다. 만약에 모든 사람들이 칼을 들고 서 있다고 가정해 보면, 예수는 분명 “총을 들지 말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때 총은 우월한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칼과 총이 일상화된 요즘 시대 같으면, 예수는 분명 “핵무기를 들지 말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도대체 어떤 무기(武器)이든 무기를 들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무기의 길은 진리의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무기를 드는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그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는 수단으로서 무기를 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땅이건, 권력이건, 재산이건, 명예이건, 왜곡된 사랑이건 간에 … 인간은 탐욕 때문에 무기를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무기’에 대해서 좀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무기란 일차적으로 ‘칼과 총, 전투기와 핵무기’ 등을 의미합니다만, 여기서 몇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탐욕을 위해 갈고 닦은 지식, 탐욕을 위해 갈고 닦은 외모, 탐욕을 위해 갈고 닦은 명예와 사회적 지위, 탐욕을 위해 갈고 닦은 기술 등등은 모두 악마적인 무기(武器)인 것입니다. 탐욕을 위해서 손에 든 무기는 ‘너나 할 것 없이’ 인류 모두를 죽음으로 내모는 악마의 도구일 뿐입니다. 무기를 든 자도, 무기 앞에서 벌벌 떠는 피해자도, 또 그런 ‘무기적 문화’ 속에서 살아야 하는 수 많은 사람들 모두를 ‘죽음과 죽임’의 상태로 몰아넣는 악마적인 것입니다. 프루동식으로 말하자면, 평화롭게 공유(共有)되어야할 것들에 대해서 악마적으로 사유(私有)하기 위해서 무기를 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칼을 들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무기(武器)의 문화’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축도>
하늘의 하느님이여. 땅의 예수여. 바람의 성령이여!
이제는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이 땅에서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출처] 무기(武器)의 문화|작성자 말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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